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굉장히 귀엽지 나도 좋아해, 조승연 1

이 인터뷰는 ‘수학이 굉장히 귀엽지 나도 좋아해, 조승연 0‘에서 이어집니다.

신림동 캐리: 서울과학고 출신 지인이 내게 귀띔해주길, 서울과학고 내부에서 열린 동창회 부회장배 스타대회에서 조승연 님이 자기가 만든 맵인데 지셨다 들었다. 이게 사실인가?
조승연: 오래전 일이라 나도 잊고 있었는데 대체 누가 제보한 거지?
신림동 캐리: 내가 건성으로 인터뷰하는 것 같지만 의외로 사전 조사 열심히 한다.
조승연: 정말 의외다. 아무튼 대충 06년이었던 것 같다. 정식 명칭은 ‘조승연배 스타리그’였고 우승 상품 중에는 ‘조승연의 배에 키스할 수 있는 권리’ 이딴 것도 있었다.
신림동 캐리: 그럼 누가 우승하려고 하겠나.
조승연: 근데 다들 열심히였다? 아무튼 내가 내 맵에서 무려 3연패를 한 것에 대해 변명하자면, 그 대회 자체가 막 승부를 가리기보다는 랜파티 비슷하게 그냥 즐기는 분위기였다. 즐겜할 수 있는 수준의 빌드를 쓰고 지면 막 놀리고 그런 거 말이다.
신림동 캐리: 별로 적절한 변명이라고는….
조승연: 아니, 내가 스타를 그렇게 잘했으면 맵제작자 했겠나! 프로게이머 하지!
신림동 캐리: 그렇지. 프로게이머면 돈도 훨씬 많이 벌고!
조승연: 그랬으면 정말 부모님께 집을 사드렸을지도 모르겠군.

제가 찍은 사진은 다 별로라 개인적으로 제일 잘 나왔다고 생각하는 사진을 올립니다. 뜻밖에 방송 체질이신가 봐요.

신림동 캐리: 게임이라고 하니까 말인데, 조승연 님이 트위터에서 호구슬 님과 더불어 열성 야구팬으로 유명하시잖나.
조승연: 그렇게나?
신림동 캐리: 야구 좋아하는 악플러 이미지인데 몰랐나?
조승연: 그렇게까지 인지는 몰랐다.
신림동 캐리: 내가 조승연 님의 팬이지만 야구 시즌에는 언팔할까 심각하게 고민한다. 아무튼 야구는 아홉팀으로 시작해 삼성이 이기는 스포츠라는데 2014년에는 어느 팀이 우승할 거로 생각하나?
조승연: 나야 엘빠지만 올해 우승은 롯데가 아닐까 한다.
신림동 캐리: 롯데라고?
조승연: ㅇㅇ.
신림동 캐리: 어째서?
조승연: 롯데가 의외로 강한 팀이다.

신림동 캐리는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고등학교 다니고 부산에서 대학 다니신 모태꼴빠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아버지는 야구 시즌이 되면 일찍 퇴근해 소파 앞에서 야구를 보셨죠. 그리고 신림동 캐리가 기억하는 롯데는 언제나 졌습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죠. 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저 새끼들은 성의가 없다고요. 공을 못 잡을 것 같아도 지켜보는 팬들을 위해 뛰어야지 설렁설렁 걷는 저게 뭐냐고요. 과격한 경상디언 꼴데빠셨던 아버지는 ‘저 새끼들은 성의가 없어! 성의가!’라고 역정을 내며 텔레비전에 맥주캔을 던지셨고 가끔은 분을 이기지 못해 골프채를 휘두르다 거실 전등을 깬 적도 있으셨습니다. 올해 NC 다이노스는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치고 달리는 성의를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창원시가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NC 다이노스가 이적할 상황이라는 게 함정이네요.

신림동 캐리: 많은 사람이 ‘공부 기술’을 쓴 조승연 님과 헷갈려한다. 수학 교육 쪽에 몸담고 계셔서 더 그런 게 아닌가 한다.
조승연: 그분과 내가 헷갈리셨단 말은 처음 듣는다.
신림동 캐리: 나는 그렇다….

신림동 캐리: 난 여고에다 문과라 그런지 나를 비롯해 주변에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가 참 많았다. 조승연 님은 대학에서도 수학을 복수전공으로 하셨을 만큼 수학에 남다른 애정이 있으시다 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수학을 잘하는가?
조승연: 나 수학 별로 못 한다.
신림동 캐리: 아, 재수없어….
조승연: 정말이다.
신림동 캐리: IMO 금메달리스트였던 내 구남친도 자기 수학 못 한다고 말했다. 아무튼 겸손은 됐고 어떻게 하면 수학을 잘하고 좋아할 수 있는지 썰 좀 풀어달라.
조승연: 사실 수학은 원래 잘하던 사람이 잘해요.

조승연: 다만 ‘존잘’과 ‘존못’의 갭을 어느 정도는 줄일 수 있다.
신림동 캐리: 어떻게?
조승연: 좋은 길잡이를 만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일단 중고등학교 수준의 수학에 한정해서 이야기해보자. 수학은 마치 성냥개비로 쌓은 탑 같은 거다. 이 성냥개비가 어떤 성냥개비를 받쳐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게 수학을 잘하는 포인트겠지. 그리고 당연하지만 중간에 성냥개비가 하나라도 비면 탑 전체가 무너진다. 그래서 학생이 탑을 잘 쌓아나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주는 동시에 탑의 어디를 비워놨는지를 파악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신림동 캐리: 노리(KnowRe)가 그 역할을 하는 건가?
조승연: 보통은 과외 교사가 학생에게 1:1로 해주는 건데, 그 일을 자동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사업이 노리(KnowRe)다. 수학의 논리적인 구조를 모두 코드로 나타낼 수 있다면 탑을 어떻게 쌓아야 할지, 어디가 비어있는지를 자동으로 체크해서 과외 교사 대신 컴퓨터가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거든. 그래서 프로덕트도 그런 관점에서 기획하고 개발했다.
신림동 캐리: 근데 학교 교사든 과외 교사든 길잡이는 둘째치고, 수학 자체가 싫다는 학생이 너무 많지 않나?
조승연: 그렇지. 커리큘럼 자체가 너무 재미없게 짜여있어서 애초에 수학을 좋아하기가 힘들다는 게 현실적인 한국 수학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근데 며칠 전에 내 페이스북에 썼지만, 우리 회사도 그렇고 여러 곳에서 조금씩 학생에게 와 닿는 커리큘럼을 제시하고 그게 성과를 내고 있다 느낀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도 도입해보고 있다.

신림동 캐리: 게이미피케이션이라니 조승연 님과의 인터뷰는 기승전게임 같군. 또 게임하니까 말인데, 더 지니어스3에서 섭외가 온다면 나가실 건지?
조승연: 아마도?
신림동 캐리: 진짜? 나간다고?
조승연: 딱히 안 나갈 이유가 없지 않나.
신림동 캐리: 하지만 시즌 1, 2에서 서울과학고 출신이 첫 번째로 탈락했는데 그 징크스가 무섭지 않나?
조승연: 그런 일이 또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잖아.


너무 쿨하셔서 춥네요. 여기 누가 이불 좀 갖다 주세요.

