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뿌리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네오플라이센터

현대인은 정보의 홍수 속에 빠져있다고 합니다. 매일 쏟아지는 폭발적인 양의 정보 속에서 스스로 선택하기 힘들어하는 걸 넘어 피로를 호소할 정도라죠.

하지만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라 막막하다고 말합니다. 남들은 어디서 정보를 알아내는지 멘토도 많고 지원까지 받아오는데, 나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고 어디다 물어볼 곳도 없는데다 인터넷 검색은 쓸모없는 정보만 주죠. 누구도 내게 관심이 없고 도와주지 않는 냉혹한 현실에 무인도에 갇힌 것 같은 외로움마저 느끼실 겁니다. 이때 배구공 윌슨 같은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국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네오플라이센터에 찾아가 네오위즈게임즈 CTO이자 네오플라이 센터장이신 권용길님을 만나봤습니다.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권용길: 안녕하세요. 멀리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다.
신림동 캐리: 판교 판교 소문은 들었지만 처음 와봤는데 참으로 멀고도 험하다.
권용길: 아직 판교 테크노밸리에 교통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신림동 캐리: 건물을 둘러보니 외관이며 시설이 거의 호텔급으로 좋다.
권용길: 감사하다.
신림동 캐리: 근데 건물에 사람이 없는 걸로도 거의 호텔 같은 느낌이다.
권용길: 우리는 ‘여백의 미’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직 입주 기업이 다 판교로 오지 않아서 비어 보이는 것도 있다.

시설이 어마무지하게 좋습니다. 니가 다니는 그 사무실, 그 시설이 우리 회사였어야 해. (BGM – 박진영의 ‘니가 사는 그 집’)

신림동 캐리: 자, 그럼 이제부터 질문하겠다.
권용길: 해봐라.
신림동 캐리: 대체 네오플라이센터는 왜 생겼는가?
권용길: 응?
신림동 캐리: 요즘 카카오톡이나 SNS를 통해 스타트업에서 만든 게임이 대박을 치고 있다. 근데 네오위즈는 게임 회사잖나. 어떤 의미에서는 네오위즈와 라이벌 구도가 될 수도 있는데, 왜 스타트업을 도와주고 상생하려고 하는가?
권용길: 일단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사회 환원 사업은 아니다.
신림동 캐리: 그럼?
권용길: 최근에 게임계가 다양한 부침을 겪으면서 신규 성장 동력 사업을 모색하고 있었고 그런 기획의 일환이다. 지금 우리가 발굴해서 이렇게 키운 기업들이 나중에 네오위즈의 동반자가 되길 바란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미래의 네오위즈 CEO가 될만한 사람을 찾는다고도 할 수 있다.
신림동 캐리: 뭔가 엄청난 프로젝트로 들리는데 언제부터 네오플라이센터를 준비했는가?
권용길: 이그나잇스파크의 최환진 대표님과 함께 2008년부터 스타트업 인큐베이팅부터 벤처 투자, 유망 기업 입주 기회까지 제공하는 종합 스타트업 지원센터를 기획했다. 근데 공간이 가장 문제였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그 기업이 어떻게 얼마나 커가는지 봐야 하는데, 곁에 있으면서 긴밀하게 서로 도와줄 만한 기회가 잘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판교 사옥이 생기면서 독립된 사무 공간을 갖게 됐다.
신림동 캐리: 그래서 인제야 본격적으로 투자하게 된 건가?
권용길: 네오플라이센터가 생기기 전에도 투자는 해왔다. 판교 사옥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소규모 회사들에게 투자할 수 있게 된 거다. 어떻게 보면 네오플라이 자체도 스타트업인데, 입주 기업과 함께 고민하고 시장을 개척해나가고 싶다. 파트너 관계로서 서로 윈윈할 모델을 찾아가고 싶은 거다.

신림동 캐리: 이런 좋은 취지로 시작했는데 D.CAMP프라이머에 비해 별로 안 알려진 것 같다.
권용길: 저희가 잘못한 점 중의 하나다.
신림동 캐리: 네오플라이센터가 생긴지 반년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다. 근데 공식 홈페이지도 없고 기사를 찾아봐도 정보가 많이 없더라.
권용길: 말씀하신 대로 홍보가 잘 안 됐다. 그건 우리의 잘못이다. 좀 더 페이스북 기능을 강화하거나 따로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내부를 알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신림동 캐리: 아직 공식 홈페이지도 없다니 너무하는 거 아닌가?
권용길: 솔직히는 공식 홈페이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우리가 전달할 메시지가 있는데 생각했던 것만큼은 알려지지 않았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았다. 홈페이지를 잘 만드는 것보다는 우리가 발굴한 스타트업이 성공하면 저절로 네오플라이도 알려질 거라 생각했다.
신림동 캐리: 근데 입주 조건이나 프로세스 정도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알려줘야 더 많은 스타트업이 네오플라이에 접근할 수 있을 거 아닌가?
권용길: 네오플라이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려놨다.
신림동 캐리: 근데 페북도 너무 관리가 안되잖? 그리고 페이스북은 타임라인이라 새로운 정보가 생기면 묻히잖?
권용길: 그래서 페이스북 상단에 그 게시물을 고정해놨다.

신림동 캐리: 판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권용길: 난 대체로 다 괜찮다. 80%는 만족한다. 길거리가 깨끗하고 맛집도 많고 해서 지내기 좋다. 주차 공간이 좀 부족한 편이긴 한데 지금 각 회사마다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신림동 캐리는 버스도 택시도 오지 않는 허허벌판에 20분간 서 있었습니다. 이제 판교를 신이 버린 땅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근데 다음 주 월요일에 또 판교에서 인터뷰가 있네요.

신림동 캐리: 네오플라이센터의 입주 경쟁률이 상당히 높다고 들었다. 합격의 팁을 좀 알려주신다면?
권용길: 면접의 기술 같은 건가?
신림동 캐리: 그래, 그런 숨겨진 조건!
권용길: 그런 건 진짜 없는데?
신림동 캐리: 없다고만 하지 말고 생각해봐라.
권용길: 심사위원 중에서 한 사람의 마음에는 확실히 들면 좋다는 것 정도일까? 그게 자신이 가진 서비스일 수도 있고 인간적 매력일 수도 있다. 심사위원 한 명이 강하게 밀고 나가면 그 사람이 멘토가 되어 계속 관리하는 구조다. 심사위원도 제각각 성향이 다 다르니까 ‘이러니까 잘 뽑힌다!’라고 말하긴 좀 힘들다. 굳이 말하자면 네오위즈 게임을 좋아해야 하나? 이건 농담이고, 이전에 실패든 성공이든 경험이 있으면 유리한 편이다.
신림동 캐리: 한마디로 일반적인 스펙보다는 필이 꽂히는 게 중요하단 건데, 이건 며느리 뽑는 방식 아닌가? 한마디로 시어머니 마음에 드는 게 최고라는 거?
권용길: 80%의 경우는 거의 의견이 같다. 가끔 그렇게 심사위원 한 명이 어디에 꽂혀서 ‘내가 이 팀을 책임지겠다.’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신림동 캐리: 다른 인터뷰에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의 역할은 흔히 생각하듯 성공을 가속화하는 것보다 실패를 가속화하는 거다.’라고 하셨다.
권용길: 그렇다.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은 평균이 실패고 성공이 아주 극소수라고들 한다. 최근 스타트업 붐으로 하루에도 몇백 개 스타트업이 생겨나지만 살아남아 엑시트(투자회수,Exit)한 기업은 아주 손에 꼽을만하다.
신림동 캐리: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권용길: 일단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환영받을 확률이 예전보다 전혀 높아지지 않았다. 연타석 홈런을 날리는 경우도 거의 없다. 정말 성공을 알 수 없는 시장이다. 우리 같은 대형게임 개발사조차도 시장을 예측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스타트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 높다. 95% 이상은 실패한다고 보면 된다.
신림동 캐리: 될 수 있으면 스타트업 시작하지 말란 소린가?
권용길: 그건 아니다.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 인디언의 기도가 영험해서가 아니라 비가 올 때까지 기도하니까 그런 거다. 우리는 그렇게 성공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그런 성공까지 겪게 될 고통의 시간을 덜 힘들게 해줄 수 있는 게 우리 액셀러레이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신림동 캐리: 여자가 제일 싫어하는 남자의 병이 오빠병, 나쁜 남자병과 더불어 사업병이라고 한다. 맨날 사업한다며 밑천 말아먹는 남자를 피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권용길: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가 사업하면 큰일나지!



