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3호 1

이 인터뷰는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3호 0에서 이어집니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 남편이라 생겼던 황당한 에피소드 하나 이야기해주세요.
여자 3호: 결혼하고 맞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였어요. 여느 신혼부부처럼 저희도 사람 많고 정신없는 바깥보다는 신혼집에서 둘이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죠. 음식을 준비하고 양초 켜고 와인잔을 세팅하고 여기까지는 평범했어요. 근데 와인을 마시면서 보려고 영화를 다운로드 받았는데요. 다운로드하는 몇 분 동안 잠깐 휴대폰으로 게임을 했어요. 근데 정신 차려보니 새벽 2시더라고요. 결국 그때 받은 영화는 아직도 못 보고 있어요.

여자 3호의 남편분은 국내 굴지의 게임 스타트업 회사 개발자이십니다. 신상 정보는 여기까지!

신림동 캐리: 개발자 남편과는 어떤 부분 때문에 많이 싸우세요?
여자 3호: 제 남편은 어떤 결정에도 논리와 근거가 타당해야 납득하는 것 같아요.
신림동 캐리: 맞아요. 이과 남자는 논리와 근거로 움직여요. 특히 명분에 약해서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으면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여자 3호: 부부 사이의 문제에 있어 본인이 납득하면 쉽게 승낙하는데, 아무리 소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본인이 납득하지 못하면 끝까지 파고들어서 따져요. 평소엔 둘 사이에 거의 트러블이 없는데 가끔 의견이 서로 달라 다투게 되면 아주 끝까지 가요.
신림동 캐리: 저도 그런 적이 있어요. 만약에 예를 들어서 제가 가방을 사겠다고 하면 ‘가방이 있는데 왜 또 사?’라고 하거든요. 그때 ‘그 가방은 예쁘니까 사고 싶어.’라고 하면 말리죠. 하지만 ‘여행을 가야 하는데 적당한 사이즈의 가방이 없어. 게다가 그 가방은 방수 처리가 되어 있어서 우기인 그 지역에서도 내 물건을 지켜줘.’라고 하면 넘어가요.
여자 3호: 그쵸. 개발자가 모든 일에 논리와 근거를 들이대는 건 ActiveX와 익스플로러를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신림동 캐리: 그런 주제에 자긴 필요없는 물건을 뽐뿌에서 막 충동구매하면서!

신림동 캐리: 근데 여자 입장에서 남자 개발자가 연애 대상으로 좋은 점이 있을까요?
여자 3호: 딱히….
신림동 캐리: 굳이 찾으면요?
여자 3호: 내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점?
신림동 캐리: 그건 아예 안 사귀면 더 많잖아요!
여자 3호: 아, 코딩과 덕질의 대상 외에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나머지는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다는 것 정도네요.
신림동 캐리: 그러면 왜 남자 개발자가 연애를 못 한다고 생각하세요?
여자 3호: 코딩과 덕질의 대상 외에는 아는 것이 없어서….

영원히 고통받는 개발자의 연애입니다.

신림동 캐리: 아무튼 그래서인지 개발자는 직업 성비로나 주변 환경으로나 본인 성격으로나 연애하기 어려운가봐요.
여자 3호: 제 주변만 봐도 연애가 쉽지는 않아보이더라고요.
신림동 캐리: 결혼한 위너 입장에서 연애에 어려움을 겪는 불특정 다수의 개발자에게 연애 조언을 해준다면?
여자 3호: 무엇보다도 여자친구를 외롭지 않게 해주세요.
신림동 캐리: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여자 3호: 자주 못 본다고 해서 외로운 게 아니고 주구장창 붙어 있다고 해서 안 외로운 게 아니거든요.

여자 3호가 가르쳐주는 이렇게 하면 당신의 여자친구가 덜 외롭다!

1. 우선순위가 높다고 느끼게 해주세요. 데이트하다 회사에 불려가더라도, 약속 있었는데 붙잡혀 야근하더라도, 실제로 물리적인 우선순위는 일이 훨씬 높더라도, 마음의 우선순위는 여자친구가 0순위라고 느낄 수 있게 말해주세요.

2. 그걸 여자친구에게 표현하세요. 표현해서 이해시키세요. 나는 너를 항상 신경 쓰고 있다고, 네가 나한테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고 말하세요. 상황은 어쩔 수 없지만 내 마음은 그런 게 아니라고도요. 그걸 잘 표현하고,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마음을 말로 전달하지 않으면 상대는 절대 알지 못해요. 다시 말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3. 표현하고 또 표현하세요. 표현이 주는 감동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짧아요.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갱신해줘야 해요. 뭐가 이렇게 번거롭나 하실 텐데 꼭 닭살 돋는 애정표현을 하라는 게 아니고요. 담배 피우러 나갈 때, 화장실 갈 때, 틈틈이 문자나 전화 한 통씩이라도 넣으면 돼요. 일상 속에서 사소하게 하는 것들이 상대방에겐 큰 의미를 가집니다. 물론 닭살 돋는 표현은 더더욱 좋죠.

4.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이야긴데 여자친구의 말에 공감을 많이 해주세요. 상대방의 마음으로 많이 생각해보세요. 본인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선 가능할 수 있어요. 머리론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마음으론 가능할 수 있죠. 연애는 수학 문제가 아니라서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고 공감해 주세요.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바라는 건 내 마음으로 내 편이 되어주는 거예요.

신림동 캐리: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네요. 물론 살은 되면 안 돼.
여자 3호: 저는 예전에 신림동 캐리님이 페이스북에 올리신 ‘너의 계산에는 마음이 없어!’ 짤방을 정말 좋아해요.

신림동 캐리: 이 짤방 말인가요?

여자 3호: 네, 대부분의 세상살이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잖아요. 근데 왜 연애에 논리를 갖다 대나요.

신림동 캐리: 그러니까 개발자 여러분은 ‘논리야 놀자’를 멀리하고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가까이하세요.

여자 3호: 제가 개발자를 옆에서 보며 느끼는 게 본인이 흥미 있는 것과 아닌 것에 대한 차이가 좀 극단적인 편이라는 거예요. 여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타인이 같이 좋아해주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같이 싫어해주는 걸 원하거든요.
신림동 캐리: 맞아요. 친구를 만나 카페에서 한바탕 수다를 떨고 나면 마음에 강 같은 평화가 오죠.
여자 3호: 그러니까 여자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남자친구가 관심 없을 때, ‘이 남자는 나한테 관심이 별로 없나 보다.’하고 오해할 수 있어요. 비싼 선물요? 당연히 좋아하죠. 근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의 성의에요. 명품백을 사주는 것보다 이쪽의 가성비가 훨씬 좋습니다.
신림동 캐리: 저도 어릴 때 한참 연상의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있었는데 잘 나가는 직업군이고 늘 바빴어요. 본인도 그게 미안했는지 계속 만날 때마다 고가의 선물을 떠안기더라고요. 특히 금붙이를요. 근데 아무리 그렇게 해줘도 1주일에 세 시간 만날까 말까 하고 전화도 잘 안 받고 기념일은 얼굴도 볼 수 없으니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래서 헤어졌어요.
여자 3호: 맞아요. 대부분 여자는 선물보다 마음을 중요시하죠.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에요. 근데 헤어지고 그 금붙이 어떻게 하셨어요?
신림동 캐리: 팔아서 쇠고기 사먹었어요.

신림동 캐리: 결론적으로 개발자와 사는 건 어떤가요?
여자 3호: 제가 다른 남자와는 안 살아봐서 모르겠지만 주변 유부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자는 다 똑같아요. 남자는 애 아니면 개라고 하죠. 그래도 개발자는 확률적으로 개보다 애가 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아, 이게 개발자와 연애하면 좋은 점이네요! 유레카!
신림동 캐리: 그렇죠. 남자가 개 같으면 곤란하거든요. 하지만 개보다 못해도 곤란하고 개보다 더해도 곤란하죠.

