게임으로 인한 오덕성을 검증하기 위해 한군님을 만나보겠습니다 1

게임으로 인한 오덕성을 검증하기 위해 한군님을 만나보겠습니다 0에서 이어집니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라는 게 연애에 영향을 끼치나?
한대훈: 나 같은 경우에는 현재의 와이프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고 비교적 일찍 결혼한 편이라 개발자로서의 연애라는 걸 느낄 새가 없었다. 하지만 게임회사에 다니며 동료나 친구가 연애하는 걸 보니 개발자와 연애하는 건 개발자도 그렇고 상대방도 그렇고 취향을 참 많이 탄달까. 어느 정도 오타쿠 기질이 없으면 좀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림동 캐리: 그러고 보니 어쿠스틱 라이프에서 한군님이 난다님에게 던진 프로포즈 대사가 참 많은 여성의 주먹을 쥐게 했지….


한대훈: 그게 나름대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신림동 캐리: 그래 비하인드 스토리라 쓰고 변명이라고 읽히는 그 사연 좀 들어보자.
한대훈: 대학을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게임회사에 다니며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와이프와 부산에서 연애하고 있었다. 근데 어쩌다 보니 서울에 있는 게임회사로 이직할 기회가 생긴 거다. 근데 태어나서 20년 넘게 부모님 아래서만 살았는데 날 혼자 서울에 보내놓으면 거러지(‘거지’의 부산 사투리)처럼 살 게 너무 뻔했던 거다. 그래서 부모님이 지금 여자친구와 오래 사귀기도 했고 잘 지내니 결혼해서 같이 올라가면 어떻겠냐 그렇게 권유하셨다.
신림동 캐리: 그래, 변명… 아니 비하인드 스토리 잘 들었는데 그래도 그 멘트는 너무 뽄(‘모양새’의 경남 사투리)이 없잖아!

그렇습니다. 신림동 캐리도 한군님도 경상디언이었던 것입니다.

한대훈: 나라고 멋진 프로포즈 하기 싫었겠냐. 근데 이직하고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 와중에 와이프는 ‘언제 프로포즈 할 거야? 응? 응?’ 이런 눈빛을 매일 하고 있으니까 도리어 정신을 잃게 되었다.
신림동 캐리: 하지만 우리 부모님이 널 허락하니 결혼하자는 건 너무 정신줄 놔버렸잖아….
한대훈: 내 나름대로는 ‘우리 부모님이 널 마음에 들어 하시니 우린 이제 아무 문제가 없어!’라는 희망에 찬 대사였던 거지.
신림동 캐리: 하긴 엄마가 하라는데 더 이상 뭔 장애물이 있겠어. 예전에 고등학교 물리 선생님이 F=ma 공식을 가르치시며 ‘힘은 엄마에게서 나오죠!’라고 하시던 게 생각난다.
한대훈: 짱인데?
신림동 캐리: 집안 대소사의 최종 보스는 늘 엄마인 거야.
한대훈: 그래도 결혼식 며칠 전에 작은 케이크랑 반지를 사서 정식으로 프로포즈하긴 했다. 정말 싼 반지였는데 지금도 와이프가 그걸 끼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아내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텔레파시로 보내는 한군님이십니다.
신림동 캐리: 일하지 않을 때는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한대훈: 보통 게임을 하거나 애를 보거나 와이프와 이야기를 하거나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그렇게 평범하게 여가를 즐긴다. 별로 특별할 건 없다.
신림동 캐리: 평범하다기엔 굉장히 바람직한 오타쿠 남편 같은데….
한대훈: 오타쿠라고 하니까 말인데, 나도 약간은 워커홀릭 스타일이라 일하지 않고 쉬는 시간에도 대부분 뭔가를 만들고 있더라. 그게 회사 일일 때도 있고 취미로 하는 개인 프로젝트일 때도 있는데 아무튼 뭔가를 계속 만드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편이다.
신림동 캐리: 나도 글 쓰다가 쉰다고 누워서 다른 생각 하다가 ‘이건 페이스북에 써야지!’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일단 창작계에 발을 들이면 쉴 수가 없는 것 같다. 영원히 고통받는 오타쿠랄까….
한대훈: 그렇지. 쉰다고 쉬면서도 리프레시하고는 거리가 먼 짓만 하고 있어서 요즘은 게임이나 개발 이외의 취미를 만드려고 노력 중이다. 특히 최근에 ‘번 아웃을 막는 방법’이라는 글을 보고 충격받아서 일과 휴식을 구분하려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번 아웃을 막는 방법이란?

원문 링크 http://blog.kissmetrics.com/prevent-employee-burnout/
번역 링크 http://subokim.wordpress.com/2013/04/12/prevent-burnout/

신림동 캐리: 휴식 이야기하다가 일 이야기해서 좀 이상하지만 페이스북을 보니 오늘(2014년 3월 26일) 한군님이 만드시던 게임이 드디어 공개된다고 쓰셨더라. 로켓펀치에 어필할 기회 드릴 테니 홍보 한 번 해봐라.
한대훈: 레알?
신림동 캐리: 레알.
한대훈: 지금 저희 팀이 고맙다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림동 캐리: 제목이 뭔가?
한대훈: ‘무적의 용병단‘이다.
신림동 캐리: 뭐야, 왜 이렇게 유치해!
한대훈: 유치하다니 Orz
신림동 캐리: 누가 지었나?
한대훈: 모두가 합심해서 지었다.
신림동 캐리: 저한테도 한 번 물어보시지 그러셨어요.
한대훈: 그러게요. 아무튼 무적의 용병단은 저희 크레이브몹에서 열심히 만든 RPG 게임이다. 다른 RPG들과는 차이점이라 한다면 전술에 따른 결과가 확실히 달라진다는 것과 대규모 군단 전투라는 거다. 그래서 같은 전투라도 전술에 따라서 압도적으로 이길 수도 있고 압도적으로 지기도 한다. 이것저것 파보는 재미가 있으실 거다.
신림동 캐리: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한가? 소리 없이 강한 게 컨셉인가?
한대훈: KAKAO라든가 퍼블리셔도 없이 저희가 직접 서비스 준비 중이다. 그래서 영상 편집과 홍보용 이미지도 개발팀에서 다 작업하고 있다.
신림동 캐리: 가내수공업이세요?
한대훈: 말하자면 그런 건데 서버랑 서비스, 그 밖의 모든 걸 자체 준비하다 보니 재미난 경험도 많다.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컨셉으로 진짜 진짜 노력한 작품이니까 잘되었으면 좋겠다. 3월 27일부터 누구나 참여 가능한 방식으로 클베 준비 중인데 캐리님도 꼭 좀….
신림동 캐리: 내가 쌀이를 봐서 깔겠다….

쌀이를 보니 안 깔 수가 없네요.

신림동 캐리: 쌀이가 커서 개발자 혹은 웹툰 작가가 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
한대훈: 나나 와이프 모두 쌀이에게 계속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이런 쪽으로 장래희망을 정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쌀이가 개발자를 하겠다면 대찬성인데 와이프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쌀이가 프로그래머나 그래픽 아티스트가 되어 나중에 같이 게임을 만드는 게 로망이긴 하다. 아버지와 딸이 만든 인디 게임이라니 엄청 멋질 것 같거든.
신림동 캐리: 저번에 넥스트플로어의 이성우님도 루미가 미소녀 개발자로 성장해 같이 프로젝트 하는 걸 꿈꾸시던데 개발자에게는 딸과 같이 작업하는 게 그 동네 로망인가 보다. 참고로 우리 아빠는 건축가이신데 내가 어릴 때부터 ‘캐리야, 나중에 주택을 지어서 1층엔 나랑 엄마가 살고 2층엔 너랑 남편이 살고 3층엔 니 동생 부부가 살고….’라는 말을 자주 하셨지. 근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농담이 아니신 것 같은 거야. 그래서 내가 악착같이 공부해서 서울로 도망왔잖아. 아빠를 사랑하지만 같은 집에 살고 싶진 않아요!

