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완성은 얼굴, 최치선으로 알려진 정주영 0

신림동 캐리는 어떻게 개발자 인터뷰를 섭외할까요?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기회가 오면 바로 섭외 같은 걸 끼얹습니다. 그리고는 부탁하고 빌고 애원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아무튼 좋은 인터뷰이를 만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죠.

정주영님은 예전부터 뛰어난 개발 실력은 물론이고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엔 정말 경국지색이었다.’라거나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그가 건너오는데 가슴이 설렜다.’는 말로 늘 궁금증을 자아내던 분이었습니다.

근데 슬프게도 이런 말은 모두 남자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럼 게임빌, J2M과 EA를 거쳐 카카오에서 카카오톡 PC버전을 개발하고 계신 정주영님을 소개합니다.

이름 혹은 닉네임: 정주영(최치선)
위치: 서울, 판교
소속: 카카오 개발자
내 모바일 기기: Motorola KRZR, Nexus 5, Nexus 7, IPhone5, iPad AIR, ASUS TAICHI 21 (notebook), Macbook Air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정주영: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 판교는 언제나 참으로 멀고도 험하네요.
정주영: 지하철 타고 오기엔 좀 힘드셨죠?
신림동 캐리: 오라면 와야지…. 아무튼 최치선으로 알려져 정주영이라고 하면 오히려 모르시는 분이 더 많을 텐데, 자기 소개 부탁한다.


정주영: 닉네임은 최치선이고 본명은 정주영이다. 그냥 편한 대로 부르면 된다.
신림동 캐리: 근데 왜 최치선인가? 닉네임치고는 왠지 현실 돋아서 난 몇 년이나 그게 본명이신 줄 알았다.
정주영: 중학교 때였나, PC통신을 막 시작하면서 채팅방이나 게시판에서 활동하며 쓸 닉네임으로 지었던 이름이다. 다들 어릴 땐 만화나 애니에 나오는 캐릭터가 멋있어 보이지 않나? 난 당시에 ‘굿모닝 티처’라는 만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을 동경했어서 그 이름을 닉네임으로 쓰게 됐다.
신림동 캐리: 그걸 지금까지 쓰고 있다니 인생에서 본명보다 닉네임으로 불린 시간이 더 길겠다.
정주영: 어릴 때부터 본명에 콤플렉스가 있어서….
신림동 캐리: 아, 회장님….
정주영: 아무튼 ‘최치선’이라는 닉네임이 실제 이름처럼 보이다 보니 해프닝이 좀 있었다. 퇴사하는 날에 동료로부터 ‘최치선이 본명 아니었어요?’라는 말을 들었다거나 말이지. 평소에도 주변에서 다 치선이로 불러서 누가 날 본명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이 ‘주영이가 누구야?’하고 반응할 때가 많다.

신림동 캐리: 어떤 계기로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정주영: 7살인가 어머니와 길을 걷다 컴퓨터 학원이 있길래 호기심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다들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더라. 그게 재미있어 보여서 어머니를 졸라 학원에 다니게 됐다. 거기서 프로그래밍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은 초록색 IQ2000에서 간단한 Basic 프로그램을 짜봤는데 그 뒤로 심심해서 Cobol, Fortran 등을 배웠다. 내가 생각한 것을 구체화해서 만들고 그게 작동한다는 데서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국민학교 2학년 때 학교 대표로 프로그래밍 대회에 나가서 입상했다. 그때부터 컴퓨터가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신림동 캐리: 요즘 사회가 워낙 암울하니 IT계도 개발자 스스로 자학하는 분위기가 있잖나.

평생 개발만 하다가 종칠래? 4년 하면 됐어. 나도 더이상 이렇게는 못 살아! – 앙큼한 돌싱녀 3화에서

신림동 캐리: 아무튼 시간을 되돌린다면 그 학원을 다시 들어가실 건가?
정주영: 물론이다. 나는 개발자라는 직업에 무척 만족한다.

신림동 캐리: 소문을 듣자 하니 정주영님은 소속 브레이커… 아니, 인수합병의 아이콘이시라고 들었다. 어떻게 생긴 별명인가?
정주영: 딱히 내가 의도한 건 아닌데… 일단 고등학교(부산과학고)가 갑자기 한국과학영재학교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새로 생긴 ICU라는 대학교에 갔는데 14학기쯤 다니고 졸업했더니 카이스트에 통합됐다. J2M에서 일하다 게임빌에서 병특하고 J2M으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EA에 인수됐다. 그러다가 EA는 인수될 거 같지 않아서 ‘내가 차려서 인수시키겠다!’… 는 아니고 그냥 친구가 꼬시길래 대학교 동기와 Lotiple이란 회사를 창업했는데 서비스 시작하고 한 6개월 정도 만에 카카오에서 인수를 해가서 지금은 카카오에서 PC버전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신림동 캐리: 게다가 올해는 여자친구와도 인수합병하셨지.
정주영: 하하하!
신림동 캐리: 하하하!