신림동 캐리: 마지막으로, 개발자와 사귀고 싶다거나 사귀는 여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요?
여자 3호: 개발자 남자에게는 절대 돌려서 말하지 마세요. 대놓고 말해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게 개발자의 특성입니다. ‘둘러서 말했지만, 이 정도로 티 냈으면 바보가 아닌 이상 눈치챘겠지?’하고 여기시면 분명히 낭패를 봅니다.
신림동 캐리: 맞아요. 개발자에게는 돌직구를 날리세요!

신림동 캐리가 알려주는 개발자 남자친구에게는 이렇게 말하세요.

니가 그렇게 잘났니? 잘생긴 것도 아니면서! (X)
너 못생겼어. (O)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X)
한 번만 더 이러면 나는 너를 죽일 것이다. (O)

여자 3호: 개발자는 코딩 외에는 아는 게 별로 없어요. 그러니 개발자와 사귀려면 많이 이해하고 노력해야 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개발자들은 머리가 좋기 때문에 가르치면 배우는 속도가 빠를 거예요.
신림동 캐리: 맞아요. 키우는 보람이 있죠.
여자 3호: 연애는 문과생이랑 하더라도, 결혼은 공돌이랑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왕 노력해서 키워놨으면, 남 좋은 일 시키지 말고 직접 거두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여자 3호의 이과남 편애는 본 사이트의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3호 0

안녕하세요.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3호입니다. 12월 한정으로 한다더니 왜 1월에도 하냐고요? ‘개발자와 연애하기 힘들어요.’라는 제보가 너무 많이 와서입니다. 개발자와 연애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개친연을 더 연재할 계획입니다. 개친연을 재미있게 읽고 계신 분은 기쁘시겠지만, 저는 스타트업 인터뷰와 개발자 인터뷰를 동시에 해야 해니까 좀 힘드네요. 제가 이렇게 힘든 걸 프라이스톤스 사장님은 알아주실까요?

개발자 남자친구와 헤어져도 개친연은 계속되죠. 아무튼 개친연 3호 카와이이하게 시작할게요.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여자 3호: 안녕하세요. 저는 게임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기획자고요. 제 남편은 게임회사 개발자입니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개발자 부부 다음으로 귀하다는 기획자-개발자 부부시군요!

레어템이다!

신림동 캐리: 남편분은 언제, 어디서 만났셨어요?
여자 3호: 회사 직원분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어요.
신림동 캐리: 그럼 처음부터 개발자라는 건 알고 만나셨겠네요.
여자 3호: 네, 주선자를 통해 기본적인 정보는 다 듣고 만났어요.
신림동 캐리: 소개팅은 어땠나요?
여자 3호: 일단 대화가 잘 통해서 좋았어요. 아무래도 같은 업계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처음 만나도 공통의 화젯거리가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죠. 제 주변에선 IT업계에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도 잘 모르거든요.
신림동 캐리: 소개팅은 남자가 말하고 여자는 웃으면서 ‘아, 그러시구나.’라거나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맞장구 쳐줘야 잘 된다던데….

역시 될 사람은 어떻게 해도 잘 되는 겁니다.
여자 3호: 그리고 저희 집 공돌이는 일반적인 개발자와 좀 달랐어요. 제가 예전부터 ‘내 이상형은 감성적인 공돌이야!’라고 말하고 다녔는데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니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라거나 ‘넌 안될 거야. 아마….’하고 비웃곤 했어요.
신림동 캐리: 맞아요! 저도 수학 잘하는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하면 미친 여자 취급 받아요!
여자 3호: 이과남이 얼마나 매력적인데!

전국의 이과 출신 여러분 희망을 가지십시오. 공대 페티쉬는 뜻밖에 흔한 취향입니다.

여자 3호: 아무튼 근데 이 소개팅에 나온 개발자가 여느 공돌이들이랑은 좀 다른 거예요. 일단 헐렁한 체크 남방이 아니라 몸매가 드러나는 흰 티셔츠를 입었고요.
신림동 캐리: 그래, 체크 남방 입지 마!
여자 3호: 바람막이 등산복이 아니라 캐주얼한 재킷을 입고 나왔죠.
신림동 캐리: 전 바람막이랑 백팩 조합 되게 좋아하는데….
여자 3호: 전 싫어해요. 아무튼 그래서 스타일에선 일단 합격점이었죠. 게다가 인디 음악을 즐겨듣고 이소라를 좋아한다는 감수성 넘치는 부분에 가산점!
신림동 캐리: 실제로 즐겨 듣는 음악이 Baba Yetu라고 해도 소개팅 나가선 제프 베넷이나 어반 자카파라고 해야죠.

근데 TOY는 안돼요. 찌질한 구남친st이거든요.

여자 3호: 무엇보다도 맘에 들었던 건 그동안 너무 일만 하고 살았다며 앞으로 일은 적당히 하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겠다는 선언이었죠. 제가 그 말에 속아서 만났는데….
신림동 캐리: 그런 말 믿으면 안 돼요! 개발자들은 기본적으로 다 워커 홀릭에 매저키스트예요! 힘들다 힘들다 앓는 소리 하면서 버그 해결하면 막 코르가즘 느끼고!

아, 너무 격분했네요. 릴렉스하겠습니다.

여자 3호: 그렇게 소개팅으로 시작해 몇 번 만나다 보니 공돌이답잖게 애교도 많고 센스도 있었어요.
신림동 캐리: 공돌이가 애교와 센스를 갖췄다니 흔치 않은 능력치네요.
여자 3호: 연애 초기의 일인데요. 토요일 아침에 영화를 보기로 했어요. 영화관 앞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이 남자가 조금 늦는 거예요. 약간 괘씸했죠. 근데 멀리서 걸어오는 남자의 손에 커피가 들려 있었어요. 아침이라 모닝커피를 샀는데 뭘 좋아할지 몰라서 두 개를 샀다고, 아메리카노랑 카푸치노 둘 중에 고르라는 거예요. 사실은 일찍 나왔는데 커피를 미리 사놓으면 식을까 시간 맞춰 사느라 늦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고요. 그때 완전히 감동 받았죠. 이 남자는 내가 찾던 감성적인 공돌이다!
신림동 캐리: 저까지 막 눈물 나려고 그래요. 거기 티슈 좀 뽑아주세요.
여자 3호: 하지만 그 날 이후로 그런 센스는 찾을 수가 없었죠…. 인제 와서 그 센스 어디 갔냐고 물으면 그때 다 넘쳐서 없어졌다고….

