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 가이드] 전직금지약정(경업금지약정), 유효한가요?

안녕하세요. 정호석 변호사입니다.

좋은 인력을 채용하는 것은 성공적인 사업 영위를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합니다. 회사가 채용을 진행하다 보면 직전 회사에서 전직금지 약정을 체결한 사람이라서 채용 여부를 고민하게 되는 경우, 반대로 자사의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입사자에게 퇴직 이후 경쟁사로의 전직/이직을 제한하는 전직금지약정의 체결하게 되는 경우 등이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직금지약정은 유효할까요? 유효하다면 그 한계는 어디까지일까요?

전직금지약정을 유효로 볼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헌법상 개인의 직업선택 자유와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라는 측면에서 법률적으로 충돌합니다. 그런데 법원은 원칙적으로 전직금지약정을 유효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효성 여부 및 효력 범위에 제한을 두고 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경업금지약정이 사용자에 비하여 경제적으로 약자인 근로자에 대하여 헌법상의 직업선택의 자유 및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 생존을 위협할 우려가 있으며, 특히 쉽게 다른 직종으로 전직할 수 있는 별다른 기술이나 지식을 갖지 못한 피용자는 종전의 직장에서 배우고 익힌 바를 이용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게 될 경우 그 생계에 상당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정 등을 고려하면, 경업금지의무는 우선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범위 내로 한정되어야 하며, 피용자가 사용자 회사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가졌었는지, 그가 행한 직무는 어떠한 내용의 것이었는지, 경업금지기간은 어느 정도 장기간의 것인지, 경업금지 지역은 얼마나 넓은지, 경업금지 대상 직종은 어떠한지 및 경업금지의무에 대한 대상조치가 있는지에 따라서 그 효력의 유무효가 결정된다(서울고등법원 1998. 10. 29. 선고, 9835947 판결; 서울고등법원 1995. 9. 13. 선고 9436386 판결).

전직금지의 기간에 대해서는원칙적으로 영업비밀 존속기간의 범위 내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입니다(대법원 2003. 7. 16. 선고 20024380판결). 구체적으로는영업비밀의 내용과 난이도, 영업비밀 보유자가 들인 기간 및 비용, 영업비밀 유지에 들인 노력과 방법, 경쟁자가 영업비밀에 접근하는데 필요한 시간, 피용자의 근무기간, 직책, 영업비밀에의 접근 정도 등의 요소를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1998. 2. 13. 선고 9825528 판결 등).

전직금지약정을 위반했을 때 근로자는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되고(민법 제390, 750, 부정경쟁방지법 제11), 사용자는 해당 근로자를 상대로 전직금지청구 및 전직금지가처분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기업에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그 기업에 유용한 영업비밀을 취득,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누설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그 재산상 이득액의 2배 이상 10배 이하 상당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부정경쟁방지법 제18).

모쪼록 제 지식과 경험이 회사를 운영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 회사를 우뚝 세우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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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법무법인 세움 정호석 변호사 /
https://www.rocketpunch.com/@hoseok.jung
[출처] 법무법인 세움 / http://blog.naver.com/seumlaw/220371413932

[사무공간 가이드] 변화하는 사무공간, Smart Office 란?

스마트 오피스의 사전적 의미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도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IT 시설을 구축해 놓은 집 근처의 사무실을 이르는 말 “입니다. 이는 본격적으로 스마트 워크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정의된 용어로, 최근은 집 근처의 IT 시설이 구비된 사무실 이외에도 스마트워크를 구현할 수 있는 업무환경으로 그 범위가 확대 적용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스마트 오피스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네트워크상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유연한 업무 방식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국내를 포함해 세계 곳곳에는 이미 “ Nomad : 노매드족 “이라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인간형을 지칭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고, 대기업을 비롯 많은 스타트업에서도 자유롭고 창의적인 업무환경 제공을 위해 직원이 원하는 공간에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러한 스마트 오피스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무엇인지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 Smart Office “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Smart Office “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배치 및 좌석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미 여러 번 소개되었던 변동좌석제 “를 비롯하여 집 주변에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스마트 워크센터 “, 가정에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재택근무 그리고 직원들의 필요 요소와 동선을 파악하여 제공되는 맞춤형 오피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중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는 요소는 재택 근무제 “  를 들 수 있습니다. 변동 좌석제 의 경우, 컨설팅 및 연구업무 등 평균 재석률이 높지 않은 직군 위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맞춤형 오피스 의 경우는 각 부서의 업무 특성과 업무협의 빈도를 파악해 자리 배치 및 그에 적합한 가구를 배치하고, 분위기는 딱딱한 사무실 분위기가 아닌 홈 라이크 오피스 “라고 하여, 집과 같이 편안한 분위기로 형성하여 업무 효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시간으로 이루어지는 ” Smart Office “