신림동 캐리: 내 페이스북에다 조승연 님을 인터뷰할 예정이니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해보라는 게시물을 올렸더니 많은 분이 의견을 주셨다. ‘살이 찌는 원인이 수면부족이라고 생각하는데 충분한 수면을 취할 계획은 있으신가요?’라고 익명의 S님이 물어보시는군.
조승연: 딱히 남보다 적게 자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내가 살찌는 이유는 수면부족이 아니다.
신림동 캐리: 그러면?
조승연: 뭐, 당연히 술이지.
신림동 캐리: 틸트 좀 그만 가세요. 그럼 다음 질문이다. 노리(KnowRe)의 CPO인 K님께서 ‘이상형은 어떤 여자인가요?’라고 덧글로 물어보셨다. 김서준 부대표님, 이런 건 절 시키지 마시고 회식하면서 물어보라고요.
조승연: 개발 잘하는 여자를 좋아한다.
신림동 캐리: 음, 지금 여자친구 없으시지?
조승연: 없다.
신림동 캐리: 앞으로도 없겠군. 근데 본인이 개발자라는 게 연애에 영향을 끼치나?
조승연: 케바케겠지. 우리 회사 개발팀만 봐도 거의 다 커플이다. 개발자 중에서 ‘연애에 서툰 복학생‘ 같은 사람이 있긴 한데, 그런 사람은 꼭 개발자라서가 아니라 문학을 하든 미술을 하든 다 비슷한 비율로 있지 않나? 그리고 연애 잘 못하는 건 절대다수 대부분의 경우 경험 부족 때문이더라.
신림동 캐리: 연애를 못 하니까 경험 부족이고 경험이 부족하니 연애를 못 하고 영원히 고통받게 되지.
조승연: 근데 생각해보면 ‘asshole’이라고 해야 하나 흔히 말하는 ‘나쁜 남자’의 비율은 개발자 집단이 좀 유의미하게 적은 것 같다. 근데 신림동 캐리님 말고 다른 여자는 이걸 잘 모르는 것 같더라.
신림동 캐리: 아냐, 여자도 어떤 놈이 착한지 어떤 놈이 나쁜지는 다 안다. 문제는 착하다 해서 매력 없는 남자를 좋아하진 않는다고!

문제는 관상이 아니라고.jpg

신림동 캐리: 좋은 개발자의 조건은 뭘까?
조승연: 난 직관이 좋은 개발자가 좋은 개발자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테스트 중심의 빠른 개발주기가 요즘 대세라지만, 결국 그래도 기반이 되어야 할 부분은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하거든. 비유하자면 집을 지을 때 기둥을 나무로 만들지 돌로 만들지 지붕을 어떤 식으로 받칠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잖아? 그럴 때 아무렇게나 선택하고 나중에 ‘이게 아니었나?’ 하면 좀 곤란하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인데 직관적으로 선택을 잘하면 많은 시간이 절약되겠지. 게다가 좋은 선택을 한다는 건 애초에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고, 경험이 쌓이면 늘긴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지. 그래서 뛰어난 직관은 굉장히 훌륭한 능력치라고 생각한다.
신림동 캐리: 나도 ‘센스는 돈 주고도 못 산다.’고 생각한다.
조승연: 그런 건 정말 주니어 때부터 갈고 닦지 않으면 나중에 만들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학생을 가르칠 때 이런 걸 최대한 키우는 방향으로 돕고 싶은데 쉽지 않은 것 같더라. 마치 ‘창의력을 길러주는 학원’을 지향하는 것 같은 아이러니랄까.

신림동 캐리: 그래서 본인은 개발 잘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하나?
조승연: 개발뿐만이 아니라 뭐든지 잘하려면 항상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것 같다. 그게 꼭 나한테 주어진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런 건 어떻게 해결하고 저런 건 어떻게 해결할까를 언제나 고민해본다. 화장실에 앉아있을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생각하고 길을 걸을 때도 좌회전 다음에 우회전을 하는 게 빠를까 아니면 직진하다 꺾는 게 빠를까 생각한다. 차를 타고 가는데 옆에 있는 차 번호가 만약에 8316이면 8-3+1=6 이렇게 습관적으로 맞춰보기도 한다.
신림동 캐리: 그 정도면 강박 아닌가?
조승연: 난 세상이 퍼즐로 된 미니게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앞에 놓인 게임을 해결하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 얘기가 좀 샜는데, 어쨌거나 개발도 어떠한 문제를 푸는 과정이다. 그러니 개발을 잘하기 위해선 일상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연습을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림동 캐리: 최근에 읽은 개발에 대한 인상적인 책은?
조승연: 개발에 관한 책은 아닌데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를 읽고 많은 영감을 얻었다. 개발에 관한 책 중에서 어떤 특정한 소프트웨어나 프레임워크를 다루는 경우에는 보통 지식을 얻고 ‘그렇구나.’하고 마는데, 소프트웨어 공학을 얘기하는 책 같은 경우에는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어 이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 같은 고전이나 대작은 한 번 읽는다고 해서 막 엄청난 인상을 받기는 어려운데 그렇다고 여러 번 읽기엔 현실적으로 너무 바쁘다. 근데 실제적인 개발과 약간 떨어져서 프로그래밍을 바라보는 관점을 보여주는 책은 볼 때마다 새롭고 인상적이더라. 그런 책이 많지 않아서 문제지만?

신림동 캐리: 그럼 개발자 후배에게 추천해주는 사이트는?
조승연: 정말 개발을 처음 시작하는 주니어의 경우에는 대안이 없어서 codecademy나 일일코딩 같은 사이트를 추천하는데, 물론 훌륭한 사이트들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식과는 좀 거리가 있다.
신림동 캐리: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식이 뭐길래?
조승연: 나는 인턴을 받으면 퀘스트나 미션을 주고 그걸 해결해오면 코드나 학습 방향에 관한 피드백을 하는 식으로 가르친다. 초보자에게 중요한 건 문법이라기보다는 좀 더 추상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고, 언어적인 부분은 그게 웹이든 앱이든 스크립트든 ‘컴퓨터에 A라는 일을 시키고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듣게 하려면 이런 식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서 세상에는 개발에 대한 좋은 사이트가 정말 많지만 궁극적으로 구글이 가장 중요한 사이트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레벨 이상이 됐을 때의 많은 문제가 구글링을 어떻게 하느냐, 검색어를 어떻게 넣느냐로 수렴하니까. 그걸 위해서는 내가 궁금한 게 뭔지를 스스로 정리할 줄도 알아야 하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읽었나?
신림동 캐리: Mostly Harmless.
조승연: 그럼 알겠군. 거기 보면 ‘인류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지만, 자신이 던지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뭐 이런 말이 나오는데, 진짜로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그러니까 주니어 프로그래머가 처음에는 ‘이거 아무리 해봐도 안 돼요.’로 시작해 나중에는 ‘이런 걸 해보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이 줄만 추가하면 잘 안 되네요.’ 혹은 ‘A에서 B를 하려는데 더 좋은(편한) 방법 없을까요?’를 묻는데 그만큼 자신이 성장하고 레벨이 올라간 거겠지.

신림동 캐리: 그럼 회사가 개발자한테 제발 이런 거 시키지 마라 하는 건?
조승연: 모호한 요구를 하면서 ‘이거 언제까지 돼요?’ 이렇게 물어보는 거. 보통 이런 질문 받으면 나 같은 경우는 일단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세요.’라고 구체화부터 한다. 그 이후에는 안 되는 것, 할 수 없는 것이나 필요 없어 보이는 것을 쳐낸다. 근데 어떤 개발자는 경력이 꽤 되는데도 그런 요청을 받고서 호기롭게 ‘언제까지 해드릴게요.’라고 하더라. 이러면 자기가 생각하는 그림과 요청한 사람이 생각하는 그림이 전혀 달라서 삽질은 삽질대로 하고 시간은 시간대로 쓰면서 이상한 결과물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이런 과정을 ‘빠른 iteration’이라며 스스로 위안 삼는 경우도 봤다. 그건 몸에 암세포를 키우는 것과 별다르지 않다고 본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에게 재능이 얼마나 차지한다고 생각하나?
조승연: 개발 중에서도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좀 다른데, OS나 그 바로 위에 있는 시스템과 같이 굉장히 코어한 것을 만드는 개발자라면 재능이 상당히 중요한 것 같더라.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개발자라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옛날에는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지. 그런데 개발 환경이나 프레임워크가 많이 발달하면서 좀 달라졌다. 개발의 본질이라는 건 결국 인간의 언어를 컴퓨터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인데, 이 개발 과정 자체가 도스→윈도우→웹→앱 이렇게 오면서 이 번역이 점점 더 직역에 가까워도 무방한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는 제법 추상적인 기획서를 입력해도 바로 프로그램을 구워주는 기술이 나올 날도 올 것 같다. 그 때는 정말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데에 재능이 거의 필요 없는 시대일 거고, 지금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쪽에서의 획기적인 패러다임을 하나 제시해 보는 게 내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기도 하다.