신림동 캐리: 개발자와 연애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게 있으신가요?
여자 3호: 저희 집 공돌이는 일하면 연락이 잘 안 돼요.
신림동 캐리: 개발자가 그렇죠.
여자 3호: 연애 초기엔 문자에 재깍 재깍 답장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제가 10개 보내면 1~2개 답장하더라고요. 여러 개 보내면 한꺼 번에 건성으로 읽고 몇 개는 빼먹고 읽어서 몇 개는 답이 없기도 하고요. 처음엔 ‘뭔가 바쁜 일이 있겠지.’하고 넘어갔는데, 그런 바쁜 일이 몇 달째 계속되는 거예요.
신림동 캐리: 인생은 짧고 코딩은 기니까요.
여자 3호: 여자는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죠. 혹시 다른 여자와 있는 거 아닌가, 나에 대한 마음이 식은 게 아닌가 그런 거요. 근데 또 전화하면 받아요. 정신없이 일하면서 건성으로 받죠.
신림동 캐리: 아무래도 코딩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죠.
여자 3호: 일 끝나면 제정신이 돌아와서 막 애정표현을 해요.
신림동 캐리: 맞아요. 개발자는 일할 때와 일을 안 할 때의 스위치 온오프가 확실한 직업 같아요. 그런 게 매력적이기도 하고요.
여자 3호: 한 번은 기념일이었는데 서버에 문제가 생겼어요. 그것도 새벽에요. 언제 복구가 될지 몰라서 그날 일정 다 취소하고 저는 하염없이 기다렸죠. 밤까지 해결이 안 되는 거에요. 밥도 못 먹고 일하는 것 같길래 제가 먹을 것을 사서 회사에 갖다 주고 왔어요. 화가 나다가도 그런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불쌍하고 그래요. 힘들 텐데 나까지 괴롭히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으로 참는 거죠.
신림동 캐리: 개발자가 원하는 이상적인 아내시네요. 저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됩니다.
여자 3호: 저도 그래서 맨날 남편한테 ‘나 같은 여자가 세상에 어딨어? 응?’하고 수시로 교육하고 있어요.
신림동 캐리: 저도 개발자와 사귈 때 그렇게 ‘나 같은 여자는 없다. 넌 날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라고 무한히 세뇌하곤 했죠. 그러면 조용히 하라더군요.
여자 3호: 근데 개발자 남자는 왜 그런 거 싫어하죠?
신림동 캐리: 그러게요. 저도 자꾸 그러니까 답정너 같다고 하더라고요. ‘다 아니까 굳이 말 안 해도 된다.’라면서요.

신림동 캐리: 남편분께서 공대 농담을 하시나요?
여자 3호: 저희 집 공돌이는 공대 농담을 거의 안 해요. 근데 공대 농담만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말을 잘 안 해요. 주로 저 혼자 떠들죠. 어떤 때는 벽에다 대고 얘기하고 있는 느낌도 들어요. 뭘 물어봐도 거의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모른다고 답하죠.
신림동 캐리: 맞아요! 뭘 물어봐도 반 이상의 대답이 ‘몰라.’예요. 그래서 왜 그렇게 성의 없게 대답하냐고 하면 모르겠는데 어쩌라고 그래요.
여자 3호: 제 남편도 제가 하는 질문에 80%는 ‘몰라.’예요.
신림동 캐리: 그럼 어떻게 하세요?
여자 3호: 그래서 그냥 제 맘대로 해요. 제 마음대로 집 꾸미고, 물건 사고, 메뉴 고르고, 여행 장소 정해요.
신림동 캐리: 아, 그런 해결 방법이 있구나….
여자 3호: 결혼생활에 대한 모든 걸 거의 제 맘대로 할 수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얘기하면 대부분 그러라고 해요.

신림동 캐리: 그럼 남편이 개발자라 좋은 점은요?
여자 3호: 제가 기획자라 업무 관련된 것을 남편에게 많이 물어봐요. 이런 기능은 구현이 가능하냐, 이런 건 구현이 어떻게 되는 거냐, 난이도가 어느 정도냐 그런 거요. 그런 걸 알고 있으면 개발자와 협업할 때 무척 도움이 되거든요.

신림동 캐리: 다른 남편과 개발자 남편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자 3호: 한집에 살지만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기 힘든 날이 많아요. 제가 잘 때 남편이 퇴근해서 들어오고 제가 출근할 때는 남편이 자고 있거든요.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늦게까지 일하고 가끔은 외박도 하고요.
신림동 캐리: 아까 소개팅할 때 남편분이 적당히 일하고 즐기며 살겠다고 하셨다지 않았어요?
여자 3호: 네, 그 말을 믿은 제가 바보였어요….
신림동 캐리: 그래도 연애할 때보다는 결혼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지 않나요? 아무래도 한집에 사니까요.
여자 3호: 그쵸. 그래도 요새는 12시 전에 들어와 집에서 일해요. 저희 집 공돌이가 침대에서 노트북으로 코딩하고 있으면 전 남편 팔뚝에 기대어 키보드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듭니다.
신림동 캐리: BGM으로 ‘섬집 아기’를 깔아줘야 할 것 같네요. 남편이 서버에 버그 따러 가면 아내는 홀로 남아 집을 보다가….

신림동 캐리: 부모님 세대에선 개발자라는 직업이 생소할 텐데 친정에선 사위가 개발자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혹은 업무를 이해하시나요?
여자 3호: 저희 부모님은 개발자가 뭐 하는 직업인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저희 집 공돌이는 모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는데 처음에 결혼한다 했을 때 저희 아빠가 사업하는 놈이라며 불안해하셨어요. 그리고 지금도 사위 만나면 맨날 주식 이야기만 하세요.

신림동 캐리: 공대 출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꼭 ‘닭튀김 수렴공식‘으로 빠지는데요. 코딩하다 막혔을 때 동네 통닭집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면 알려주신다더라 그런 농담을 하곤 하죠.

이 레어템 부부의 이야기는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3호 1에서 계속됩니다.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2호 1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2호 0이 나가고 페이스북에서 한 남자분이 제게 말을 거셨습니다.

익명의 브로그래머: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익명의 브로그래머: 이번에 인터뷰하신 여자 2호 말인데요.
신림동 캐리: 네, 무슨 일이라도?
익명의 브로그래머: 제 구여친 같은데요.
신림동 캐리: 저는 여자 2호가 누군지 모릅니다. 인터뷰이의 정보는 소중합니다.

알고 보니 여자 2호의 브로그래머 구남친이 신림동 캐리의 아는 사람이더라고요. 여자 2호와 브로그래머 구남친은 각자 컨트롤 비트를 다운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언제 너한테 자기관리 뭐라 그랬어!’라거나 ‘이 자식아, 했잖아!’를 서로에게 전달하라 신림동 캐리에게 부탁했습니다. 옛정이 묻어나는 디스전 사이에서 신림동 캐리는 ‘여러분, 저한테 시키지 말고 카카오톡 까세요.’를 중얼거렸다는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세상은 의외로 좁으니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회악인 브로그래머는 제쳐놓고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2호 1 시작합니다.

신림동 캐리: 공대생은 자기들끼리만 아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낄낄대길 좋아하는 종족으로 알려져있는데요. 남자친구가 한 공대 농담 중에 기억나는 게 있나요?
여자 2호: 저도 공대녀인지라 웬만한 공대 농담은 다 알아들어요. 얼마 전에 개발자가 보는 디자이너와 PM, 디자이너가 보는 개발자와 PM, PM이 보는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비교한 차트가 업계에서 소소하게 유행했었거든요. 그거 보고 너무 공감해서 점심 내내 팀 내 개발자분들과 그 얘기만 했던 기억이 나요.

신림동 캐리: 이상하게 공돌이들은 그런 공감대에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공돌이 앞에서 “난 알집 말고 7-zip 쓰는데?”라거나 “익스플로러 느려서 어떻게 써. 당연히 크롬이지.”라고 하면 절 보는 눈빛이 바뀌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여자 2호: 그쵸. 공돌이들은 이상하게 그런 걸 알아듣는 여자에게 가산점을 너무 많이 줘요.
신림동 캐리: 아무래도 자기 전공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여자 2호: 하지만 제가 그런 종류의 개그를 알아듣고 다른 사람들은 못 알아듣는 걸 아니까 이런 문제도 있었어요. 전 남자친구나 썸남이 가끔 너무 과도하게 공대 농담을 쓴다면 진짜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지구 상에서 없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신림동 캐리: 그렇게 심각한가요?

여자 2호: 예를 들어서 과제가 너무 많다는 걸 ‘infinite for loop’로 표현하며 페이스북에서 자기들끼리 리플 달며 논다든가, 그 아래에 다른 과 공돌이들이 나타나 다른 루프나 다른 언어로 표현한다든가 하고 있으면 ‘그만해! 그만하라고 이것들아! 사람들 다 도망간다!’고 외치고 싶은 기분이죠.

