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파를 세 배 빠르게 만든 남자, 하재승 0

이번에는 어떤 개발자를 섭외하지 고민하던 저에게 누군가 ‘재승 형이 천재이긴 한데…. ‘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천잰데요?’라고 물으니 옆에서 ‘남들이 한 달 할 일을 하루 만에 하는?’이라든가 ‘그냥 존나 천재지.’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그래서 저는 어떻게든 하재승님을 꼬드겨서 인터뷰를 진행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주변의 인맥을 통해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근데 천재라고 해서 긴장한 거 치곤 ‘저 같은 사람에게 들을 이야기가 뭐 있을까요?’라며 아주 겸손한 자세로 인터뷰에 응하시더라고요. 인터뷰하며 자꾸 저보고 미녀라고 하셔서 다른 때보다 특별히 신경 써서 인터뷰 원고 썼음을 고백합니다.

와일드한 인상과는 달리 매우 소녀 같은 성격의 소유자이시더군요. 하지만 제가 ‘그렇게 천재시라면서요?’라고 묻자 수줍게 ‘네…. ‘라고 대답하시기도…. 그럼 네오플 개발자 하재승님을 만나보겠습니다.

이름 혹은 닉네임: 하재승, ipknHama 입큰 또는 하마
위치: 낙성대동과 역삼동
소속: 현재 NEOPLE 던파 프로젝트에서 기존 코드 뒤엎기를 담당하고 있다.
내 기기: iPhone 5 / 하스스톤 머신이 되버린 iPad Air / MacBook Air 2011년형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하재승: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 초면에 이런 말을 하기 좀 그렇지만….
하재승: 네?
신림동 캐리: 주변으로부터 ‘존나 천재’라고 소개받았다. 아무튼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한다.


하재승: 응? 존나 천재라고 하기엔 솔직히 나보다 잘난 사람이 너무 많지만… 나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트위터에 쓴 ‘native C++ speaker live in Python land’로 설명이 될 듯하다. 진성 C++ 덕후이고 간단한 코딩은 주로 Python으로 해결한다. 여기서 native란 건 한국어보다 C++이 쉽다는 뜻이다.
신림동 캐리: 존나 천재네….
하재승: 아무튼 이미르, 넥슨, NC를 거쳐 지금은 네오플에서 던파의 묵은 코드와 싸우고 있다. 네오플에 들어오기 전에는 잠깐 이두희님과 함께 ‘멋쟁이 사자처럼’에서 게임 쪽 교육도 진행했었다. 세계 대학생 프로그래밍 대회 결승에 2004년, 2009년에 나갔었다.

신림동 캐리: 2000년대 이후 서울대 컴공과에서 최고 천재라는 말을 들었다.
하재승: 대체 어디서?
신림동 캐리: 낙성대 술집 사운드마인드에서 술 마시다가 옆 테이블과 합류했는데 그런 말을 들었다.

제가 왜 술집에서 옆 테이블과 합류해 개발 이야기나 하고 있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신림동 캐리: 아무튼 개발자 사이에서 존나 천재로 불린다는 사실을 본인은 아시는지?
하재승: 물론 제가 머리도 좋고 학점도 좋고 코딩도 잘하지만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 대학 입학하고 몇 년간은 성적이 잘 나와도 내가 개발을 일찍 시작한 편이라 현재로서는 남보다 코딩을 조금 할 줄 알 뿐이라고 여겼고 대회에서 상을 받아도 그저 운이라 생각했었다.
신림동 캐리: 천재인데 겸손하기까지….
하재승: 어떻게 보면 겸손함이라고도 여길 수 있겠지만 나 스스로는 자신감도 없고 마음 한편이 늘 주눅 든 상태였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존경하던 친구로부터 ‘일정 수준 이상 잘하게 되면 그 다음은 결국 어느 방향으로 더 노력했느냐가 차이가 날 뿐 모두 잘하는 사람인 것’이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나에게는 엄청난 깨달음을 줬다. 그런 점에서 누가 나를 천재라고 불러준다면 물론 그 말씀은 굉장히 감사하지만 결국 무의미한 인정이라고 본다. 공부도 하면 할수록 더 할 게 많은 것처럼 개발도 자신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나보다 더 잘하고 뛰어난 사람이 계속 보인다.
신림동 캐리: 왠지 인터뷰 초반부터 숙연해진다.
하재승: 아, 그렇다고 내가 천재가 아니란 건 아니다.


신림동 캐리: 어릴 때 어떤 계기로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하재승: Westwood에서 만든 ‘Dune 2’라는 게임이 있다. 1992년에 나온 게임인데 커맨드&컨커,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등에까지 영향을 준 명작이다. 어릴 때 누군가 이 게임을 알려줘서 플레이해봤는데 실시간으로 여러 유닛이 움직이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에 정말로 큰 문화 충격을 받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RTS류 게임의 시초에 가까운 거더라. 아무튼 그런 식으로 내가 만든 룰에 따라 움직이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각각의 개체가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서 프로그래밍에 빠져들었다.

신림동 캐리: 얼마 전에 송창규님과 하재승님이 소속되신 개발 모임에 초대받아 갔었지.
하재승: 우리는 ‘하비코딩’이라고 부른다.
신림동 캐리: 하비…라면 보통 여초카페에서는 ‘하체 비만’의 줄임말인데….
하재승: 하비…는 취미의 ‘Hobby’고… 하비코딩 모임 자체는 송창규님이 모은 것이다. 송창규님의 하비코딩 설립 목적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람들끼리 모여서 재미있는 주제로 가볍게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 같이 있으면 서로 동기 부여가 되니 딴짓을 덜 하고 실제 완성까지 이루어지지 않겠냐!’인데 실제로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신림동 캐리: 취미로 개발이라면 솔플이 더 편하지 않나?
하재승: 물론 개발 자체는 각자가 자기 만들고 싶은 걸 만들지만, 생각보다 모여서 같이 코딩한다는 게 도움되는 점이 많다. 이런 거 만들면 재밌겠다 싶어서 뭔가를 시작해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80% 정도 만들면 왠지 의욕이 떨어져 완성을 눈앞에 두고 그만두는 일이 종종 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럿이 모이면 자극도 되고 좋다.
신림동 캐리: 하비코딩의 고정 멤버, 가끔 오는 멤버 소개 좀 간단히 부탁한다.
하재승: 멤버는 10명 정도지만 평소 5명 내외로 모이게 되는데 여기 로켓펀치 블로그에서 소개된 분이라면 송창규, 최치선, 구종만이 있다. 나머지는 허락받지 않았으니 일단 비밀로♡


개발자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로켓펀치 블로그입니다.

그나저나 이게 하재승님과 최치선님의 고등학교 시절 사진이라는데 하재승님께 무슨 힘든 일이 있으셨던 거죠?

신림동 캐리: 하비코딩에서 제가 ‘뭐 만들고 계세요?’하고 물었더니 ‘아무도 쓰지 않을 쓰레기를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셨는데… 뭘 만들고 계셨던 건지?
하재승: 실제로 아무도 쓰지 않을 것 같은 쓰레기를 열심히 짜고 있었다.

하재승님이 만들어놨지만 아무도 쓰지 않는 것
1. http://sloud.herokuapp.com/edit – 웹에서 실시간으로 작성되는 프리젠테이션 편집기 (수식지원, 마크다운)
2. 페블 시계용 지하철 도착 표시기 – 미완성
3. http://github.com/ipkn/dumpable – C++용 시리얼라이즈 코드 없이 시리얼라이즈 하는 라이브러리

하재승님이 지금 만드는 중이지만 앞으로 아무도 쓰지 않을 것
Crow – C++ microframework for web(https://github.com/ipkn/crow)
Python Flask는 간단한 웹서버를 적은 코드로 만들수 있게 해주는 툴인데 그와 유사한 코드로 C++에서 서버를 작성할 수 있는 라이브러리다. Python Flask와 C++을 아는 사람이면 다음 코드를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https://github.com/ipkn/crow/blob/master/example.cpp
당연히 C++이니까 성능이 매우 빠르다. C++에는 쓸만한 json 라이브러리나 ORM 도 없어서 직접 구현하는 중이다.