다음은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하는 “ Smart Office “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일부 공기업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미 시행되고 있는 탄력근무제 “는 대표적인 시간을 활용한 “ Smart Office “입니다. “ Flexible Time : 플렉시블 타임 “이라고도 하는 이 제도는 출퇴근 시간을 정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자유를 부여해 근로자 스스로 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출퇴근 시간의 집중을 방지하고, 사람에 따라 다양한 신체 리듬에 맞추어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어 긍정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탄력 근무제 이외에도, 시간을 활용한
“ Smart Office “는 집중 근무제 “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일정 시간대를 정해두고, 그 시간에는 업무 이외의 행위를 배제하는 것입니다. 방해하는 이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어 집중을 요하는 직군에서는 환영할만한 환경입니다. , 전화 업무가 많고, 서로 협의를 통해 업무가 이루어지는 직군에는 적합하지 않아 업무 형태의 고려가 중요합니다.

 IT환경으로 이루어지는 ” Smart Office “

마지막으로 ICT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등으로 대표되는 IT 환경에 의한 “ Smart Office “를 들 수 있습니다. 최근 사무환경은 무선 통신망과 클라우드 서비스의 발달로 빅데이터, 모바일, 웨어러블 등 장소의 제약을 벗어난 다양한 업무 형태와 사물 인터넷 등의 활용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 발맞추어
국내 기업들 ( Microsoft Office Korea ) 은 회사는 물론 외부 어디에서나 회사 인트라넷망에 접속할 수 있고, 언제나 업무협의를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종이 대신 노트북과 태블릿 등을 활용해 사무실의 불필요한 면적을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의 구축은 빠른 업무협의는 물론, 추가 공간 확보로 임대료 및 회사 운영자금 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결과 중심의 성과제 평가 및 다양한 업무 로테이션 등을 통한 구성원들의 능력을 높이는 스마트한 업무 환경 구축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이는 업무만을 행하던 단순한 오피스가 구성원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행복을 추구할 공간으로 인식이 변화하고, 이러한 인식 변화를 통해 자연스레 업무 효율 상승에 기여함을 인식한 기업들의 자연스러운 행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Smart Office에서 가장 중요한 점 중에 하나는
자신들에게 적합한 형태의 사무환경 구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 기업에 적합한 Smart Office에 대하여 전문가와 컨설팅 후, 구성원이 만족하고 가장 이상적으로 활용 가능한 “ Smart Office “ 구축해보시기 바랍니다.

[인사/노무 가이드] 2017년 달라지는 노동법 제도

안녕하세요. 최재원 노무사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조금 늦은감이 있지만 2017년도에 변경된 노동법 제도에 대해서 간략히 안내 드리고자 합니다. 이미 귀사에 해당되는 내용들은 반영하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이 되지만, 혹시 깜빡하셨거나 아직 적용하지 못하고 계셨다면 이번 포스팅을 계기로 꼭 체크를 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1. 최저임금 인상

시급 6,030원 -> 시급 6,470원 (주 40시간 근로자의 경우,  월 1,352,230원)

다들 알고 계시는 개정 내용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주 40시간 근로를 하는 경우 사용자와 근로자가 합의하여 100만원을 월급으로 책정하였다면 최저임금에 미달되는 부분은 임금체불에 해당하고 사업주에게 지급의무가 발생하게 됩니다. 17년도 개정사항은 아니지만 최저임금법 시행령 제 3조 제 1항에 따라 수습기간에는 최저임금의 90%를 예외적으로 지급할 수 도 있습니다.