마치 공대 OT 같은 페이스북 타임라인

신림동 캐리: 근데 여자 2호님은 그런 놀이에 어떻게 반응하세요?
여자 2호: 사실 대부분의 릴레이에 참여합니다. 저도 개발자니깐요.

아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데스티니!

신림동 캐리: 근데 저처럼 공돌이에게 막연한 호감을 가진 여자분들은 공돌이와의 데이트가 다른 남자와 다를 거라 기대하는 부분이 있어요. 여자 2호님은 거의 개발자만 사귀었다 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데이트가 있나요?
여자 2호: 아이패드2가 나온 당일이었어요. 그날 바람을 동반한 눈이 오고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 남자친구는 거의 두 시간 동안 애플스토어 앞에서 기다려 아이패드2를 득템하고야 말았어요.


신림동 캐리: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여자 2호: 문제는 말이죠. 원래는 아이패드2를 살 계획이 없었어요. 그냥 남자친구와 밥 먹으러 시내에 나갔는데 하필 그 곳이 애플스토어 옆이었고 저희가 들어간 식당 넘어서까지 사람들이 아이패드2를 사기 위해 줄을 섰더라고요. 그래서 전 ‘이건 사야 돼!’를 느끼며 무작정 줄을 서기 시작했어요.
신림동 캐리: 몸 속에 흐르는 공대의 피가 잡스횽을 따르고 있었군요.
여자 2호: 심지어 저만 사고 남자친구는 안 샀어요. 절 기다려줬죠. 그렇게 기다려 애플스토어 입성한 순간 전 막 카운터까지 뛰어가 헐떡거리며 “아이패드 하얀색 와이파이만 되는 16GB짜리 주세요!”를 외쳤어요.
신림동 캐리: 남자친구의 반응은 어땠나요?
여자 2호: 그런 제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긴 했는데 정작 돌아와서는 자기가 더 신나서 아이패드를 가지고 놀더라고요.
신림동 캐리: 그라췌! 기계에 미치지 않는 공돌이는 없어요!

여자 2호: 맞아요. 공돌이에게 기계는 사랑입니다.

신림동 캐리: 제 남자친구는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스 사운드링크 미니 블루투스 스피커를 받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걸 선물했는데요. 박스 포장을 뜯고 있는 남자친구가 여태까지 본 모습 중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어요.
여자 2호: 그래도 기계만 좋아하면 양반이에요. 어떤 남자친구와는 용산상가에서 건프라 구경 데이트를 했어요. 그리고 남자친구가 입대하기 하루 전날 만나서는 온종일 한마디도 안 하다시피 하면서 각자 건프라 조립을 했죠.
신림동 캐리: 근데 그게 입대 전날과 무슨 관련이죠? 한동안 건프라 못 만질테니 마음껏 만질 테다 이런 건가요?
여자 2호: 글쎄요…. 그땐 그냥 심란해서 말이 없나 보다 했는데 그런 마음이었나….

신림동 캐리: 얼마 전에 공대생이 남자친구로서 좋은 점이라는 짤방이 떠돌았는데요. 때 묻지 않은 모태솔로가 많다거나 주변에 여자가 없어서 바람 피울 확률이 없다든가 여자를 대하기 어려워하는 순수함이 있다 뭐 그런 건 완전 웃기지 않나요?
여자 2호: 그쵸. 공대 안에서 여자친구 몇 번 갈아치운 사람도 많이 봤어요.
신림동 캐리: 저만 해도 바람 피워서 헤어진 구남친 둘 다 공대생이었어요.

공대 출신 여자 2호가 정리해드립니다.

청정 100% 때 묻지 않은 모태솔로가 많다. → 그냥 모태솔로가 많다.
컴퓨터 고장 따윈 혼자 해결한다. → 컴퓨터 고장 나면 새로 산다.
주변에 여자가 없어 바람 피울 확률 ZERO → 주변에 여자가 없긴 한데 바람 필 사람은 다 피운다.
그리고 바람 필 여유조차 없다. → 바람 필 여유가 없어도 바람 필 사람은 다 피운다.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풀 것 같다. → 공대생도 취미는 케바케다.
사소한 애교에도 감동한다. → 여자친구가 뭘 해도 감동한다.

신림동 캐리: 여자들이 흔히 문과 남자의 이상향으로 성시경을 꼽거든요. 자상하고 논리적이고 여자를 잘 알고 배려심이 깊고 잠자기 전에 전화로 ‘잘 자요.’ 해줄 것 같고요. 근데 성시경이랑 만약 싸우게 되면 따박 따박 ‘니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 하면서 가르칠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아요. 공대생과 싸우면 어떻던가요?
여자 2호: 대부분 싸울 때 공대생은 말이 없어지죠.
신림동 캐리: 맞아요!
여자 2호: 성격마다 다르긴 한데 대체로 싸우면 평소보다 말이 더 없어지긴 해요. 그리고 여자친구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죠.
신림동 캐리: 근데 여자친구가 화나면 달래도 보고 빌어도 보고 그래야 하는데 공돌이들은 그냥 ‘아, 화가 났나보다…. 어떡하지…. 화 풀릴 때까지 기다려야지….’ 마인드라 더 화가 난다니까요!
여자 2호: 공돌이라고 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비는 건 아니예요. 전 공대생 남자친구와 캠퍼스에서 너무 격하게 싸운 나머지 경찰이 온 적도 있어요. ‘No contact agreement’에 싸인도 하고요.
신림동 캐리: 와, 청춘이다.

다시는 공돌이를 무시하지 마라!

신림동 캐리: 그럼 개발자 남자친구가 가진 장점은 뭘까요?
여자 2호: 제가 하는 이야기를 알아들어서 좋아요. 제가 여자 개발자라서 개발하면서 느끼는 희열과 고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데 개발자가 아닌 분들이랑 이런 얘기를 하려면 매우 어렵거든요. 제가 워낙 말 전달 능력이 없어서 말은 많이 하는데 상대방이 잘 못 알아 듣는 편이에요. 근데 개발자 남자친구는 제가 횡설수설하게 말해도 대충 기본 지식이 있으시니까 알아 듣고 현실적인 조언까지 해주니까 참 좋더라고요.
신림동 캐리: 일 말고는요?
여자 2호: 물론 사람 대화 내용이 일 관련만 있는 건 아니죠. 다른 관심 분야에 대해서도 개발자는 어느 한 분야를 깊게 파는 경우가 많거든요. 한마디로 덕후죠. 지식 분량이 위키피디아 항목을 지구 한 바퀴 샤닥션을 치고도 남을 정도인 사람이 많기 때문에 대화가 지루하지 않습니다.

신림동 캐리: 그럼 개발자 남자친구의 단점이 있다면?
여자 2호: 바빠요.
신림동 캐리: 공감합니다. 그들은 언제나 바쁘죠.