신림동 캐리: 내가 카카오톡 PC버전 베타테스터였다.
정주영: 오!
신림동 캐리: 처음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당첨되어서 마치 로또 3등 정도는 된 기분으로 좋아했는데 깔자마자 버그 잔치가….
정주영: 사내에서 QA 이외에는 Windows 개발자만이 PC버전을 사용하고 있었다. 대부분 개발자가 Mac으로 개발하기 때문에 사내 리포팅이 별로 없어서 버그가 많았을 수 있었을 거다….
신림동 캐리: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정주영: 사실 베타 테스트를 오픈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신청해서 매우 놀랐다. 무슨 문제가 터질까 조마조마했는데 생각보다 무난하게 진행되더라. 일단 베타 테스트를 시작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컴플레인이 ‘PC버전에서 로그아웃했을 때의 메세지를 PC버전에서 확인할 수 없다.’였는데 사실 이 부분을 고치기까지 무척 많은 노력이 있었다.
신림동 캐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인가….

이제 PC버전에서 메시지와 이모티콘이 제대로 작동해 환하게 웃으실 수 있는 정주영님이십니다.

정주영: 한 번은 여름휴가 및 컨퍼런스 참여로 미국을 가게 되었었다.
신림동 캐리: 우리 그때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날 뻔 했잖아….

정주영님과 저는 작년 5월에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한 시기와 지인이 겹쳐 함께 식사할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정주영: 아, 그랬었지. 아무튼 당시에 ‘새 메시지가 있어도 PC버전이 로그아웃 상태일 때 받은 메시지는 볼 수 없는 패치’를 만든 적이 있는데 (http://playnexus.tistory.com/69 중간의 스크린샷 참고) 미국 다녀와서 모든 기능을 되돌리느라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외에도 카카오톡 PC버전이 나오면 분명히 많은 사람이 코드를 분석하고 악용할 것이라는 예상 하에 베타 테스트 버전부터 보안에 꽤 신경을 썼다. PC버전이 뚫릴 경우 개인정보 및 스팸 이슈가 크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많은 부분을 고민한 덕분에 큰 사고는 여태까지 없었고, 주변에서도 취약점이 발견될 경우 바로 리포팅을 해줘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신림동 캐리: 최근에 카카오가 20억 달러의 가치를 가진 기업으로 평가받으며 가장 주목받는 벤처로 부상하고 있다. 어떻게 카카오에 들어가게 되셨고, 또 카카오를 다니며 느끼는 점은?
정주영: J2M, 게임빌을 거쳐 EA에 다니다 대학교 동기가 꼬셔서 창업하게 됐다. EA에서 의욕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고 개인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걸 해보겠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EA를 그만두고 나와 로티플에 창업 멤버로 들어갔는데, 케이큐브벤처스 임지훈 대표님의 제안으로 로티플이 카카오에 피인수되어 카카오에 들어오게 됐다. 처음 입사했을 땐 100명 남짓한 회사였는데 예상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동료도 마음에 들었다.
신림동 캐리: 카카오에는 여러 가지 좀 특이한 문화가 있다고 들었는데?
정주영: 그래서 입사 초반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몇 가지 것이 있는데 일단 사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스레드 기반의 카카오 아지트밖에 없었다는 거다. 대화성 커뮤니케이션은 직접 찾아가거나 카톡으로 이야기해야 했는데 당시엔 PC버전이 없으니 긴 대화를 나누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왜 PC를 앞에 두고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찍으며 얘기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신림동 캐리: 미스릴 갑옷 입고 나무 칼을 휘두르는 느낌이었겠다.
정주영: 게다가 입사하면 회사를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잖나. 시스템에 대해 질문할 게 산더미 같은데 그걸 일일이 자리까지 찾아가 물어보거나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건 너무나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직접 사내에 irc서버를 설치하고 사내 커뮤니케이션의 일부를 irc로 이동시키는 일을 했다.
신림동 캐리: 오, 회사에서 동료들이 좋아했겠다.
정주영: 카카오의 문화라고 하니까 말인데 가장 특이한 점을 꼽으라면 다들 영어 이름을 사용한다는 거다. 어색하지 않냐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카카오에 다니는 사람으로서는 생각보다 메리트가 있더라. 한글 이름에서 오는 경어를 생략함으로써 얻는 수평적인 느낌은 우리의 예상보다 영향력이 크다. 만약 한글 이름으로 쓰는데 경어를 생략한다고 해보자.
신림동 캐리: 그래.
정주영: 캐리…는 영어구나…. 아무튼 그럼 상상에 맡긴다. 영어 이름을 쓰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회사에 비해 수직적 관계가 덜하고 회의나 게시판에 의견을 개진하는 데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여러모로 카카오는 개발자가 다니기 꽤 매력적인 회사라고 생각한다. 능력이 있으면 그만큼 대우를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개발자의 의견을 생각보다 많이 반영하는 회사다. 지금은 회사 규모도 커지고 직원도 많이 늘어나 어느 정도 성장통이 오는 것 같지만 여전히 자유롭고 괜찮은 회사라고 느낀다.

개발의 완성은 얼굴, 최치선으로 알려진 정주영 1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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