네오플라이센터에는 마이리얼트립, 아이엠컴퍼니, 가치온소프트 등 12개 업체가 입주해 있습니다.

신림동 캐리: 요즘 D.CAMP라거나 프라이머라거나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다양한 재단이 있다. 네오플라이센터가 내세우는 입주 혜택은 뭔가?
권용길: 일단은 입주하면 건물 관리비가 없다. 관리비 정도는 받는 곳도 있거든. 네오플라이센터는 그냥 다 지원한다.
신림동 캐리: 오!
권용길: 그리고 무엇보다 밥이 맛있다. 여기 들어온 네오플라이센터 가족들이 한결같이 밥 맛있다고 말한다. 현재는 식사 쿠폰과 음료수 쿠폰도 입주 기업에게 지원하고 있다.
신림동 캐리: 판교에 먹을만한 식당이 없어서 그냥 여기서 먹을 수밖에 없다고 하던데?
권용길: 아니다. 진짜 우리 식당 맛있다. 꼭 먹어봐라.

그래서 먹어봤습니다. 진짜로 맛있네요. 다음에도 구내식당 있는 회사에 가면 ‘여기 밥이 별로라면서요?’라는 말을 꺼내 밥을 얻어먹어야겠습니다.

신림동 캐리: 우리 로켓펀치 사이트가 스타트업 채용을 돕는 곳이지 않나. 벤처를 인터뷰하면 제일 힘든 부분이 인재 모으는 거라고 한다. 인재는 유학 가거나 대학원 가거나 자기 사업을 하지 스타트업에 잘 안 온다고 말이다. 인재 꼬시는 방법을 좀 알려달라.
권용길: 이건 정말 극비인데?
신림동 캐리: 제발 좀 알려주십시오.
권용길: 주변을 봐도 그렇고, 내 경험에도 보면 학교 후배를 잘 꼬드겨야 한다. 후배는 평소에 밥 사주고 가끔 치맥 사주고 동아리에 PC 사주고 그런 선배를 좋아하게 되어 있다, 요즘 그래서 막 학교에 찾아가 애들 밥 사주고 있다. 그렇게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가다 괜찮다 싶은 인재가 있으면 꼬드긴다. 이런 작전이 요즘 하반기 들어서 효과를 맺고 있다.
신림동 캐리: 역시 치맥 앞에 장사 없다!

신림동 캐리: 매일 수많은 스타트업을 보고 만나실 것 같은데, 이런 점이 안타깝다고 생각하시는 부분 있나?
권용길: 많지. 아까 네오플라이센터 면접 비결에 대해 물어보셨는데 개인적으로는 뭔가 완벽한 모습보다 살짝 비어있어서 네오플라이가 채워줄 수 있는 걸 좋아한다. 사람 좋고 돈 잘 벌고 기술도 좋고 그러면 그들 스스로 잘 되게 두어야지. 근데 구멍이 너무 많거나 구멍만 있는 경우를 본다. 열정만 있다든가 돈만 있다거나 기술만 있는 스타트업 말이다. 그렇게 밸런스가 맞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밀고 나가는 걸 보면 안타깝다.

신림동 캐리: 그럼 반대로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이런 점이 다르다거나 이래서 성공할 줄 알았다 하는 케이스는 있나?
권용길: 아까 이야기했는데 실패하더라도 계속해서 가는 회사? 스타트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늘 존재하기 때문에 작게 시작하는 게 좋은 것 같다. 너무 크게 시작하면 실패했을 때의 데미지가 크잖나. 시작에 대한 겸손과 스몰 사이즈 창업은 네오위즈의 정신이기도 하다.
신림동 캐리: 잃을 게 없으면 무서울 게 없다고도 하지.
권용길: 시작이 작아서 조그마한 성공 케이스가 나오면 창업자와 멤버 모두에게 엄청난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한다. 올해 시작한 네오플라이 3기가 아직은 씨앗 뿌리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조그맣게라도 성공의 싹이 튼다면 우리 안에서 굉장히 유의미한 시작이 될 거다.

실수가 만드는 좀 더 편한 세상, 웁스랩

제4회 프라이머 데모데이 2013에 가셨던 분들이라면 이 얼굴을 기억하실 겁니다. 범상치 않은 외모에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신개념 교통문화에 대한 유머러스한 PT를 펼쳐 많은 박수를 받았죠.

2013년 9월 26일, 신림동 캐리가 웁스랩이 있는 D.CAMP에 방문했습니다.

신림동 캐리: 여기가 웁스랩인가요?
권영인: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권영인 대표님이시죠?
권영인: 근데 잠시만 좀 기다려주실래요?
신림동 캐리: 바쁜 업무가 있으신가요?
권영인: 그건 아닌데 지금 여자친구로부터 헤어지자는 문자가 와서요.

인터뷰는 처음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권영인: 아, 이제 다 됐습니다. 인터뷰하시죠.
신림동 캐리: 잘 달래셨어요?
권영인: 아뇨, 헤어졌습니다.

인터뷰 시작하자마자 집에 가고 싶어진 적은 처음입니다. 하지만 월급을 떠올려봅니다. 1원까지 긁어가는 카드값과 부모님께 뜯긴 추석 용돈도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신림동 캐리: 왜 회사 이름이 ‘웁스랩’인가?
권영인: 서양에서 놀라거나 실수하면 ‘OOPS!’라고 말하잖나.
신림동 캐리: 그렇지.
권영인: 보통은 실수를 부정적인 단어라고 생각하지만, 인류사를 쭉 보면 실수로 새로운 발견을 하는 일이 많더라. 그래서 우리도 우연이나 실수를 통해 세상이 바뀐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신림동 캐리: 아하, 세렌디피티 같은 거군.
권영인: 그렇다.

신림동 캐리: 웁스랩 이전에 또라이들이라는 회사를 하셨다고 아는데 대체 그 이상한 이름의 회사는 뭔가?
권영인: 생방송 토크쇼였다.
신림동 캐리: 이름이 범상치 않은데 라디오에서 뭔 이야기를 했나?
권영인: 이름처럼 또라이 같은 이야기였다. 또라이라는 어감이 이상한 거 안다. 근데 ‘이 또라이는 뭐야?’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왔고 앞으로도 바꿀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에 흩어져있는 또라이들을 찾아 그들의 인생이나 이야기를 영상콘텐츠로 만들어 공유하는 게 또라이들의 목표였다. 우선 모집 홍보영상을 만들어 배포했고 그걸 보고 전국에서 모인 12명이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상으로 제작했다.
신림동 캐리: 오, 흥미진진하다. 결과는 어땠나?
권영인: 생방송으로 하는 토크쇼 형태의 또라이TV를 진행하다 망했다.
신림동 캐리: 아직 한국 정서가 그런 게 아니다.