신림동 캐리: 겸손하게 쓰레기를 만드는 중이라 말씀하시지만, 업무 시간 외에도 커리어 스텟을 열심히 찍으시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럼 일하지 않을 때는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하재승: 게임 방송을 보거나 개인 프로그래밍을 한다. 요새 게임 방송으로 버리는 시간이 너무 큰 거 같아 줄이는 중이다.
신림동 캐리: 게임 방송이라면 아프리카인가? 막 별풍선 같은 걸 끼얹나?
하재승: 아니 그런 거 아니고 ‘twitch.tv’라고 미국 방송이다. LoL 중계를 볼랬는데 맥북에서 한국 방송을 보려니 다 ActiveX를 깔라는 거다. 그래서 그냥 미국 방송 본다. 왠지 게임 방송을 보면서 영어 공부가 될 거 같다는 기대가 있다.
신림동 캐리: 거짓말하지 마라. 내가 미드를 얼마나 보는데 내 영어 실력은….
하재승: 아무튼 뭔가 꽂힌 프로젝트가 있는 상태에서는(지금은 Crow)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 안 먹고 안 자고 할 때가 많다. 요즘은 업무 시간 외에 사람들과 같이 머신러닝 스터디에 참가하고 있고, 위의 하비코딩에도 주기적으로 나간다.
신림동 캐리: 눈 뜨나 눈 감으나 개발 생각뿐이군.
하재승: 개발에 대해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예전에는 ‘멋쟁이 사자처럼’ 활동도 하고 페이스북에 강좌용 그룹을 개설한 적도 있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자랑할 만큼 쌓은 게 없으니 패스한다. 아, 그리고 곧 NDC(Nexon Developers Conference) 발표가 있어서 요즘은 주로 거기에 주말을 할애한다.

신림동 캐리: 회사에서 일을 주는 속도보다 하재승님이 일을 해치우는 속도가 빨라서 상사가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들었는데… 대체 비결이 뭔가?
하재승: 사실 프로라면 일은 스스로 찾아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네오플에 갓 입사했을 때 회사에서 정해준 업무량을 받아 프로젝트에 적응하는 기간을 가졌는데, 그때 팀장님이 한 달 예상한 걸 일주일 만에 해내는 일이 간혹 있었다.
신림동 캐리: 존나 천재네….
하재승: 내가 생각하는 내 장점은 단기 기억력이 좋은 편이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한 경험치가 쌓여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양의 코드를 볼 때도 남이 짜둔 프로그램의 흐름이나 의도 등을 비교적 빠르게 따라갈 수 있어서 기존의 작업물을 직감적으로 파악하고 ‘이전 동작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새로 작성하거나 다른 기능을 추가하기’를 좀 더 쉽게 하는 것 같다. 예전에 남의 코드를 디버깅하는데 같이 코드 보면서 코드 추적하고 있으니 상대방이 자기가 짠 코드도 아닌데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고 있냐고 신기해한 적이 있다.
신림동 캐리: 존나 천재네….

신림동 캐리: 뜬금 없지만, 손이 빠르면… 스타크래프트도 잘하나?
하재승: 손이 빠른 편은 아니다.
신림동 캐리: 그냥 머리가 빠르단 소린가?
하재승: 글쎄, 머리가 빠른…가? 잔머리는 잘 굴리는 것 같다. 뭔가 막혔을 때 해결책을 빨리 찾아내는 편이지. 근데 아무튼 스타는 택도 없다. 컴퓨터한테도 발린다. LoL도 생각만큼 손이 안 움직여서 관전만 하고 있다.


이 사진으로만 보면 손이 빠른 것 같은 하재승님이신데요.

페블 펌웨어 한글화 등 더 많은 천재 에피소드는 ‘던파를 세 배 빠르게 만든 남자, 하재승 1’로 이어집니다.

개발의 완성은 얼굴, 최치선으로 알려진 정주영 1

이 인터뷰는 개발의 완성은 얼굴, 최치선으로 알려진 정주영 0에서 이어집니다.

신림동 캐리: 최근 학사 병특이 없어져 많은 공대생이 절규하고 있다. 병특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정주영: 병특으로 의무를 마친 입장으로서 병특제도에 대해 긍정적이다. 사실 이런 대체복무제도가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군대에 감으로써 개인이 잃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특히 IT는 트렌드 및 기술이 매우 빠르게 변하는데 정보의 습득이 제한적인 곳에서 2년 정도를 보내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물론 형평성의 문제가 계속해서 제기되는데, 좀 더 다양한 대체 복무제도를 도입하거나 군대의 복지 및 대우가 좀 더 개선되어 선택의 문제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항상 좋은 취지의 제도가 나오면 악용하는 사례들이 나오는데 그 문제로 인해 이런 좋은 제도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신림동 캐리: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정주영: 최근 병특을 준비 중이던 많은 사람을 물 먹이는 국가 발표가 있었는데, 국가로서나 개인으로서나 이 문제는 참 어려운 것 같다. 여론을 봐도 병특의 대상자가 아닌 사람은 병특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이슈화한다 해도 딱히 좋은 방향으로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아서 걱정이다. 아는 후배도 거의 멘붕상태인데, 병무청에서 내년에는 대학생 TO도 내줬으면 한다.

신림동 캐리: J2M과 게임빌에서 일하셨던 건 어땠나?
정주영: J2M은 친구 소개로 졸업학점 인턴을 하러 갔다가 계속 남아 일하게 되었다. 당시에 J2M이 ‘레이시티’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인턴 때는 간단한 툴을 만들다가 실제 게임 쪽에 흥미를 많이 갖게 되어 아예 개발까지 시작했다. 주로 UI 레이아웃 시스템과 3D 강물 렌더링 쪽을 담당했고 클라이언트 작업을 했었다. 그러다 군대에 가야 할 시기가 됐는데 대학원에 갈 것인가 병특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서울대 대학원 원서를 넣었고, 대학원에 붙으면 대학원으로 진학할 예정이었다.
신림동 캐리: 대학원에 떨어지진 않았을 것 같은데?
정주영: 그게 말하자니 굉장히 한심한데….
신림동 캐리: 한심한 인생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여기서 밤새 떠들 수 있다.
정주영: 그 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지…. 평소처럼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데 서울대 다니는 아는 동생으로부터 ‘오빠, 면접인데 왜 안 와요!’라는 전화가 오는 거다. 깜짝 놀라 무슨 일인가 보니 입시관리처 홈페이지에는 날짜가 공지되지 않았는데 학과 홈페이지에 그날이라고 쓰여있더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관악산까지 날아갔는데 이미 지필고사는 끝났고….
신림동 캐리: 관악산이 참 오지라….
정주영: 교수 면접이 남아있었는데 일단 양복이 아닌 출근 복장이어서….
신림동 캐리: 체크 남방이라도 입고 계셨나?
정주영: 체크 남방이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후드 원피스에 청바지를 입은 상태였다.
신림동 캐리: 후드는 체크 남방과 함께 공대생의 친구죠. 아무튼 그래서?
정주영: 대기실에 있으니 ‘쟨 뭐야?’하는 시선이 장난 아니었다. 면접에 들어가니 교수님께서는 왜 지필을 안봤냐고 물으셨고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신림동 캐리: 영화에서라면 뭔가 엄청난 임팩트를 보이고 정원 외 합격이라는 이례적인 반전이 일어날 텐데….
정주영: 여기는 리얼 월드라 ‘안타깝군요.’라는 애잔한 위로와 함께 당연히 떨어졌다. 그래서 나는 병특하러 게임빌로 이직하게 됐다.
신림동 캐리: 왜 게임빌인가?
정주영: 당시 J2M은 병특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병특할 곳을 알아보다 게임빌 면접관이셨던 조성문님의 인상과 마인드가 좋아 입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나의 암흑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신림동 캐리: 마음에 들어서 들어갔다며….
정주영: 게임빌에서는 서버팀이었다. 사실 당시의 모바일회사에서 서버 쪽은 딱히 비중이 크지 않았다. 근데 게임빌에 들어가 프로야구 시리즈, 삼국쟁패 시리즈, 각종 아이템샵, 통신사 빌링 시스템 등 서버를 만들게 됐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아는 비운의 프로젝트였던 실시간 항해 대전게임 ‘라피스라즐리’의 서버를 개발했는데….
신림동 캐리: 갑자기 이 인터뷰 왜 이렇게 어두워지죠….
정주영: 일단 라피스라즐리의 최초 개발자가 개발 도중에 회사를 그만둬서 내가 맡게 되었다. 그때는 내가 어려서 몰랐다. 다른 개발자가 도중에 그만둔 업무를 이어서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신림동 캐리: 아아, 당했어요.
정주영: 게임 한판도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서버를 다 고쳐 안정적으로 런칭까지 시켰다. 여기서 게임이 흥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신림동 캐리: 흥했나?
정주영: 피처폰 시대에 네트워크 실시간 대전게임이 흥할 리가….