여자 2호: 그리고 어딘가 몰입해있는 상황이 많아 말을 걸어도 대답이 늦습니다. 저는 개발자라고 해도 일단 여자인데다 애정 결핍이 있어서 상대방에게 말을 걸고 답이 늦게 오면 초조해지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개발자를 사귈 땐 이런 점 때문에 마음 고생을 했어요. 처음엔 ‘남자친구가 날 귀찮아하는구나! 난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겠다!’라고까지 받아들였거든요.
신림동 캐리: 아니 그건 좀 오버예요.
여자 2호: 하지만 전 그런 게 너무 싫었는걸요. 남자친구와 싸운 이유 대부분이 연락 문제와 데이트 시간이었어요.
신림동 캐리: 개발자끼리 사귄다고 해도 이런 부분에선 싸움을 피할 수 없군요. 저도 이런 부분에서 트러블을 겪곤 하는데 그게 제가 비개발자라 겪게 되는구나 했었어요.
여자 2호: 한 남자와는 저 혼자만이 아니고 서로 섭섭하게 생각하는 바람에 아주 초토화가 났어요. 둘 다 바빴고 연락에 소홀했거든요. 제가 개발자인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연애할 때마다 어려워요.
신림동 캐리: 그럼 여자를 사귀고 싶어하는 혹은 연애에 어려움을 겪는 불특정 다수의 남자 개발자에게 연애 조언을 해준다면?
여자 2호: 일단 너무 조급하면 생길 것도 안 생긴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 주변의 몇몇 개발자가 “이번엔 기필코 여자친구를 만들겠어!’라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호감 가는 여성이 있으면 밑도 끝도 없이 들이대는 걸 자주 봤어요. 저도 그런 들이댐을 당하기도 했고요. 근데 여자 입장에선 처음부터 그렇게 다가오는 남자가 너무 부담스러워요.
신림동 캐리: 그럼 최악의 들이댐 사례 좀 말씀해주세요.
여자 2호: 제가 남초 학과에 남초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라 대시 받는 경우가 많은데요. 갑자기 뜬금없는 선물 공세를 한다든가 단둘이 여행을 가자고 한다든가 메시지 답장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내가 싫어졌냐고 칭얼거린다든가 비호감 대시 사례는 참 다앵해요. 특히 한 남자분은 IT인이라면 모두들 선망하는 G모 기업에 다니고 계셨는데 제가 자신을 거절하자 메일로 ‘감히 너 같은 년이 나처럼 위대한 사람을 차다니 참 한심하다. shame on you and good bye forever.’이라고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신림동 캐리: 차길 잘했네요. 풍악을 울려야 할 분위긴데요?

신림동 캐리: 남자 개발자, 그들은 왜 연애를 못 할까요? 왜 곧 차일까요?
여자 2호: 일단 LOL 좀 그만 하세요!
신림동 캐리: 맞아요! 내가 늘 말했지! 남의 엄마 걱정하지 말고 니 인생 걱정해!
여자 2호: 그런 것도 있고 사실 IT 개발자 성비를 보면 답이 나와요. 저희 팀만 해도 저 빼고 다 남자예요. IT계에 여성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 턱없이 부족하죠. 심지어 여자분이 입사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저까지 기쁘다니까요. 그리고 다들 너무 바쁘세요. 저도 개발자니까 왜 그런지는 다 알고 이해해요. 프로젝트 하나 잡히면 정신없이 바쁜데 그것만 하는 게 아니라 중간에 들어오는 자잘한 업무도 태산 같죠. 미국은 그나마 야근이 필수가 아니라 전 일찍 퇴근하는 편이긴 한데 온종일 모니터 보고 있다 집에 가면 좀비가 되어 침대에만 누워있게 돼요. 근무 환경이 자유롭다는 미국도 이런 데 한국은 오죽하겠어요. 이러니까 누굴 만날 기력이 없겠죠. 그러다 보면 여자를 만나는 게 힘들기도 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모르게 되고요.

신림동 캐리: 마지막으로, 개발자와 사귀거나 만나고 싶다는 여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여자 2호: 서로에게 너무 얽매이지 마세요. 남자친구도 그만의 삶이 있고, 당신도 당신의 삶이 있어요. 개발자는 타이트한 근무 환경에서 머리를 많이 쓰는 일을 하니까 정신적으로 거의 늘 지친 상태예요. 프로젝트 기간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바쁘고 힘들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요. 그리고 분야가 분야다 보니 새 정보는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나오고 그것을 재빠르게 캐치해서 배워야 하기도 하죠. 그러니 바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남자친구가 연락을 자주 안 한다고 해서 당신에게 관심 없는 게 아니에요. 제일 힘들 때 생각나는 게 당신이니까요.
신림동 캐리: 제 남자친구는 제일 힘들 땐 제 생각 안 나다가 일 끝나고 한숨 돌리거나 화장실 갈 때 절 생각한다던데요.
여자 2호: 아무튼 개발자는 메시지 답장이 수시로 늦고, 전화를 제때 못 받고, 약속에 늦거나 못 나오거나 데이트하는 중간에 다시 회사로 불려 가기도 할 겁니다. 그런 것에 불안해하지 말고 남자친구의 생활을 존중해주세요. 동시에 당신도 자신의 삶을 꾸려가며 연애하세요.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2호 0

개친연 1호가 나간 이후에 개발자와 사귀며 가슴을 치고 계시는 여자분과 여자 개발자와 사귀며 벽을 치는 남자분들로부터 많은 제보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미국의 유명 컴공과를 졸업해 현재 개발자로 활동 중이시라는 익명의 여자 2호분을 섭외하게 되었는데요. 본인이 개발자면서도 유독 개발자를 사랑하는 그 열정에 감동하여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본인 소개 해주세요.
여자 2호: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미국 클라우드 컴퓨팅 회사에서 2년째 플랫폼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여자 2호입니다.


신림동 캐리: 아, 그 귀하다는 여자 개발자시군요. 주변에 남자가 많으시겠어요. 남자친구는 뭐하세요?
여자 2호: 불행히도 지금 현재는 공식적으로 남자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신림동 캐리: 그러면 개친연 왜 신청하셨….
여자 2호: 제가 그동안 사귀었던 남자는 물론이고 잠깐이라도 썸이 생겼던 남자 전부 다 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할 말이 많아요.

오호? 흥미진진한 폭로전이 될 것 같습니다.

신림동 캐리: 전공이 전공이시니까 그 안에서 만나는군요. 그 유명한 공대 아름이시군요.

실제로 여자 2호는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귀염상의 미녀셨습니다.

신림동 캐리: 여자로서 컴공과에 다니는 건 어떠세요? 소문에 의하면 ‘컴싸여신’이라든가 ‘컴싸아이유’라고 불리신다고 들었어요.
여자 2호: 그 소문 제가 낸 겁니다.
신림동 캐리: 아, 그러시구나….
여자 2호: 그리고 전 주변으로부터 평생 들을 욕을 다 처먹었죠. 아무튼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을 당시엔 개발의 개자도 몰랐고 HTML/CSS 혹은 태그가 개발의 전부인 줄 알았으며 제 미래의 직업 같은 건 하나도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개발자가 됐네요.

신림동 캐리: 남자는 주로 언제, 어디서 만났셨어요?
여자 2호: 대학교에서 주로 만났어요. 수업을 같이 듣는다거나 과제를 같이 한다거나 하면서 자연스럽게 썸이 생기더라고요. 아무래도 학과 선배분들이 저보단 개발 경험이 많으시니까 묻고 답하고 하는 과정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서요. 미국에서 대학을 다녀서 제 에세이를 봐주시기도 하고요.
신림동 캐리: 구남친들의 개발 언어는 뭐였나요?
여자 2호: 쓰는 언어들은 확실치가 않네요. 지금 사귀는 것이 아니라서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요. 하지만 가장 자주 쓰이는 프로그래밍 언어 탑 10을 거뜬히 채울 것 같아요. 지금은 각종 예측 알고리즘과 툴 연구 및 개발과 각종 플랫폼 엔진 개발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신림동 캐리: 헤어졌는데 그걸 왜 아는 거죠?
여자 2호: 알면서….

너님만 술 마시고 울면서 구여친 페이스북을 훔쳐보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 페이스북 사찰로 위아더월드!

신림동 캐리: 컴공과 아름이로서 컴공과 공돌이만 사귀셨다고 했는데 만남은 어떤가요?
여자 2호: 한 마디로 ‘넌 누구? 여긴 어디?’라고나 할까요. 전 컴공과에 재능이나 뜻이 있어서 갔다기보단 어쩌다 간 거라 입학하고 한동안은 개발에 관해서 전혀 아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동기들의 대화를 못 알아들어서 멘붕하기도 했었고요.
신림동 캐리: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상대방이 안다는 것에 대해 매력을 느끼셨겠어요.
여자 2호: 꼭 그렇지만도 않아서요. 구남친 하나는 처음으로 대화했을 때 로봇 관련 대화를 준비하던 중이라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 겉으로 “아, 그러셨구나!”라든가 “와,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속으로는 “이게 뭔 외계언어야….”하고 안드로메다를 느꼈던 기억이 있어요.
신림동 캐리: 상대방이 이 대화에 흥미 있을까를 별로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관심사를 마구 늘어놓는 게 공대생의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더라고요.