신림동 캐리: 그래서 어쩌다 IT계에서 사업을 하게 되신 건가?
권영인: 솔직히는 그냥 멋있어 보여서 시작했다. IT업계에서 사업한다고 하면 스마트해 보이고 혁신가 같지 않나?
신림동 캐리: 나에게 IT업계란 어릴 적부터 음침하게 컴퓨터 많이 하던 애들이 커서 야근하다가 허리 디스크 걸리는 느낌인데?
권영인: 그건 업계 사람이니까 그렇고 겉으로 보면 그렇잖아.
신림동 캐리: 여전히 모르겠다.
권영인: 말이 안 통하는군. 아무튼 20대 초반에 공익 근무를 하면서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공익이 끝나면 여태까지 모은 돈으로 세상을 유랑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막상 자유의 몸이 되고 나니 내 젊음으로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사람을 모아 ‘홍대 뽀개기‘라는 안드로이드앱을 만들었다.
신림동 캐리: 어떤 앱인가?
권영인: 이상형 월드컵 형식으로 사용자의 취향을 수집해 홍대 맛집이나 클럽을 추천하는 거다. 꽤 잘 되어서 엔젤 투자도 받았었다. 그러다 멤버 간의 운영 방향이 맞지 않아서 사업을 접었다.

신림동 캐리: 나이에 비해서 사업 경험이 많으신 편이다. 무슨 계기라도 있었나?
권영인: 어릴 적에 한국청소년벤처포럼에서 활동했었는데 그때 위자드웍스의 표철민 대표님을 보고 저렇게 되어야지 생각했었다.
신림동 캐리: 표철민 대표님 멋있으시지. 서울벤처인큐베이터의 ‘닮고 싶은 창업가 롤모델 20’에도 뽑히셨고!
권영인: 나중에 그분을 동경해서 위자드웍스에 이력서 썼는데 떨어졌다.
신림동 캐리: 아아!
권영인: 근데 나중에 개인적으로 응원 메시지를 보내오셨더라.
신림동 캐리: 훈남인데 심지어 상냥해.
권영인: 아무튼 그렇게 지원한 몇 군데 회사에 다 불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창업과 관련한 세미나, 모임 등을 닥치는 대로 시도했다. 몇 달 동안 고민하고 내린 결론은 내가 직접 사업을 하자는 거였다.

신림동 캐리: 프라이머 데모데이 2013에서 히쳐 PT 잘 봤다. 이 인터뷰를 읽으실 독자들을 위해 히쳐 서비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 부탁한다.
권영인: 대한민국은 ‘교통의 비효율’이 심각하다. 그래서 웁스랩은 자가용을 통해 혼자 이동하고 있는 운전자와 자동차 없이 이동하는 탑승객을 연결하는 걸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히쳐는 LBS를 이용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이다. 히치하이킹에서 모티브를 딴 실시간 라이딩쉐어 서비스로 지금 나에게 가장 가깝고 믿을 만한 운전자와 탑승객을 이어준다.
신림동 캐리: 히치하이킹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권영인: 우리 집이 수원이다. 서울에 올 때마다 지하철은 지옥철이고 버스는 만원이었다. 그래서 짜증이 나는 거다. 길거리에는 저렇게 쌩쌩 가는 차가 많은데 그걸 잡아타고 싶었다. 근데 탈 용기가 없었다.
신림동 캐리: 그건 용기 문제가 아니다. 갑자기 남의 차에 타면 범죄다.
권영인: 아무튼 그래서 운전자의 신상과 이동 정보를 알고 근처 탑승객의 정보를 안다면 함께 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림동 캐리: 뭔가 나이트클럽의 즉석 만남 같은 느낌인데?
권영인: 처음엔 가상의 돈을 내면 다른 사람의 차량을 빌려 쓸 수 있게 하는 서비스를 기획했다. 근데 법적인 문제가 있었다.
신림동 캐리: 그렇지. 돈을 받으면 그게 택시지 히치하이킹이 아니지.
권영인: 그래서 무료로 차를 태워주는 방식으로 바꾸고 다른 곳에서 수익을 내는 모델을 찾았다.

신림동 캐리: 근데 왜 운전자가 길에서 모르는 사람을 태울까? 난 차가 없지만 내 차가 생긴다면 남 태우기 싫을 것 같다.
권영인: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차를 가진 운전자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 각각 10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운전자에게 ‘운전을 하면서 기름값이 얼마나 부담스러운가?’하는 질문을 던졌더니 의외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대답하시더라.
신림동 캐리: 설문 대상이 페라리 동호회인가?
권영인: 나는 그게 굉장히 부담스러울 거라 생각했는데, 차를 가질 정도로 여유 있으신 분들은 의외로 그렇지 않은가 보더라.
신림동 캐리: 난 계절 바뀔 때마다 세탁소에 드라이클리닝 맡기는 돈도 아까운데!
권영인: 아이템을 기획할 때는 얼리어답터와 이노베이터를 타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통하면 대중에게 퍼질 수 있다.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나 소유의 개념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누리는 커뮤니티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그런 쿨한 운전자가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기능적으로 신뢰도를 주는 앱을 만든다면, 그것을 기반으로 타인과 관심사를 나누고 소통하는 니즈가 생길 거라고 믿는다.
신림동 캐리: 그럼 수익은 어떻게 만들 생각인가?
권영인: 운전자가 사람을 태워주면서 자동차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의 운영자가 되는 거다. 많이 태워줄수록 그 커뮤니티는 확장되겠지. 그렇게 모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자신의 관심사를 반영한 모임을 열 수 있다.
신림동 캐리: 모임이라고?
권영인: 맛집 투어가 될 수도 있고 여행 모임이 될 수도 있다. 운전자가 모임을 여행사 패키지처럼 판매하고, 웁스랩은 그 패키지 판매에 대한 수수료를 받을 예정이다.

신림동 캐리: 그럼 반대로 왜 승객이 처음 보는 사람 차에 탈까? 2009년 강호순 사건도 있고 한데 여성분들이 모르는 사람 차에 탈까 의문이다.
권영인: 하지만 카우치 서핑이 세계적으로 퍼졌잖는가. 모르는 사람의 집에 가서 자기도 하는데 차라고 다를 거 있을까?
신림동 캐리: 그렇게 말하니 그럴싸한데?
권영인: 히쳐는 그런 범죄에서 운전자와 탑승객을 보호하기 위해 운전자 등록 인증 및 본인 인증, 휴대폰 인증 등 신뢰도 형성 시스템에 가장 큰 신경을 쓰고 있다.

신림동 캐리: 웁스랩의 멤버는 어떻게 모였는가?
권영인: 내가 블로그에 웁스랩 사업에 대한 글을 썼고, 그걸 공유해서 사람을 모았다.
신림동 캐리: 원래는 모르는 사이였나?
권영인: 전혀 안면이 없던 사이다.
신림동 캐리: 오, 이것이 바로 SNS의 힘!

신림동 캐리: 저기 구석에서 일하는 척하고 계신 미모의 기획자분께 묻겠다. 자신이 생각하는 웁스랩의 장점은?
하예영: 분위기가 편하다?
신림동 캐리: 진짜 편한가?
하예영: 가족처럼 친하다.
신림동 캐리: 그럼 왜 권영인 대표님이 여자친구와 헤어졌을까?

사무실에는 정적이 흘렀습니다.

신림동 캐리: 월급을 밀린 적 있나?
하예영: 그럴 수가 없다.
신림동 캐리: 응?
하예영: 우린 월급이 없으니까.
신림동 캐리: 뭐라고!

카드값의 노예인 신림동 캐리는 웁스랩의 월급이 없다는 사실에 엄청난 멘붕을 느꼈습니다.