2. 출산전후휴가 및 유사산휴가 급여 상한액 인상

상한액 월 135만원 -> 월 150만원

고용보험에서 지급하는 출산전후휴가 및 유사산휴가 급여 상한액이 인상되었습니다. 고용보험법 시행령 제 101조에 장관이 고시하는 금액을 상한액으로 규정하게 되어 있으며,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라 월 150만원으로 인상이 되었습니다. 스타트 업 기업의 경우 우선지원대상기업에 해당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급여지급에 대한 부담이 조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3. 300인 미만 사업장 정년 60세 의무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 19조의 적용이 2017년 1월 1일부터 30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전면 적용되게 됩니다. 즉, 규모가 작은 스타트 업의 경우에도 사규나 근로계약 등으로 정년을 55세로 정하게 된다면 위 법에 의해 정년은 60세로 효력이 발생가게 됩니다. 벌금이나 과태료가 부과되지는 않지만 시정조치가 있을 수 있으니 개정내용에 대한 인지와 운영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4.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적용 확대

30인 이상 기업의 경우 17년부터 위 법률의 적용범위에 포함되게 됩니다. 따라서 거짓 채용공고 금지, 채용공고 내용의 불리한 변경금지, 채용서류 반환, 채용서류 반환에 대한 고지 등에 대하여 법적인 의무가 발생하게 되며, 위반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발생하게 됩니다.

5. 산업재해 보험급여 신청을 이유로 한 불이익처우 금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 111조의 2 가 신설되었습니다. 이에 사업주는 산재보험급여를 신청한 근로자를 그 이유로 해고하거나 그 밖에 불이익한 처우를 할 수 없습니다. 위반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되게 됩니다.

비즈니스에 집중하다 보면 조직운영 측면에서 고려해야 하는 각종 법령들의 적용여부나 개정사항들을 신속하게 파악하기가 사실 어렵습니다. 인사/노무측면에서도 이러한 공백이 발생하실 수 있는데 이번 포스팅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의 조직운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세부적인 문의사항은 편한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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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무법인 동인 최재원 노무사 https://www.rocketpunch.com/@jaewon_choi

[출처] 노무법인 동인  https://www.rocketpunch.com/companies/donginlabor

 

 

 

 

 

새 시대의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하여

언젠가부터 좋은 직업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이 반드시 언급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의 과중한 업무 경향은 변하지 않으면서도, 경제 성장의 둔화로 일을 통해 기대되는 보상의 수준까지 정체되면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이야기 되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이야기 할 때, 그것은 보통 ‘일’과 ‘삶’을 철저히 분리하고, ‘일’을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한정하기 때문이다. 정말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에 우리 삶에서 최소화 되거나 적어도 철저히 구분 되어야 하는 개념인가?

중세와 근대 과학이 발전하던 시기, 위대한 성과를 거둔 과학자들 중 상당수는 평생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귀족인 경우가 많았다.

“근대 과학혁명 초기에만 해도 소수의 대학교수들을 빼면, 많은 과학자들은 생활에 여유가 있는 부자나 귀족 출신이었다. 만유인력 상수를 측정한 캐번디시(Henry Cavendish; 1731-1810), 근대 화학의 아버지 라부와지에(Antoine Laurent de Lavoisier; 1743-1794),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남긴 페르마(Pierre de Fermat; 1601-1665)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 프로보다 위대했던 아마추어들

