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그 잡고 벌레 잡는 개발자, 이준행 1

어제도 일간워스트 서버에는 DDoS 공격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버그 잡고 벌레 잡는 개발자 이준행님과의 인터뷰는 계속됩니다.

신림동 캐리: 지금도 일간워스트 어찌저찌 버티고 있는가?
이준행: 2월 초인가 새벽에 디도스가 들어와서 네트워크망이 뻗은 적이 있다. 어지간한 서버 공격은 다 방어가 되었는데 이건 서버가 있던 IDC를 통째로 공격했더라. 재작년에 난리 났던 한나라당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때 트래픽이 280메가 가량이었는데 일간워스트에는 500메가짜리가 오더니 곧 5기가가 들어와서 다 작살냈다. 220V 끼워야 할 다리미에 500V를 꽂아서 펑 터진 꼴이었달까. 뭐 여튼 어떻게든 복구했는데 계속 디도스가 들어오니 이게 뭐라고 그렇게 공격해대나 싶더라.
신림동 캐리: 이제 디도스 방어 컨설팅하고 다녀도 되겠다.
이준행: 안 그래도 농담 삼아 그런 광고 트윗도 하나 했다. 여러분, 지방선거 다가오는데 디도스 걱정되시죠. 자식 걱정시키지 말고 지금 바로 전화하세요. 선관위 공격 때보다 더 큰 것도 맞아본 경험자가 꼼꼼히 돌보아드립니다.
신림동 캐리: 아버님댁에 서버 하나 놔드려야겠군.
이준행: 이런 일을 겪으면서 난 프론트앤드 개발자인가 서버사이드개발자인가 서버엔지니어인가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더라.

3n살에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준행님이십니다.

참고로 오늘은 이준행님의 생일입니다. 모두들 축하해주세요!

신림동 캐리: 이 소프트웨어와 도구 없이는 살 수 없다 하는 건?
이준행: 터미널과 vi. 개발자가 흔히 쓰는 까만 화면 그거다. 더 좋은 도구가 많긴 한데 처음을 vi 에디터로 시작해서 여전히 vi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림동 캐리: 조강지처 같은 느낌인가. 그럼 이 어플 없이는 내 생활이 훨씬 불편했을 것이다 하는 건?
이준행: 모바일 어플이라면… Todo 어플로 Clear를 쓰고 있다. 이거 없으면 아침마다 ‘오늘 무슨 계획이 있었던 것 같은데?’하고 한참 떠올려야 한다. 에버노트에 써놓아도 다른 메모에 파묻히고 결국 Clear로 돌아온다. 이만한 게 없다. 그리고 Tunein Radio. BBC Radio1이나 호주 ABC TripleJ를 틀어놓고 코딩하기 때문이다. 가끔 조용히 있고 싶을 땐 Jazz나 컨츄리를 틀어놓고 멍 때리곤 한다. iTunes Radio보다 선곡이 좋다. 가끔 실없는 농담 따먹기 토크쇼도 나오는데 그것도 좋다.
신림동 캐리: 영어 농담을 알아듣는다고?
이준행: 조 조금?
신림동 캐리: 내 유학생 친구들은 원어민 동기들이 무슨 농담만 하면 알아듣는 척 같이 웃느라 얼굴이 밝아지던데….

신림동 캐리: 최근에 읽은 개발에 대한 인상적인 책 있나?
이준행: 솔직히 요즘 개발 서적은 거의 안 읽었다. ‘코딩 호러 시리즈’가 요즘 인기라길래 사서 볼까 생각은 했었다. 책은 문학이나 인문사회 서적을 더 많이 읽는다. 딱히 취향이 있는 건 아니고 호불호만 있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서 기억나는 건 김연수와 오쿠다 히데오 소설, 줄리언 어선지 자서전이다.
신림동 캐리: 김연수 좋지. 나도 좋아해.

신림동 캐리: 일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나?
이준행: 회사에서라면 괜히 편의점 가서 먹을 거 사오고 돌아다니고 바람 쐬고 사람들과 커피 마시고 그랬었다. 뭐 나름대로 업무의 연장선이랄까. 지금은 집에서 일하다 코딩이 잘 안 되거나 구조가 잘 안 떠오르면 일단 책상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거나, 청소기를 돌린다.
신림동 캐리: 완전 생산적인데?
이준행: 아니다. 이 습관 때문에 수도세와 가스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온다.
신림동 캐리: 그래도 안 씻고 안 치우는 것보단 낫잖아.
이준행: 아무튼 씻고 나오거나 청소 한바탕 하고 나면 다시 머리가 돌아간다.