신림동 캐리: 월급 안 받고 왜 일하나?
하예영: 원래 다른 회사에 다녔었다. 근데 매일 같은 일상에 지치고 월요일에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에 일요일 밤이 되면 눈물이 나려고 했다. 반복되는 나날이 싫었다.
신림동 캐리: 근데 반복되는 월급이 나왔을 거 아닌가.
하예영: 지금 웁스랩은 프로젝트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모인 사람들과 일하는 회사다. 그래서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내가 좋아서 하는 분위기가 참 좋다. 예전에 월급 받으며 회사 다닐 때보다 삶의 질이 올라간 느낌이다.
권영인: 예전에 사업을 몇 번 정리하면서 느낀 게 있었다. 결국 같이 일하는 사람이 제일 중요하단 거다. 그래서 직원을 구하는 과정에서 신경을 많이 썼고 지금도 멤버들과 많은 생각을 공유한다. 직원과 삶을 같이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신림동 캐리: 나는 일 끝나면 남 같은 프라이스톤스에 다니고 있는데, 그렇게 친하면 일하는 데에 방해되지 않나?
권영인: 그게 모순적으로 일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내가 지금 여자친구와 헤어졌잖아. 그러면 일에 집중이 안 되겠지. 근데 멤버들과 그런 슬픔을 나누면 빨리 극복해서 일의 능률이 올라가는 거지.

지금쯤 권영인 대표님의 상처가 아물었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신림동 캐리: 히쳐라는 서비스에 대해서 모두 필요성을 느끼나?
하예영: 웁스랩 직원이 현재 네 명인데 각각 수원, 의정부, 성남에 살고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이 서비스를 간절하게 추진하고 있다.
신림동 캐리: D.CAMP가 선릉역에 있어서 출근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권영인: 그래서 격일로 출근한다. 토요일에 전체 미팅을 하고 밥을 같이 먹는다.
신림동 캐리: 월급은 없는데 사내복지제도는 있나?
권영인: 일단 자유로운 근무 환경이 있고, 출근하면 밥을 사준다.
신림동 캐리: 밥 사주는 돈은 어디서 나는가?
권영인: 중소기업청에서 진행하는 앱 창작터 사업자로 선정되어 시드머니를 확보했다.

신림동 캐리: 웁스랩을 비롯해 많은 초기 스타트업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면서 일하고 있다. 힘들지 않은가?
하예영: 우리가 풀고 싶은 문제를 우리 방식으로 해결해나가고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같은 목표를 향해 모인 사람들끼리 공감할 수 있는 코워킹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권영인: 넉넉한 상황은 아닌데 막 부족한 상황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UKOV 대학생벤처기사단 멤버 덕분에 D.CAMP에서 사무실을 쓰고 있고, 우리끼리 모여서 밥 먹을 정도의 돈은 있으니까.

신림동 캐리: 서비스는 언제부터 시작인가?
권영인: 11월에 안드로이드 버전이 나온다. 회사가 많지만 비교적 교통이 불편한 판교 테크노밸리, 파주 출판단지, 서울대입구 부근에서 시작할 것 같다.
신림동 캐리: 히쳐를 통해 한국의 교통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꾸시길 바란다.

10년 뒤가 더 기대되는 개발자, 김용하

만화나 게임, 드라마가 한 소년소녀의 인생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제 친구 하나는 어릴 때 본 드라마 ‘카이스트’ 때문에 공대에 진학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박사 논문을 쓰며 ‘그때 내가 드라마 종합병원을 봤어야 했는데!’라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의 히로인 ‘린 민메이’를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린 민메이의 러브송은 젠트러디인에게만 쇼크를 일으킨 게 아닙니다. 린 민메이의 노래를 듣고 자란 이 소년은 무럭무럭 자라서 게임업계에 들어가 많은 마비노기 폐인을 만든 뒤에 린 민메이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두 딸을 낳고 각각 ‘린’과 ‘민’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린 민메이의 생일인 10월 10일을 맞아 스마일게이트의 테크니컬 디렉터 김용하님을 만나봤습니다.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김용하: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 전설의 그분을 드디어 뵙는구나.
김용하: 무, 무슨 전설?
신림동 캐리: 다 아시면서! 어차피 나중에 물어볼 거니까 마음의 준비나 해둬라.
김용하: 벌써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신림동 캐리: 그저께 국회에서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게임을 마약, 알콜, 도박과 더불어 국가가 나서서 관리해야 할 4대 중독 대상으로 정했다. 어쩌다가 이 사회악의 소굴에 들어오시게 된 건가?
김용하: 석사 과정을 마칠 무렵, 계속 대학원에 진학할까 아니면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개발을 해볼까 고민했었다. 그러다 역시 진학보다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취직을 결정했다.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병특이 되는 회사를 찾다 판타그램에 들어갔다. 대학원에서 계속 공부를 하기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고 싶단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아, 내가 왜 그랬을까. 대학원 가는 것도 괜찮았을 텐데!’하고 후회할 때도 있다.
신림동 캐리: 그렇게 계속해서 게임을 만들게 되신 건가?
김용하: 판타그램에서 병특으로 킹덤언더파이어라는 게임을 만들고 그걸로 석사를 논문을 썼다. 그러고 나서 넥슨으로 병특을 옮겼다.

신림동 캐리: 넥슨에 10년 가까이 있으셨던 걸로 안다.
김용하: 들어갈 때는 그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다!
신림동 캐리: 10년이나 계셨으면 이런저런 다양한 일을 해보셨겠다.
김용하: 기본적으로는 개발을 주로 했지만 개인적으로 인재 육성, 발굴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마비노기 테크니컬 디렉터로 일하면서도 면접관으로 채용에 자주 참여했다.
신림동 캐리: 랜덤 문제를 좋아하신다고 들었다.
김용하: 어떻게 그런 걸 아시지!
신림동 캐리: 인터뷰하기 전에 다 조사하지. 그리고 프로그램스의 박태훈 대표님이 예전에 넥슨에서 병특 면접 보실 때도 김용하님께서 면접관으로 랜덤 문제를 내셨다고 들었다.
김용하: 그렇지. 랜덤 문제를 좋아한다. 그렇게 인터뷰 자리에서 문제를 내기도 하지만 넥슨 서류심사에 합격하면 제출해야하는 과제가 있는데 그것도 담당했었다. 또 ‘NDC‘라고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를 기획해서 다른 분들과 함께 추진하기도 했다.

신림동 캐리: 근데 그렇게 오래 일하고 익숙한 회사를 나오시게 된 이유는 뭔가?
김용하: 물론 다른 일도 다 힘들겠지만, 게임 개발은 실력과 운과 환경 모두 따라줘야 하는 것 같다. 난 신규 게임을 만들어서 출시까지 하시는 모든 분을 다 존경한다! 아무튼 신규 프로젝트 관련해서 좋은 제안을 받아 넥슨에서 일하던 분들과 함께 아이덴티티게임즈로 옮기게 됐었다.
신림동 캐리: 아이덴티티게임즈는 멋진 사무실과 수영장으로 유명한 회사잖나.
김용하: 그렇지. 그때 아이덴티티게임즈에서 드래곤네스트라는 게임을 내놨었는데 중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었다. 그 게임 덕분에 여유가 생겨 회사가 환경적으로 개발자에게 많이 투자해줬다.
신림동 캐리: 수영장은 좀 쓰셨나?
김용하: 개발자라는 사람들이 어릴 적부터 컴퓨터와 놀던 사람들이잖아.
신림동 캐리: 그렇지.
김용하: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서 운동하는 게 쉽지 않더라. 열심히 하시는 분은 또 잘 이용하시던데 난 그게 쉽지 않더라. 지나갈 때마다 그냥 멋지다고만 생각하고 지나갔다. 게다가 같이 일하는 사람끼리 수영복 입고 부딪치는 게 좀 부담스럽거든. 그렇게 수영장은 점점 남탕이 되어갔다.
신림동 캐리: 아, 역시 그렇게!