신림동 캐리: 지금은 스타트업에 계시지만 엔씨나 넥슨 같은 대기업도 다녀보셨는데 비교하자면 어떤가?
한대훈: 대기업은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 스타트업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대기업은 안정적인 느낌이 크다. 그리고 작업 역시 익숙해지면 회사 자체도 편하게 다닐 수 있지. 하지만 대기업에서 대규모 프로젝트에 있으면 그만큼 한가지 작업만 하게 되기 때문에 다양한 업무를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 분야의 스페셜 리스트를 꿈꾼다면 좋지만, 나중에 자기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은 대기업에서 많이 배우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지. 대기업을 다니면 많은 시간과 자기 성과를 보여야 하니까. 반대로 스타트업은 적은 인원이 좀 더 가깝게 일한다는 기분이다. 회사 규칙도 대기업보다는 훨씬 느슨한 편이라서 자기 스타일에 맞게 일할 수 있다. 지금 나 역시 현재의 회사가 그런 부분의 편의를 봐주셔서 17개월 된 아기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만족스럽다. 하지만 인원이 적기 때문에 한명 한명에 책임감이 많이 요구되고 그로 인해 어깨가 무거운 느낌은 있다. 게다가 다양한 업무를 소화해야 하는 상황이 많지. 근데 또 실력만 좋다면 자기만의 프로젝트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높다는 장점도 있다.

신림동 캐리: 저번에 모델링 작업을 할 때 가끔 본인의 재해석을 넣는다고 하셨는데 그런 작업물 중에 괜찮았던 사례는 무엇이 있는지?
한대훈: 예전에 여자의 얼굴을 모델링 할 때인데, 원화의 인상이 조금 어색해서 원화에 따른 얼굴을 하나 놔두고 약간 더 손을 본 후 제가 생각하는 귀여운 여자의 얼굴로 수정했었다. 근데 그게 주변으로부터 반응이 좋았다. 사실 여성의 얼굴이라는 게 워낙 개인의 취향 문제라서 내가 느끼기에 별로라 해서 나쁘다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신림동 캐리: 사람의 얼굴이야말로 정말 취향의 문제지.
한대훈: 그래서 원본을 만들고 내 나름의 수정본을 만드는 이중의 작업을 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아서 보람 있었다. 게다가 이 일 이후에는 여성 얼굴 관련해서 내 임의로 수정해도 좋다는 지시가 와서 작업의 범위가 넓어져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신림동 캐리: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업물이랄까 애착이 있는 작업물은?
한대훈: ‘일루미’라고 이름 붙인 캐릭터가 있는데 가장 애정이 간다.

신림동 캐리: 힘세고 강한… 여자 같다.

한대훈: 도미넨스워5 때 본선을 하기 전에 전야제 같은 느낌으로 하는 Pre-Dominance War라는 대회가 있다. 그때 아는 동생이랑 같이 뭔가 멋지게 해보자고 파이팅하면서 작업했었는데 굉장히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당시 회사가 야근이 잦은 스타일이라서 개인 작업할 시간이 엄청 부족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나름 결과물을 만들 수 있어서 자신에게 대견했었기도 하고 말이지. 아무튼 평소에 하고 싶었던 아트 스타일과 컨셉으로 자유롭게 작업했는데 결과적으로 Pre-Dominance War5에서는 5위를 했다. 잘하시는 분이 워낙 많아 배울 점도 많았고, 작업 도중에 내 부족함을 많이 느끼면서 개인적으로 작업에 관한 마인드도 새롭게 가질 수 있는 기회였다.

신림동 캐리: 아트 관련해서 최근에 읽은 인상적인 책은?
한대훈: 요즘은 한창 프로젝트 마무리 단계라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내게 감명을 준 콘텐츠를 추천하겠다. 라는 3DS용 게임, <브레이브리 디폴트>라는 아트북을 아주 감명 깊게 봤다. 아티스트에게 언제나 레퍼런스가 되어주시는 요시다 아키히코님의 최신 아트를 감상할 수 있는 건 물론 서양과 동양을 아우를 수 있는 스타일이란 무엇인지 귀감이 되어주신다. 그리고 이것 역시 책은 아니지만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의 디렉터셨던 미카미 신지님의 인터뷰인 ‘미카미 신지와 젊음의 샘’ 이라는 인터뷰를 인상 깊게 읽었다. 업계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식견과 개발자로서의 마인드를 엿볼 수 있었다. 원문 링크와 번역 링크가 있다.
신림동 캐리: 아트 디렉터에게 좋은 회사는 어떤 회사인가?
한대훈: 자기가 가진 욕망을 해결할 수 있는 회사가 좋은 회사겠지? 멋진 프로젝트를 자신의 타이틀로 달고 싶은 사람이 있고 자기의 그림이 메인으로 걸려야 행복한 사람이 있다. 각자의 욕망에 따라 어떤 회사를 원하는지가 달라지는 것 같다. 이 욕망에 자기 자신이 솔직하지 못하거나 그 욕망을 누르면 그게 스트레스가 되고 회사 생활에 불만이 생기게 된다. 지금 나에게는 내 게임을 만들 기회가 있는 회사가 제일 좋은 회사다. 돈을 많이 줄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
신림동 캐리: 그럼 아트 디렉터에게 제발 이런 거 시키지 마라 하는 건?
한대훈: 표절.
신림동 캐리: 단호박 드셨다?
한대훈: 요즘 게임계의 표절이 정말 심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어느 선까지 표절을 용인하고 허가하는진 모르겠지만, ‘저거 좀 베껴.’라는 말은 개발자를 정말 힘 빠지게 한다. 특히 모바일 쪽은 한 달에도 몇 개나 표절 의심이 나오는데 이렇게 되다 ‘모바일 게임 = 표절’이라고 인식이 유저에게 박힐까 걱정스럽다. 계속 모바일 시장을 키워 나가야 하는 시기인데, 표절은 장기적으로 그 시장을 죽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금 모바일 붐과 함께 게임이 쇠퇴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에는 표절이나 퀄리티 미달의 게임이 범람하고 있는 부분이 크거든. 이 부분은 개발자가 자기 게임에 자부심을 가지고 파이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업계가 자정 작용을 해야 할 거다.

신림동 캐리: 본인이 직업적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은?
한대훈: 다들 알다시피 다른 게임 많이 해보고 머릿속으로 만들고 싶은 게임 상상 많이 하고 따로 개인 작업을 많이 하는 거지. 게임은 프로그램만으로 또는 아트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장르가 합쳐지는 거잖아. 그러니까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도 알아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한 부분만 열심히 해서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괜히 게임을 종합예술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야.

신림동 캐리: 개발자에게 재능이 얼마나 차지한다고 생각하나?
한대훈: 내 경험상 게임 개발에서 재능은 큰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능과 실력이 넘치는 사람으로 가득한 팀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는 것을 몇 번 봤거든. 개인적으로는 재능보다 열정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열정을 유지할 수 있으면 자신의 욕망을 이룰 기회가 반드시 올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 역시 재능이 넘치는 사람보다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 더 일하고 싶다. 게임에 대한 열정과 집착이 게임을 완성하고 게임을 성공하게 하지 않을까?

모니터는 아티스트에게 가성비로 가장 인기 있지 않을까 하는 Dell 27인치 모델 사용 중이고 서브 모니터는 삼성 체험단으로 우연찮게 획득한 23인치(애매한 사이즈) 삼성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다. 서브 모니터는 작업할때 영상 띄우는 용도로만 쓰고 있다. 작업용으로는 스펙이 좀 애매하니까.

타블렛은 와콤 인튜오스3, 마우스는 단종된 Microsoft Intelli Mouse를 사용 중이다. 최고의 마우스이지만 단종이라 비싼 가격으로밖에 못 구하는 게 슬프다. 빌드할 때 시간을 보낼 만화책이나 휴대용 게임기를 언제나 옆에 두고 있다. PS VITA나 Nintendo 3DS가 항상 함께다. 옆에 이미지를 보고 무슨 만화책인지 맞추시는 분은!

게임 환경은 최근에 세팅하게 되었는데, LG 42la6580 TV를 사용하고 있고 나름 만족한다. 게임 기기는 플레이 스테이션 3, 4와 엑스박스360을 사용하고 있다. 플스4가 나와서 차세대 게임을 한껏 즐기니 게임 할 맛 나는 요즘이다. 플스4용 카메라도 샀지만 대부분 집에서 게임할 때는 팬티 차림이라 게임하는 모습을 방송한다든가 그런 건 못하겠다.

사진만 보면 나만의 공간 같지만 바로 옆에 와이프 책상이 있어서 조용히 플레이하고 있어요.

게임으로 인한 오덕성을 검증하기 위해 한군님을 만나보겠습니다 0

금요일이 되면 ‘오늘만 버티면 드디어 주말이다!’하는 해방감에 오전부터 마음이 살랑거리죠. 이런 금요일을 더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어쿠스틱 라이프’입니다. 게으른 남편과 생활인 아내의 알콩달콩한 결혼 이야기는 보기만 해도 흐뭇해 ‘마조앤새디’, ‘결혼해도 똑같네’와 더불어 3대 결혼 권장 만화로 불리고 있죠.