신림동 캐리: 본인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를 붙이면?
조승연: 예전에 ‘감이 좋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제일 마음에 드는 평가였다. 이 감이라는 게 머리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잖나. 머리+노력+경험이 모두 있어야 감 좋은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는 거니까. 위에서 말한 직관이 좋은 개발자가 좋은 개발자라는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아무튼 나에게는 그게 최고의 찬사였다.

윈도우 머신을 쓴다. 맥 OS를 몇 번 써봤는데 그렇게 편한지도 잘 모르겠고, 어차피 지금은 node.js와 client-side 자바스크립트 프로그래밍만 하는지라 윈도우에서도 별 상관이 없어서다. 무엇보다 IE를 테스트해야 하니까.

개발자치고는 장비 욕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 개발자라고 하면 막 미친 듯이 타자를 치는 직업 같지만, 실상은 모니터를 노려보는 시간이 훨씬 많고(많아야 하고) 하루에 코드 200줄 짜면 많이 짜는 거라 키보드에 크게 투자할 가치를 못 느꼈다.

그래서 마우스는 그냥 게이밍용 마우스(G1)를 쓰고 키보드도 만 원짜리 키보드 쓴다. 사실 키보드의 키감 이런 것보다는 좀 화려한 키보드를 갖고 싶어서 제닉스사의 기계식 키보드 중에 싼 걸 하나 사서 키캡만 예쁜 색으로 갈아 끼우려고 했는데, 실수로 키를 하나 해먹는 바람에 망쳤다. AS 보내든 납땜을 하든 해야 하는데 너무 바빠서 못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중요한 자료들은 다 클라우드 상에 있고 에디터는 sublime text를 쓴다.

수학이 굉장히 귀엽지 나도 좋아해, 조승연 0

신림동 캐리가 공대생 페티쉬를 가지고 있다는 건 로켓펀치 인터뷰를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 취향은 수학 잘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신림동 캐리는 수학을 지지리도 못했거든요. 수학 과외를 받고도 수능에서 수리 9등급 받은 이야기가 이글루스 구 이오공감 시절 메인에 걸리기도 했으며 대학 가서 제일 기뻤던 게 ‘이제 수학 시간이 없어!’였죠.

그래서 한때는 소개팅 조건에 ‘무조건 수학 잘하는 남자!’를 외치기도 했었는데요. 그렇게 IMO 메달리스트와 사귀고 나니 수학 자체에 대한 페티쉬는 확 줄어들더군요. 내가 여기에 왜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지?

아무튼 조승연님은 예전부터 여러모로 동경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서도 두 번이나 친구 요청을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IMO 메달리스트 구남친과의 인연을 계기로 조승연님과 트위터에서 DM을 나누었고 로켓펀치 개발자 인터뷰 섭외까지 따냈습니다. 제가 한때는 술을 마시고 울며 ‘연애 따위 다 부질없어!’를 외쳤었는데요. 요즘 구남친 이름 빌려서 따낸 인터뷰만 몇 개인지, 새삼 참 인생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무심한 듯 시크한 스타크래프트 공식맵 제작자 조승연님을 삼고초려해서 만나봤습니다.

이름 혹은 닉네임: 조승연
위치: 서울
직업, 소속: 프로그래머, KnowRe
내 모바일 기기: 아이폰5, 2012년형 뉴아이패드(일명 구뉴)
SNS 주소: http://kivol.net, @kivoloid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조승연: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 보통 인터뷰하면 그래도 옷장에서 제일 괜찮은 걸 입고 나오시던데 옷차림이 이게 뭔가. 티셔츠에 타이포는 다 갈라져서
조승연: 살 때부터 원래 이랬다.
신림동 캐리: 아, 빈티지….

근데 왜 이렇게 빈티지 같지가 않죠?

신림동 캐리: 예전부터 조승연님 팬이라 트위터 팔로우하고 페이스북에서 친구 요청도 하고 그랬는데 나 따위는 아오안이셨다!
조승연: 친구 요청을 받은 기억이 없다.
신림동 캐리: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응?
조승연: 여러분 이거 다 오해인 거 아시죠.

신림동 캐리: 아무튼 스타크래프트 공식맵 개발자로 알려졌는데 지금은 어째 수학 교육계에 계신다?
조승연: 정확히는 수학교육 회사에서 개발을 맡고 있다.
신림동 캐리: 그럼 여기선 개발만 하시는 건가?
조승연: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고등학교 때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갔고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한때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었다. 지금의 수학교육 회사(KnowRe)에서는 CTO를 맡으며 개발자로 일한다.

신림동 캐리: 예전에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고 하시니까 말인데, 그때 올림피아드 출신이라 강남 엄마 사이에서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거액을 버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부모님 집을 사드렸다고?
조승연: 그랬으면 좋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신림동 캐리: 그럼 그냥 소문에 불과하다?
조승연: 조금 보태드리긴 했으나 그게 거의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한 비율이다.

전국의 자식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부모님께 집 사드린 거 아니라고 합니다.

신림동 캐리: 그럼 개발자 인터뷰니까 꾸준 질문 나가실게요. 난 이 소프트웨어와 도구 없이는 살 수 없다?
조승연: 딱히 도구를 타는 스타일은 아니다.
신림동 캐리: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이건가.
조승연: 아니 그건 아니고 텍스트 에디터도 vi든 서브라임이든 메모장이든 주면 알아서 주섬주섬 어떻게든 쓰고 터미널도 당장 정 궁하면 아이패드로도 불편하지만 꾸역꾸역 일한다. 근데 구글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저번에 출장 다녀오며 비행기에서 코딩을 좀 하려고 했다. 근데 인터넷이 안 되니까 구글도 못 들어가고 막막해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
신림동 캐리: 구글 안 되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조승연: 내가 인터넷에서 찾은 코드를 컨트롤 C+V 하는 건 아닌데, 코딩할 때 꼭 문서를 찾아봐야 하는 편이다. 구글이 없으니까 라이브러리나 프레임워크에서 함수에 변수 쓰는 순서도 헷갈리고 pseudocode 이상 쓰기가 어렵더라.
신림동 캐리: 그런 걸 디지털 치매라고 하나?
조승연: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근데 웬만한 건 굳이 머리에 기억해놓지 않는 편이다. 뇌의 기능을 기억 대신 판단에 몰빵하는 거지!

신림동 캐리: 또 도구 하니까 말인데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모자 쓰고 계신 프로필 사진을 너무 오래 쓰셔서인지 지금의 모자 쓰지 않은 모습이 낯설다.
조승연: 평소에는 모자 잘 안 쓴다.

홍대에서 4만 원 주고 구입한 본인 소장품이라고 합니다.

신림동 캐리: 그 프로필에 쓴 모자가 유난히 조승연님과 너무 잘 어울렸다. 마치 모자가 뇌를 조종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쟤 마음에 안 들어. 빨리 트위터에 까봐.’ 이럴 것 같은 모자다.

신림동 캐리: 자, 그러면 스타크래프트 공식맵 이야기로 넘어가자. 당시에 일개 대학생이셨잖는가.

제가 생각하는 평범한 컴공과 학생의 이미지는 이렇습니다.

신림동 캐리: 근데 어쩌다 평범한 컴공과 대학생이 스타크래프트 공식맵 작업을 하게 됐는지?

조승연: 아니, 난 컴공과 아니고 난 전기과 출신이다. 거기다 수학을 복수전공했다. 아무튼 그 이야기는 대학교 1학년이던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도 스타크래프트는 남자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였고 나 역시 열심히 스타를 즐기는 대학생이었다. 게임을 직접 하는 건 물론 게임방송도 챙겨봤다. 그러다 2003년 말에 온게임넷에서 맵 공모전을 열었다. 그래서 맵을 하나 만들어볼까 하고 처음으로 한 번 그려봤는데 당시에 온게임넷에서 맵 담당하시던 변종석 씨가 내 맵을 굉장히 좋게 봐주셨다.