신림동 캐리: 그러면 여기서 잠깐 질문이다. 내 인생의 게임은?
김용하: 어린 시절에 각인된 감동으로 치면, YSII와 YS4, Final Fantasy7 정도일 듯? 최근 게임들이 만듦새는 훨씬 훌륭하지만, 역치가 올라간 건지, 인생의 궤적에 영향을 줄 만한 게임은 만나기 힘들어진 것 같다. 그래도 요 몇 년 중에 나온 게임 중에서 꼽으라면 Journey(2012)가 좋았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로 활동하시다 테크니컬 디렉터가 되셨다. 어쩌면 개발자의 바람직한 미래상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개발자일 때와 테크니컬 디렉터일 때는 어떻게 다른가?
김용하: 본인이 작성한 코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작업할 부분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고, 그 결과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업자에게 동기 부여를 하고 마찰 없이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프로그래밍이 아닌 다른 파트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등의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한다.
신림동 캐리: 예전엔 컴퓨터만 상대했다면 이젠 사람을 상대로 하는 작업이 많군.
김용하: 그렇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업무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하지만 모든 개발자가 따라가야 할 발전 방향은 아닌 것 같다. 굳이 TD 커리어패스를 가지 않고도 성취를 이루는 개발자들도 많고, 나 또한 컴퓨터와 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그리울 때가 많으니까.

신림동 캐리: 테크니컬 디렉터로서 음악, 디자인, 개발 등의 모든 것을 총괄하시는 만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트렌드를 파악하셔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부분에 대해 개인적으로 노력하시는 방법은 뭔가?
김용하: 신경을 써서 노력하는 건 별로 없다. 그냥 새로운 걸 좋아하고, 궁금한 게 생기면 시원할 때까지 찾아보는 성격이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취향에 맞는 몇 개의 사이트를 PulseGoogle Currents 같은 어그리게이션 서비스를 통해 모아본다. 그렇게만 해도 워낙 정보량이 많아 적당한 선에서 커트하는 게 나중엔 더 어렵더라. 그래서 무작위로 서핑하는 경우, 빠져나오기 쉽도록 킥 음악…이 아니고 뽀모도로 타이머 같은 걸 걸어 놓는다.

신림동 캐리: 자, 이제 민감한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네이버 이미지에 ‘오타쿠 부부’라고 검색하면 김용하님과 아내분 사진이 나온다.
김용하: 그 방송이 나간 지 몇 년이 됐는데 아직도 인터넷 게시판에서 가끔 본다. 그럴 때마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신림동 캐리: 대체 어쩌다가 그런 방송에 나가게 됐는가?
김용하: 그 이전에도 가끔 개발과 관련된 일로 방송에 나간 일이 있었다. 그래서 방송 출연 자체에는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 그러다 부부가 함께 방송에 나오면 어떻겠냐는 섭외를 받고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러다가!
신림동 캐리: 인터넷 게시판에서 ‘전생에 나라를 구한 남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용하: KBS ‘부부별곡’이라고 아침 시간대였나 아무튼 그렇게 사람이 많이 보는 시간대 방송이 아니어서 괜찮겠지 방심했는데 인터넷이 무섭더라.
신림동 캐리: ‘오빠를 좋아하지만 이 나무 바깥으로 나올 수 없는 느낌으로’라는 주옥 같은 멘트를 남기셨다.
김용하: 분위기를 타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신림동 캐리: 아무튼 미모의 아내분을 두셔서 인터넷에서 뭇 남성들로부터 많은 부러움을 받으셨는데, 후배 공돌이나 개발자에게 하고 싶은 연애 충고는?
김용하: 연애나 결혼 상대를 만나는 것은 일종의 최적화 문제라고 본다. 한 번에 최적해를 얻기는 어려우니, 시행착오를 감안하고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것이 좋다. 그 과정에서 연애 회로의 트레이닝과 성능 향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또, 처음부터 난이도가 높은 문제를 풀려고 하면 트레이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장기전이라고 생각해라. 여담인데, 본인에게 연애 기회가 총 10번까지 주어진다고 가정하는 경우에 처음 두 명은 버리고 세 번째 상대가 이전 두 명보다 나으면 찜하는 전략이 최적해에 가까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궁금하신 분은 몇 라인 안 되니 심심풀이 삼아 한 번 코딩해서 시뮬레이션 돌려보시길!
신림동 캐리: 너무 현실적이고도 오타쿠스러운 조언이라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미인을 얻으신 분의 조언이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참 그렇습니다.

신림동 캐리: 어릴 적에 린 민메이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딸 둘의 이름을 각각 ‘린’과 ‘민’이라 지으셨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김용하: 사실이다.
신림동 캐리: 설마 설마 했는데! 따님들은 거기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용하: 아직 모른다. 나중에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지었냐고 물어보면 일단 와이프 이름(김미리) 각 글자에 받침 붙여 만들었다고 얘기할 것 같다. 원래 출생의 비밀은 끝까지 지키고 있다가 우연히 알게 되는 것이 제맛이지!

언젠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될 첫째 린이입니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는 보통 바쁘고 야근도 많다.
김용하: 그렇다.
신림동 캐리: ‘자기, 요즘 나에게 너무 소홀해!’라며 속상해하는 아내분을 달래주는 비법이 있나?
김용하: 일단 의류업계 MD인 아내가 나보다 더 바쁘다. 사람들이 개발자를 두고 힘든 직업이라 하는데, 주변을 보면 난 차라리 양반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와이프만 봐도 매일 야근에다 해외 출장이 무척 잦고, 내 동생은 광고 업계에서 일하는데 거긴 진짜 3D더라! 아무튼 아내가 삐쳤을 때는 비장의 필살 개그를 펼쳐 보인다. 최근에는 두둠칫 댄스를 효과음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근데 한 번은 통하지만 두 번째는 안 통하더라. 혹시 아내의 화를 풀어주는 좋은 방법 아시는 분은 제게 좀 알려주세요.

신림동 캐리: 결혼 전과 후에 직장과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기준이 변했나?
김용하: 결혼 때문에 크게 바뀐 건 별로 없다. 근데 아이를 낳은 뒤에는 직장이나 프로젝트의 안정성에 대한 가중치가 올라간 것 같아 스스로 좀 불만이다. 아이를 좀 천천히 낳을걸! 주말에 아이들 돌보느라 MP 충전이 잘 안 된다.

신림동 캐리: 키보드는 뭘 쓰시나?
김용하: 회사에서는 토프레 Real Force 89키 짜리를, 집에서는 맥북에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 저것 써봤더니 내가 키보드에 크게 민감하지 않은 편이라 더 이상의 투자는 자제한다. 싸구려 멤브레인만 아니면 견딜 수 있다.

신림동 캐리: 난 이 소프트웨어와 도구 없이는 살 수 없다?
김용하: 크롬 + Vimium은 웹서핑의 진리인 것 같다. 하악하악! 그거 말고는 파일 검색용으로 (search) Everything, 자료 보관/백업/싱크/버전 관리용으로 드랍박스, 클립보드 매니저로 ditto, 단축키 제어용으로 AutoHotKey 정도?

신림동 캐리: 업무와 관련해 최근에 읽은 인상적인 책이 있다면??
김용하: 내 전공이 인공지능이다. 인간의 뇌에 게임 요소를 흥미롭게 느끼도록 하는 hard-wired 회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왔는데, 최근 진화 심리학 서적에서 유사한 내용을 찾아 재미있게 읽었다.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분야이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게임 관련 컨퍼런스에서 이 주제로 발표해보고 싶다.

신림동 캐리: 최근에 구매했던 것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건?
김용하: 올해 질렀던 것 중에서는 23andme의 유전자 검사 서비스! 유전자 발현체로서의 자신의 의미에 대해 돌아보는 기회였다. 예를 들어서, 내 Y염색체 부계 유전자는 하플로그룹 D2에 해당한다. D2형은 한국에 미미하게 있지만 아이누족의 80%에 해당되는 유전자라는 것을 알았는데, ‘내가 어린 시절에 나코루루를 특히 좋아한 이유가 그거였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많아서 재미있었다.
신림동 캐리: 나도 해보고 싶다!
김용하: 두 번째로 만족스러웠던 건 네트워크로 동기화되는 체중계인 fitbit aria다. 체중을 유지하는 데 꽤 도움이 줬다. 반대로 가장 실망했던 지름은 Leap Motion이다. 3D 스캐너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불가능했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에게 좋은 회사는 어떤 회사라고 생각하나?
김용하: 비전을 주는 회사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더 일하고 싶어지는, 일하는 것이 즐거운 환경을 만들어주는 회사 말이다. 그러기 위한 조건이 워낙 다양하고 어려워서 현실적으로는 참 어렵긴 하다. 하지만 범위를 좁혀서 보면,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고 좋은 동료들이 있으면 좋은 회사 아닐까?