정주영: 심지어 퇴사 당일에 IDC이전 작업을 했는데 새벽까지 IDC에서 서버세팅을 하던 추억이 떠오른다.
신림동 캐리: 다른 이야긴데 요즘 게임빌이 참 잘 나가잖나.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정주영: 아무 생각이 없다.

신림동 캐리: 이 소프트웨어와 도구 없이는 살 수 없다 하는 건?
정주영: 소프트웨어는 vim, visual studio (with viemu, dpack), git, man 정도고 서비스는 google, stackoverflow, irctalk, 장비는 Happy Hacking Keyboard Pro 2, 넓은 모니터
그리고 인터넷이 되는 스마트폰!
신림동 캐리: irctalk라니 뭔가 이상한 게 들어있는 것 같지만 넘어가자….

신림동 캐리: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본인 스마트폰에 NHN 라인을 까셨는지?
정주영: 카카오 입사하기 전부터 내 스마트폰에 깔려 있었다. 라인이 일본에서 출시되어 한국 앱스토어에 풀리기 전부터 사용했다. 처음 라인을 쓰고는 피처폰을 많이 이용하는 일본인이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든, 확실히 일본을 잘 이해하고 있는 메신저라고 감탄했다. 근데 요즘은 안 쓰게 되더라.
신림동 캐리: 카카오에 다녀서?
정주영: 최근에 해외에서 광고성 자동응답 유저나 게임 초대 메세지가 많이 날아오기 때문이다.
신림동 캐리: 그렇다고 해두자….

신림동 캐리: 내 지인이 카카오톡 맥 버전을 만들다 계정 삭제… 당해서 술 마실 때마다 울고 있다.
정주영: 사실 그 이슈에 대해 사내에서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한 게 나다….
신림동 캐리: !
정주영: 그 카카오톡 맥 버전의 가장 큰 문제가 뭐였느냐면, 중계 서버를 사용해 대화내용이 해당 서버를 거치기 때문에 개발자가 마음만 먹으면 불특정 다수의 대화내용 및 카카오 계정을 확인할 수 있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로는 내버려둘 경우 카카오 계정 ID 및 비밀번호를 요구하는 유사 피싱사이트가 나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 내용을 개발자에게 전달했지만, javascript단에서 꼼수로만 로그인을 막아두고 로그인 폼은 그대로 노출하더라, 그래서 다시 한 번 전달했는데 css꼼수로 로그인 폼을 숨기고 개발자 도구를 이용하면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 상태였다.
신림동 캐리: 아아 우리 W쨩….
정주영: 그리고 추가로 다른 써드파티 라이브러리를 통한 시도가 지속적으로 감지되어 운영 정책에 따라 정상적인 클라이언트로 로그인하지 않을 경우 이용제재조치가 취해졌다. 딱히 악감정이 있거나 타겟을 노리고 한 건 아니니 너무 기분 상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차피 한 다리 건너면 다들 아는 사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힙합 비둘기 데프콘 횽이 “땅덩어리 넓은 미국은 디스하고 안 마주치면 그만이에요. 그런데 한국은 여기저기서 다 만나게 돼요.”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피스!

신림동 캐리: 개발자 사이에서 미모로 사랑받고 계신데….

신림동 캐리: 그게 개발할 때 메리트로 작용하나? 예를 들면 미인계를 썼을 때 상대방이 업무를 더 빨리 처리해준다든가….
정주영: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 사실 외모란 게 그냥 호감이나 비호감이냐 정도로 작용하는 것 이외에는 없었던 거 같다.
신림동 캐리: 와이프분이 남편으로 덕질을 하시더라고….

가운데에 자기 사진을 넣으면 단두대로 보인다는 이 짤방에서도 살아남은 최치선님이십니다.

참고로 이 사진은 와이프분께서 제작하셨습니다.

정주영: 사랑받고 있다♡
신림동 캐리: 부인이 게임 디자이너이신데 나중에 같이 프로젝트할 계획이 있으신지?
정주영: 와이프는 예전부터 계속 같이 하자고 말하는데 내가 다른 프로젝트를 많이 하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아직 못하고 있다. 사실 이거다 싶은 게 떠오르지 않는 이유도 있다. 서로 미묘하게 취향이 다르다 보니…는 변명이고 사실은 내가 게을러서 그렇지 뭐. 하지만 같이 프로젝트할 계획은 언제나 갖고 있다.

신림동 캐리: 와이프분께서 취미로 가끔 서코에 부스를 내시는데 굿즈 이동부터 잔돈 거슬러주기까지 함께하는 자상한 남편이시라고 들었다.
정주영: 내게 자동차가 생기면서부터 와이프의 굿즈도 변해서… 처음에는 회지나 머그컵, 달력 등을 만들더니 요즘은 쿠션이라든가 대형 포스터라든가 뭔가 크기가 달라졌다?
신림동 캐리: 코믹 가서는 단순 노동만 하셨나?
정주영: 나도 원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지라 와이프와 사귀면서 자연스레 서코 활동을 함께하게 되었다. 코믹은 게시판을 통해 선입금 예약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구시대의 유물인 제로보드를 쓰는 걸 보고 좀 놀랐다. 입금자가 게시판에 쓴 글을 하나씩 열면서 엑셀에 복사하고 붙여넣고 반복하고 있길래 이게 무슨 노가다질이야 싶더라. 그래서 제로보드 DB에 직접 접근해 게시판 게시물을 덤프 뜨고 그걸로 파싱하는 툴을 짜서 엑셀로 임포트했다. 근데 현장에서 보니 일일이 그 리스트로 사람 체크하는 게 귀찮을 것 같더라. 때마침 회사에서 하던 일이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봇 시스템을 만들던 중이라 테스트도 할 겸 선입금 예약자 확인봇을 만들었다.
신림동 캐리: 최고시다.
정주영: 그땐 이렇게 하면 편할 줄 알았지…. 실제로 코믹을 가보니 3G나 LTE 안 터지는 건 기본이요, 만든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시스템 장애가 겹쳐 진땀을 뺐다. 현장에서 와이브로 물려서 코딩하게 될 줄이야! 그래서 그 이후에는 선입금 및 통판 예약용 사이트를 그냥 처음부터 다 만들었다.


정주영: 이건 나름 잘 동작했고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다. 난 그림을 못 그리기 때문에 기술로나마 도움이 되려고 하고 있다.
신림동 캐리: 내가 보기엔 와이프의 취미생활까지 돕는 최고의 남편이시다.

신림동 캐리: 최근에 공부하고 있는 것은?
정주영: 최근엔 카카오톡 PC버전의 성능 개선을 위해 Direct2D를 공부 중이다. XP out!
신림동 캐리: 오오, XP out!
정주영: 사실 평소에 공부란 걸 따로 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때 그때 만들고 싶은 걸 찾고 거기에 필요한 것을 습득하는 식으로 한다. irctalk을 만들 때도 ‘go 언어를 써볼까?’라는 생각으로 go를 공부했었다. 지금은 성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신림동 캐리: 안 그래도 요즘 최치선님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것보다 디아블로 3에서 만나는 게 더 쉽다 들었다….

신림동 캐리: 최근에 읽은 개발에 대한 인상적인 책은?
정주영: 가장 최근에 본 건 단연 <알고리즘 문제 해결 전략>이지!

로켓펀치 개발자 인터뷰에서 사랑받는 구종만님이십니다.

신림동 캐리: 개발하는 후배에게 추천해주는 사이트는?
정주영: http://algospot.com!

로켓펀치 개발자 인터뷰에서 사랑받는 구종만님이십니다.