신림동 캐리: 여기서 포인트는 ‘처음으로 한 번 그려본 맵’인가…. 계속 이야기해봐라.
조승연: 그래서 그 공모전 결과와 관계없이 같이 일해보자고 이야기가 됐고 05년쯤에는 온게임넷에서 지원해 맵제작팀을 따로 만들게 됐다. 그 이후에는 온게임넷뿐만 아니라 스타 협회와도 일하고 그러다 내 개인적 업무가 바빠져 09년쯤에 그만뒀다.
신림동 캐리: 송창규님은 한스타 만들고 블리자드에서 스카웃 받으셨다는데 조승연님은 그런 거 없나?
조승연: 없다.

신림동 캐리: 나는 지금 이렇게 조승연님처럼 내가 평소 좋아하던 분과 인터뷰하면 굉장히 즐겁고 때로는 감격스럽기도 하다. 조승연님도 자신이 만든 맵에서 경기가 치러지면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다. 그중에서 ‘아 이건 내가 봐도 뿌듯하다. 명경기다.’라고 생각한 경기가 있다면?
조승연: 워낙 많은 경기를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딱 하나만 뽑으라면 So1 스타리그 때 4강에서 오영종 선수와 최연성 선수가 ‘815’라는 맵에서 붙은 적이 있다.

조승연: 거기서 오영종 선수가 3셔틀 3리버 3드라군 둠드랍으로 단 한칼에 상대를 제압했다. 그 맵을 만든 나조차도 상상 못 한 기술이라 전율이 일었다.
신림동 캐리: 원래 상상 못 한 일이 막 일어나는 게 스타 아닌가? 스타크래프트를 만든 블리자드조차도 임요환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저런 걸 할 수 있다니!’ 하며 감탄했다지 않나.
조승연: 왜냐하면 나는 맵을 만들 때 꽤 많은 날빌(날카로운 빌드, 주로 1회성 전략)을 시험해보며 너무 강한 전략이 통하는가를 테스트하곤 했다. 꽤 철저하게 테스트한 덕분에 실제 스타를 할 때 누구랑 하더라도 어느 정도 날빌로 상대가 가능했었고…. 아, 물론 지금은 까먹었다. 아무튼 그런데 저 전략은 저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그런 전략이 중요한 경기에서 멋지게 등장하고 또 마무리되는 데서 쾌감을 느꼈다.
신림동 캐리: 마치 재벌 2세가 뺨을 맞고 ‘날 때린 건 니가 처음이야.’라고 하는 것 같군.
조승연: 그건 아닌데 아무튼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내가 생각 못 한 무언가가 일어나는 걸 좋아한다. 코드라든가 아이디어라든가, 하다못해 그게 드립이더라도 말이지.

제가 조승연님과 동시에 알고 있는 구남친을 디스했을 때 그런 드립은 훌륭하다고 평가해주셔서 기뻤습니다.

신림동 캐리: 지난 대선에서의 한국 정치 지형을 테란맵에 비유하신 적이 있다.
조승연: 그렇다.
신림동 캐리: 박근혜 정부가 1년을 보낸 상황에서 저그 혹은 프로토스가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지?
조승연: 맵의 불리함이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이기려면 뉴메타를 개발해야겠지. 과거에 노무현 대통령 역시 그 뉴메타의 하나였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뉴메타를 안철수 의원이라고 보는 것 같더라. 지금은 뉴메타가 나타나도 쉽지 않을 정도로 더 불리해졌다고 생각한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라는 부류가 흔히 말주변 없거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에 비해 조승연님은 글을 잘 쓰실뿐더러 실제로도 상당히 달변가시다.
조승연: 달변가라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신림동 캐리: 아이고, 이렇게 또 겸손하시고…. 안 어울리시게….
조승연: 아니, 정말이다.
신림동 캐리: 역시 그 모자를 써야 키보드 워리어가 되는 건가? 아무튼 그런 능력으로 인한 장점 및 단점은 뭔가?
조승연: 글은 매체 같은 곳에 제대로 된 걸 써본 적이 없어서 뭐라 얘기하기가 좀 그렇다. 다 SNS에서 하는 키워질이지.
신림동 캐리: 그럼 키워질에서 이긴 병신이 되는 비법이나 말해봐라.
조승연: 일단 맞는 쪽에 서야 한다. 진중권 씨 키워력의 30% 정도는 이 판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맞는 쪽에 서서 당연한 얘기를 약간 참신해 보이게 설명하면 된다.
신림동 캐리: 참신해 보이게?
조승연: 예를 들면, A→B→C→D 순서로 논리전개가 될 때, C→D를 얘기하고 A→B를 얘기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B→C를 이어버리면 괜히 뭔가 새롭게 보이거든. 어떻게 보면 사기지. 아, 이거 영업 비밀인데….
신림동 캐리: 그러게, 이렇게 귀중한 팁을 주실 줄은 예상도 못 했다. 내가 그렇게 싫지는 않은가보다. 근데 왜 페이스북에서는 친구 요청을 두 번이나 거절했을까?
조승연: 진짜 난 못 봤다니까.

신림동 캐리: 최근 트위터에서 인물 평가를 하고 계신데, 나에 대해서도 누가 평가해달라고 익명으로 올려놨더라?
조승연: SNS에서는 비련의 여주인공 컨셉으로 나가시는 것 같은데 그거 버리고 딱 1년만 연애 안 하고 버텨봐라. 그러면 지금보다 더 멋지고 매력적인 여자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인터뷰에 나가지는 않겠지만, 아까부터 우리 많은 인물들을 디스하고 있잖는가. 인물에 대한 평가나 판단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아 좀 더 고평가하게 됐다.

CTO로서 조승연님의 가치관과 카와이이한 수학 이야기는 수학이 굉장히 귀엽지 나도 좋아해, 조승연 1에서 계속됩니다.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3호 1

이 인터뷰는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3호 0에서 이어집니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 남편이라 생겼던 황당한 에피소드 하나 이야기해주세요.
여자 3호: 결혼하고 맞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였어요. 여느 신혼부부처럼 저희도 사람 많고 정신없는 바깥보다는 신혼집에서 둘이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죠. 음식을 준비하고 양초 켜고 와인잔을 세팅하고 여기까지는 평범했어요. 근데 와인을 마시면서 보려고 영화를 다운로드 받았는데요. 다운로드하는 몇 분 동안 잠깐 휴대폰으로 게임을 했어요. 근데 정신 차려보니 새벽 2시더라고요. 결국 그때 받은 영화는 아직도 못 보고 있어요.

여자 3호의 남편분은 국내 굴지의 게임 스타트업 회사 개발자이십니다. 신상 정보는 여기까지!

신림동 캐리: 개발자 남편과는 어떤 부분 때문에 많이 싸우세요?
여자 3호: 제 남편은 어떤 결정에도 논리와 근거가 타당해야 납득하는 것 같아요.
신림동 캐리: 맞아요. 이과 남자는 논리와 근거로 움직여요. 특히 명분에 약해서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으면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여자 3호: 부부 사이의 문제에 있어 본인이 납득하면 쉽게 승낙하는데, 아무리 소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본인이 납득하지 못하면 끝까지 파고들어서 따져요. 평소엔 둘 사이에 거의 트러블이 없는데 가끔 의견이 서로 달라 다투게 되면 아주 끝까지 가요.
신림동 캐리: 저도 그런 적이 있어요. 만약에 예를 들어서 제가 가방을 사겠다고 하면 ‘가방이 있는데 왜 또 사?’라고 하거든요. 그때 ‘그 가방은 예쁘니까 사고 싶어.’라고 하면 말리죠. 하지만 ‘여행을 가야 하는데 적당한 사이즈의 가방이 없어. 게다가 그 가방은 방수 처리가 되어 있어서 우기인 그 지역에서도 내 물건을 지켜줘.’라고 하면 넘어가요.
여자 3호: 그쵸. 개발자가 모든 일에 논리와 근거를 들이대는 건 ActiveX와 익스플로러를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신림동 캐리: 그런 주제에 자긴 필요없는 물건을 뽐뿌에서 막 충동구매하면서!

신림동 캐리: 근데 여자 입장에서 남자 개발자가 연애 대상으로 좋은 점이 있을까요?
여자 3호: 딱히….
신림동 캐리: 굳이 찾으면요?
여자 3호: 내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점?
신림동 캐리: 그건 아예 안 사귀면 더 많잖아요!
여자 3호: 아, 코딩과 덕질의 대상 외에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나머지는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다는 것 정도네요.
신림동 캐리: 그러면 왜 남자 개발자가 연애를 못 한다고 생각하세요?
여자 3호: 코딩과 덕질의 대상 외에는 아는 것이 없어서….