공대생들이여, 여자가 웃으면서 잘 들어준다고 신나서 이야기하지 맙시다. 그녀의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걸 좀 느끼라고요!

신림동 캐리: 학교 말고는 또 어디서 남자를 만나죠?
여자 2호: 개발자 모임이라든가 회사에서 주로 만나요.
신림동 캐리: 공순이다. 뼛속까지 공순이야….
여자 2호: 저도 그런 곳에서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거 아니거든요….
신림동 캐리: 근데 미국이면 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헌팅을 당하거나 하는 기회도 많지 않나요? 제가 미국 있을 땐 스타벅스 같은 데서 몇 번 당했는데?

다들 눈치 채셨겠지만 제 자랑 맞습니다.

여자 2호: 클럽이나 파티에서 번호 받아간 적은 많은데 계속해서 연락하진 않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어차피 제가 가는 파티도 다 개발자만 득실득실해서요.
신림동 캐리: 그 나물에 그 밥이군요.
여자 2호: 남자 개발자가 다양한 여자를 만날 기회가 없듯이 개발자 신분인 저 역시 아무래도 다른 쪽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거의 못 만나요. 다른 분야라고 해도 기껏해야 IT 회사에서 일하는 디자이너 정도랄까요? 근데 그 디자이너분마저 예전에는 개발자로 일하셨더라고요. 게다가 저랑 대학 동문이었다고요.

신림동 캐리: 그럼 같은 개발자끼리 사귀며 느끼신 게 있으신가요?
여자 2호: 저도 개발자지만 남자 개발자들 어떤 분야든 엄청나게 덕후더라고요. 심지어 학교 성적이 안 좋아도 어떤 분야는 ‘얘가 왜 이 실력으로 이 점수를 받지?’ 싶을 정도로 실력이 엄청난 경우가 많아요. 코딩의 신이라든가 각종 대회에서 상을 콜렉터 한다든가 이름을 대면 다 아는 회사에서 미리 인턴하고 왔다든가 하는 거요. 그래서 처음엔 좀 존경의 대상이었는데 연애하면서 못 볼 꼴 다 보고 나니까 개발자들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림동 캐리: 원래 사람이에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여자 2호: 처음엔 뭔가 엄청난 존재로 보였거든요! 개발자에 대해 잘 몰랐을 때는 개발자와의 연애는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LED로 튜닝한 정체불명의 기계를 기념일 선물로 받는다던가 암호화된 스크립트를 편지 대신 받아서 그걸 풀어야 메세지가 나온다든가 그런 걸 꿈꿨죠.

여자친구분께 하트가 막 쏟아지는 프로그램을 선물하셨다던 이두희님이 생각나네요. 두 분 만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여자 2호: 제가 개발자와만 연애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천재 혹은 싸이코처럼 보이는 공돌이도 연애할 때는 평범한 남자더라고요. 겉으로 차갑고 시크해 보이는 남자가 제게만 다정한 감정 표현을 할 때 정말 행복했었어요.

신림동 캐리: 그렇다면 개발자 남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다른 차이를 보인다면 어떤 점일까요?
여자 2호: 다른 남자들도 어느 정도의 덕후 기질이 있겠지만, 남자 개발자는 오덕 마인드를 필수로 가지고 있다 보면 돼요. 평균적인 덕후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좋아하는 분야가 하나 있으면 정말 끝까지 파고들어요. 구남친 하나는 콘솔 게임을 정말 좋아했어요. 소위 말하는 겜덕이었죠. 한정판 게임과 관련 제품을 바다 건너서라도 구해오는 건 기본이에요. 저와 바다 건너 장거리 연애를 하며 웹캠으로 연락했는데, 저와 이야기하는 동시에 게임을 하면서 갖가지 엔딩을 하루종일 보여주더라고요. 또 다른 구남친은 무한도전 보는 걸 그렇게 좋아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과제하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며 꼭 무한도전을 무한 리플레이 하더라고요. 저도 옆에서 보다 보니까 어느새 무한도전 에피소드를 다 파악해버렸어요. 어떤 대사가 어느 시점에 나오는지까지 기억하게 됐다니까요.
신림동 캐리: 저도 무도덕후 구남친이 있었어요. 걔도 유학생이었는데 한국 올 때마다 여기는 무한도전 무슨 에피소드를 촬영한 곳이고 하면서 감격한 얼굴을 하더라고요. 심지어 밖에서 데이트를 하다가도 토요일 6시가 되면 텔레비전 있는 식당에 가서 같이 무한도전을 봐야 했어요!

무도 까면 사살이니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여자 2호: 썸남 하나는 또 커피 덕후라서 여행을 가면 하루에 열 군데가 넘는 카페 순회를 하더라고요. 그것도 맛을 제대로 비교하려면 동일한 조건이어야 한다며 한 종류의 커피만 마셨어요. 그래서 카페인 효과 덕분에 여행하는 내내 밤을 새우고요. 그 분은 동시에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덕후이기도 하고 위스키 덕후라서 시간 나면 레스토랑을 순회하는 건 기본이고 집에 위스키을 몇백 병 전시해놓기도 했어요.

그건 그냥 돈이 많은 거잖아….

신림동 캐리: 다들 한 덕후하셨네요.
여자 2호: 제가 만났던 개발자 남자친구 중에서 어떤 특정분야에 심취한 덕후가 아닌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개발자의 덕후성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란 데요. 친한 개발자 오빠가 대놓고 “내가 덕후 되기 싫어서 실리콘밸리 안 간 건데!”라고까지 말했어요. 문제는 이 오빠도 겜덕에다 픽사덕이라는 거죠.
신림동 캐리: 일반인은 주변을 둘러보며 ‘나 혹시 덕후인가?’ 생각하고, 덕후는 주변을 둘러보며 ‘그래 나 정도면 덕후는 아니지!’라며 안심한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여자 2호: 차라리 오덕한 개발자면 사랑스럽죠. 저는 ‘브로그래머(bro+programmer)’를 정말 싫어해요. 브로그래머는 개발자의 최종 흑화된 레벨이자 사회악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신림동 캐리: 브로그래머가 뭐죠?
여자 2호: 세련되고 유행에 민감하며 자신의 남자다움을 과시하는 신세대 프로그래머를 뜻하는 신조어인데요. 미국에선 프로그래머가 잘나가는 직종의 하나거든요. 그래서 외모를 번지르르하게 꾸미고 자신의 연봉과 학벌로 여자를 꼬시고 다니면서 상처 주는 인간들이 많아요. 자신의 남성적 매력으로 여성을 사냥하는 동시에 가지고 노는 거죠. 자신감과 잘난 척은 정말 다른 건데 말이에요. SNS에서만 봐도 “나 돈 이렇게 잘 번다. 나 이렇게 하고 산다. 나 너네보다 똑똑하다. 이 그지 깽깽이들아!” 하면서 온갖 허세를 다 부리시는 브로그래머가 은근히 많아요.