정주영: 여러 개발 사이트를 드나들기보단 꾸준히 개발에 손을 안 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림동 캐리: 그럼 본인을 어떤 개발자라고 생각하시는지? 어울리는 수식어를 붙이면?
정주영: 어려운 질문이다.
신림동 캐리: 모두 이 질문을 제일 어려워하신다.
정주영: 내가 딱히 어떤 개발자라고 규정을 내린 적은 없다. 간혹 회사에서 천재 개발자라고 말해주는데 내 주변에 진짜 천재가 많아서인지 그런 말을 들으면 엄청나게 부끄럽다. 굳이 붙인다면 게으른 개발자 정도일까?
신림동 캐리: 하지만 내 디아블로에겐 성실한 남자….

신림동 캐리: 개발자에게 재능이 얼마나 차지한다고 생각하는가?
정주영: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꽤 크지 않나 싶다. 재능의 기준이 미묘하지만 사고방식 및 구조, 문제를 대하는 자세, 그리고 근성, 이것 자체가 모두 모여 재능이라고 본다면 매우 영향이 크겠지. 재능이 있어도 꾸준히 갈고 닦아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항상 개발과 가까이에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은 대형 프로젝트 중심으로 돌아가던 예전과 다르게 작은 앱부터 시작해 간단한 웹서비스까지 많은 인력과 인프라 없이 개발이 가능하다. 능력과 자신 의지만 있다면 평생 개발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나도 앞으로 계속해서 개발하고 싶고, 나이 들어서도 와이프와 같이 게임을 만들 계획이다.

바탕화면과 프로필 사진은 항상 와이프가 그려준 그림을 사용한다.

키보드는 HHKP2가 없으면 멘붕한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자리로 오면 키보드를 사용하지 못한다.
모니터는 언제나 크고 넓고 많아야 좋다. 사실 책상을 잘 정리하는 편이 아니라서 깔끔하지는 않다.

개발의 완성은 얼굴, 최치선으로 알려진 정주영 0

신림동 캐리는 어떻게 개발자 인터뷰를 섭외할까요?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기회가 오면 바로 섭외 같은 걸 끼얹습니다. 그리고는 부탁하고 빌고 애원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아무튼 좋은 인터뷰이를 만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죠.

정주영님은 예전부터 뛰어난 개발 실력은 물론이고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엔 정말 경국지색이었다.’라거나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그가 건너오는데 가슴이 설렜다.’는 말로 늘 궁금증을 자아내던 분이었습니다.

근데 슬프게도 이런 말은 모두 남자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럼 게임빌, J2M과 EA를 거쳐 카카오에서 카카오톡 PC버전을 개발하고 계신 정주영님을 소개합니다.

이름 혹은 닉네임: 정주영(최치선)
위치: 서울, 판교
소속: 카카오 개발자
내 모바일 기기: Motorola KRZR, Nexus 5, Nexus 7, IPhone5, iPad AIR, ASUS TAICHI 21 (notebook), Macbook Air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정주영: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 판교는 언제나 참으로 멀고도 험하네요.
정주영: 지하철 타고 오기엔 좀 힘드셨죠?
신림동 캐리: 오라면 와야지…. 아무튼 최치선으로 알려져 정주영이라고 하면 오히려 모르시는 분이 더 많을 텐데, 자기 소개 부탁한다.


정주영: 닉네임은 최치선이고 본명은 정주영이다. 그냥 편한 대로 부르면 된다.
신림동 캐리: 근데 왜 최치선인가? 닉네임치고는 왠지 현실 돋아서 난 몇 년이나 그게 본명이신 줄 알았다.
정주영: 중학교 때였나, PC통신을 막 시작하면서 채팅방이나 게시판에서 활동하며 쓸 닉네임으로 지었던 이름이다. 다들 어릴 땐 만화나 애니에 나오는 캐릭터가 멋있어 보이지 않나? 난 당시에 ‘굿모닝 티처’라는 만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을 동경했어서 그 이름을 닉네임으로 쓰게 됐다.
신림동 캐리: 그걸 지금까지 쓰고 있다니 인생에서 본명보다 닉네임으로 불린 시간이 더 길겠다.
정주영: 어릴 때부터 본명에 콤플렉스가 있어서….
신림동 캐리: 아, 회장님….
정주영: 아무튼 ‘최치선’이라는 닉네임이 실제 이름처럼 보이다 보니 해프닝이 좀 있었다. 퇴사하는 날에 동료로부터 ‘최치선이 본명 아니었어요?’라는 말을 들었다거나 말이지. 평소에도 주변에서 다 치선이로 불러서 누가 날 본명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이 ‘주영이가 누구야?’하고 반응할 때가 많다.

신림동 캐리: 어떤 계기로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정주영: 7살인가 어머니와 길을 걷다 컴퓨터 학원이 있길래 호기심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다들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더라. 그게 재미있어 보여서 어머니를 졸라 학원에 다니게 됐다. 거기서 프로그래밍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은 초록색 IQ2000에서 간단한 Basic 프로그램을 짜봤는데 그 뒤로 심심해서 Cobol, Fortran 등을 배웠다. 내가 생각한 것을 구체화해서 만들고 그게 작동한다는 데서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국민학교 2학년 때 학교 대표로 프로그래밍 대회에 나가서 입상했다. 그때부터 컴퓨터가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신림동 캐리: 요즘 사회가 워낙 암울하니 IT계도 개발자 스스로 자학하는 분위기가 있잖나.

평생 개발만 하다가 종칠래? 4년 하면 됐어. 나도 더이상 이렇게는 못 살아! – 앙큼한 돌싱녀 3화에서

신림동 캐리: 아무튼 시간을 되돌린다면 그 학원을 다시 들어가실 건가?
정주영: 물론이다. 나는 개발자라는 직업에 무척 만족한다.

신림동 캐리: 소문을 듣자 하니 정주영님은 소속 브레이커… 아니, 인수합병의 아이콘이시라고 들었다. 어떻게 생긴 별명인가?
정주영: 딱히 내가 의도한 건 아닌데… 일단 고등학교(부산과학고)가 갑자기 한국과학영재학교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새로 생긴 ICU라는 대학교에 갔는데 14학기쯤 다니고 졸업했더니 카이스트에 통합됐다. J2M에서 일하다 게임빌에서 병특하고 J2M으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EA에 인수됐다. 그러다가 EA는 인수될 거 같지 않아서 ‘내가 차려서 인수시키겠다!’… 는 아니고 그냥 친구가 꼬시길래 대학교 동기와 Lotiple이란 회사를 창업했는데 서비스 시작하고 한 6개월 정도 만에 카카오에서 인수를 해가서 지금은 카카오에서 PC버전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신림동 캐리: 게다가 올해는 여자친구와도 인수합병하셨지.
정주영: 하하하!
신림동 캐리: 하하하!

신림동 캐리: 내가 카카오톡 PC버전 베타테스터였다.
정주영: 오!
신림동 캐리: 처음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당첨되어서 마치 로또 3등 정도는 된 기분으로 좋아했는데 깔자마자 버그 잔치가….
정주영: 사내에서 QA 이외에는 Windows 개발자만이 PC버전을 사용하고 있었다. 대부분 개발자가 Mac으로 개발하기 때문에 사내 리포팅이 별로 없어서 버그가 많았을 수 있었을 거다….
신림동 캐리: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정주영: 사실 베타 테스트를 오픈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신청해서 매우 놀랐다. 무슨 문제가 터질까 조마조마했는데 생각보다 무난하게 진행되더라. 일단 베타 테스트를 시작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컴플레인이 ‘PC버전에서 로그아웃했을 때의 메세지를 PC버전에서 확인할 수 없다.’였는데 사실 이 부분을 고치기까지 무척 많은 노력이 있었다.
신림동 캐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인가….

이제 PC버전에서 메시지와 이모티콘이 제대로 작동해 환하게 웃으실 수 있는 정주영님이십니다.

정주영: 한 번은 여름휴가 및 컨퍼런스 참여로 미국을 가게 되었었다.
신림동 캐리: 우리 그때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날 뻔 했잖아….