영원히 고통받는 개발자의 연애입니다.

신림동 캐리: 아무튼 그래서인지 개발자는 직업 성비로나 주변 환경으로나 본인 성격으로나 연애하기 어려운가봐요.
여자 3호: 제 주변만 봐도 연애가 쉽지는 않아보이더라고요.
신림동 캐리: 결혼한 위너 입장에서 연애에 어려움을 겪는 불특정 다수의 개발자에게 연애 조언을 해준다면?
여자 3호: 무엇보다도 여자친구를 외롭지 않게 해주세요.
신림동 캐리: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여자 3호: 자주 못 본다고 해서 외로운 게 아니고 주구장창 붙어 있다고 해서 안 외로운 게 아니거든요.

여자 3호가 가르쳐주는 이렇게 하면 당신의 여자친구가 덜 외롭다!

1. 우선순위가 높다고 느끼게 해주세요. 데이트하다 회사에 불려가더라도, 약속 있었는데 붙잡혀 야근하더라도, 실제로 물리적인 우선순위는 일이 훨씬 높더라도, 마음의 우선순위는 여자친구가 0순위라고 느낄 수 있게 말해주세요.

2. 그걸 여자친구에게 표현하세요. 표현해서 이해시키세요. 나는 너를 항상 신경 쓰고 있다고, 네가 나한테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고 말하세요. 상황은 어쩔 수 없지만 내 마음은 그런 게 아니라고도요. 그걸 잘 표현하고,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마음을 말로 전달하지 않으면 상대는 절대 알지 못해요. 다시 말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3. 표현하고 또 표현하세요. 표현이 주는 감동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짧아요.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갱신해줘야 해요. 뭐가 이렇게 번거롭나 하실 텐데 꼭 닭살 돋는 애정표현을 하라는 게 아니고요. 담배 피우러 나갈 때, 화장실 갈 때, 틈틈이 문자나 전화 한 통씩이라도 넣으면 돼요. 일상 속에서 사소하게 하는 것들이 상대방에겐 큰 의미를 가집니다. 물론 닭살 돋는 표현은 더더욱 좋죠.

4.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이야긴데 여자친구의 말에 공감을 많이 해주세요. 상대방의 마음으로 많이 생각해보세요. 본인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선 가능할 수 있어요. 머리론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마음으론 가능할 수 있죠. 연애는 수학 문제가 아니라서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고 공감해 주세요.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바라는 건 내 마음으로 내 편이 되어주는 거예요.

신림동 캐리: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네요. 물론 살은 되면 안 돼.
여자 3호: 저는 예전에 신림동 캐리님이 페이스북에 올리신 ‘너의 계산에는 마음이 없어!’ 짤방을 정말 좋아해요.

신림동 캐리: 이 짤방 말인가요?

여자 3호: 네, 대부분의 세상살이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잖아요. 근데 왜 연애에 논리를 갖다 대나요.

신림동 캐리: 그러니까 개발자 여러분은 ‘논리야 놀자’를 멀리하고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가까이하세요.

여자 3호: 제가 개발자를 옆에서 보며 느끼는 게 본인이 흥미 있는 것과 아닌 것에 대한 차이가 좀 극단적인 편이라는 거예요. 여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타인이 같이 좋아해주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같이 싫어해주는 걸 원하거든요.
신림동 캐리: 맞아요. 친구를 만나 카페에서 한바탕 수다를 떨고 나면 마음에 강 같은 평화가 오죠.
여자 3호: 그러니까 여자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남자친구가 관심 없을 때, ‘이 남자는 나한테 관심이 별로 없나 보다.’하고 오해할 수 있어요. 비싼 선물요? 당연히 좋아하죠. 근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의 성의에요. 명품백을 사주는 것보다 이쪽의 가성비가 훨씬 좋습니다.
신림동 캐리: 저도 어릴 때 한참 연상의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있었는데 잘 나가는 직업군이고 늘 바빴어요. 본인도 그게 미안했는지 계속 만날 때마다 고가의 선물을 떠안기더라고요. 특히 금붙이를요. 근데 아무리 그렇게 해줘도 1주일에 세 시간 만날까 말까 하고 전화도 잘 안 받고 기념일은 얼굴도 볼 수 없으니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래서 헤어졌어요.
여자 3호: 맞아요. 대부분 여자는 선물보다 마음을 중요시하죠.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에요. 근데 헤어지고 그 금붙이 어떻게 하셨어요?
신림동 캐리: 팔아서 쇠고기 사먹었어요.

신림동 캐리: 결론적으로 개발자와 사는 건 어떤가요?
여자 3호: 제가 다른 남자와는 안 살아봐서 모르겠지만 주변 유부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자는 다 똑같아요. 남자는 애 아니면 개라고 하죠. 그래도 개발자는 확률적으로 개보다 애가 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아, 이게 개발자와 연애하면 좋은 점이네요! 유레카!
신림동 캐리: 그렇죠. 남자가 개 같으면 곤란하거든요. 하지만 개보다 못해도 곤란하고 개보다 더해도 곤란하죠.

신림동 캐리: 마지막으로, 개발자와 사귀고 싶다거나 사귀는 여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요?
여자 3호: 개발자 남자에게는 절대 돌려서 말하지 마세요. 대놓고 말해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게 개발자의 특성입니다. ‘둘러서 말했지만, 이 정도로 티 냈으면 바보가 아닌 이상 눈치챘겠지?’하고 여기시면 분명히 낭패를 봅니다.
신림동 캐리: 맞아요. 개발자에게는 돌직구를 날리세요!

신림동 캐리가 알려주는 개발자 남자친구에게는 이렇게 말하세요.

니가 그렇게 잘났니? 잘생긴 것도 아니면서! (X)
너 못생겼어. (O)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X)
한 번만 더 이러면 나는 너를 죽일 것이다. (O)

여자 3호: 개발자는 코딩 외에는 아는 게 별로 없어요. 그러니 개발자와 사귀려면 많이 이해하고 노력해야 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개발자들은 머리가 좋기 때문에 가르치면 배우는 속도가 빠를 거예요.
신림동 캐리: 맞아요. 키우는 보람이 있죠.
여자 3호: 연애는 문과생이랑 하더라도, 결혼은 공돌이랑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왕 노력해서 키워놨으면, 남 좋은 일 시키지 말고 직접 거두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여자 3호의 이과남 편애는 본 사이트의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3호 0

안녕하세요.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3호입니다. 12월 한정으로 한다더니 왜 1월에도 하냐고요? ‘개발자와 연애하기 힘들어요.’라는 제보가 너무 많이 와서입니다. 개발자와 연애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개친연을 더 연재할 계획입니다. 개친연을 재미있게 읽고 계신 분은 기쁘시겠지만, 저는 스타트업 인터뷰와 개발자 인터뷰를 동시에 해야 해니까 좀 힘드네요. 제가 이렇게 힘든 걸 프라이스톤스 사장님은 알아주실까요?

개발자 남자친구와 헤어져도 개친연은 계속되죠. 아무튼 개친연 3호 카와이이하게 시작할게요.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여자 3호: 안녕하세요. 저는 게임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기획자고요. 제 남편은 게임회사 개발자입니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개발자 부부 다음으로 귀하다는 기획자-개발자 부부시군요!

레어템이다!

신림동 캐리: 남편분은 언제, 어디서 만났셨어요?
여자 3호: 회사 직원분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어요.
신림동 캐리: 그럼 처음부터 개발자라는 건 알고 만나셨겠네요.
여자 3호: 네, 주선자를 통해 기본적인 정보는 다 듣고 만났어요.
신림동 캐리: 소개팅은 어땠나요?
여자 3호: 일단 대화가 잘 통해서 좋았어요. 아무래도 같은 업계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처음 만나도 공통의 화젯거리가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죠. 제 주변에선 IT업계에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도 잘 모르거든요.
신림동 캐리: 소개팅은 남자가 말하고 여자는 웃으면서 ‘아, 그러시구나.’라거나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맞장구 쳐줘야 잘 된다던데….