두 달을 빌고 떼쓰고 어찌저찌해서 어쿠스틱 라이프의 한군님을 개발자 인터뷰에 모셔봤습니다. 참고로 저희 로켓펀치 디자이너분이 어쿠스틱 라이프의 열광적인 팬이라 책에 싸인을 받아달라는 둥 선물을 전달해달라는 둥 귀찮은 요구를 하셨는데요.

신림동 캐리: 저 이번 주에 한군님과 개발자 인터뷰합니다.
윤보화 디자이너: 저 캐리님….
신림동 캐리: 네?
윤보화 디자이너: 저 처음으로 캐리님이 대단해 보여요.

한군님을 섭외함으로써 신림동 캐리의 능력치가 1 올라갔다.

신림동 캐리: 한대훈님 캐릭터는 쌀이를 안고 게임하는 모습으로 부탁해요.
석지환 디자이너: 네.

나중에 결과물을 받았습니다.

신림동 캐리: 이게 뭐예요! 왜 갑자기 난다님이!
석지환 디자이너: 제가 난다님 팬이라서요.
신림동 캐리: 왜 난다님 얼굴만 색칠 안 해! 시체 같잖아!
윤보화 디자이너: 원래 난다님은 얼굴에 색깔 없어요.

어쿠스틱 라이프의 팬인 두 디자이너 앞에서 저는 닥치고 버로우했습니다. 아무튼 뼛속까지 게이머인 오타쿠 남편 한군님을 만나보시죠.

이름 혹은 닉네임: 한대훈/한군
위치: 서울
직업, 소속: 크레이브몹(Cravemob)
내 모바일 기기: 갤럭시 노트2, 아이패드2
블로그 주소: http:/g-hangun.com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한대훈: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 12월에 섭외 요청 드렸었는데 2월에야 드디어 뵙네요.
한대훈: 일부러 바쁜 척한 게 아니고 진짜 바빴습니다.
신림동 캐리: 누가 뭐래요…. 아무튼 간단한 소개 부탁합니다.
한대훈: 모바일 게임 개발사 크레이브몹(Cravemob)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한대훈이라고 합니다. 보통 ‘한군’이라고 불려요.
신림동 캐리: 어쿠스틱 라이프에서 어머니가 난다님에게 ‘우리 아들 살만 빼게 해다오.’를 결혼 조건으로 거셨을 정도라고 봤는데 실제로는 별로 뚱뚱하지 않으시다?
한대훈: 아니다. 만화에서 워낙 뚱뚱하다고 하니까 누가 ‘한군님은 정말 곰처럼 뚱뚱한가요?’라고 질문을 해놨더라. 그래서 내가 거기 ‘돼지처럼 뚱뚱합니다.’라고 답변을 달았지.
신림동 캐리: 그렇게 안 뚱뚱해!
한대훈: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한데, 요즘은 게임 발매 직전이라 야근하며 간식을 많이 먹어서 한창 물오른 상태다.

그 그렇다고 합니다.

신림동 캐리: 게임 개발자로 알고 있는데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한다.
한대훈: 게임 개발 경력은 12년 정도 되었다. 넥슨과 엔씨소프트와 아이덴티티 게임즈를 거치며 패키지 게임부터 시작해서 온라인 게임, 모바일 게임까지 꽤 다양하게 만드는 중이다.
신림동 캐리: 게임 사랑이 정말 유별나신 걸로 만화에 묘사된다. 게임이 그렇게 좋은가?
한대훈: 마이 라이프다.
신림동 캐리: 그럼 처음부터 어려운 질문 하나 던지겠다. 한군 인생의 게임은?
한대훈: 아, 이런 잔인한 질문을!

한군님은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시다 아래와 같은 답변을 하셨습니다.

한대훈: 요즘은 워낙 좋은 게임이 많이 나와서 인생의 게임이라고 할만한 작품이 계속 변하는 편인데, 그래도 베스트를 뽑자면 바이오쇼크 1편(Bio Shock 1), 저니(Journey), 역전재판 1~3편 정도다. 바이오쇼크 1편은 누구나 인정하는 명작인데 스토리 전개라던가 아트라던가 모든 게 완벽했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엔딩 역시 너무 와닿았다. 저니(Journey)는 플레이하다가 감성 터져서 눈물 나올뻔한 작품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축소해놓은 느낌을 많이 받았고 게임이 예술이 된다면 이런 형태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신림동 캐리: 김용하님도 저니를 인생의 게임으로 꼽으셨지. 왠지 알아주는 게임 덕후 둘이 이러니까 나도 한 번 해봐야겠다는 충동이 든다.
한대훈: 정말 좋은 게임이다. 꼭 해봐라. 그리고 역전재판 1~3편은 그냥 순수하게 좋아하는 게임이다. 아마 각 편마다 10번은 클리어했을걸. 텍스트 게임인데도 할 때마다 훌륭하게 만들어진 캐릭터 때문에 질리지가 않는다. 최신 시리즈인 5도 최근 구입해서 즐기고 있지만 1~3편의 포스에는 못 미치는 느낌이라 안타깝다.
신림동 캐리: 좋아하는 게임사는?
한대훈: 플래티넘 게임즈의 액션 게임을 다 사랑한다. 특히 베요네타는 명작이지.

신림동 캐리: 스스로 ‘개발 육아 제너럴리스트’라고 칭하실 정도로 딸바보이신데 쌀이를 키우며 게임까지 할 여유가 되시나?
한대훈: 회사 출근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라 오전에 쌀이와 놀다 애 봐주는 시터 아주머니가 오시면 바톤을 터치하고 게임 좀 플레이하다가 출근한다. 퇴근 후에도 쌀이 재우고 게임을 하는데, 최근에는 야근을 많이 하다 보니 집에 오면 피곤해서 자느라 게임 시간이 많이 줄었다. 게임 발매가 코 앞이다 보니 이 기간에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신림동 캐리: 쌀이에게도 게임을 시킬 건가?
한대훈: 본인이 원한다면 당연히.
신림동 캐리: 그럼 쌀이에게 처음으로 추천할 게임은 뭔가?
한대훈: 그건 이미 정해놨다. 남극 탐험!
신림동 캐리: 나도 그거 어릴 때 패미컴으로 자주 했었는데!
한대훈: 요즘 스마트폰 시대라지만 패미컴을 구해서 쌀이에게 제대로 패드 잡고 플레이하게 해주고 싶다. 패드의 손맛이라는 건 핸드폰에서 터치하는 것과는 완전 다르거든. 그 손맛을 꼭 느끼게 해주고 싶다. 우리 쌀이도 나중에는 자연스레 모바일 게임을 하겠지만 처음은 패드를 손에 쥐어주고 ‘이런 게임이 발전해서 지금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게임이 된 거야.’라는 걸 알게 해주고 싶다.
신림동 캐리: 게임 덕후 아빠의 로망이 막 절절하게 느껴진다.

쌀이는 좋겠습니다.

신림동 캐리: 첫 번째 게임 하니까 말인데 나도 패미컴으로 게임에 입문했지만 제대로 게임에 빠져든 건 PC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를 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한대훈: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진짜 오랜만에 듣는다.
신림동 캐리: 나도 이야기하면서 손노리의 추억 돋는다. 아무튼 그러다가 프린세스 메이커를 만나고 완전히 빠져들었는데 대체 프메 개발팀은 무슨 생각으로 3에서 무사수행을 없애고 Q라는 망작을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
한대훈: 아, 프린세스 메이커 3부터는 디렉터가 바뀌었다고 들었다.
신림동 캐리: 역시! 3부터는 1, 2의 감성이 아니야.
한대훈: 프메2는 정말 잘 만든 게임이라 지금도 간간이 한다.
신림동 캐리: 프린세스 메이커는 역시 DD파일 지우는 맛…인데 아무튼 게임에서의 치트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대훈: 예전에 패키지 게임 만들 때는 치트 쓰는 유저 보면서 ‘아, 한 번은 자기 힘으로 엔딩을 보지….’라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첫 번째는 온전히 자기 힘으로 깨고 두 번째부터 치트를 써서 자유롭게 플레이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치트 자체에 대해선 잘 쓰면 게임을 진짜 재밌게 즐길 방법일 수 있다고 게이머로서 이해한다.

신림동 캐리: 그럼 봐주신다는 건가?
한대훈: 근데 요즘은 온라인 게임을 만드니까 치트를 쓰면 영구블럭을 먹이지.