정주영님과 저는 작년 5월에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한 시기와 지인이 겹쳐 함께 식사할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정주영: 아, 그랬었지. 아무튼 당시에 ‘새 메시지가 있어도 PC버전이 로그아웃 상태일 때 받은 메시지는 볼 수 없는 패치’를 만든 적이 있는데 (http://playnexus.tistory.com/69 중간의 스크린샷 참고) 미국 다녀와서 모든 기능을 되돌리느라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외에도 카카오톡 PC버전이 나오면 분명히 많은 사람이 코드를 분석하고 악용할 것이라는 예상 하에 베타 테스트 버전부터 보안에 꽤 신경을 썼다. PC버전이 뚫릴 경우 개인정보 및 스팸 이슈가 크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많은 부분을 고민한 덕분에 큰 사고는 여태까지 없었고, 주변에서도 취약점이 발견될 경우 바로 리포팅을 해줘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신림동 캐리: 최근에 카카오가 20억 달러의 가치를 가진 기업으로 평가받으며 가장 주목받는 벤처로 부상하고 있다. 어떻게 카카오에 들어가게 되셨고, 또 카카오를 다니며 느끼는 점은?
정주영: J2M, 게임빌을 거쳐 EA에 다니다 대학교 동기가 꼬셔서 창업하게 됐다. EA에서 의욕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고 개인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걸 해보겠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EA를 그만두고 나와 로티플에 창업 멤버로 들어갔는데, 케이큐브벤처스 임지훈 대표님의 제안으로 로티플이 카카오에 피인수되어 카카오에 들어오게 됐다. 처음 입사했을 땐 100명 남짓한 회사였는데 예상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동료도 마음에 들었다.
신림동 캐리: 카카오에는 여러 가지 좀 특이한 문화가 있다고 들었는데?
정주영: 그래서 입사 초반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몇 가지 것이 있는데 일단 사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스레드 기반의 카카오 아지트밖에 없었다는 거다. 대화성 커뮤니케이션은 직접 찾아가거나 카톡으로 이야기해야 했는데 당시엔 PC버전이 없으니 긴 대화를 나누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왜 PC를 앞에 두고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찍으며 얘기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신림동 캐리: 미스릴 갑옷 입고 나무 칼을 휘두르는 느낌이었겠다.
정주영: 게다가 입사하면 회사를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잖나. 시스템에 대해 질문할 게 산더미 같은데 그걸 일일이 자리까지 찾아가 물어보거나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건 너무나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직접 사내에 irc서버를 설치하고 사내 커뮤니케이션의 일부를 irc로 이동시키는 일을 했다.
신림동 캐리: 오, 회사에서 동료들이 좋아했겠다.
정주영: 카카오의 문화라고 하니까 말인데 가장 특이한 점을 꼽으라면 다들 영어 이름을 사용한다는 거다. 어색하지 않냐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카카오에 다니는 사람으로서는 생각보다 메리트가 있더라. 한글 이름에서 오는 경어를 생략함으로써 얻는 수평적인 느낌은 우리의 예상보다 영향력이 크다. 만약 한글 이름으로 쓰는데 경어를 생략한다고 해보자.
신림동 캐리: 그래.
정주영: 캐리…는 영어구나…. 아무튼 그럼 상상에 맡긴다. 영어 이름을 쓰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회사에 비해 수직적 관계가 덜하고 회의나 게시판에 의견을 개진하는 데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여러모로 카카오는 개발자가 다니기 꽤 매력적인 회사라고 생각한다. 능력이 있으면 그만큼 대우를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개발자의 의견을 생각보다 많이 반영하는 회사다. 지금은 회사 규모도 커지고 직원도 많이 늘어나 어느 정도 성장통이 오는 것 같지만 여전히 자유롭고 괜찮은 회사라고 느낀다.

개발의 완성은 얼굴, 최치선으로 알려진 정주영 1에서 계속됩니다.

게임으로 인한 오덕성을 검증하기 위해 한군님을 만나보겠습니다 1

게임으로 인한 오덕성을 검증하기 위해 한군님을 만나보겠습니다 0에서 이어집니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라는 게 연애에 영향을 끼치나?
한대훈: 나 같은 경우에는 현재의 와이프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고 비교적 일찍 결혼한 편이라 개발자로서의 연애라는 걸 느낄 새가 없었다. 하지만 게임회사에 다니며 동료나 친구가 연애하는 걸 보니 개발자와 연애하는 건 개발자도 그렇고 상대방도 그렇고 취향을 참 많이 탄달까. 어느 정도 오타쿠 기질이 없으면 좀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림동 캐리: 그러고 보니 어쿠스틱 라이프에서 한군님이 난다님에게 던진 프로포즈 대사가 참 많은 여성의 주먹을 쥐게 했지….


한대훈: 그게 나름대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신림동 캐리: 그래 비하인드 스토리라 쓰고 변명이라고 읽히는 그 사연 좀 들어보자.
한대훈: 대학을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게임회사에 다니며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와이프와 부산에서 연애하고 있었다. 근데 어쩌다 보니 서울에 있는 게임회사로 이직할 기회가 생긴 거다. 근데 태어나서 20년 넘게 부모님 아래서만 살았는데 날 혼자 서울에 보내놓으면 거러지(‘거지’의 부산 사투리)처럼 살 게 너무 뻔했던 거다. 그래서 부모님이 지금 여자친구와 오래 사귀기도 했고 잘 지내니 결혼해서 같이 올라가면 어떻겠냐 그렇게 권유하셨다.
신림동 캐리: 그래, 변명… 아니 비하인드 스토리 잘 들었는데 그래도 그 멘트는 너무 뽄(‘모양새’의 경남 사투리)이 없잖아!

그렇습니다. 신림동 캐리도 한군님도 경상디언이었던 것입니다.

한대훈: 나라고 멋진 프로포즈 하기 싫었겠냐. 근데 이직하고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 와중에 와이프는 ‘언제 프로포즈 할 거야? 응? 응?’ 이런 눈빛을 매일 하고 있으니까 도리어 정신을 잃게 되었다.
신림동 캐리: 하지만 우리 부모님이 널 허락하니 결혼하자는 건 너무 정신줄 놔버렸잖아….
한대훈: 내 나름대로는 ‘우리 부모님이 널 마음에 들어 하시니 우린 이제 아무 문제가 없어!’라는 희망에 찬 대사였던 거지.
신림동 캐리: 하긴 엄마가 하라는데 더 이상 뭔 장애물이 있겠어. 예전에 고등학교 물리 선생님이 F=ma 공식을 가르치시며 ‘힘은 엄마에게서 나오죠!’라고 하시던 게 생각난다.
한대훈: 짱인데?
신림동 캐리: 집안 대소사의 최종 보스는 늘 엄마인 거야.
한대훈: 그래도 결혼식 며칠 전에 작은 케이크랑 반지를 사서 정식으로 프로포즈하긴 했다. 정말 싼 반지였는데 지금도 와이프가 그걸 끼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아내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텔레파시로 보내는 한군님이십니다.
신림동 캐리: 일하지 않을 때는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한대훈: 보통 게임을 하거나 애를 보거나 와이프와 이야기를 하거나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그렇게 평범하게 여가를 즐긴다. 별로 특별할 건 없다.
신림동 캐리: 평범하다기엔 굉장히 바람직한 오타쿠 남편 같은데….
한대훈: 오타쿠라고 하니까 말인데, 나도 약간은 워커홀릭 스타일이라 일하지 않고 쉬는 시간에도 대부분 뭔가를 만들고 있더라. 그게 회사 일일 때도 있고 취미로 하는 개인 프로젝트일 때도 있는데 아무튼 뭔가를 계속 만드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편이다.
신림동 캐리: 나도 글 쓰다가 쉰다고 누워서 다른 생각 하다가 ‘이건 페이스북에 써야지!’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일단 창작계에 발을 들이면 쉴 수가 없는 것 같다. 영원히 고통받는 오타쿠랄까….
한대훈: 그렇지. 쉰다고 쉬면서도 리프레시하고는 거리가 먼 짓만 하고 있어서 요즘은 게임이나 개발 이외의 취미를 만드려고 노력 중이다. 특히 최근에 ‘번 아웃을 막는 방법’이라는 글을 보고 충격받아서 일과 휴식을 구분하려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번 아웃을 막는 방법이란?