신림동 캐리: 일해보니까 업무에 있어 타고난 재능이 얼마나 차지한다고 생각하나?
김용하: 타고난 것은 성격 혹은 성향 정도고, 업무적인 달성 능력은 후천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본인 성향에 맞는 분야를 찾아 꾸준히 자기 계발한다면, 일정 이상의 달성 능력은 누구나 얻을 수 있다. 10대부터 3D 엔진을 몇 개씩 만든 존 카막 같은 경지는 아무나 노력한다고 도달하는 게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신림동 캐리: 천재가 노력까지 하면 그건 진짜!

신림동 캐리: 아내분 블로그와 페이스북에서 린이와 민이 사진 잘 보고 있다. 예전부터 린이와 민이의 팬이다.
김용하: 아이고, 감사합니다.


신림동 캐리: 나중에 딸이 개발자가 되겠다고 하면 어떠시겠는가.
김용하: 딸과 함께 페어 프로그래밍하는 건 모든 개발자 아빠의 로망 아닌가! 본인이 좋아서 하는 거라면 대찬성이다. 어차피 유전자 따라가다 보면 공대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 반 우려 반이 있다. 여담인데, 요즘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초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기에 별로 좋은 환경은 아닌 것 같다.
신림동 캐리: 어째서?
김용하: 일상적으로 쓰는 컴퓨터가 워낙 고도의 처리를 보여주고 있어서 ‘Hello World’를 출력하고 화면에 점 찍는 것만으로 신기방기했던 시절과는 많이 다르니까. 그걸 꼭 가르쳐주고 싶은데,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고민하는 중이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에서 테크니컬 디렉터로,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을 꿈꾸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김용하: 10년 뒤라. 어떤 자리에 있고 싶다기보다는, 10년 뒤에도 자신 있게 코딩할 수 있도록 계속 자신을 연마하고 싶다.
신림동 캐리: 따님과 함께 페어 프로그래밍!

Dell 24인치 (1920×1200) 모니터를 듀얼로 쓰며, 한쪽은 참고 화면, 한쪽은 작성 화면으로 쓰고 있다.

코딩은 Visual Studio 2012 에서 C# / Resharper를 사용한다. 게임 개발 환경은 MS느님이 체고시다. 파일 공유 서버로는 Synology DS213+ 를 사용하고 있으며, 팀 문서 공유는 공유서버에서 원노트 통해 하고 있다.

팀 공용 채팅 클라이언트를 통해 잡담이나 간단한 업무 협의, 태스크 추적(봇), 빌드(봇) 등을 하고 있다.

현재 팀에서 버전 관리는 Perforce와 git을 거쳐 SVN으로 돌아오는 삽질을 했다. 아티스트 친화적인 버전 관리 툴은 정녕 없는 것인가!


처음엔 가리지 않고 (미소녀) 피규어를 많이 모았었는데, 나중엔 20cm 이상 중대형만 모으게 되다가, 그나마 나중엔 자리가 부족해져서 다른 분들 자리로 분양을 드리다 보니 현재는 자리에 피규어가 없다; 하지만 마음만은 항상 함께한다.


그 밖에 가급적 매일 챙겨 먹는 영양제로 멀티 비타민, Omega-3, Phospatidylcholine이 있고 심심할 때마다 집어 먹는 걸로는 Vitamin C (time release), Vitamin B complex 정도가 있다.

단언컨대 이 부부는 가장 생산적인 조합, 송은주와 이성우 1

이 인터뷰는 ‘단언컨대 이 부부는 가장 생산적인 조합, 송은주와 이성우 0‘에서 이어집니다.

신림동 캐리: 부부가 같은 업계에서 일하니까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다고 하셨는데 개발자라는 직업이 결혼 생활에는 어떤가?
이성우: 야근과 밤샘을 자주 하는 개발자는 연애하기 힘들다고들 한다. 취미라든가 연애에 보내는 자신의 시간과 회사에서 개발에 쓰는 시간을 나누는 게 가장 어려운 문제다. 나름대로 이 업계에 오래 있어보니, 자신의 시간을 보내며 개발의 에너지를 모으고 개발에 소비한 시간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연애나 결혼 모두 자신의 생활이다. 나는 이것을 확실하게 나누어서 적당히 분배하려 노력하고 있고, 그래서 만족스럽게 생활하고 있는 편이다.

신림동 캐리: 이성우 님은 13살부터 게임을 만드시고, ‘제노에이지‘ 등의 개발에 관여하신 걸로 알고 있다.
이성우: 악, 그걸 알다니!
신림동 캐리: 어렸을 때는 다 그런 거지. 나도 사춘기 시절에 모 아이돌 그룹 리더를 따라 한답시고 단발 칼머리에 해골 귀걸이 하고 다녔다. 아무튼, 어릴 적부터 개발을 하셨는데 개발을 잘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방법은?
이성우: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고 해봤다. 일단 경험하는 거지. 계속해서 보고 듣고 만지고, 만들어 보는 것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고 생각한다. 딱히 개발 자체를 위해 공부하지 않았고 흔한 학원 한 번 안 다녔지만 그 시간에 다른 방식으로 더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자부한다.

신림동 캐리: 만약에 루미가 커서 개발자 또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고 하면?
이성우: 미소녀 개발자 탄생!
신림동 캐리: 아버님, 진정하십시오.
송은주: 체력을 키워줘야겠다.
신림동 캐리: 웬 체력?
송은주: 야근이 많고 내내 앉아서 일하는 직업이라 체력이 필수다.
신림동 캐리: 맞아. 나도 예전에 앉아서 야근만 하다가 엉덩이에 종기가 생겨서 고생했다! 남한테 말할 수 없는 고통!

오래 앉아 있으면 암에 걸린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읽고 계신 여러분, 빨리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세요. 물론 암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걸리고 담배 피워도 걸리고 고기를 많이 먹어도 걸립니다. 우리는 망했습니다.

신림동 캐리: 최근에 구매했던 것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건?
송은주: 루미 원피스!
신림동 캐리: 악! 귀엽겠다!
이성우: 이번에 생일 선물로 마님에게 인튜어스5를 선물했다. 부디 그걸로 좋은 그림을 열심히 그려 나에게 뿌듯함을 안겨주길 기대하고 있다.
송은주: 생일 선물이라고 주길래 받았는데 인정할 수 없다! 이건 날 더 빡시게 일 시키려는 음모다!
신림동 캐리: 당했구나. 그래도 도구가 바뀌니 업무 환경도 달라지지 않나?
송은주: 물론이다. 인튜어스 프로에 포토샵7이 지원되지 않아서 필압이 뱀부화 되고 지우개도 안 먹고 문제가 많아 CS6으로 완전히 갈아타게 됐다. 10년간 동고동락했던 포토샵7이여 안녕.
신림동 캐리: 그럼 이성우 님은 어떤 키보드를 쓰시는가?
이성우: nKEYBOARD라는 게이밍 키보드다. 가격이 저렴하지만 동시 입력이 무한대로 되는 가성비가 훌륭한 키보드지. 동시 입력만 잘되면 딱히 키보드에 바라는 게 없다.