역시 될 사람은 어떻게 해도 잘 되는 겁니다.
여자 3호: 그리고 저희 집 공돌이는 일반적인 개발자와 좀 달랐어요. 제가 예전부터 ‘내 이상형은 감성적인 공돌이야!’라고 말하고 다녔는데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니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라거나 ‘넌 안될 거야. 아마….’하고 비웃곤 했어요.
신림동 캐리: 맞아요! 저도 수학 잘하는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하면 미친 여자 취급 받아요!
여자 3호: 이과남이 얼마나 매력적인데!

전국의 이과 출신 여러분 희망을 가지십시오. 공대 페티쉬는 뜻밖에 흔한 취향입니다.

여자 3호: 아무튼 근데 이 소개팅에 나온 개발자가 여느 공돌이들이랑은 좀 다른 거예요. 일단 헐렁한 체크 남방이 아니라 몸매가 드러나는 흰 티셔츠를 입었고요.
신림동 캐리: 그래, 체크 남방 입지 마!
여자 3호: 바람막이 등산복이 아니라 캐주얼한 재킷을 입고 나왔죠.
신림동 캐리: 전 바람막이랑 백팩 조합 되게 좋아하는데….
여자 3호: 전 싫어해요. 아무튼 그래서 스타일에선 일단 합격점이었죠. 게다가 인디 음악을 즐겨듣고 이소라를 좋아한다는 감수성 넘치는 부분에 가산점!
신림동 캐리: 실제로 즐겨 듣는 음악이 Baba Yetu라고 해도 소개팅 나가선 제프 베넷이나 어반 자카파라고 해야죠.

근데 TOY는 안돼요. 찌질한 구남친st이거든요.

여자 3호: 무엇보다도 맘에 들었던 건 그동안 너무 일만 하고 살았다며 앞으로 일은 적당히 하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겠다는 선언이었죠. 제가 그 말에 속아서 만났는데….
신림동 캐리: 그런 말 믿으면 안 돼요! 개발자들은 기본적으로 다 워커 홀릭에 매저키스트예요! 힘들다 힘들다 앓는 소리 하면서 버그 해결하면 막 코르가즘 느끼고!

아, 너무 격분했네요. 릴렉스하겠습니다.

여자 3호: 그렇게 소개팅으로 시작해 몇 번 만나다 보니 공돌이답잖게 애교도 많고 센스도 있었어요.
신림동 캐리: 공돌이가 애교와 센스를 갖췄다니 흔치 않은 능력치네요.
여자 3호: 연애 초기의 일인데요. 토요일 아침에 영화를 보기로 했어요. 영화관 앞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이 남자가 조금 늦는 거예요. 약간 괘씸했죠. 근데 멀리서 걸어오는 남자의 손에 커피가 들려 있었어요. 아침이라 모닝커피를 샀는데 뭘 좋아할지 몰라서 두 개를 샀다고, 아메리카노랑 카푸치노 둘 중에 고르라는 거예요. 사실은 일찍 나왔는데 커피를 미리 사놓으면 식을까 시간 맞춰 사느라 늦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고요. 그때 완전히 감동 받았죠. 이 남자는 내가 찾던 감성적인 공돌이다!
신림동 캐리: 저까지 막 눈물 나려고 그래요. 거기 티슈 좀 뽑아주세요.
여자 3호: 하지만 그 날 이후로 그런 센스는 찾을 수가 없었죠…. 인제 와서 그 센스 어디 갔냐고 물으면 그때 다 넘쳐서 없어졌다고….

신림동 캐리: 개발자와 연애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게 있으신가요?
여자 3호: 저희 집 공돌이는 일하면 연락이 잘 안 돼요.
신림동 캐리: 개발자가 그렇죠.
여자 3호: 연애 초기엔 문자에 재깍 재깍 답장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제가 10개 보내면 1~2개 답장하더라고요. 여러 개 보내면 한꺼 번에 건성으로 읽고 몇 개는 빼먹고 읽어서 몇 개는 답이 없기도 하고요. 처음엔 ‘뭔가 바쁜 일이 있겠지.’하고 넘어갔는데, 그런 바쁜 일이 몇 달째 계속되는 거예요.
신림동 캐리: 인생은 짧고 코딩은 기니까요.
여자 3호: 여자는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죠. 혹시 다른 여자와 있는 거 아닌가, 나에 대한 마음이 식은 게 아닌가 그런 거요. 근데 또 전화하면 받아요. 정신없이 일하면서 건성으로 받죠.
신림동 캐리: 아무래도 코딩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죠.
여자 3호: 일 끝나면 제정신이 돌아와서 막 애정표현을 해요.
신림동 캐리: 맞아요. 개발자는 일할 때와 일을 안 할 때의 스위치 온오프가 확실한 직업 같아요. 그런 게 매력적이기도 하고요.
여자 3호: 한 번은 기념일이었는데 서버에 문제가 생겼어요. 그것도 새벽에요. 언제 복구가 될지 몰라서 그날 일정 다 취소하고 저는 하염없이 기다렸죠. 밤까지 해결이 안 되는 거에요. 밥도 못 먹고 일하는 것 같길래 제가 먹을 것을 사서 회사에 갖다 주고 왔어요. 화가 나다가도 그런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불쌍하고 그래요. 힘들 텐데 나까지 괴롭히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으로 참는 거죠.
신림동 캐리: 개발자가 원하는 이상적인 아내시네요. 저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됩니다.
여자 3호: 저도 그래서 맨날 남편한테 ‘나 같은 여자가 세상에 어딨어? 응?’하고 수시로 교육하고 있어요.
신림동 캐리: 저도 개발자와 사귈 때 그렇게 ‘나 같은 여자는 없다. 넌 날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라고 무한히 세뇌하곤 했죠. 그러면 조용히 하라더군요.
여자 3호: 근데 개발자 남자는 왜 그런 거 싫어하죠?
신림동 캐리: 그러게요. 저도 자꾸 그러니까 답정너 같다고 하더라고요. ‘다 아니까 굳이 말 안 해도 된다.’라면서요.

신림동 캐리: 남편분께서 공대 농담을 하시나요?
여자 3호: 저희 집 공돌이는 공대 농담을 거의 안 해요. 근데 공대 농담만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말을 잘 안 해요. 주로 저 혼자 떠들죠. 어떤 때는 벽에다 대고 얘기하고 있는 느낌도 들어요. 뭘 물어봐도 거의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모른다고 답하죠.
신림동 캐리: 맞아요! 뭘 물어봐도 반 이상의 대답이 ‘몰라.’예요. 그래서 왜 그렇게 성의 없게 대답하냐고 하면 모르겠는데 어쩌라고 그래요.
여자 3호: 제 남편도 제가 하는 질문에 80%는 ‘몰라.’예요.
신림동 캐리: 그럼 어떻게 하세요?
여자 3호: 그래서 그냥 제 맘대로 해요. 제 마음대로 집 꾸미고, 물건 사고, 메뉴 고르고, 여행 장소 정해요.
신림동 캐리: 아, 그런 해결 방법이 있구나….
여자 3호: 결혼생활에 대한 모든 걸 거의 제 맘대로 할 수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얘기하면 대부분 그러라고 해요.

신림동 캐리: 그럼 남편이 개발자라 좋은 점은요?
여자 3호: 제가 기획자라 업무 관련된 것을 남편에게 많이 물어봐요. 이런 기능은 구현이 가능하냐, 이런 건 구현이 어떻게 되는 거냐, 난이도가 어느 정도냐 그런 거요. 그런 걸 알고 있으면 개발자와 협업할 때 무척 도움이 되거든요.