원문 링크 http://blog.kissmetrics.com/prevent-employee-burnout/
번역 링크 http://subokim.wordpress.com/2013/04/12/prevent-burnout/

신림동 캐리: 휴식 이야기하다가 일 이야기해서 좀 이상하지만 페이스북을 보니 오늘(2014년 3월 26일) 한군님이 만드시던 게임이 드디어 공개된다고 쓰셨더라. 로켓펀치에 어필할 기회 드릴 테니 홍보 한 번 해봐라.
한대훈: 레알?
신림동 캐리: 레알.
한대훈: 지금 저희 팀이 고맙다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림동 캐리: 제목이 뭔가?
한대훈: ‘무적의 용병단‘이다.
신림동 캐리: 뭐야, 왜 이렇게 유치해!
한대훈: 유치하다니 Orz
신림동 캐리: 누가 지었나?
한대훈: 모두가 합심해서 지었다.
신림동 캐리: 저한테도 한 번 물어보시지 그러셨어요.
한대훈: 그러게요. 아무튼 무적의 용병단은 저희 크레이브몹에서 열심히 만든 RPG 게임이다. 다른 RPG들과는 차이점이라 한다면 전술에 따른 결과가 확실히 달라진다는 것과 대규모 군단 전투라는 거다. 그래서 같은 전투라도 전술에 따라서 압도적으로 이길 수도 있고 압도적으로 지기도 한다. 이것저것 파보는 재미가 있으실 거다.
신림동 캐리: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한가? 소리 없이 강한 게 컨셉인가?
한대훈: KAKAO라든가 퍼블리셔도 없이 저희가 직접 서비스 준비 중이다. 그래서 영상 편집과 홍보용 이미지도 개발팀에서 다 작업하고 있다.
신림동 캐리: 가내수공업이세요?
한대훈: 말하자면 그런 건데 서버랑 서비스, 그 밖의 모든 걸 자체 준비하다 보니 재미난 경험도 많다.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컨셉으로 진짜 진짜 노력한 작품이니까 잘되었으면 좋겠다. 3월 27일부터 누구나 참여 가능한 방식으로 클베 준비 중인데 캐리님도 꼭 좀….
신림동 캐리: 내가 쌀이를 봐서 깔겠다….

쌀이를 보니 안 깔 수가 없네요.

신림동 캐리: 쌀이가 커서 개발자 혹은 웹툰 작가가 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
한대훈: 나나 와이프 모두 쌀이에게 계속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이런 쪽으로 장래희망을 정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쌀이가 개발자를 하겠다면 대찬성인데 와이프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쌀이가 프로그래머나 그래픽 아티스트가 되어 나중에 같이 게임을 만드는 게 로망이긴 하다. 아버지와 딸이 만든 인디 게임이라니 엄청 멋질 것 같거든.
신림동 캐리: 저번에 넥스트플로어의 이성우님도 루미가 미소녀 개발자로 성장해 같이 프로젝트 하는 걸 꿈꾸시던데 개발자에게는 딸과 같이 작업하는 게 그 동네 로망인가 보다. 참고로 우리 아빠는 건축가이신데 내가 어릴 때부터 ‘캐리야, 나중에 주택을 지어서 1층엔 나랑 엄마가 살고 2층엔 너랑 남편이 살고 3층엔 니 동생 부부가 살고….’라는 말을 자주 하셨지. 근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농담이 아니신 것 같은 거야. 그래서 내가 악착같이 공부해서 서울로 도망왔잖아. 아빠를 사랑하지만 같은 집에 살고 싶진 않아요!

신림동 캐리: 지금은 스타트업에 계시지만 엔씨나 넥슨 같은 대기업도 다녀보셨는데 비교하자면 어떤가?
한대훈: 대기업은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 스타트업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대기업은 안정적인 느낌이 크다. 그리고 작업 역시 익숙해지면 회사 자체도 편하게 다닐 수 있지. 하지만 대기업에서 대규모 프로젝트에 있으면 그만큼 한가지 작업만 하게 되기 때문에 다양한 업무를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 분야의 스페셜 리스트를 꿈꾼다면 좋지만, 나중에 자기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은 대기업에서 많이 배우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지. 대기업을 다니면 많은 시간과 자기 성과를 보여야 하니까. 반대로 스타트업은 적은 인원이 좀 더 가깝게 일한다는 기분이다. 회사 규칙도 대기업보다는 훨씬 느슨한 편이라서 자기 스타일에 맞게 일할 수 있다. 지금 나 역시 현재의 회사가 그런 부분의 편의를 봐주셔서 17개월 된 아기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만족스럽다. 하지만 인원이 적기 때문에 한명 한명에 책임감이 많이 요구되고 그로 인해 어깨가 무거운 느낌은 있다. 게다가 다양한 업무를 소화해야 하는 상황이 많지. 근데 또 실력만 좋다면 자기만의 프로젝트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높다는 장점도 있다.

신림동 캐리: 저번에 모델링 작업을 할 때 가끔 본인의 재해석을 넣는다고 하셨는데 그런 작업물 중에 괜찮았던 사례는 무엇이 있는지?
한대훈: 예전에 여자의 얼굴을 모델링 할 때인데, 원화의 인상이 조금 어색해서 원화에 따른 얼굴을 하나 놔두고 약간 더 손을 본 후 제가 생각하는 귀여운 여자의 얼굴로 수정했었다. 근데 그게 주변으로부터 반응이 좋았다. 사실 여성의 얼굴이라는 게 워낙 개인의 취향 문제라서 내가 느끼기에 별로라 해서 나쁘다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신림동 캐리: 사람의 얼굴이야말로 정말 취향의 문제지.
한대훈: 그래서 원본을 만들고 내 나름의 수정본을 만드는 이중의 작업을 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아서 보람 있었다. 게다가 이 일 이후에는 여성 얼굴 관련해서 내 임의로 수정해도 좋다는 지시가 와서 작업의 범위가 넓어져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신림동 캐리: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업물이랄까 애착이 있는 작업물은?
한대훈: ‘일루미’라고 이름 붙인 캐릭터가 있는데 가장 애정이 간다.

신림동 캐리: 힘세고 강한… 여자 같다.

한대훈: 도미넨스워5 때 본선을 하기 전에 전야제 같은 느낌으로 하는 Pre-Dominance War라는 대회가 있다. 그때 아는 동생이랑 같이 뭔가 멋지게 해보자고 파이팅하면서 작업했었는데 굉장히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당시 회사가 야근이 잦은 스타일이라서 개인 작업할 시간이 엄청 부족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나름 결과물을 만들 수 있어서 자신에게 대견했었기도 하고 말이지. 아무튼 평소에 하고 싶었던 아트 스타일과 컨셉으로 자유롭게 작업했는데 결과적으로 Pre-Dominance War5에서는 5위를 했다. 잘하시는 분이 워낙 많아 배울 점도 많았고, 작업 도중에 내 부족함을 많이 느끼면서 개인적으로 작업에 관한 마인드도 새롭게 가질 수 있는 기회였다.

신림동 캐리: 아트 관련해서 최근에 읽은 인상적인 책은?
한대훈: 요즘은 한창 프로젝트 마무리 단계라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내게 감명을 준 콘텐츠를 추천하겠다. 라는 3DS용 게임, <브레이브리 디폴트>라는 아트북을 아주 감명 깊게 봤다. 아티스트에게 언제나 레퍼런스가 되어주시는 요시다 아키히코님의 최신 아트를 감상할 수 있는 건 물론 서양과 동양을 아우를 수 있는 스타일이란 무엇인지 귀감이 되어주신다. 그리고 이것 역시 책은 아니지만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의 디렉터셨던 미카미 신지님의 인터뷰인 ‘미카미 신지와 젊음의 샘’ 이라는 인터뷰를 인상 깊게 읽었다. 업계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식견과 개발자로서의 마인드를 엿볼 수 있었다. 원문 링크와 번역 링크가 있다.
신림동 캐리: 아트 디렉터에게 좋은 회사는 어떤 회사인가?
한대훈: 자기가 가진 욕망을 해결할 수 있는 회사가 좋은 회사겠지? 멋진 프로젝트를 자신의 타이틀로 달고 싶은 사람이 있고 자기의 그림이 메인으로 걸려야 행복한 사람이 있다. 각자의 욕망에 따라 어떤 회사를 원하는지가 달라지는 것 같다. 이 욕망에 자기 자신이 솔직하지 못하거나 그 욕망을 누르면 그게 스트레스가 되고 회사 생활에 불만이 생기게 된다. 지금 나에게는 내 게임을 만들 기회가 있는 회사가 제일 좋은 회사다. 돈을 많이 줄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
신림동 캐리: 그럼 아트 디렉터에게 제발 이런 거 시키지 마라 하는 건?
한대훈: 표절.
신림동 캐리: 단호박 드셨다?
한대훈: 요즘 게임계의 표절이 정말 심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어느 선까지 표절을 용인하고 허가하는진 모르겠지만, ‘저거 좀 베껴.’라는 말은 개발자를 정말 힘 빠지게 한다. 특히 모바일 쪽은 한 달에도 몇 개나 표절 의심이 나오는데 이렇게 되다 ‘모바일 게임 = 표절’이라고 인식이 유저에게 박힐까 걱정스럽다. 계속 모바일 시장을 키워 나가야 하는 시기인데, 표절은 장기적으로 그 시장을 죽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금 모바일 붐과 함께 게임이 쇠퇴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에는 표절이나 퀄리티 미달의 게임이 범람하고 있는 부분이 크거든. 이 부분은 개발자가 자기 게임에 자부심을 가지고 파이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업계가 자정 작용을 해야 할 거다.