신림동 캐리: 왜 이렇게 브로그래머에 분노하세요?
여자 2호: 사실 예전에 만났던 구남친이 저런 케이스였어요. 사귀던 당시에는 공부하느라 바쁜 평범한 공돌이였죠. 근데 헤어지고 나서 어쩌다 다시 만난 적이 있는데 소위 말하는 브로그래머가 됐더라고요. 퇴근하고 시간 내서 운동하고 돈 벌면 옷 사고 머리 하는 데 투자하는 것까진 좋았어요. 근데 여자를 닥치는 대로 가볍게 만나더라고요. 그러면서 당시 바빠서 살찌고 망가진 모습이었던 제게 “이렇게 가꾸는 거 조금만 관리하면 되는 건데 넌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징징대는 거냐?”라고 충고하더군요.
신림동 캐리: 저도 예전에 살찐 상태에서 구남친 만난 적이 있는데 ‘이제 너도 별 수 없구나’라고 해서 두고 두고 분했어요!
여자 2호: 자기 자신을 가꾸는 건 멋진 일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누를 필요는 없다고 봐요. 전 개인적으로 이과남이 다른 사람에겐 무심하면서 나에게만 다정하게 구는 속성이 좋다고요!
신림동 캐리: 저도 그거 완전 사랑합니다.
여자 2호: 저희 회사 팀메이트 중의 한 분이 흰 티셔츠와 디젤 청바지를 입고 코딩하는데 살짝 보이는 팔 근육과 힘줄이….
신림동 캐리: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좋아하는 건 남자도 마찬가지예요. 근데 문제는 그러고도 예쁘고 멋있으려면 얼굴과 몸매가 따라줘야 한다는 거죠.

언제나 그렇지만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고 몸매죠.

여자 2호의 폭로전은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2호 1에서 계속됩니다.

집밥, 제대로 드시고 계세요?

심심한 날
친구가 필요한 날
나는 나는 친구를 만들죠

모 어린이 프로그램의 이 로고송을 기억하시는 분이 많으실 겁니다. 어릴 적이야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것만으로 옆자리에 앉았단 것만으로도 그냥 친구가 되곤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방과 후에도 늘 붙어 다녔죠. 하지만 어른이 되면 될수록 각자의 일로 바빠서 서로 신경 쓰지 못하거나 관심사가 달라지거나 등의 이유로 계속해서 친구가 줄어들게 되는데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지만 밥 한 끼 먹자고 친구와 약속을 잡는 건 번거로운 일이죠. 그렇다고 혼자 밥 먹는 것은 여전히 서먹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국내 최초이자 최대 소셜다이닝인 온라인 플랫폼 ‘집밥‘을 만나고 왔습니다.

왼쪽에서 세번째가 집밥 박인 대표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박인: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님 팬입니다.
신림동 캐리: 아니, 제가 더 팬입니다. 저번에 D.CAMP에서 뵈었죠?
박인: 기억 안 나는데요.
신림동 캐리: 그러시구나….
팬이시라면서요….

박인: 페이스북에서 글을 읽으며 어떤 분인지 궁금했어요.
신림동 캐리: 뭐 특별한 거 있겠어요. 회사 다니는 직장인이죠.
박인: 혹시 인터뷰도 반말로 하나 궁금했어요.

설마요. 제가 그렇게까지 사회성 없는 인간은 아닙니다.
신림동 캐리: 자,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해보죠. 반말모드 ON. 일단은 집밥, 요즘 잘 나가는 것 같다.
박인: 아직 미흡한데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신림동 캐리: 컨설팅 회사 출신이라고 들었다.
박인: 맞다.
신림동 캐리: PPT의 신이시겠다.
박인: 아니, 요즘은 현업에서 나온 지 좀 오래되어서 감 떨어졌다.
신림동 캐리: 강남이었나 여의도였나?
박인: 여의도였다.
신림동 캐리: 나도 여의도에서 일했었다.
박인: 진짜? 어디?
신림동 캐리: 난 에스트레뉴 30층.
박인: 아, 그 이상하게 생긴 빌딩.
신림동 캐리: 진짜 이상하게 생겼지. 여의도 하면 진주집 생각난다.
박인: 아, 진주집!
신림동 캐리: 진주집 계속 더 커지고 있다. 나중엔 여의도백화점이 진주집 될 것 같다. 진격의 진주집이다.

그렇게 여의도 이웃이었다는 것 하나로 우리는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아, 진주집 맛있으니까 여의도 들를 일이 있으시면 다들 한 번 가보세요.

신림동 캐리: 컨설팅 회사, 뭐 요즘 하락세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선망의 직종 아닌가?
박인: 경영학과 졸업하고 어쩌다 컨설팅 회사에 들어갔다. 매일이 야근에 최고층에 앉아서 키보드 두드리기만 했다. 그러다 내가 뭐하는 짓인가 내가 PPT에 써넣고 있는 이 이야기들이 얼마나 현실성 없는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그만 두겠다고 했다.
신림동 캐리: 회사에선 뭐라던가?
박인: 처음엔 말리다가 나중에 이사님이 ‘그래, 넌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애.’라며 시원섭섭하게 보내주시더라. 그리고 놀았다. 백수가 되어서 원 없이 놀았다.
신림동 캐리: 엄마 아빠가 뭐라고 안 하시던가? 난 백수 때 냉장고에 있는 요구르트만 먹어도 엄마한테 ‘백수 주제에 입은 살아서! 물이나 마셔!’라는 구박을 들었었다.
박인: 부모님은 외국에 나가서 일하고 계신다.
신림동 캐리: 아, 완전 살판났겠구나.
박인: 아니다. 혼자 산지 10년 차여서 그런지 ‘집밥’을 잘 먹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우리가 먹는 밥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아침에는 후다닥 대충 때우고, 점심은 긴 줄을 서서 겨우 먹거나 밖에서 업무차 아무 거나 먹고, 저녁은 야근하기 위해 먹잖아. 문득 이건 식사라기보다는 사료에 가깝단 생각이 들었다. 그 기분이 참 싫더라. 그렇지 않나?
신림동 캐리: 난 뭘 줘도 잘 먹는 편이다. 그럼 박인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식사는 어떤 모습인가?
박인: 한 끼를 먹더라도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밥을 먹고 싶었다. 근데 일단 난 혼자 살고 마침 남자친구도 없고 친구들은 다 바빴다. 회사도 그만둔 상태이다 보니 더더욱 식생활이 피폐해져만 갔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다운 식사가 그리웠다. 그러다가 갑자기 옆집에서 카레 냄새가 나길래 무턱대고 가서 밥 좀 달라고 했다.
신림동 캐리: 그거 주거침입 아닌가?
박인: 그건 아니고 평소 인사 정도 하는 옆집 할머니셨는데 흔쾌히 카레를 나눠주셨다.
신림동 캐리: 아직 세상이 살만하구나. 그래서?
박인: 그걸 SNS에 올렸는데 사람들 반응이 좋은 거야.
신림동 캐리: 모니터에서 사람 냄새 나네요.
박인: 그래서 그걸 시작으로 페이스북 이벤트를 하게 되었고 그게 발전해 ‘집밥’이 됐다.
신림동 캐리: 어떻게 보면 그날 옆집 할머니가 카레를 만들지 않으셨더라면 집밥은 없었겠다.
박인: 그럴지도.
신림동 캐리: 그래서 그 할머니 댁엔 자주 가나?
박인: 그 이후로는 안 갔다.
신림동 캐리: 너무하잖아….

신림동 캐리: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만큼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좀 있을 것 같다.
박인: 집밥 모임은 주제나 관심사를 중심으로 모이는데, 그러다 보니 서로 취향이 비슷하고 솔로인 남녀들이 만나 많이들 사귄다. 커플 탄생은 이제 흔하고, 집밥에서 만나서 결혼까지 하신 분도 있다. 집밥을 정식으로 운영한 게 이제 1년이 조금 넘어가는데 벌써 그 사이에 결혼하거나 결혼을 눈앞에 두고 계신 커플이 있어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때마다 매우 뿌듯하다.