신림동 캐리: 이 인터뷰의 꾸준 질문 나간다. 좋은 개발자의 조건은 뭘까?
이성우: 믿음직하고, 아이디어 넘치고, 끈기있는 개발자랄까? 일단 개발을 맡겼을 때 이 사람이라면 분명히 언제까지 마쳐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감을 주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있어 놀라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뛰어난 개발자라고 생각한다. 거기다 일이 몰아쳤을 때에도 질리지 않고 꾸준하게 하나씩 헤쳐나가는 끈기까지 합쳐지면 이만큼 좋은 개발자는 없겠지. 여기에 더하자면 ‘운’과 ‘감’이 좋은 개발자! 아무리 잘 만들어진 게임이라도 천운이 없이는 절대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이 천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개발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신림동 캐리: 그럼 남편이 넥스트플로어에 다니시는 송은주 님에게 질문한다.
송은주: 응?
신림동 캐리: 송은주 님에게, 드래곤 플라이트란?
송은주: 우리 가족이 밥 먹게 해주는 게임이다. 드래곤 플라이트는 사랑입니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한테 좋은 회사는 어떤 회사일까?
이성우: 스스로 알아서 책임질 줄 아는 개발자를 뽑아서 믿고 맡겨주는 회사 아닐까? 그래야 책임감에 우러나와 더욱 좋은 결과물을 낼수 있거든. 그런 믿음이 없는 회사는 사원들이 부품 이상의 결과를 내기 힘들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한테 제발 이런 거 시키지 말라는 건?
이성우: 개발자는 무엇이든 다 해볼 각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딱히 이런 거 시키지 말라는 거 없다. 심지어 청소하다가도 아이디어가 나오는 게 개발자니까! 다만 무언가 집중했을 때는 다른 어떤 일도 시키면 안 된다. 개발자가 집중하는 시간은 길어야 1~2시간인데 이때는 평소보다 몇 배나 되는 일을 해치우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적용하는 중이거든.

신림동 캐리: 그럼 송은주 님께 질문한다. 어떤 일러스트레이터가 좋은 일러스트레이터인가?
송은주: 좋은 프로 그림이는!
신림동 캐리: 두둥!
송은주: 칼마감을 하는 그림이다!
신림동 캐리: 진지하게 말해!
송은주: 진짜다. ‘프로는 돈을 받으니까 일을 잘할 수 있는 거야!’를 외치며 이틀에 8장 쳐낸 적도 있다고!

신림동 캐리: 그럼 개발자에게 재능이 얼마나 차지한다고 생각하나?
이성우: 10%나 될까? 개발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재미있는 게 저절로 나오지는 않는다. 재능이 있다고 완성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재능이 있다고 남과 잘 어울릴 수 있는 것도 아니지. 하나부터 끝까지 개발자는 끈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재능이 있다면 모든 부분에서 시작 위치만 다를 수는 있지만 어쨌든 골인 지점은 같다고 본다.
신림동 캐리: 그럼 일러스트레이터는 재능이 얼마나 차지한다고 생각하나?
송은주: 20% 정도? 완전 개발새발이라도 매일 한 장 이상 그리다 보면 존잘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런 걸 보면 10%도 안 되는 거 같기도. 뭐든지 하고 싶은 걸 미친 듯이 파서 안 되는 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난 열심히 안 그려도 잘 그리잖나?
신림동 캐리: 네? 뭐라고요?
송은주: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정색했습니다. 독자분들께 사과 드립니다.

신림동 캐리: 본인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를 붙이면?
송은주: ‘백날 그림 그려봤자 최고의 창작물은 딸래미’인 일러스트레이터랄까. 페이스북에 내가 그린 그림을 올리면 반응이 별로 없는데 루미 사진을 올리면 포풍댓글이 달린다.
신림동 캐리: 미안하다. 나도 그중에 하나다.

신림동 캐리: 루미가 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루미의 팬이었다. 이성우 님께서 본인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를 붙이면?
이성우: 난 디자이너 하던 시절에는 ‘도트 공장장’으로 불렸다. 도트로 점찍어 그리는 그림을 엄청 빨리 많이 찍어냈거든. 그 이후에는 하이브리드 개발자(일인 개발자)라고 불렸다. 그냥 혼자서 이것 저것 다 하니까 그렇게 불렸던 것 같다.
신림동 캐리: 3n년간 도트를 찍으신 도트 장인 이성우 선생님!
이성우: 악! 도트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어!
신림동 캐리: 요즘 박근혜 대통령도 도트 무늬 자주 입고 나오시던데 이참에 창조경제의 붐을 타봐라.
이성우: 싫다고!
송은주: 남편 홈페이지의 도트를 보고 감명받은 소년이 자라서 같은 회사 직원이 되기도 했다. 며칠 전에 솔로가 됐다며 우리 집에 와서 술 푸고 갔는데 혹시 연하는 어떤가?
신림동 캐리: 거절한다.

소개팅할 때 우리는 나이와 직업, 얼굴을 으레 묻곤 합니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면 취미나 관심사에서 말이 통하는 이성에게 호감이 확 가는 경험 있지 않으신가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도 좋아하면 ‘오?’하고 끌리는 거죠.

‘사랑은 서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명언이 있죠.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에 손 잡고 같이 갈 동반자가 있다면 얼마나 마음 든든할까요. 현업에서 물러나도 몸과 마음이 허락할 때까지는 같이 게임을 만들 거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송은주, 이성우 부부가 어찌나 부럽던지요.

이성우: 재택근무하는 일이 많아 집을 작업실화 했다.
회사 책상, 회사 의자를 집에 가져왔다.
큼지막한 27인치 모니터 두 대와 그림 그리기 좋은 인튜어스3 타블렛을 놨다.
물론 개발자니까 빠른 하드와 적당한 윈도우와 소프트웨어는 필수다.

편하게 앉아서 쉴 수 있는 소파, 짱짱한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스피커도 빼놓을 수 없지.
언제라도 영화 보고 게임할 수 있는 게임기와 TV도 작업실에 있다.

송은주: 모니터 2대와 컴퓨터, 타블렛, 마우스 뭐 특별할 거 없는데?
꼬리 흔드는 딸래미 정도가 특이한 업무 환경이겠다.

단언컨대 이 부부는 가장 생산적인 조합, 송은주+이성우 0

소싯적에 DJMAX 시리즈 좀 두드리신 분 많을 겁니다. DJMAX 온라인 때부터 일러스트와 보컬을 맡으신 송은주(TARI)님은 함께 DJMAX에 참여한 이성우(ETER)님과 오랜 연애 끝에 결혼까지 하셨죠. 현재 송은주님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이성우님은 넥스트플로어의 개발자로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디자이너 부인과 개발자 남편이 사는 건 어떤 모습일까요? 이 부부가 사는 법을 보기 위해 저는 추석 전날인 9월 17일 송도에 찾아갔습니다.

오랜 재택근무로 날짜와 요일 감각을 잃으신 송은주 님은 추석 전날 서울에 차를 끌고 나오셨다 저를 픽업하셨습니다. 서울시 관악구로부터 송도까지 2시간 40분 소요라는 업적을 남기셨죠. 심지어 금천구의 한 골목길에서는 앞차가 횡단보도에 멀쩡히 지나가던 사람을 쳐서 쌍욕이 오고 가기도 했습니다.
신림동 캐리: 송도에 도착하면 저녁 7시는 될 것 같은데 저 인터뷰하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요?
송은주: 자고 가세요.
신림동 캐리: 처음 보는 분 댁에서 어떻게 자요!
송은주: 벌써 손님방에 이불도 깔아놨어요.

그렇게 저는 1박 2일간 송은주, 이성우 님 댁에서 먹고 자며 디자이너와 개발자 부부의 일상을 밀착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추석 연휴에 그 집에 머무르며 송도 센트럴파크에서 보트를 타기까지 했습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송은주, 이성우: 안녕하세요.
루미: 안녕하세요.

참고로 루미는 송은주, 이성우 님의 딸입니다. 제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자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라며 ‘좋아요’ 70개를 받은 미소녀이기도 하죠.

신림동 캐리: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한다.
이성우: ETER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현재는 넥스트플로어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이성우다.
송은주: TARI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현재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송은주다.