신림동 캐리: 다른 남편과 개발자 남편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자 3호: 한집에 살지만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기 힘든 날이 많아요. 제가 잘 때 남편이 퇴근해서 들어오고 제가 출근할 때는 남편이 자고 있거든요.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늦게까지 일하고 가끔은 외박도 하고요.
신림동 캐리: 아까 소개팅할 때 남편분이 적당히 일하고 즐기며 살겠다고 하셨다지 않았어요?
여자 3호: 네, 그 말을 믿은 제가 바보였어요….
신림동 캐리: 그래도 연애할 때보다는 결혼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지 않나요? 아무래도 한집에 사니까요.
여자 3호: 그쵸. 그래도 요새는 12시 전에 들어와 집에서 일해요. 저희 집 공돌이가 침대에서 노트북으로 코딩하고 있으면 전 남편 팔뚝에 기대어 키보드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듭니다.
신림동 캐리: BGM으로 ‘섬집 아기’를 깔아줘야 할 것 같네요. 남편이 서버에 버그 따러 가면 아내는 홀로 남아 집을 보다가….

신림동 캐리: 부모님 세대에선 개발자라는 직업이 생소할 텐데 친정에선 사위가 개발자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혹은 업무를 이해하시나요?
여자 3호: 저희 부모님은 개발자가 뭐 하는 직업인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저희 집 공돌이는 모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는데 처음에 결혼한다 했을 때 저희 아빠가 사업하는 놈이라며 불안해하셨어요. 그리고 지금도 사위 만나면 맨날 주식 이야기만 하세요.

신림동 캐리: 공대 출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꼭 ‘닭튀김 수렴공식‘으로 빠지는데요. 코딩하다 막혔을 때 동네 통닭집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면 알려주신다더라 그런 농담을 하곤 하죠.

이 레어템 부부의 이야기는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3호 1에서 계속됩니다.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2호 1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2호 0이 나가고 페이스북에서 한 남자분이 제게 말을 거셨습니다.

익명의 브로그래머: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익명의 브로그래머: 이번에 인터뷰하신 여자 2호 말인데요.
신림동 캐리: 네, 무슨 일이라도?
익명의 브로그래머: 제 구여친 같은데요.
신림동 캐리: 저는 여자 2호가 누군지 모릅니다. 인터뷰이의 정보는 소중합니다.

알고 보니 여자 2호의 브로그래머 구남친이 신림동 캐리의 아는 사람이더라고요. 여자 2호와 브로그래머 구남친은 각자 컨트롤 비트를 다운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언제 너한테 자기관리 뭐라 그랬어!’라거나 ‘이 자식아, 했잖아!’를 서로에게 전달하라 신림동 캐리에게 부탁했습니다. 옛정이 묻어나는 디스전 사이에서 신림동 캐리는 ‘여러분, 저한테 시키지 말고 카카오톡 까세요.’를 중얼거렸다는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세상은 의외로 좁으니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회악인 브로그래머는 제쳐놓고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2호 1 시작합니다.

신림동 캐리: 공대생은 자기들끼리만 아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낄낄대길 좋아하는 종족으로 알려져있는데요. 남자친구가 한 공대 농담 중에 기억나는 게 있나요?
여자 2호: 저도 공대녀인지라 웬만한 공대 농담은 다 알아들어요. 얼마 전에 개발자가 보는 디자이너와 PM, 디자이너가 보는 개발자와 PM, PM이 보는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비교한 차트가 업계에서 소소하게 유행했었거든요. 그거 보고 너무 공감해서 점심 내내 팀 내 개발자분들과 그 얘기만 했던 기억이 나요.

신림동 캐리: 이상하게 공돌이들은 그런 공감대에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공돌이 앞에서 “난 알집 말고 7-zip 쓰는데?”라거나 “익스플로러 느려서 어떻게 써. 당연히 크롬이지.”라고 하면 절 보는 눈빛이 바뀌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여자 2호: 그쵸. 공돌이들은 이상하게 그런 걸 알아듣는 여자에게 가산점을 너무 많이 줘요.
신림동 캐리: 아무래도 자기 전공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여자 2호: 하지만 제가 그런 종류의 개그를 알아듣고 다른 사람들은 못 알아듣는 걸 아니까 이런 문제도 있었어요. 전 남자친구나 썸남이 가끔 너무 과도하게 공대 농담을 쓴다면 진짜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지구 상에서 없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신림동 캐리: 그렇게 심각한가요?

여자 2호: 예를 들어서 과제가 너무 많다는 걸 ‘infinite for loop’로 표현하며 페이스북에서 자기들끼리 리플 달며 논다든가, 그 아래에 다른 과 공돌이들이 나타나 다른 루프나 다른 언어로 표현한다든가 하고 있으면 ‘그만해! 그만하라고 이것들아! 사람들 다 도망간다!’고 외치고 싶은 기분이죠.

마치 공대 OT 같은 페이스북 타임라인

신림동 캐리: 근데 여자 2호님은 그런 놀이에 어떻게 반응하세요?
여자 2호: 사실 대부분의 릴레이에 참여합니다. 저도 개발자니깐요.

아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데스티니!

신림동 캐리: 근데 저처럼 공돌이에게 막연한 호감을 가진 여자분들은 공돌이와의 데이트가 다른 남자와 다를 거라 기대하는 부분이 있어요. 여자 2호님은 거의 개발자만 사귀었다 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데이트가 있나요?
여자 2호: 아이패드2가 나온 당일이었어요. 그날 바람을 동반한 눈이 오고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 남자친구는 거의 두 시간 동안 애플스토어 앞에서 기다려 아이패드2를 득템하고야 말았어요.


신림동 캐리: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여자 2호: 문제는 말이죠. 원래는 아이패드2를 살 계획이 없었어요. 그냥 남자친구와 밥 먹으러 시내에 나갔는데 하필 그 곳이 애플스토어 옆이었고 저희가 들어간 식당 넘어서까지 사람들이 아이패드2를 사기 위해 줄을 섰더라고요. 그래서 전 ‘이건 사야 돼!’를 느끼며 무작정 줄을 서기 시작했어요.
신림동 캐리: 몸 속에 흐르는 공대의 피가 잡스횽을 따르고 있었군요.
여자 2호: 심지어 저만 사고 남자친구는 안 샀어요. 절 기다려줬죠. 그렇게 기다려 애플스토어 입성한 순간 전 막 카운터까지 뛰어가 헐떡거리며 “아이패드 하얀색 와이파이만 되는 16GB짜리 주세요!”를 외쳤어요.
신림동 캐리: 남자친구의 반응은 어땠나요?
여자 2호: 그런 제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긴 했는데 정작 돌아와서는 자기가 더 신나서 아이패드를 가지고 놀더라고요.
신림동 캐리: 그라췌! 기계에 미치지 않는 공돌이는 없어요!

여자 2호: 맞아요. 공돌이에게 기계는 사랑입니다.

신림동 캐리: 제 남자친구는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스 사운드링크 미니 블루투스 스피커를 받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걸 선물했는데요. 박스 포장을 뜯고 있는 남자친구가 여태까지 본 모습 중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어요.
여자 2호: 그래도 기계만 좋아하면 양반이에요. 어떤 남자친구와는 용산상가에서 건프라 구경 데이트를 했어요. 그리고 남자친구가 입대하기 하루 전날 만나서는 온종일 한마디도 안 하다시피 하면서 각자 건프라 조립을 했죠.
신림동 캐리: 근데 그게 입대 전날과 무슨 관련이죠? 한동안 건프라 못 만질테니 마음껏 만질 테다 이런 건가요?
여자 2호: 글쎄요…. 그땐 그냥 심란해서 말이 없나 보다 했는데 그런 마음이었나….

신림동 캐리: 얼마 전에 공대생이 남자친구로서 좋은 점이라는 짤방이 떠돌았는데요. 때 묻지 않은 모태솔로가 많다거나 주변에 여자가 없어서 바람 피울 확률이 없다든가 여자를 대하기 어려워하는 순수함이 있다 뭐 그런 건 완전 웃기지 않나요?
여자 2호: 그쵸. 공대 안에서 여자친구 몇 번 갈아치운 사람도 많이 봤어요.
신림동 캐리: 저만 해도 바람 피워서 헤어진 구남친 둘 다 공대생이었어요.

공대 출신 여자 2호가 정리해드립니다.

청정 100% 때 묻지 않은 모태솔로가 많다. → 그냥 모태솔로가 많다.
컴퓨터 고장 따윈 혼자 해결한다. → 컴퓨터 고장 나면 새로 산다.
주변에 여자가 없어 바람 피울 확률 ZERO → 주변에 여자가 없긴 한데 바람 필 사람은 다 피운다.
그리고 바람 필 여유조차 없다. → 바람 필 여유가 없어도 바람 필 사람은 다 피운다.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풀 것 같다. → 공대생도 취미는 케바케다.
사소한 애교에도 감동한다. → 여자친구가 뭘 해도 감동한다.