난다님과 쌀이에겐 따뜻하지만 치트 쓰는 플레이어에겐 냉정한 한군님, 너란 개발자 그런 개발자.

신림동 캐리: 이 소프트웨어와 도구 없이는 살 수 없다 하는 거 있나?
한대훈: 아무래도 그래픽 작업을 하니깐 3dsMax랑 PhotoShop이겠지? 프로그램은 언제나 최신 버전보다 한 단계 전 버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최신 버전은 플러그인이나 안정성 면에서 많이 불안해서 안 쓰게 되더라. 그리고 작업물 백업하는 용도로 클라우드 저장하는 몇 가지 프로그램을 이용 중이다. 회사에서 작업한 것을 그래도 집에서 이어서 작업할 수 있게 폴더를 동기화 해놓으면 엄청 편하다. 문제는 집에서도 회사 일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는 정도일까?
신림동 캐리: 그건 정말 문제지. 나도 주말에 가끔 그러고 있다가 ‘내가 뭐하는 짓이야!’하면서 던진다.
한대훈: 로켓펀치의 개발자 인터뷰를 평소에도 읽는 편인데 보통 개발자분들이 키보드를 엄청 아끼더라. 나 같은 경우는 마우스를 아낀다. 마이크로 소프트 Intelli Mouse가 없으면 작업을 못 할 정도다. 근데 문제는 이 제품이 단종되어 중국산 벌크 제품밖에 남지 않았단 거다. 그래서 오래 쓰면 클릭이 두 번 되는 오류가 생긴다. 이럴 때 새 것으로 바꾸게 미리 여러 개 쟁인다.

신림동 캐리: 모델링 작업을 할 때 원화에 충실히 맞추면서 하는지 아니면 본인의 재해석이 들어가는지?
한대훈: 우선 그런 부분은 팀 스타일에 달려있을 것 같다. 각자 각자가 최선의 작업물을 만드는 스타일의 팀이 있다면, 정확한 프로세스대로 진행되는 팀도 있지.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두 스타일에 다 확실한 장단점이 존재하니까.
신림동 캐리: 그래도 더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을 거 아닌가?
한대훈: 나 같은 경우에는 원화가 있다면 당연히 원화에 맞춰서 충실히 만드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원화 단계에서 AD와 컨셉 원화가의 의도와 노력이 들어가 있는데, 그걸 임의로 수정하거나 재해석을 하는 것은 개발론에서는 좋은 방식은 아닌 것 같고 만약 그런 부분이 있다면 모델링이 들어가기 전에 원화 단계에서 그런 이야기가 미리 이루어져서 모든 것이 컨셉 원화에 담겨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모델링하기에 애매하거나 예쁘게 나오기 힘든 디자인이 나올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원화가 중에는 3D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모델링 시에 어려운 디자인이나 피해야 할 디자인을 알고 있는 분도 계시지만 다른 영역이라 잘 모르시는 분도 많거든. 이럴 때 필요한 게 타 영역에 대한 배움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그런 부분은 서로 이야기를 해서 다른 디자인으로 교체하거나 해야겠지.

신림동 캐리: 한군님을 모셨으니 아내분인 난다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군. 만화가와 개발자라는 직업 모두 창의성이 필요하고 때로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예민한 기간에는 서로 어떤 배려를 하시는지?
한대훈: 서로 바쁜 시기에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기 때문에 딱히 뭔가를 하기보다도 부탁하는 걸 잔소리 없이 들어주는 쪽으로 배려한다. 쉽게 말해서 서로 나름대로 눈치를 본다고나 할까? 좋게 표현하자면 평소보다 더 챙기는 거지.
신림동 캐리: 구체적으로는?
한대훈: 나는 주변을 약간 시끄럽게 만들고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음악을 틀거나 영상을 틀어놓고 말이다. 그와 반대로 와이프는 조용해야만 작업할 수 있다. 자기 말로는 한 번에 하나밖에 못 하는 머리라고 표현한다. 아무튼, 그래서 둘이 동시에 작업을 할 때는 내가 영상이나 음악을 끄거나 거실로 나가서 모바일 게임을 하면서 자리를 비켜준다. 얼마 후 집중 시간이 끝나면 와이프가 춤을 추면서 나온다.

한군님의 어쿠스틱한 라이프는 게임으로 인한 오덕성을 검증하기 위해 한군님을 만나보겠습니다 1에서 계속됩니다.

난 누군가 이 코드는 어딘가, 고민을 멈추지 않는 개발자 구종만 1

신림동 캐리:어릴 적부터 많은 프로그래밍 경시대회에서 상을 휩쓰셨는데 언제부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가졌고 어떤 계기로 그리되셨는지?
구종만: 어릴 적부터 휩쓸다니 오해입니다. 대학교 온 후에나 좀 성적이 좋았지, 그 이전에는 대회에서 큰 상을 타본 적이 없다.
신림동 캐리: 대기만성 타입!
구종만: 그 그런가…. 프로그래밍은 열 살에 컴퓨터가 생기면서부터 시작했다. 그때는 컴퓨터 사면 무조건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컴퓨터 사면 깔려 있는 게 게임 두 개랑 베이직 밖에 없었거든. 그래서 이걸 제대로 가지고 놀기 위해 프로그래밍 하다가, 프로그래밍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어찌어찌하다보니 여기까지….
신림동 캐리: 참여한 프로그래밍 경시대회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 하나만 들려달라.
구종만: 2007년 라스베가스에서 탑코더 오픈 와일드카드전을 앞두고, 한국에서 참가한 다른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탑코더 오픈은 대회 15분 전부터 자리에 앉아서 코드를 미리 짜 둘 수 있어서, 이 코드를 뭘 짤까 두런두런거리다가 마지막에 말이 나온 유리수 구현을 미리 작성해 뒀다. 그런데 그게 1번 문제로 나왔다! 으아, 내가 결승 가라는 신의 뜻이구나 생각했다. 결국은 와일드카드 1등으로 결승 진출했다.

신림동 캐리: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미국에 취업하셨는데 왜 해외 취업을 결심하셨는가?
구종만: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하기로 했을 때부터 쭉 대학원 갈 계획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취업은 생각도 안 해봤었다. 미국에서 일하게 된 것은 우연에 더 가깝다.
신림동 캐리: 우연이라고?
구종만: 2007년에 탑코더 오픈 참가하러 라스베가스에 갔는데, 당시 스폰서 중에 트레이딩 회사가 하나 있었다. 각종 기계학습이나 데이터 마이닝 기법들을 적극적으로 써서 어렵고 재미있는 문제를 푼다고 광고하더라. 당시 NHN에서 병특하면서 데이터 마이닝 업무를 배우고 있기도 했고, 원래부터 기계학습이나 인공지능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고 그 회사 인턴쉽에 한 번 지원해 봤다. 그랬는데 전화 면접 보고 그 인턴쉽이 덜컥 붙은 거다. 그래서 복학하고 여름방학에 시카고에서 인턴쉽을 했는데, 회사 환경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너무 마음에 들었다. 마침 그때 인턴 프로젝트도 굉장히 결과가 좋아서 정규직으로 돌아오라는 제안을 받았기에 반쯤 홀려서 덥석 물었다.
신림동 캐리: 그럼 대학원은 포기하신 건가?
구종만: 처음 미국 갈 때만 해도 언젠가 대학원에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회사에 다니다 대학원 가려면 정말 강철같은 의지가 있어야 하더라. 난 안될 거야.

신림동 캐리: 병특하니까 말인데 최근 학사 병특이 없어져 많은 이들이 절규하고 있다. 이노티브와 NHN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병특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병특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구종만: 나는 운이 좋아서 병특 시절을 아주 즐겁고 보람차게 보냈다. 배운 것도 엄청나게 많고, 회사 생활도 즐거웠다. 병특은 개발자의 몸값을 낮춘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막상 병특 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경험도 쌓고, 병역도 해결하고 굉장히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은 넓어서 군대보다 못한 병특도 존재한다고 들었지만 뭐 그건 예외라고 생각하겠다. 주변에 훌륭한 후배들이 병특을 미루다 이번에 병특 없어진 것 때문에 군대 가거나 자의 반 타의 반 대학원 진학을 하게 되는 경우를 좀 봤는데 그저 눈물만….
신림동 캐리: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신림동 캐리: 또 타이밍 하니까 말인데 재하를 미국에서 낳으셨잖나. 무시무시하기로 소문난 미국의 의료비용을 어떻게 커버하셨는지?
구종만: 미국 의료 시장이 사람들 말대로 정말 막장이긴 하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신림동 캐리: 나도 미국에서 신종플루에 걸렸었는데 의료보험이 없어서 그냥 자가치유했다.
구종만: 다행히 미국의 IT회사는 개발자가 없어서 난리이기 때문에, 회사복지의 하나로 의료보험을 많이 지원해준다. 게다가 이게 비싸고 좋은 플랜인 경우가 많아서 재하를 낳는데 회사 의료보험을 썼더니 내 돈은 거의 안 들었다.