두 분의 자세한 이력은 홈페이지를 참고해주세요!

신림동 캐리: 송은주 님은 이전에 크게 활동이 없으시다 DJMAX로 갑자기 확 뜨게 되셨다.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는지?
송은주: 펜타비전에서 외주로 BG를 몇 개 하다가 당시 남자친구였던 ETER와 펜타비전 사무실에 놀러 갔다. 근데 갑자기 회의실 문을 잠그시더니 서류를 들이밀며 입사 안 하면 안 내보내 준다는 거다. 그래서 세트로 펜타비전에 들어가게 됐다.
신림동 캐리: 뭐지?

스타트업의 구인이 어려움을 단번에 보여주는 예시라 하겠습니다. 전국의 스타트업 사장님들은 따라 하지 마세요.

신림동 캐리: 근데 DJMAX 시리즈에 그림을 그리시는 것도 모자라 보컬까지 하셨다?
송은주: 보컬을 구하면 돈을 따로 줘야 하는데 날 시키면 직원이라 공짜니까?
신림동 캐리: 레알?
송은주: 뻥이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내가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가명도 썼었는데 나중에는 뻔뻔해져서 막 주변에 자랑했다. 아, 참고로 ETER는 DJMAX 디렉터였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다. 본인은 꽤 슬퍼하는 눈치니 이 인터뷰를 통해 알려달라.
신림동 캐리: 알려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쓰겠다.

신림동 캐리: 작품마다 다양한 BGA를 선보이시는 게 송은주 님의 매력이다. 일부러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하셨는지?
송은주: 그때 그때 받은 곡에 따라 손이 이미 그리고 있다. DJMAX를 작업할 당시에는 기간도 1주일에서 길면 2주일로 촉박한 편이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그려 재꼈다. 40곡 정도 작업했는데 비슷비슷하게 그리면 그리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지겨우니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질릴만하면 끝내고 다른 거 하고 그랬다.

신림동 캐리: 일러스트에 대한 영감을 받는 곳은?
송은주: 영화나 책이나 게임이나 여행이나 공연이나라고 말하고 싶지만 개뿔이고, 닥치면 나온다. 발등에 불 떨어지면 뭐든 나오게 되는 것이다.
신림동 캐리: 맞아. 마감만큼 무서운 게 없다.
송은주: 마감이 제일 무서워요!
신림동 캐리: 일러스트 그릴 때는 주로 어떤 도구를 쓰시나?
송은주: 러프는 놀이터에 루미를 풀어놓고 수첩에 샤프로 끼적거린다. 제대로 그릴 때는 포토샵7을 주로 쓴다.

신림동 캐리: 구석에서 루미를 보고 계시는 이성우 님을 소환하겠다. 난 이 소프트웨어와 도구 없이는 살 수 없다?
이성우: 드디어 내 타임인가. 요즘이라면 cosmigo사의 프로모션(promotion)이라는 소프트웨어다. 만들고 있는 게임이 도트 게임이다 보니 이 도트툴 없이는 일할 수가 없다. 옛날부터 꾸준히 도트를 찍었고 도트 게임도 여럿 만들었다. 지금까지 자작툴 → 디럭스페인트2 → 프로모션으로 이어지는데, 예전에는 마우스로 찍었지만 요즘은 타블렛을 쓴다. 그림 그리는 도구의 발전이랄까?
신림동 캐리: 예전부터 블로그를 통해 TARI 님을 알고 있었다. 근데 그때는 부부가 두 분 다 집에만 계시고 가끔 서울 코믹전을 통해 동인지를 팔고 그러시길래 그게 생업이신가 했다?
송은주: 무슨 농사 지어 시골 장터에 내다 파는 것도 아니고 서울 코믹으로 어떻게 먹고 사냐!
신림동 캐리: 동인지와 동인게임을 취미로 많이 제작하시던데, 동인과 회사 작업의 차이는 뭔가?
송은주: 간단하게 동인물은 내 돈을 써서 만들고 회사는 만들면 돈을 준다는 것이다.
신림동 캐리: 아주 큰 차이군.
송은주: 어마어마하지.
신림동 캐리: 근데 두 분 다 재택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일하지 않을 때는 집에서 뭐하나?
송은주: 루미랑 논다.
이성우: 영화를 본다든가 게임을 한다든가 책을 읽는다든가 프라모델 조립을 한다든가 루미랑 논다.

그때 루미가 달려왔습니다. 이런 딸이라면 매일 같이 놀고 싶군요.

신림동 캐리: 나도 요즘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가끔 일하기 싫어서 빈둥대다가 ‘이러면 안 돼!’하고 스스로 셀프 싸대기를 칠 때가 있다. 집에서 일에 집중하는 노하우를 알려달라!
송은주: 일단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
신림동 캐리: 그거론 약하다!
이성우: 딱히 없다. 그냥 하는 거지. 다른 것에 신경 끄고 그냥 한두 시간 달리고, 30분에서 1시간 쉬고를 반복한다.
송은주: 난 괴혼 OST를 튼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무아지경으로 작업하게 되는 효과가 있더라.

신림동 캐리: 게임업계에서 만난 부부답게 집에 오덕한 물건이 많다. ‘내 인생의 게임’이라 부를만한 것이 있다면?
송은주: 괴혼, 젤다, 와우! 지문이 닳도록 열심히 했던 게임들이다. 루미를 가졌을 때 태교로 매일 와우를 했다.
신림동 캐리: 루미야, 지못미.
송은주: 영붉은나비, 툼레이더, 맥기앨리스도 좋아하는데 이건 무서워서 내가 직접은 못하고 동생이나 남편을 시켜 엔딩 보게 했다. 특히 영붉은나비는 엔딩을 12번 이상 플레이하게 만들었다. 남편아 지못미!
이성우: 지나갔으니 하는 말이지만 그땐 정말 힘들었다. 난 아직까지는 DJMAX가 인생의 게임인 것 같다. 디렉터로서 다양한 작업을 많이 해보았고 유저의 관심도 많이 받았으니까. 만들 때 매번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즐겁게 만들었다.

신림동 캐리: 부부가 같은 업계에 있어서 이런 건 진짜 좋다 하는 거 있나?
송은주: 아무래도 같이 게임 만드는 거! 우린 은퇴해도 취미로 같이 게임 만들자고 약속했다.
이성우: 일단 취미에 대해 서로 존중해주는 게 좋다. 이게 안 맞아서 서로 힘든 부부도 많거든. 서로의 일에 대해서 난이도를 알기 때문에 알아서 배려해주는 부분도 빼놓을 수 없겠지.
신림동 캐리: 맞아. 난 게임 안 하니까 구남친이 LOL 하는 게 싫었거든. 물론 걔가 자기 일을 미뤄두고 너무 많은 시간을 게임에 쏟기도 했지만 말이다. 자존심이 강해 자기가 잘못하고도 ‘헤어지면 되잖아!’하고 큰소리 땅땅 치는 놈이었는데, LOL 하다가 항복하자는 같은 편 놈에게는 ‘우리 더 잘할 수 있잖아요. 왜 그런 말 해요.’라며 애절하게 빌고 있더라.
송은주: 그런 놈은 발로 확!
신림동 캐리: 나의 연애 흑역사는 미뤄두고, 반대로 같은 업계에 함께여서 이런 건 불편하고 싫다 하는 건?
송은주: 놀고 있으면 옆에서 일하라고 채찍질한다.
신림동 캐리: 그건 좀 당하는 게 미래를 위해 좋을 것 같다.
이성우: 서로의 일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서로 까기도 한다. 그날은 서먹서먹하다.
신림동 캐리: 왜 서먹한가?
이성우: 진심으로 상처 받으니까! 아내한테 일로 까이고 싶지 않아!

송은주, 이성우 님의 인터뷰는 ‘단언컨대 이 부부는 가장 생산적인 조합, 송은주+이성우 1‘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