신림동 캐리: 최근에 구매했던 것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건?
이준행: 홍대 Object에서 비행기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오르골을 샀다.
신림동 캐리: 나도 거기 자주 간다!
이준행: 매장 이름이 어쩐지 개발자틱하지 않나? 아무튼 가끔 머리가 안 돌아갈 때 오르골 태엽을 돌리고 멍하니 보고 있으면 충전되는 느낌이다. 이런 이유로 어쩌다 보니 태엽 인형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는데 오사카에서 산 제비 돌기 하는 펭귄이 애장품이다. 물건 말고는 지난 여름에 41도 폭염을 감수하며 오사카 섬머소닉 페스티벌 가서 MUSE랑 Linkin Park이랑 Metallica를 보고 왔다. 사실 MEW를 보는 게 가장 큰 목표였는데 아무튼 즐거웠다.

신림동 캐리: 최근에 공부하고 있는 것은?
이준행: 서버 엔지니어링이라고 해야 할까. 원래 NHN과 SK플래닛에서 Front-End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커뮤니티 사이트 서버를 관리하게 되어서 요즘은 서버 관리 요령을 급하게 배우는 중이다. 관심사가 다양한데 그때그때 필요한 걸 최우선으로 공부하는 스타일이다.

신림동 캐리: 페이스북을 보니 최근에 중고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사서 재미있는 걸 하시던데?
이준행: 아, 그거 원래는 라즈베리파이를 사서 비디오 플레이어로 쓰려고 했었다. 라즈베리파이는 아시겠지만 쪼그만 기판이 컴퓨터 역할 하는 거다. 내가 스누피를 좋아하는데 1960~80년대에 만들어진 스누피 TV판 비디오를 구했거든. 근데 4:3으로 만들어진 옛날 비디오라서 LCD 모니터로 틀었더니 영 안 예쁜 거다. 그래서 일단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중고로 샀다.

이준행: 근데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니 여기 옛날 게임기를 갖다 끼워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신림동 캐리: 역시 개발자에게 기계는 가장 좋은 장난감이지.

이준행: 그래서 또 보니까 라즈베리파이로 간단한 게임기를 만들 수 있더라고? 그래서 요즘 고전 게임을 즐기고 있다.

신림동 캐리: 남극탐험! 추억 돋는다!

남극탐험하면 이 짤방이 빠질 수 없죠.

PSP 유저였던 신림동 캐리는 20살에 게임 사러 용산 갔다가 악마를 봤습니다.

괜히 용산을 던전 오브 드래곤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더라고요.

신림동 캐리: 중고교시절 정보올림피아드로 시작해 아이두 운영진과 고로케 시리즈를 거쳐 일워까지 개발자로서의 좌우명이나 철학이 있다면?
이준행: 도대체 정보올림피아드와 아이두는 어떻게 알았냐!
신림동 캐리: 인터뷰하기 전에 조사한다니까.
이준행: 내 흑역사인데 넘어가면 안 되나?
신림동 캐리: 난 이럴수록 더 집요하게 묻는다.
이준행: 딱히 철학이나 좌우명 같은 거 갖고 살지 않는다. 다만 ‘이거 만들면 재밌겠다!’라거나 ‘아, 이거 한 번 만들어볼까?’ 싶으면, 하루 안에 다 만들 수 있는가와 만들고 나서 좀 재밌을까를 스스로 물어본 다음에 괜찮겠다 싶으면 그냥 만들어버린다.
신림동 캐리: 한마디로 일단 저지르고 보는 타입이군.
이준행: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렇게 살아서 별문제 생긴 적 없다.
신림동 캐리: 나 스스로 개발자로서 점수를 매기면?
이준행: 아이구, 이런 어려운 질문을!
신림동 캐리: 왜 아직 연초인데 자기반성도 하고 좋지 뭐.
이준행: 나는 야매 개발자라서, 10점 만점에 5점도 안 될 듯싶다.
신림동 캐리: 에이, 야박하게 왜 그래.
이준행: 진심이다.
신림동 캐리: 인생은 자기와의 싸움이라지만 지는 것도 나고 이기는 것도 나니까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신림동 캐리: 그럼 후배들에게 추천해주는 사이트는?
이준행: Outsider님 블로그 blog.outsider.ne.kr와 홍민희님 블로그 blog.dahlia.kr를 추천한다.
신림동 캐리: 파이썬의 아이돌 홍민희님을 인터뷰하고 싶은데 두 번이나 거절하셨다. 홍민희님, 저 이상한 사람 아니니까 인터뷰 좀 해주세요. 아무튼 여기를 추천하는 이유가 뭔가?
이준행: 꾸준히 무언가 새로이 만들고 그 과정을 꼼꼼히 기록하시는 분들이라 늘 배우고 있다. 무심결에 구글에서 검색해서 문제해법을 찾으려고 해도 검색이 두 분 블로그는 항상 잡힌다. 개발자 블로그 글쓰기의 정석 또는 교재 같기도 하다. 그리고 기획 관련이라면 dribbble.com. 상상하는 서비스의 대략적인 모습, 디자인, 동선 등 모두 그때그때 떠올라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사실 사이트를 만들려면 IT보다는 사회과학책이나 시사전문지에서 아이디어를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단순 기획뿐만 아니라 사회적 현상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좀 더 괜찮은 기획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신림동 캐리: 스스로 나는 어떤 개발자라고 생각하시는지?