신림동 캐리: 한국에서 애 낳는 것에 비교하면?
구종만: 한국에서 애를 낳아본 적이 없어….
신림동 캐리: 미안하다. 내가 이상한 질문을 했어….
구종만: 근데 미국 보험이 비싸긴 정말 비싸다. 회사에서 안 대주면 정말 피눈물 난다. 이직금지 기간 동안 쉬면서 내가 보험비 냈는데, 한 달에 백만 원 넘게 나갔다.
신림동 캐리: 이 소프트웨어와 도구 없이는 살 수 없다 하는 거 있나?
구종만: 대부분의 시간을 터미널에서 보내기 때문에 대부분 터미널에 관련된 도구들이다. 여기에 대한 글(http://www.theyearlyprophet.com/love-your-terminal.html)도 썼다. 여기에 나와 있지 않은 것은 xmonad랑 ipython, lyx이다. xmonad는 타일링 윈도우 매니저로, 윈도우 위치/크기를 직접 조정할 필요 없이 미리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화면을 꽉 채우도록 윈도우를 배열해 준다. 터미널을 여러 개 빠르게 열고 닫으면서 일하는 스타일이라 아주 유용하게 쓴다. 얼마 전에 맥북 에어를 사면서 포기하려고 해 봤는데, 결국 포기하고 우분투 깔았다. ipython은 뭐 말할 것 없는 파이썬 쉘인데, 여기의 노트북 모드(http://ipython.org/notebook.html)가 아주 훌륭하다. numpy, matplotlib 등을 이용해 파이썬으로 리서치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써라. 두 번 써라.
신림동 캐리: 이게 전부인가?
구종만: lyx도 있다. 이건 LaTeX를 백엔드로 하는 워드프로세서다. LaTeX의 수많은 기능을 지원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위지윅이라 수식 조판하기가 엄청 편하다. 이번에 책 쓸 때도 이걸로 썼다. 라텍을 매번 셋업하기 귀찮고, 불편한 점도 꽤 많아서 마크다운이나 기타 마크업 언어를 쓰려고 해보는데 결국 이걸로 돌아오고 있다.
신림동 캐리: 예전에 구종만님이 나와 H에게 mint.com을 추천해주신 게 기억나는데, 이 어플 없이는 내 생활이 훨씬 불편했을 것이다 하는 건?
구종만: 아, 저번에 그랬었지. 근데 사실 나는 민트 안 쓴다.
신림동 캐리: 그럼 왜 우리에게 민트를 줬….
구종만: 민트는 훌륭한 가계부 어플이다. 다만 내가 너무 게을러서 가계 관리를 아예 안 하거든. 개인적으로는 workflowy.com을 좋아한다. 단순한 할 일 목록 같은데, 목록을 중첩할 수도 있고, 목록을 접고 펴거나 특정한 할 일에 줌인할 수 있는 툴이다.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아이디어들을 단순한 인터페이스에 훌륭하게 담아냈다.
신림동 캐리: 최근에 읽은 개발에 대한 인상적인 책은?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배우는 알고리즘 문제 해결 전략>?
구종만: 사실 최근에 딱히 읽은 책이 없다.
신림동 캐리: 육아는 힘들죠.

그래도 재하는 긔엽긔!

신림동 캐리: 아참, 2007년부터 알고스팟의 운영에 참여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다.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느끼는 점이나 도움이 된 점은?
구종만: 음…. 별건 없는데, 커뮤니티 하나가 굴러가는 데에는 정말 많은 이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다들 생업이 있고 유부남도 늘어가다 보니 새로운 일을 못 하고 있다. 옛날에 모의고사라도 한번 할라치면 운영진을 일주일 갈아 넣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끼리는 운영진을 노예라고 부른다. 기회가 될 때마다 노예진의 확충을 적극적으로 꾀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신림동 캐리: 세상엔 ‘내가 왜 이런 노예질을 하지!’라고 외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훌륭한 매저키스트가 많으니 희망을 버리지 마라.


알고스팟에서 일할 매저키스트, 아니 노예, 아니 운영자를 찾습니다.

구종만님의 선량한 미소를 믿으세요.
신림동 캐리: 그럼 알고스팟을 운영하며 좋았던 건 뭔가?
구종만: 내게 도움이 된 점이라면 글쎄…. 진부하지만,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는 점이랄까?
신림동 캐리: 진부해….
구종만: 근데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신림동 캐리: 근데 이 개발자 인터뷰가 개발자분들 입장에선 ‘내 사적인 이야기인데 이걸 왜 읽을까?’ 싶은데, 컴퓨터를 전공하는 학생이나 현직 개발자에게는 의외로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 나도 처음엔 내가 이걸 하면서도 내 업무를 이해 못 했는데 주변에서 좋은 반응이나 감사 메시지가 가끔 들어오는 걸 보면서 점차 사명감까지 느끼고 있다.
구종만: 그렇군.
신림동 캐리: 내가 네이버 메인에서 연예인 공항패션 기사를 클릭해서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구종만: 뭔가 이상한데 무슨 뜻인지는 확 와닿는군.
신림동 캐리: 그러니까 아무튼 계속해서 인터뷰 진행한다.
신림동 캐리: 후배에게 개발에 대해 추천해주는 사이트는?
구종만: 뭐가 됐든지 많은 것을 접해보고 지평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서 주워들은 게 많다고 훌륭한 개발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개발자치고 지평이 좁은 사람은 또 별로 없더라. 그래서 계속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전 분들도 언급했지만, 해커 뉴스같은 뉴스 사이트와 자기가 관심가지는 기술에 관한 포럼을 읽는 것이 좋다. 아 그리고, 당연하지만 algospot.com!
신림동 캐리: 하하하!
구종만: 하하하!
신림동 캐리: 최근에 쉬면서 공부하고 계시는 건?
구종만: 내가 하는 일이 퀀트 개발자다. 개발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지만 퀀트 개발자에게 요구되는 개발의 수준이 그다지 높진 않다. 뭘 만들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할까? 지금 이 업무에서 내게 가장 부족한 것은 수학이랑 계량 금융 기초라서 교과서까지 펼쳐놓고 열심히 혼자 공부하고 있다. 다행히 백수라서 공부할 시간은 많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다닐 때나 수학을 정말 싫어했는데, 내가 이러고 있을 줄 몰랐다. 이렇게 필요할 줄 알았나.
신림동 캐리: 난 타이핑에 검지만 사용하는 완벽한 독수리 타법을 고수하는데 이런 내가 IT계에서 일할 줄은 몰랐다.

신림동 캐리: 그럼 구종만님은 스스로 어떤 개발자라고 생각하시는지? 본인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를 붙이면?
구종만: 고민하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수행하는 것을 즐기는 타입이다. 그런데 좋은 계획을 세우려면 항상 고민해야 한다. 뭘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저런 방법 중 뭐가 제일 좋은가? 이런 고민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신림동 캐리: 그럼 스스로 개발자로서 점수를 매기면?
구종만: 개발자로서는 한 70점 정도? 특정 분야에 특기가 있다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이상 점수를 주긴 힘들 것 같다.
신림동 캐리: 아이고, 겸손도 하셔라.
신림동 캐리: 한국 개발자의 끝은 치킨집이라고 한다. 요즘은 카페라고도 하는데, 아무튼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구종만: 기본적으로 한국의 직장 문화가 바뀌어야겠지만, 꾸준하게 자기 계발을 하고 성장한 개발자라면 그럴 필요가 없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닐까? 이전에 일하던 회사에 정말로 호호백발 개발자가 있었다. 61학번이셨다. 61년생이 아니다. 이 분이 그렇다고 뭐 코볼 레거시 시스템 유지보수 하시냐면 그것도 아니고, C++11로 작성하는 최신 프로젝트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다. 65살이 된 기념으로 2년 동안 푹 쉬면서 C++ 새 표준과 부스트, 템플릿 메타프로그래밍 등을 진득하게 공부해서 우리 회사에 오셨더라. 이건 좀 극단적인 예지만 한국에서도 앞으로 점점 이런 환경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신림동 캐리: 개발자에게 재능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구종만: 타고난 재능은 당연히 중요하다. 열심히 하는 천재를 어떻게 이기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넓어서 열심히 하는 천재가 배터지게 먹어도 항상 남는 파이가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자기에게 재능이 있는지 고민하지 말고 그냥 일단 열심히 하시라.