만약 ‘일’을 생계 수단으로 한정한다면, 이 귀족 출신 과학자들이 평생을 걸쳐 이룩한 위대한 성과는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평생 일할 필요가 없는 귀족들이 ‘자발적으로 일한 것’만 봐도 ‘일’이 인간에게 돈 이상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또 다른 상황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 음악을 만드는 일, 글을 쓰는 일 등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예술가로 부른다. 어떤 예술가가 비 오는 날 차를 한잔 마시면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다고 가정해 보자. 분명 이 순간의 감성들은 이 사람의 작품 세계에 어떤 형태로건 반영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 지금 이 예술가는 일을 하지 않는 상황 즉, 놀고 있는 상황인가 아니면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인가? 예술가의 ‘일’을 캔버스에 직접 물감을 입히고 있는 상황,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고 있는 상황, 종이에 글을 쓰고 있는 상황으로만 한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일에 어떤 수준으로 건 창의성을 발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일과 일 아닌 상태 구분의 모호함’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인간에게 일은 단순히 돈 버는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좋아하는, 자아실현이 가능한 일을 하고 있다면 ‘내가 하는 일이 내 삶이고 내가 사는 삶이 내 일’이 된다. 진짜 ‘일과 삶의 균형’은 이런 관점에서 탄생한다. 열심히 일한만큼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기 때문이며,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이나 여행 같은 다양한 삶의 경험을 누려야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일의 수준을 한층 더 높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로켓펀치가 완전한 원격근무로 일하면서도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구성원들이 일과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켓펀치는 사무실도 없고, 정기적인 오프라인 회의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업무를 위해 온라인 상태여야 한다는 규칙도 없다. 이를 접한 많은 분들이 나에게 ‘구성원들이 일을 안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지 않은가?’라고 물어보곤 한다. 하지만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다. 본인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일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일과 삶의 진짜 균형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위치나 시간으로 강제 받지 않아도 알아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라. 그러면 평생 하루도 일할 필요가 없다.”
– 로켓펀치 기업 문화를 정리한 문서 가장 첫 장에 있는 문장

우리가 만드는 로켓펀치가 각 개인이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을 찾아주는 것에, 그리고 새 시대의 일과 삶의 균형을 확립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아주 가끔 있는 로켓펀치 오프라인 회의 모습]

로켓펀치의 오프라인 미팅 모습 – https://www.instagram.com/p/BPHNqd6BI1N

붙임 1. 이 글은 일과 삶의 진짜 균형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과한 업무와 박한 보상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읽히거나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붙임 2. 글을 쓰던 중에 나와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영문 에세이(Work/Life balance is bullshit.)를 찾았다.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의 탄생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가 한국에서는 3월 23일 개봉했다. 일반적으로는 이 영화를 1960년대 NASA를 배경으로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소개하지만,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프로그래머라는 직군이 탄생하는 순간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는 대신 최초의 프로그래머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역사상 최초의 프로그래머는 에이다 러브레이스 백작부인(Ada Lovelace, 1815-1852)이다. 그녀는 1842년 배비지가 설계한 해석기관을 이용해 베르누이 수를 계산하게끔 하는 알고리즘을 제안했는데, 이것이 최초로 컴퓨터를 위해 작성된 의미있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100년이 더 지난 뒤에야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생길 수 있었다.

프로그래머가 있으려면 우선 컴퓨터가 보급되어야 한다. 배비지의 해석기관은 최초의 컴퓨터로 불리지만 끝까지 미완성으로 남은 복잡한 기계였다. 20세기 초에 시중에서 쓰였던 것은 기계식 계산기였는데, 이는 마치 타자기처럼 묵직한 크기였지만 사칙연산 같은 간단한 계산밖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좀더 복잡한 계산을 하려면 계산기 앞에 앉아 수식을 사칙연산으로 근사화시킨 다음 그것을 일일이 입력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이렇게 전문적으로 계산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컴퓨터(computer)’, 즉 계산수라고 불렀다. 아직 전기로 동작하는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의 일이다. (300년 전 항해사들에게 ‘컴퓨터’가 필요했던 이유)

Marchant XLA 계산기 (1923)

사회가 복잡해지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20세기 초 서양 사회는 회계 결산부터 미사일 궤적까지 점점 다양한 분야에서 계산을 할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거의 불가능했던 당시에 계산수는 고학력 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좋은 직업 중 하나였다. 계산수는 복잡한 수학 지식이 요구되는 전문직이었지만 마치 타이피스트처럼 시키는대로 입력을 하는 반복노동직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대우를 덜 받았고 남성들이 기피했던 것이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때 대다수의 남성들이 징병을 당하면서 계산수의 대부분은 여성들이 맡게 되었다.