이준행님은 한참을 생각하셨습니다.

이준행: 이상한 개발자?
신림동 캐리: 이상한 것 같긴 한데 왜 본인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이상한 짓을 하는지?
이준행: 첫 회사(NCSOFT 오픈마루)에선 개발자가 아니라 기획자였다. 그때도 사내에선 내가 개발용어 쓰는 ‘이상한 기획자’로 여겨졌었다. 그리고 그냥 자꾸 이상한 사이트를 만들고 이상한 짓을 하니까 이상한 개발자 같다.
신림동 캐리: 그래, 그런 것 같다….

역시나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에게 타고난 재능이 얼마나 차지한다고 생각하는가?
이준행: 이거 참 어려운 질문인데!
신림동 캐리: 뭐 다른 질문은 쉬웠나?
이준행: 그래도 이건 뭐라 말하든 다 답일 것 같고 또 다 답이 아닐 것만 같은 느낌이다.
신림동 캐리: 기분 탓이다. 그냥 본인의 생각을 말씀하시면 된다.
이준행: ‘저분은 내공이 어마어마하시다!’라고 제가 생각해온 분들을 보면 결국 그 실력은 꾸준한 경험이 쌓여온 결과더라. 근데 사실 타인의 재능을 가져오기 무척 쉬운 분야가 개발분야이기도 하다. 영어로 조금만 검색해보면 전 세계 각지의 개발자가 삽질한 경험을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 말이지. 그래서 타고난 재능보다는 꾸준함과 경험치가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신림동 캐리: 이것도 꾸준 질문인데 한국 개발자의 끝은 치킨집이라고 생각하시나?
이준행: 아니, 난 고로케집…이 아니라 개발자끼리 자조적으로 우린 나중에 치킨이나 튀기겠지 그런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한국 개발자의 끝이 치킨집이라는 이야기는 사실 한국 모든 20~30대 직장인들의 끝이 프렌차이즈로 귀결된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사실 치킨 이야기 나올 때마다 나는 비단 개발 분야뿐만 아니라 한국 산업의 미래가 암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고로케집…이 아니라 그래도 개발자의 끝을 뭐라고 단정 짓기엔 한국에서 ‘개발자’라는 직업군이 생겨난 역사도 한 세기가 아직 안 지났기에 뭐라 말은 못하겠다. 설마 끝이 하나일까. 뭔가 다른 게 있겠지. 최근의 우크라이나는 개발자들이 갑자기 회사 밖으로 나가 화염병 들고서 ‘혁명’에 가담하기도 했고 말이지.
신림동 캐리: 기승전고로케군. 근데 호호백발 개발자가 한국에서 가능할까?
이준행: 물론이다. 내 주변의 존경하는 어르신 개발자님들을 보면 말이지. 50대 넘어서도 여전히 전업으로 개발하며 에너지 넘치게 활동하는 분도 계시고, 다른 직종으로 바꾸셨지만 여전히 취미로 코딩하는 분도 있었다. 스킨스쿠버 강사로 전향했다가 다시 개발자가 된 분도 봤다. 노후를 미리 설계하라고 온종일 텔레비전에서 보험 광고가 나오는데 나는 그냥 그때 가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신림동 캐리: 고로케집 차리면 서비스 부탁한다.
이준행: 오케이.

코딩은 집에서 혹은 여럿이서 함께 쓰는 사무실에서 한다. 지도를 좋아해서 집에서는 사진처럼 지도를 책상이나 벽에 붙여놨다. 지도 덕후라 해외 지도나 노선도를 모으고 있는데 혹시 안 쓰는 지도 처박아둔 게 있으시다면 내게 선물해달라. 무척 기뻐할 것이다.


바닥에 보이는 사진은 중국인 친구가 선물해준 중국 대륙전도다. 예전엔 호주 시드니 버스노선도를 붙였는데 지금 가구와 벽지 색과는 어울리지 않아 빼버렸다.

맥북프로 2010-mid 에 SSD 넣은 제품으로 햇수로 4년째 쓰고 있다. 여전히 튼튼하다! 레티나가 아닌 게 가끔 답답하지만 돈 많이 번 뒤에 풀옵션으로 새것을 살 생각이다. 포토샵질도 터치패드로 하고 있다. DELL u2711을 집에서 쓰는데, 사실 넓은 해상도를 효율적으로 쓰기는커녕 브라우저는 작은 맥북 화면에 띄우고 코드화면을 큼지막한 글씨로 27인치 모니터에 띄울 때가 많다. 안드로이드 어플 만들 땐 테스트폰 몇 개 돌려본 뒤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바이너리 보내서 테스트를 부탁한다.

물론 지금 서비스되고 있는 사이트들 대부분의 코드는 지하철 퇴근 중에 짠 것들이다. 차마 지하철에서 무릎에 맥북 올려놓고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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