말했다시피 1년 동안 백수라서 동네 스타벅스를 전전하면서 공부하는 신세다. 노트북이랑 핸드폰, 책 한두 권 들고 다니고 있다. 이것은 2014년 3월 12일 점심에 갓 찍은 따끈한 사진이다. 현재 이러고 있다.

난 누군가 이 코드는 어딘가, 고민을 멈추지 않는 개발자 구종만 0

개발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구종만’이라는 이름 한 번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안 들어봤으면 말고요.

2002년, 2003년 한국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시대회 금상
2003년, 2004년 세계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시대회 결승 진출
2004년, 2006년, 2008년 구글 코드 잼 결승 진출
2007년 탑코더 오픈 준우승, 2006년 결승 진출
2008년, 2009년 자바 알고리즘 콘테스트 우승

화려한 수상 경력을 바탕으로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배우는 알고리즘 문제 해결 전략>이라는 책을 쓰기도 하셨죠. 이 책은 저희 로켓펀치 개발자 인터뷰에서도 두 번이나 추천되었었습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이신 구종만님이 한국에 잠깐 들어오셨단 소식을 신림동 캐리가 입수하고는 빌고 기고 떼써서 힘들게 모셔봤습니다.


이름 혹은 닉네임: 구종만
위치: 서울
직업, 소속: 얼마 전까지는 시카고에서 알고리즘 트레이딩 개발자로 일했고 11월부터 뉴욕에 있는 헤지펀드에서 일할 예정이다. 이전 회사와의 계약 조항에 퇴직 후 1년 안에 동종업계에서 일할 수 없다는 조건이 있어서 이 기간이 만료되는 것을 기다리며 백수질을 하고 있다.
내 모바일 기기: 넥서스5
블로그 주소: http://theyearlyprophet.com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구종만: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 저 혹시 기억하세요?
구종만: 아, H와 사귀셨던….

그렇습니다. 구종만님은 제 구남친의 베프입니다. 송창규님에 이어서 또 이렇게 H오빠의 도움을 받게 되네요. 여러분, 잘 사귄 남자친구 하나로 열 영업합니다.

신림동 캐리: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한다.
구종만: 뭐라고 하지?
신림동 캐리: 무슨 말이라도 해라.
구종만: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은 한국 프로그래밍 대회 커뮤니티인 알고스팟(http://algospot.com)을 개발 및 운영하고 있고, 재작년에는 알고리즘과 자료 구조에 대한 책인 <알고리즘 문제 해결 전략>을 썼다. 직업 쪽으로는 2009년부터 미국에서 HFT 퀀트 개발자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말했다시피 전업 백수로 애를 본다.

신림동 캐리: 다른 말이지만 아드님 너무 귀엽다.
구종만: 감사하다.

재하가 귀엽지. 나도 좋아해.

신림동 캐리: 한국에서 병특을 마치시고 바로 미국에서 취업하신 걸로 아는데 거기선 어떤 활동을 하셨나?
구종만: HFT, 흔히 이야기하는 ‘알고리즘 매매’나 ‘고빈도 매매’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알고리즘을 이용해 빠른 시간 안에 주식이나 채권, 선물이나 기타 파생 상품을 사고 파는 것이다.
신림동 캐리: 국내에서는 규제가 심한 그거 아닌가?
구종만: 맞다. 흔히 사회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으며, 일반 투자자들의 고혈을 빨아먹는다고 욕먹는 그건데 거기에 대해서 할 얘기는 많지만 여기서 할 건 아닌 거 같다. 아무튼 회사에서 거래와 직접 연관된 팀을 ‘프론트 오피스’라 부르는데 크게 세 가지 직군으로 나뉜다. 트레이더, 퀀트(거래할 때 쓰는 모델이나 알고리즘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개발자다.
신림동 캐리: 거기서 개발만 담당하시는?
구종만: 사실 이 직군 간의 경계가 그리 뚜렷하지 않다. 누구는 100% 트레이더고 누구는 100% 퀀트고 이렇게 구분하기 힘들다. 결국 여기 들어오면 세 직군을 아우르는 셈인데, 난 따지자면 트레이더 20%에 퀀트 30%에 개발자 50% 정도일까?
신림동 캐리: 한국에서는 낯선 시스템이니 더 자세히 좀 설명해달라.
구종만: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트레이딩 전략 개발이나 테스팅, 여기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개발 및 인프라스트럭처 구축 등이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가장 많이 한 일은 그림 예쁘게 그려서 위키 페이지 작성하고 이메일 쓰는 일이었다. 회사 애들과 농담 삼아 내 명함에는 Quantitative Wiki/Email Writer라고 써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신림동 캐리: 로켓펀치 개발자 인터뷰에서 구종만님이 쓰신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배우는 알고리즘 문제 해결 전략>이 이강산님송창규님에 의해 두 번이나 추천되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구종만: 여러모로 부족하다 못해 부끄러운 책이지만 많이 읽어주시는 것 같아서 기쁘다. 이 책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다. 그러니까 이 글 보시는 여러분도 한 권씩 사주세요.

구종만님이 굽신굽신거리셨습니다.

신림동 캐리: 이강산님이 책에 싸인 받고 싶으시다던데 한국에 계실 동안 두 분이 뵐 일이 생겼으면 좋겠네.
구종만: 그랬으면 좋겠네.

신림동 캐리: 책을 쓰실 때 가장 애쓰신 부분이 뭔가?
구종만: 애초에 ‘가장 좋은 알고리즘 책’을 쓰겠다는 각오 따윈 한 적도 없고 할 수도 없었다. 솔직히 말해 내가 아무리 용을 써봐야 알고리즘 교과서의 대명사인 (Introduction to Algorithms)보다 좋은 책을 쓸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어쩌면 내가 알고리즘적 직관을 키워줄 친절한 책을 쓸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 비유하자면 정말 정확한 GPS 지도보다 방향이 가끔 틀리지만, 경로 안내가 나오는 내비게이션이 편할 때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개발을 다룬 많은 책이 ‘이 문제는 이렇게 풀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해법은 알지만 내가 어떻게 그 해법을 찾아낼 수 있는지는 배우기 어렵다. 그래서 책을 쓸 때 ‘나는 이 문제를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 이렇게 풀었다!’를 보여주려 노력했다. 이런 과정은 굉장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모두가 나에게 동의하거나 나를 이해할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이런 책이지만 도움을 받는 사람도 있을 거로 생각하며 썼다.

신림동 캐리: 근데 말이지.
구종만: 응?

문제 해결 기법을 학습함에 있어 이보다 더 좋은 책은 나오기 아주 어려울 것이다.
– 류원하(KAIST, 2009년 한국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시대회 우승)

이 책을 경시대회를 위해서만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기존 알고리즘의 동작에 대한 검증이나 최적화된 코드 등은 실제 업무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 최여민 (EA Korea 리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2005년 세계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시대회 13위)

프로그래밍 대회를 12년 동안 참가했는데, 이 책이 10년 전에 나왔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 이후연 (스탠포드 대학교, 세계 정보올림피아드 금메달리스트)

알고리즘 대회 분야의 권위자가 다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여러 문제풀이 사례를 통해 유쾌하게 배울 수 있는 책이 나와, 진심으로 기쁘다.
– 오시영 (카네기 멜론 대학교, 세계 정보올림피아드 은메달리스트)

신림동 캐리: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배우는 알고리즘 문제 해결 전략>의 추천평을 써주신 분들과는 무슨 사이인가?
구종만: 내가 사랑하는 사이다.
신림동 캐리: 아, 그렇구나….