신림동 캐리: 본인이 직업적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은?
한대훈: 다들 알다시피 다른 게임 많이 해보고 머릿속으로 만들고 싶은 게임 상상 많이 하고 따로 개인 작업을 많이 하는 거지. 게임은 프로그램만으로 또는 아트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장르가 합쳐지는 거잖아. 그러니까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도 알아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한 부분만 열심히 해서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괜히 게임을 종합예술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야.

신림동 캐리: 개발자에게 재능이 얼마나 차지한다고 생각하나?
한대훈: 내 경험상 게임 개발에서 재능은 큰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능과 실력이 넘치는 사람으로 가득한 팀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는 것을 몇 번 봤거든. 개인적으로는 재능보다 열정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열정을 유지할 수 있으면 자신의 욕망을 이룰 기회가 반드시 올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 역시 재능이 넘치는 사람보다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 더 일하고 싶다. 게임에 대한 열정과 집착이 게임을 완성하고 게임을 성공하게 하지 않을까?

모니터는 아티스트에게 가성비로 가장 인기 있지 않을까 하는 Dell 27인치 모델 사용 중이고 서브 모니터는 삼성 체험단으로 우연찮게 획득한 23인치(애매한 사이즈) 삼성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다. 서브 모니터는 작업할때 영상 띄우는 용도로만 쓰고 있다. 작업용으로는 스펙이 좀 애매하니까.

타블렛은 와콤 인튜오스3, 마우스는 단종된 Microsoft Intelli Mouse를 사용 중이다. 최고의 마우스이지만 단종이라 비싼 가격으로밖에 못 구하는 게 슬프다. 빌드할 때 시간을 보낼 만화책이나 휴대용 게임기를 언제나 옆에 두고 있다. PS VITA나 Nintendo 3DS가 항상 함께다. 옆에 이미지를 보고 무슨 만화책인지 맞추시는 분은!

게임 환경은 최근에 세팅하게 되었는데, LG 42la6580 TV를 사용하고 있고 나름 만족한다. 게임 기기는 플레이 스테이션 3, 4와 엑스박스360을 사용하고 있다. 플스4가 나와서 차세대 게임을 한껏 즐기니 게임 할 맛 나는 요즘이다. 플스4용 카메라도 샀지만 대부분 집에서 게임할 때는 팬티 차림이라 게임하는 모습을 방송한다든가 그런 건 못하겠다.

사진만 보면 나만의 공간 같지만 바로 옆에 와이프 책상이 있어서 조용히 플레이하고 있어요.

게임으로 인한 오덕성을 검증하기 위해 한군님을 만나보겠습니다 0

금요일이 되면 ‘오늘만 버티면 드디어 주말이다!’하는 해방감에 오전부터 마음이 살랑거리죠. 이런 금요일을 더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어쿠스틱 라이프’입니다. 게으른 남편과 생활인 아내의 알콩달콩한 결혼 이야기는 보기만 해도 흐뭇해 ‘마조앤새디’, ‘결혼해도 똑같네’와 더불어 3대 결혼 권장 만화로 불리고 있죠.

두 달을 빌고 떼쓰고 어찌저찌해서 어쿠스틱 라이프의 한군님을 개발자 인터뷰에 모셔봤습니다. 참고로 저희 로켓펀치 디자이너분이 어쿠스틱 라이프의 열광적인 팬이라 책에 싸인을 받아달라는 둥 선물을 전달해달라는 둥 귀찮은 요구를 하셨는데요.

신림동 캐리: 저 이번 주에 한군님과 개발자 인터뷰합니다.
윤보화 디자이너: 저 캐리님….
신림동 캐리: 네?
윤보화 디자이너: 저 처음으로 캐리님이 대단해 보여요.

한군님을 섭외함으로써 신림동 캐리의 능력치가 1 올라갔다.

신림동 캐리: 한대훈님 캐릭터는 쌀이를 안고 게임하는 모습으로 부탁해요.
석지환 디자이너: 네.

나중에 결과물을 받았습니다.

신림동 캐리: 이게 뭐예요! 왜 갑자기 난다님이!
석지환 디자이너: 제가 난다님 팬이라서요.
신림동 캐리: 왜 난다님 얼굴만 색칠 안 해! 시체 같잖아!
윤보화 디자이너: 원래 난다님은 얼굴에 색깔 없어요.

어쿠스틱 라이프의 팬인 두 디자이너 앞에서 저는 닥치고 버로우했습니다. 아무튼 뼛속까지 게이머인 오타쿠 남편 한군님을 만나보시죠.

이름 혹은 닉네임: 한대훈/한군
위치: 서울
직업, 소속: 크레이브몹(Cravemob)
내 모바일 기기: 갤럭시 노트2, 아이패드2
블로그 주소: http:/g-hangun.com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한대훈: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 12월에 섭외 요청 드렸었는데 2월에야 드디어 뵙네요.
한대훈: 일부러 바쁜 척한 게 아니고 진짜 바빴습니다.
신림동 캐리: 누가 뭐래요…. 아무튼 간단한 소개 부탁합니다.
한대훈: 모바일 게임 개발사 크레이브몹(Cravemob)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한대훈이라고 합니다. 보통 ‘한군’이라고 불려요.
신림동 캐리: 어쿠스틱 라이프에서 어머니가 난다님에게 ‘우리 아들 살만 빼게 해다오.’를 결혼 조건으로 거셨을 정도라고 봤는데 실제로는 별로 뚱뚱하지 않으시다?
한대훈: 아니다. 만화에서 워낙 뚱뚱하다고 하니까 누가 ‘한군님은 정말 곰처럼 뚱뚱한가요?’라고 질문을 해놨더라. 그래서 내가 거기 ‘돼지처럼 뚱뚱합니다.’라고 답변을 달았지.
신림동 캐리: 그렇게 안 뚱뚱해!
한대훈: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한데, 요즘은 게임 발매 직전이라 야근하며 간식을 많이 먹어서 한창 물오른 상태다.

그 그렇다고 합니다.

신림동 캐리: 게임 개발자로 알고 있는데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한다.
한대훈: 게임 개발 경력은 12년 정도 되었다. 넥슨과 엔씨소프트와 아이덴티티 게임즈를 거치며 패키지 게임부터 시작해서 온라인 게임, 모바일 게임까지 꽤 다양하게 만드는 중이다.
신림동 캐리: 게임 사랑이 정말 유별나신 걸로 만화에 묘사된다. 게임이 그렇게 좋은가?
한대훈: 마이 라이프다.
신림동 캐리: 그럼 처음부터 어려운 질문 하나 던지겠다. 한군 인생의 게임은?
한대훈: 아, 이런 잔인한 질문을!

한군님은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시다 아래와 같은 답변을 하셨습니다.