1943년 미국 육군은 군사 목적의 계산을 하기 위한 기계를 개발하는데, 이것이 최초의 전기식 컴퓨터 중 하나로 불리는 에니악(ENIAC)이다. 50평짜리 방을 차지하는 30t짜리 이 기계를 다루기 위해 미군은 군 소속의 계산수들을 차출해서 프로그래밍을 맡겼는데, 이들이 바로 최초의 직업 프로그래머이다. 계산수들은 수학적 지식과 주어진 함수의 계산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기 위한 노하우가 있었으며 여러 종류의 계산하는 기계를 다뤄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계산수가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뽑힌 최초의 ENIAC 프로그래머는 케이 맥널티(Kay McNulty, 1920-2006), 베티 제닝스(Betty Jennings, 1924-2011), 베티 스나이더(Betty Snyder, 1917-2001), 말린 멜처(Marlyn Meltzer, 1922-2008), 프랜 빌러스(Fran Bilas, 1922-2012), 루스 릭터먼(Ruth Lichterman, 1924-1986)으로, 6명 전부 여성이었다.

ENIAC의 제어반을 조작하는 베티 제닝스(왼쪽)와 프랜 빌러스

ENIAC은 혁신적인 발명품이었지만 구조 자체는 사칙연산을 하는 기계식 계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전기 신호가 들어올 때마다 10진수로 된 각 자릿수에 1씩 더해주는 덧셈기 수십 대와 그밖의 특수한 기능을 하는 기계 몇 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것으로 의미있는 계산을 하려면 기계들의 입출력을 전선을 직접 꽂아서 이어주어야 한다. 당시의 소프트웨어는 디스크나 메모리 상의 파일에 저장된 것이 아니라 제어반에 꽂혀있는 전선과 스위치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프로그래밍 언어라는 개념도 나오기 전이었다. 많은 언어에서의 if-else에 해당하는 조건분기를 구현하기 위해 당시 개발자들은 데이터 출력 단자에서 나오는 신호를 제어단자에 직접 연결해버렸다. 처음부터 조건분기라는 개념을 상정하고 설계한 하드웨어가 아니었던 것이다.

6명의 프로그래머들은 ENIAC의 발전과 함께하며 컴퓨터 과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개척했다. 전선과 스위치였던 ENIAC의 소프트웨어를 메모리 상에 저장하고 덧셈기 몇 개를 레지스터로 바꾸는 등 기계가 개선되자, 프로그래머들은 프로그램 카운터(program counter)를 조작해서 서브루틴(subroutine)을 구현하는 법을 발명해냈고 메모리나 점프 위치를 간접주소(indirect addressing)를 써서 지정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것은 주어진 문제를 좀더 체계적으로 구조화하는 방법, 그리고 좀더 효율적으로 기계에 실행시키는 방법을 계속 고민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들 덕분에 미국 육군은 ENIAC을 이용해 탄도역학 계산이나 몬테카를로 방법을 통한 핵분열 시뮬레이션 등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들의 활약은 오랜 시간동안 지워져 있었다. 여성 프로그래머들은 ENIAC 50주년 기념행사에 제대로 초청받지 못했다. 기계를 조작하는 여성들의 사진이 남아있었지만, 연구자 중에는 이들을 가전제품 광고에 으레 등장하는 여성 모델로 잘못 생각하고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영화로 돌아가서, <히든 피겨스>라는 제목은 숨겨진 숫자, 그리고 숨겨진 인물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뛰어난 재능으로 기술의 발전에 기여했지만 차별 때문에 조명받지 못했던 인물들의 이야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