신림동 캐리: 지금도 백수시지만, 책을 쓰실 당시에도 휴직 중인 백수셨다고 들었다. 백수일 때 개발자로서 감을 잊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구종만: 당시에 동종업계 이직 금지 조항 때문에 1년간 쉬고 있었다. 그렇다고 딱히 색다른 것은 하지 않았다. 원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집에서 자기계발 한다고 생각했다. 날마다 무얼 하는데 시간을 얼마나 썼나 기록하고 주기적으로 체크했다. 원래는 막 분기별 계획 세우고 그랬지만 백수 기간에는 10개를 결심하면 한 2, 3개쯤 달성했을까…. 하지만 그래도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는 신념하에 이건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신림동 캐리: 그러고 보니 그때쯤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나?
구종만: 맞다. 내가 회사로 돌아가기 직전에 아내가 출산했다.
신림동 캐리: 미국에 취업하기 직전에 결혼해서 같이 미국 생활을 시작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땠나?
구종만: H만 봐도 유학생이지만 미국 생활의 단점은 뭐 흔히 얘기하는 거 같은데 일단 무지하게 심심하다. 게다가 짜장면 같은 거 먹고 싶으면 일주일 전부터 ‘이번 주말엔 짜장면 먹으러 가자!’하고 계획을 세워 주말이 되면 차를 몰고 한 시간을 나가야 한다.
신림동 캐리: 그렇지. 그래서 혼자 살고 차도 없는 H는 미국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잖아.
구종만: 미국에 홀로 와서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영혼들을 너무 많이 봤다. 사람 잘 만나고 다니는 분도 있지만 그런 분은 어디서든지 잘 만나는 거고, 흔한 개발자 타입은 그러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지. 그래서 난 결혼해서 온 게 무척 좋았다.
신림동 캐리: H오빠와 사귈 때 구종만님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간간이 들었었다. 원래 친구로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했다던데?
구종만: 와이프와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그렇게 서로의 흑역사를 실시간으로 목격하며 몇 년을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했다.
신림동 캐리: 프로포즈가 정말 스페셜했다고 들었다. 보물찾기였다던가?
구종만: 그 덕분에 친구들로부터 욕을 워낙 처먹어서 한동안 봉인하고 있었는데… ‘A로 가봐.’라는 쪽지를 들고 A에 가면 ‘B에 가봐.’라는 쪽지가 남겨져 있고 마지막엔 반지를 찾는 보물찾기였다. 근데 추운 겨울날 여기저기 헤매게 시키다 보니 와이프가 그날 저녁에 응급실 실려갔다. 와이프는 응급실에서 링거 맞으면서 장모님께 “엄마, 나 결혼해….”라는 소식을 전했다고….
신림동 캐리: H오빠로부터 구종만님 부부가 참 해맑은 분들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진짜 해맑다…. 근데 장인어른이 멱살 잡지는 않으셨나?
구종만: 다행히 그러지는 않으셨다.

구종만님의 미국 취업과 개발, 그리고 의료보험과 출산 이야기는 ‘난 누군가 이 코드는 어딘가, 고민을 멈추지 않는 개발자 구종만 1’에서 계속됩니다.

버그 잡고 벌레 잡는 개발자, 이준행 1

어제도 일간워스트 서버에는 DDoS 공격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버그 잡고 벌레 잡는 개발자 이준행님과의 인터뷰는 계속됩니다.

신림동 캐리: 지금도 일간워스트 어찌저찌 버티고 있는가?
이준행: 2월 초인가 새벽에 디도스가 들어와서 네트워크망이 뻗은 적이 있다. 어지간한 서버 공격은 다 방어가 되었는데 이건 서버가 있던 IDC를 통째로 공격했더라. 재작년에 난리 났던 한나라당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때 트래픽이 280메가 가량이었는데 일간워스트에는 500메가짜리가 오더니 곧 5기가가 들어와서 다 작살냈다. 220V 끼워야 할 다리미에 500V를 꽂아서 펑 터진 꼴이었달까. 뭐 여튼 어떻게든 복구했는데 계속 디도스가 들어오니 이게 뭐라고 그렇게 공격해대나 싶더라.
신림동 캐리: 이제 디도스 방어 컨설팅하고 다녀도 되겠다.
이준행: 안 그래도 농담 삼아 그런 광고 트윗도 하나 했다. 여러분, 지방선거 다가오는데 디도스 걱정되시죠. 자식 걱정시키지 말고 지금 바로 전화하세요. 선관위 공격 때보다 더 큰 것도 맞아본 경험자가 꼼꼼히 돌보아드립니다.
신림동 캐리: 아버님댁에 서버 하나 놔드려야겠군.
이준행: 이런 일을 겪으면서 난 프론트앤드 개발자인가 서버사이드개발자인가 서버엔지니어인가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더라.

3n살에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준행님이십니다.

참고로 오늘은 이준행님의 생일입니다. 모두들 축하해주세요!

신림동 캐리: 이 소프트웨어와 도구 없이는 살 수 없다 하는 건?
이준행: 터미널과 vi. 개발자가 흔히 쓰는 까만 화면 그거다. 더 좋은 도구가 많긴 한데 처음을 vi 에디터로 시작해서 여전히 vi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림동 캐리: 조강지처 같은 느낌인가. 그럼 이 어플 없이는 내 생활이 훨씬 불편했을 것이다 하는 건?
이준행: 모바일 어플이라면… Todo 어플로 Clear를 쓰고 있다. 이거 없으면 아침마다 ‘오늘 무슨 계획이 있었던 것 같은데?’하고 한참 떠올려야 한다. 에버노트에 써놓아도 다른 메모에 파묻히고 결국 Clear로 돌아온다. 이만한 게 없다. 그리고 Tunein Radio. BBC Radio1이나 호주 ABC TripleJ를 틀어놓고 코딩하기 때문이다. 가끔 조용히 있고 싶을 땐 Jazz나 컨츄리를 틀어놓고 멍 때리곤 한다. iTunes Radio보다 선곡이 좋다. 가끔 실없는 농담 따먹기 토크쇼도 나오는데 그것도 좋다.
신림동 캐리: 영어 농담을 알아듣는다고?
이준행: 조 조금?
신림동 캐리: 내 유학생 친구들은 원어민 동기들이 무슨 농담만 하면 알아듣는 척 같이 웃느라 얼굴이 밝아지던데….

신림동 캐리: 최근에 읽은 개발에 대한 인상적인 책 있나?
이준행: 솔직히 요즘 개발 서적은 거의 안 읽었다. ‘코딩 호러 시리즈’가 요즘 인기라길래 사서 볼까 생각은 했었다. 책은 문학이나 인문사회 서적을 더 많이 읽는다. 딱히 취향이 있는 건 아니고 호불호만 있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서 기억나는 건 김연수와 오쿠다 히데오 소설, 줄리언 어선지 자서전이다.
신림동 캐리: 김연수 좋지. 나도 좋아해.

신림동 캐리: 일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나?
이준행: 회사에서라면 괜히 편의점 가서 먹을 거 사오고 돌아다니고 바람 쐬고 사람들과 커피 마시고 그랬었다. 뭐 나름대로 업무의 연장선이랄까. 지금은 집에서 일하다 코딩이 잘 안 되거나 구조가 잘 안 떠오르면 일단 책상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거나, 청소기를 돌린다.
신림동 캐리: 완전 생산적인데?
이준행: 아니다. 이 습관 때문에 수도세와 가스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온다.
신림동 캐리: 그래도 안 씻고 안 치우는 것보단 낫잖아.
이준행: 아무튼 씻고 나오거나 청소 한바탕 하고 나면 다시 머리가 돌아간다.

신림동 캐리: 최근에 구매했던 것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건?
이준행: 홍대 Object에서 비행기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오르골을 샀다.
신림동 캐리: 나도 거기 자주 간다!
이준행: 매장 이름이 어쩐지 개발자틱하지 않나? 아무튼 가끔 머리가 안 돌아갈 때 오르골 태엽을 돌리고 멍하니 보고 있으면 충전되는 느낌이다. 이런 이유로 어쩌다 보니 태엽 인형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는데 오사카에서 산 제비 돌기 하는 펭귄이 애장품이다. 물건 말고는 지난 여름에 41도 폭염을 감수하며 오사카 섬머소닉 페스티벌 가서 MUSE랑 Linkin Park이랑 Metallica를 보고 왔다. 사실 MEW를 보는 게 가장 큰 목표였는데 아무튼 즐거웠다.

신림동 캐리: 최근에 공부하고 있는 것은?
이준행: 서버 엔지니어링이라고 해야 할까. 원래 NHN과 SK플래닛에서 Front-End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커뮤니티 사이트 서버를 관리하게 되어서 요즘은 서버 관리 요령을 급하게 배우는 중이다. 관심사가 다양한데 그때그때 필요한 걸 최우선으로 공부하는 스타일이다.

신림동 캐리: 페이스북을 보니 최근에 중고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사서 재미있는 걸 하시던데?
이준행: 아, 그거 원래는 라즈베리파이를 사서 비디오 플레이어로 쓰려고 했었다. 라즈베리파이는 아시겠지만 쪼그만 기판이 컴퓨터 역할 하는 거다. 내가 스누피를 좋아하는데 1960~80년대에 만들어진 스누피 TV판 비디오를 구했거든. 근데 4:3으로 만들어진 옛날 비디오라서 LCD 모니터로 틀었더니 영 안 예쁜 거다. 그래서 일단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중고로 샀다.