한대훈: 요즘은 워낙 좋은 게임이 많이 나와서 인생의 게임이라고 할만한 작품이 계속 변하는 편인데, 그래도 베스트를 뽑자면 바이오쇼크 1편(Bio Shock 1), 저니(Journey), 역전재판 1~3편 정도다. 바이오쇼크 1편은 누구나 인정하는 명작인데 스토리 전개라던가 아트라던가 모든 게 완벽했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엔딩 역시 너무 와닿았다. 저니(Journey)는 플레이하다가 감성 터져서 눈물 나올뻔한 작품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축소해놓은 느낌을 많이 받았고 게임이 예술이 된다면 이런 형태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신림동 캐리: 김용하님도 저니를 인생의 게임으로 꼽으셨지. 왠지 알아주는 게임 덕후 둘이 이러니까 나도 한 번 해봐야겠다는 충동이 든다.
한대훈: 정말 좋은 게임이다. 꼭 해봐라. 그리고 역전재판 1~3편은 그냥 순수하게 좋아하는 게임이다. 아마 각 편마다 10번은 클리어했을걸. 텍스트 게임인데도 할 때마다 훌륭하게 만들어진 캐릭터 때문에 질리지가 않는다. 최신 시리즈인 5도 최근 구입해서 즐기고 있지만 1~3편의 포스에는 못 미치는 느낌이라 안타깝다.
신림동 캐리: 좋아하는 게임사는?
한대훈: 플래티넘 게임즈의 액션 게임을 다 사랑한다. 특히 베요네타는 명작이지.

신림동 캐리: 스스로 ‘개발 육아 제너럴리스트’라고 칭하실 정도로 딸바보이신데 쌀이를 키우며 게임까지 할 여유가 되시나?
한대훈: 회사 출근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라 오전에 쌀이와 놀다 애 봐주는 시터 아주머니가 오시면 바톤을 터치하고 게임 좀 플레이하다가 출근한다. 퇴근 후에도 쌀이 재우고 게임을 하는데, 최근에는 야근을 많이 하다 보니 집에 오면 피곤해서 자느라 게임 시간이 많이 줄었다. 게임 발매가 코 앞이다 보니 이 기간에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신림동 캐리: 쌀이에게도 게임을 시킬 건가?
한대훈: 본인이 원한다면 당연히.
신림동 캐리: 그럼 쌀이에게 처음으로 추천할 게임은 뭔가?
한대훈: 그건 이미 정해놨다. 남극 탐험!
신림동 캐리: 나도 그거 어릴 때 패미컴으로 자주 했었는데!
한대훈: 요즘 스마트폰 시대라지만 패미컴을 구해서 쌀이에게 제대로 패드 잡고 플레이하게 해주고 싶다. 패드의 손맛이라는 건 핸드폰에서 터치하는 것과는 완전 다르거든. 그 손맛을 꼭 느끼게 해주고 싶다. 우리 쌀이도 나중에는 자연스레 모바일 게임을 하겠지만 처음은 패드를 손에 쥐어주고 ‘이런 게임이 발전해서 지금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게임이 된 거야.’라는 걸 알게 해주고 싶다.
신림동 캐리: 게임 덕후 아빠의 로망이 막 절절하게 느껴진다.

쌀이는 좋겠습니다.

신림동 캐리: 첫 번째 게임 하니까 말인데 나도 패미컴으로 게임에 입문했지만 제대로 게임에 빠져든 건 PC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를 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한대훈: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진짜 오랜만에 듣는다.
신림동 캐리: 나도 이야기하면서 손노리의 추억 돋는다. 아무튼 그러다가 프린세스 메이커를 만나고 완전히 빠져들었는데 대체 프메 개발팀은 무슨 생각으로 3에서 무사수행을 없애고 Q라는 망작을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
한대훈: 아, 프린세스 메이커 3부터는 디렉터가 바뀌었다고 들었다.
신림동 캐리: 역시! 3부터는 1, 2의 감성이 아니야.
한대훈: 프메2는 정말 잘 만든 게임이라 지금도 간간이 한다.
신림동 캐리: 프린세스 메이커는 역시 DD파일 지우는 맛…인데 아무튼 게임에서의 치트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대훈: 예전에 패키지 게임 만들 때는 치트 쓰는 유저 보면서 ‘아, 한 번은 자기 힘으로 엔딩을 보지….’라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첫 번째는 온전히 자기 힘으로 깨고 두 번째부터 치트를 써서 자유롭게 플레이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치트 자체에 대해선 잘 쓰면 게임을 진짜 재밌게 즐길 방법일 수 있다고 게이머로서 이해한다.

신림동 캐리: 그럼 봐주신다는 건가?
한대훈: 근데 요즘은 온라인 게임을 만드니까 치트를 쓰면 영구블럭을 먹이지.

난다님과 쌀이에겐 따뜻하지만 치트 쓰는 플레이어에겐 냉정한 한군님, 너란 개발자 그런 개발자.

신림동 캐리: 이 소프트웨어와 도구 없이는 살 수 없다 하는 거 있나?
한대훈: 아무래도 그래픽 작업을 하니깐 3dsMax랑 PhotoShop이겠지? 프로그램은 언제나 최신 버전보다 한 단계 전 버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최신 버전은 플러그인이나 안정성 면에서 많이 불안해서 안 쓰게 되더라. 그리고 작업물 백업하는 용도로 클라우드 저장하는 몇 가지 프로그램을 이용 중이다. 회사에서 작업한 것을 그래도 집에서 이어서 작업할 수 있게 폴더를 동기화 해놓으면 엄청 편하다. 문제는 집에서도 회사 일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는 정도일까?
신림동 캐리: 그건 정말 문제지. 나도 주말에 가끔 그러고 있다가 ‘내가 뭐하는 짓이야!’하면서 던진다.
한대훈: 로켓펀치의 개발자 인터뷰를 평소에도 읽는 편인데 보통 개발자분들이 키보드를 엄청 아끼더라. 나 같은 경우는 마우스를 아낀다. 마이크로 소프트 Intelli Mouse가 없으면 작업을 못 할 정도다. 근데 문제는 이 제품이 단종되어 중국산 벌크 제품밖에 남지 않았단 거다. 그래서 오래 쓰면 클릭이 두 번 되는 오류가 생긴다. 이럴 때 새 것으로 바꾸게 미리 여러 개 쟁인다.

신림동 캐리: 모델링 작업을 할 때 원화에 충실히 맞추면서 하는지 아니면 본인의 재해석이 들어가는지?
한대훈: 우선 그런 부분은 팀 스타일에 달려있을 것 같다. 각자 각자가 최선의 작업물을 만드는 스타일의 팀이 있다면, 정확한 프로세스대로 진행되는 팀도 있지.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두 스타일에 다 확실한 장단점이 존재하니까.
신림동 캐리: 그래도 더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을 거 아닌가?
한대훈: 나 같은 경우에는 원화가 있다면 당연히 원화에 맞춰서 충실히 만드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원화 단계에서 AD와 컨셉 원화가의 의도와 노력이 들어가 있는데, 그걸 임의로 수정하거나 재해석을 하는 것은 개발론에서는 좋은 방식은 아닌 것 같고 만약 그런 부분이 있다면 모델링이 들어가기 전에 원화 단계에서 그런 이야기가 미리 이루어져서 모든 것이 컨셉 원화에 담겨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모델링하기에 애매하거나 예쁘게 나오기 힘든 디자인이 나올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원화가 중에는 3D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모델링 시에 어려운 디자인이나 피해야 할 디자인을 알고 있는 분도 계시지만 다른 영역이라 잘 모르시는 분도 많거든. 이럴 때 필요한 게 타 영역에 대한 배움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그런 부분은 서로 이야기를 해서 다른 디자인으로 교체하거나 해야겠지.

신림동 캐리: 한군님을 모셨으니 아내분인 난다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군. 만화가와 개발자라는 직업 모두 창의성이 필요하고 때로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예민한 기간에는 서로 어떤 배려를 하시는지?
한대훈: 서로 바쁜 시기에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기 때문에 딱히 뭔가를 하기보다도 부탁하는 걸 잔소리 없이 들어주는 쪽으로 배려한다. 쉽게 말해서 서로 나름대로 눈치를 본다고나 할까? 좋게 표현하자면 평소보다 더 챙기는 거지.
신림동 캐리: 구체적으로는?
한대훈: 나는 주변을 약간 시끄럽게 만들고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음악을 틀거나 영상을 틀어놓고 말이다. 그와 반대로 와이프는 조용해야만 작업할 수 있다. 자기 말로는 한 번에 하나밖에 못 하는 머리라고 표현한다. 아무튼, 그래서 둘이 동시에 작업을 할 때는 내가 영상이나 음악을 끄거나 거실로 나가서 모바일 게임을 하면서 자리를 비켜준다. 얼마 후 집중 시간이 끝나면 와이프가 춤을 추면서 나온다.

한군님의 어쿠스틱한 라이프는 게임으로 인한 오덕성을 검증하기 위해 한군님을 만나보겠습니다 1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