신림동 캐리: 여자들이 흔히 문과 남자의 이상향으로 성시경을 꼽거든요. 자상하고 논리적이고 여자를 잘 알고 배려심이 깊고 잠자기 전에 전화로 ‘잘 자요.’ 해줄 것 같고요. 근데 성시경이랑 만약 싸우게 되면 따박 따박 ‘니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 하면서 가르칠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아요. 공대생과 싸우면 어떻던가요?
여자 2호: 대부분 싸울 때 공대생은 말이 없어지죠.
신림동 캐리: 맞아요!
여자 2호: 성격마다 다르긴 한데 대체로 싸우면 평소보다 말이 더 없어지긴 해요. 그리고 여자친구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죠.
신림동 캐리: 근데 여자친구가 화나면 달래도 보고 빌어도 보고 그래야 하는데 공돌이들은 그냥 ‘아, 화가 났나보다…. 어떡하지…. 화 풀릴 때까지 기다려야지….’ 마인드라 더 화가 난다니까요!
여자 2호: 공돌이라고 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비는 건 아니예요. 전 공대생 남자친구와 캠퍼스에서 너무 격하게 싸운 나머지 경찰이 온 적도 있어요. ‘No contact agreement’에 싸인도 하고요.
신림동 캐리: 와, 청춘이다.

다시는 공돌이를 무시하지 마라!

신림동 캐리: 그럼 개발자 남자친구가 가진 장점은 뭘까요?
여자 2호: 제가 하는 이야기를 알아들어서 좋아요. 제가 여자 개발자라서 개발하면서 느끼는 희열과 고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데 개발자가 아닌 분들이랑 이런 얘기를 하려면 매우 어렵거든요. 제가 워낙 말 전달 능력이 없어서 말은 많이 하는데 상대방이 잘 못 알아 듣는 편이에요. 근데 개발자 남자친구는 제가 횡설수설하게 말해도 대충 기본 지식이 있으시니까 알아 듣고 현실적인 조언까지 해주니까 참 좋더라고요.
신림동 캐리: 일 말고는요?
여자 2호: 물론 사람 대화 내용이 일 관련만 있는 건 아니죠. 다른 관심 분야에 대해서도 개발자는 어느 한 분야를 깊게 파는 경우가 많거든요. 한마디로 덕후죠. 지식 분량이 위키피디아 항목을 지구 한 바퀴 샤닥션을 치고도 남을 정도인 사람이 많기 때문에 대화가 지루하지 않습니다.

신림동 캐리: 그럼 개발자 남자친구의 단점이 있다면?
여자 2호: 바빠요.
신림동 캐리: 공감합니다. 그들은 언제나 바쁘죠.


여자 2호: 그리고 어딘가 몰입해있는 상황이 많아 말을 걸어도 대답이 늦습니다. 저는 개발자라고 해도 일단 여자인데다 애정 결핍이 있어서 상대방에게 말을 걸고 답이 늦게 오면 초조해지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개발자를 사귈 땐 이런 점 때문에 마음 고생을 했어요. 처음엔 ‘남자친구가 날 귀찮아하는구나! 난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겠다!’라고까지 받아들였거든요.
신림동 캐리: 아니 그건 좀 오버예요.
여자 2호: 하지만 전 그런 게 너무 싫었는걸요. 남자친구와 싸운 이유 대부분이 연락 문제와 데이트 시간이었어요.
신림동 캐리: 개발자끼리 사귄다고 해도 이런 부분에선 싸움을 피할 수 없군요. 저도 이런 부분에서 트러블을 겪곤 하는데 그게 제가 비개발자라 겪게 되는구나 했었어요.
여자 2호: 한 남자와는 저 혼자만이 아니고 서로 섭섭하게 생각하는 바람에 아주 초토화가 났어요. 둘 다 바빴고 연락에 소홀했거든요. 제가 개발자인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연애할 때마다 어려워요.
신림동 캐리: 그럼 여자를 사귀고 싶어하는 혹은 연애에 어려움을 겪는 불특정 다수의 남자 개발자에게 연애 조언을 해준다면?
여자 2호: 일단 너무 조급하면 생길 것도 안 생긴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 주변의 몇몇 개발자가 “이번엔 기필코 여자친구를 만들겠어!’라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호감 가는 여성이 있으면 밑도 끝도 없이 들이대는 걸 자주 봤어요. 저도 그런 들이댐을 당하기도 했고요. 근데 여자 입장에선 처음부터 그렇게 다가오는 남자가 너무 부담스러워요.
신림동 캐리: 그럼 최악의 들이댐 사례 좀 말씀해주세요.
여자 2호: 제가 남초 학과에 남초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라 대시 받는 경우가 많은데요. 갑자기 뜬금없는 선물 공세를 한다든가 단둘이 여행을 가자고 한다든가 메시지 답장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내가 싫어졌냐고 칭얼거린다든가 비호감 대시 사례는 참 다앵해요. 특히 한 남자분은 IT인이라면 모두들 선망하는 G모 기업에 다니고 계셨는데 제가 자신을 거절하자 메일로 ‘감히 너 같은 년이 나처럼 위대한 사람을 차다니 참 한심하다. shame on you and good bye forever.’이라고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신림동 캐리: 차길 잘했네요. 풍악을 울려야 할 분위긴데요?

신림동 캐리: 남자 개발자, 그들은 왜 연애를 못 할까요? 왜 곧 차일까요?
여자 2호: 일단 LOL 좀 그만 하세요!
신림동 캐리: 맞아요! 내가 늘 말했지! 남의 엄마 걱정하지 말고 니 인생 걱정해!
여자 2호: 그런 것도 있고 사실 IT 개발자 성비를 보면 답이 나와요. 저희 팀만 해도 저 빼고 다 남자예요. IT계에 여성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 턱없이 부족하죠. 심지어 여자분이 입사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저까지 기쁘다니까요. 그리고 다들 너무 바쁘세요. 저도 개발자니까 왜 그런지는 다 알고 이해해요. 프로젝트 하나 잡히면 정신없이 바쁜데 그것만 하는 게 아니라 중간에 들어오는 자잘한 업무도 태산 같죠. 미국은 그나마 야근이 필수가 아니라 전 일찍 퇴근하는 편이긴 한데 온종일 모니터 보고 있다 집에 가면 좀비가 되어 침대에만 누워있게 돼요. 근무 환경이 자유롭다는 미국도 이런 데 한국은 오죽하겠어요. 이러니까 누굴 만날 기력이 없겠죠. 그러다 보면 여자를 만나는 게 힘들기도 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모르게 되고요.

신림동 캐리: 마지막으로, 개발자와 사귀거나 만나고 싶다는 여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여자 2호: 서로에게 너무 얽매이지 마세요. 남자친구도 그만의 삶이 있고, 당신도 당신의 삶이 있어요. 개발자는 타이트한 근무 환경에서 머리를 많이 쓰는 일을 하니까 정신적으로 거의 늘 지친 상태예요. 프로젝트 기간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바쁘고 힘들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요. 그리고 분야가 분야다 보니 새 정보는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나오고 그것을 재빠르게 캐치해서 배워야 하기도 하죠. 그러니 바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남자친구가 연락을 자주 안 한다고 해서 당신에게 관심 없는 게 아니에요. 제일 힘들 때 생각나는 게 당신이니까요.
신림동 캐리: 제 남자친구는 제일 힘들 땐 제 생각 안 나다가 일 끝나고 한숨 돌리거나 화장실 갈 때 절 생각한다던데요.
여자 2호: 아무튼 개발자는 메시지 답장이 수시로 늦고, 전화를 제때 못 받고, 약속에 늦거나 못 나오거나 데이트하는 중간에 다시 회사로 불려 가기도 할 겁니다. 그런 것에 불안해하지 말고 남자친구의 생활을 존중해주세요. 동시에 당신도 자신의 삶을 꾸려가며 연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