이준행: 근데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니 여기 옛날 게임기를 갖다 끼워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신림동 캐리: 역시 개발자에게 기계는 가장 좋은 장난감이지.

이준행: 그래서 또 보니까 라즈베리파이로 간단한 게임기를 만들 수 있더라고? 그래서 요즘 고전 게임을 즐기고 있다.

신림동 캐리: 남극탐험! 추억 돋는다!

남극탐험하면 이 짤방이 빠질 수 없죠.

PSP 유저였던 신림동 캐리는 20살에 게임 사러 용산 갔다가 악마를 봤습니다.

괜히 용산을 던전 오브 드래곤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더라고요.

신림동 캐리: 중고교시절 정보올림피아드로 시작해 아이두 운영진과 고로케 시리즈를 거쳐 일워까지 개발자로서의 좌우명이나 철학이 있다면?
이준행: 도대체 정보올림피아드와 아이두는 어떻게 알았냐!
신림동 캐리: 인터뷰하기 전에 조사한다니까.
이준행: 내 흑역사인데 넘어가면 안 되나?
신림동 캐리: 난 이럴수록 더 집요하게 묻는다.
이준행: 딱히 철학이나 좌우명 같은 거 갖고 살지 않는다. 다만 ‘이거 만들면 재밌겠다!’라거나 ‘아, 이거 한 번 만들어볼까?’ 싶으면, 하루 안에 다 만들 수 있는가와 만들고 나서 좀 재밌을까를 스스로 물어본 다음에 괜찮겠다 싶으면 그냥 만들어버린다.
신림동 캐리: 한마디로 일단 저지르고 보는 타입이군.
이준행: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렇게 살아서 별문제 생긴 적 없다.
신림동 캐리: 나 스스로 개발자로서 점수를 매기면?
이준행: 아이구, 이런 어려운 질문을!
신림동 캐리: 왜 아직 연초인데 자기반성도 하고 좋지 뭐.
이준행: 나는 야매 개발자라서, 10점 만점에 5점도 안 될 듯싶다.
신림동 캐리: 에이, 야박하게 왜 그래.
이준행: 진심이다.
신림동 캐리: 인생은 자기와의 싸움이라지만 지는 것도 나고 이기는 것도 나니까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신림동 캐리: 그럼 후배들에게 추천해주는 사이트는?
이준행: Outsider님 블로그 blog.outsider.ne.kr와 홍민희님 블로그 blog.dahlia.kr를 추천한다.
신림동 캐리: 파이썬의 아이돌 홍민희님을 인터뷰하고 싶은데 두 번이나 거절하셨다. 홍민희님, 저 이상한 사람 아니니까 인터뷰 좀 해주세요. 아무튼 여기를 추천하는 이유가 뭔가?
이준행: 꾸준히 무언가 새로이 만들고 그 과정을 꼼꼼히 기록하시는 분들이라 늘 배우고 있다. 무심결에 구글에서 검색해서 문제해법을 찾으려고 해도 검색이 두 분 블로그는 항상 잡힌다. 개발자 블로그 글쓰기의 정석 또는 교재 같기도 하다. 그리고 기획 관련이라면 dribbble.com. 상상하는 서비스의 대략적인 모습, 디자인, 동선 등 모두 그때그때 떠올라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사실 사이트를 만들려면 IT보다는 사회과학책이나 시사전문지에서 아이디어를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단순 기획뿐만 아니라 사회적 현상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좀 더 괜찮은 기획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신림동 캐리: 스스로 나는 어떤 개발자라고 생각하시는지?

이준행님은 한참을 생각하셨습니다.

이준행: 이상한 개발자?
신림동 캐리: 이상한 것 같긴 한데 왜 본인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이상한 짓을 하는지?
이준행: 첫 회사(NCSOFT 오픈마루)에선 개발자가 아니라 기획자였다. 그때도 사내에선 내가 개발용어 쓰는 ‘이상한 기획자’로 여겨졌었다. 그리고 그냥 자꾸 이상한 사이트를 만들고 이상한 짓을 하니까 이상한 개발자 같다.
신림동 캐리: 그래, 그런 것 같다….

역시나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에게 타고난 재능이 얼마나 차지한다고 생각하는가?
이준행: 이거 참 어려운 질문인데!
신림동 캐리: 뭐 다른 질문은 쉬웠나?
이준행: 그래도 이건 뭐라 말하든 다 답일 것 같고 또 다 답이 아닐 것만 같은 느낌이다.
신림동 캐리: 기분 탓이다. 그냥 본인의 생각을 말씀하시면 된다.
이준행: ‘저분은 내공이 어마어마하시다!’라고 제가 생각해온 분들을 보면 결국 그 실력은 꾸준한 경험이 쌓여온 결과더라. 근데 사실 타인의 재능을 가져오기 무척 쉬운 분야가 개발분야이기도 하다. 영어로 조금만 검색해보면 전 세계 각지의 개발자가 삽질한 경험을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 말이지. 그래서 타고난 재능보다는 꾸준함과 경험치가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신림동 캐리: 이것도 꾸준 질문인데 한국 개발자의 끝은 치킨집이라고 생각하시나?
이준행: 아니, 난 고로케집…이 아니라 개발자끼리 자조적으로 우린 나중에 치킨이나 튀기겠지 그런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한국 개발자의 끝이 치킨집이라는 이야기는 사실 한국 모든 20~30대 직장인들의 끝이 프렌차이즈로 귀결된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사실 치킨 이야기 나올 때마다 나는 비단 개발 분야뿐만 아니라 한국 산업의 미래가 암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고로케집…이 아니라 그래도 개발자의 끝을 뭐라고 단정 짓기엔 한국에서 ‘개발자’라는 직업군이 생겨난 역사도 한 세기가 아직 안 지났기에 뭐라 말은 못하겠다. 설마 끝이 하나일까. 뭔가 다른 게 있겠지. 최근의 우크라이나는 개발자들이 갑자기 회사 밖으로 나가 화염병 들고서 ‘혁명’에 가담하기도 했고 말이지.
신림동 캐리: 기승전고로케군. 근데 호호백발 개발자가 한국에서 가능할까?
이준행: 물론이다. 내 주변의 존경하는 어르신 개발자님들을 보면 말이지. 50대 넘어서도 여전히 전업으로 개발하며 에너지 넘치게 활동하는 분도 계시고, 다른 직종으로 바꾸셨지만 여전히 취미로 코딩하는 분도 있었다. 스킨스쿠버 강사로 전향했다가 다시 개발자가 된 분도 봤다. 노후를 미리 설계하라고 온종일 텔레비전에서 보험 광고가 나오는데 나는 그냥 그때 가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신림동 캐리: 고로케집 차리면 서비스 부탁한다.
이준행: 오케이.

코딩은 집에서 혹은 여럿이서 함께 쓰는 사무실에서 한다. 지도를 좋아해서 집에서는 사진처럼 지도를 책상이나 벽에 붙여놨다. 지도 덕후라 해외 지도나 노선도를 모으고 있는데 혹시 안 쓰는 지도 처박아둔 게 있으시다면 내게 선물해달라. 무척 기뻐할 것이다.


바닥에 보이는 사진은 중국인 친구가 선물해준 중국 대륙전도다. 예전엔 호주 시드니 버스노선도를 붙였는데 지금 가구와 벽지 색과는 어울리지 않아 빼버렸다.

맥북프로 2010-mid 에 SSD 넣은 제품으로 햇수로 4년째 쓰고 있다. 여전히 튼튼하다! 레티나가 아닌 게 가끔 답답하지만 돈 많이 번 뒤에 풀옵션으로 새것을 살 생각이다. 포토샵질도 터치패드로 하고 있다. DELL u2711을 집에서 쓰는데, 사실 넓은 해상도를 효율적으로 쓰기는커녕 브라우저는 작은 맥북 화면에 띄우고 코드화면을 큼지막한 글씨로 27인치 모니터에 띄울 때가 많다. 안드로이드 어플 만들 땐 테스트폰 몇 개 돌려본 뒤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바이너리 보내서 테스트를 부탁한다.

물론 지금 서비스되고 있는 사이트들 대부분의 코드는 지하철 퇴근 중에 짠 것들이다. 차마 지하철에서 무릎에 맥북 올려놓고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