집밥은 사랑을 싣고!
신림동 캐리: 사실 나도 솔로일 때 너무 외롭다 못해 집밥을 통해 남자를 만나보려고 했었다.
박인: 나가보시지 그러셨나.
신림동 캐리: 그때 아는 남자와 집밥 사이트를 보며 ‘별별 모임이 다 있네. 나도 나가볼까?’ 했었는데 지금 그 지인과 사귀고 있다.
박인: 나 빼고 다 커플이지. 정작 나는 집밥에서 커플을 만들어주며 외롭게 살고 있다.

송창규님은 로켓펀치와 인터뷰한 이후로 소개팅이 쇄도하고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박인 대표님도 좋은 소식 기대해봅니다.

신림동 캐리: 아까도 말했지만, 집밥은 참 다양한 모임이 많은 것 같다. 취미 모임도 있고 봉사 모임도 있고 심지어 단체 미팅도 있더라. 대표로서 자랑할만한 집밥의 이벤트와 모임을 소개하면?
박인: 집밥에는 정말 집에 가서 밥 먹는 모임이 간혹 있다. 외딴 사람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나. 실제로 몇몇 분들이 하고 있는데 반응이나 후기도 정말 좋다.

신림동 캐리: 앵콜 어쩌고 하는 모임들은 뭔가?
박인: 인기 있거나 반응이 좋은 모임들은 다시 열린다. 그런 걸 앵콜 모임이라고 한다. 현재 와인 모임이나 직장인 점심 모임은 20차 수 넘게 모임을 연달아 하시면서 나름의 팬클럽을 만들어나가고 계신다. 모임을 계속 개최하시는 분들은 나름의 명성을 쌓아가시다가 강연자로 성장하셔서 출강까지 하시게 되었다 들었다. 또한, 집밥이 현재 서울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데 자발적으로 타 도시들, 부산, 대전, 대구, 전주 등 지방 주요 도시에서도 모임들이 생성된다. 이때까지 집밥 모임 참여하러 서울까지 원정 오시다가 이제 자신의 주거지에서 모임을 만드신다면서 만드시는데 그 모임들이 성공하면서 지방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림동 캐리: 근데 여기서 잠깐, 왜 사람들이 처음 보는 타인과 밥을 먹고 싶어할까? 난 처음 보는 사람과 만나는 것도 싫고 밥 먹는 건 더더욱 싫어서 이해가 잘 안 간다.
박인: 타인과 단지 밥을 먹고 싶어서 만나는 건 아닐 거다. 현재의 사람들과의 비즈니스적인 식사자리, 취향을 공유할 수 없는 식사자리가 싫어서 집밥에 온다고 생각한다. 다들 취향이 있고 이를 공유하고 싶은데 회사 동료와 그걸 나누긴 좀 그렇잖아.
신림동 캐리: 그렇지. 회사 사람들이랑은 사장님 욕이나 하는 거지.
박인: 집밥에선 공통의 주제가 있고 관심사가 있다.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자리이기에 나오는 게 아닐까.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 모임에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1인 가구가 전체인구의 24%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통의 필요성과 관계 형성에 대한 니즈가 높아지고 있죠. 소셜다이닝 집밥에는 ‘따뜻한 집밥’과 같은 다양한 모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림동 캐리: 대표님이 혼자 밥 먹어본 최고의 레벨은?
박인: 신림동 캐리님은 어디까지 해보셨는가?
신림동 캐리: 전 여대 출신에 친구가 없어서 그런지 아웃백도 혼자 잘 간다. 혼자 가면 빵 많이 줘서 좋다.
박인: 난 그것보단 저렙이다. 집에서 무한도전 보면서 밥 먹는 정도? 밖에서는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 외에는 없다. 편의점 라면 먹기도 안 해봤다. 그냥 밥 혼자 먹느니 굶고 만다.
신림동 캐리: 내가 그런 체질이었으면 매우 날씬해졌을 텐데 아쉽다.

제가 어릴 때 엄마가 어디서 사주를 봤는데 점쟁이가 저더러 1월 허허벌판에 버려놔도 잡초 뜯어 먹으며 살아남을 인간이라 말했다고 합니다.

신림동 캐리: 집밥을 운영하며 시스템적으로 힘들었던 일은?
박인: 사람이 만나는, 개인이 만나는 모임 플랫폼이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서비스이다 보니 초반에 특히 이해를 못 하시고 문의사항들이 많았다. 수동으로 전화로 이메일로 응대하는 부분이 많아서 자동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 초반에 힘들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자동화를 시키고 자주 물어보시는 질문들을 정리해두어서 개선되었다.
신림동 캐리: 얼마 전에 집밥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니 리뉴얼했던데 뭔가?
박인: 집밥 사이트를 반응형 웹으로 리뉴얼했다! 모바일 결제도 된다!
신림동 캐리: 반응형 웹이라고?
박인: 사용자의 다양한 환경에 웹 페이지가 레이아웃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모든 디바이스에서 최적의 상태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다.

집밥이 이번 리뉴얼을 통해서 국내에서 아직 그 사례를 찾기 힘든 최첨단의 ‘반응형 웹’ 사이트가 됐다는 걸 강조해달라 하십니다. 그렇다고 하십니다. 반응형 웹이 뭔지 궁금하시면 집밥 사이트 들어가 보시면 됩니다.

신림동 캐리: 생각해보니 내가 여자만 인터뷰하는 일은 처음인 것 같다.
박인: 여자를 싫어하는 거 아니셨나?
신림동 캐리: 그건 아니다. 정말 아니다.
박인: 남자만 노린단 이야기를 들었다.
신림동 캐리: 그랬으면 내가 돈을 받는 게 아니라 돈을 주고 회사 다녀야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튼 여자 CEO로서 느끼는 장단점이 있다면?
박인: 남자 CEO와 다른 점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꼬집어서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신림동 캐리: 굳이 말하자면?
박인: 딱히 모르겠다.

신림동 캐리: 우리 집밥은 다른 회사와 이런 점이 다르다?
박인: 구성원들에게 완벽한 근태의 자유를 허용한다. 대표가 가장 나이가 어리기에, 구성원들을 대표가 모시고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출퇴근 시간은 물론 업무장소, 모두 가장 구성원들이 가장 효율, 효과적인 방식으로 선택하시게끔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재택근무하시기도 하고, 영업이나 외근하시는 경우에도 회사 복귀 의무나 보고의 의무도 딱히 없다.
신림동 캐리: 회식은 하나?
박인: 회식은 집에서 삼겹살이나 오리를 구워먹으며 집밥 회식을 한다. 훨씬 맛있게 양질의 고기를 집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기에 다들 만족한다.
신림동 캐리: 그거 뒤처리할 때 힘들지 않나?
박인: 물론 힘들다.

저는 어머니로부터 고기와 튀김은 사서 먹는 게 진리라고 배웠습니다.

신림동 캐리: 박인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집밥’의 힘은 뭔가? 난 어머니가 음식 만들기를 싫어하셔서 솔직히 집밥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다.
박인: 우리 어머니도 음식 만들기를 즐기진 않으셨다. 우리 집도 외식이 잦았다. 집밥의 힘은 그 밥이랑 반찬이 맛이 대단히 있어서가 아니다.
신림동 캐리: 그럼?


박인: ‘식구’란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근데 점점 그 뜻이 무색하게 한 집에서도 다 같이 밥 먹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가 되어간다. 사회 나가서 같이 밥 먹는 건 식사라기보다는 비즈니스 미팅이나 끼니를 때우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
신림동 캐리: 맞아.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도 이제 좀 무색하다.
박인: 우리 ‘집밥’은 혼자 밥 먹기 싫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다. 새로움을 원하고 공감대 형성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랄까. 사람이 고파서 집밥에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채우고, 즐거움과 새로움을 얻고자 능동적으로 삶을 즐기는 분들이 집밥에 찾고 계신다. 앞으로도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식사를 할 때 생기는 소통과 공감의 힘을 같이 채워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