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군가 이 코드는 어딘가, 고민을 멈추지 않는 개발자 구종만 1

신림동 캐리:어릴 적부터 많은 프로그래밍 경시대회에서 상을 휩쓰셨는데 언제부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가졌고 어떤 계기로 그리되셨는지?
구종만: 어릴 적부터 휩쓸다니 오해입니다. 대학교 온 후에나 좀 성적이 좋았지, 그 이전에는 대회에서 큰 상을 타본 적이 없다.
신림동 캐리: 대기만성 타입!
구종만: 그 그런가…. 프로그래밍은 열 살에 컴퓨터가 생기면서부터 시작했다. 그때는 컴퓨터 사면 무조건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컴퓨터 사면 깔려 있는 게 게임 두 개랑 베이직 밖에 없었거든. 그래서 이걸 제대로 가지고 놀기 위해 프로그래밍 하다가, 프로그래밍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어찌어찌하다보니 여기까지….
신림동 캐리: 참여한 프로그래밍 경시대회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 하나만 들려달라.
구종만: 2007년 라스베가스에서 탑코더 오픈 와일드카드전을 앞두고, 한국에서 참가한 다른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탑코더 오픈은 대회 15분 전부터 자리에 앉아서 코드를 미리 짜 둘 수 있어서, 이 코드를 뭘 짤까 두런두런거리다가 마지막에 말이 나온 유리수 구현을 미리 작성해 뒀다. 그런데 그게 1번 문제로 나왔다! 으아, 내가 결승 가라는 신의 뜻이구나 생각했다. 결국은 와일드카드 1등으로 결승 진출했다.

신림동 캐리: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미국에 취업하셨는데 왜 해외 취업을 결심하셨는가?
구종만: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하기로 했을 때부터 쭉 대학원 갈 계획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취업은 생각도 안 해봤었다. 미국에서 일하게 된 것은 우연에 더 가깝다.
신림동 캐리: 우연이라고?
구종만: 2007년에 탑코더 오픈 참가하러 라스베가스에 갔는데, 당시 스폰서 중에 트레이딩 회사가 하나 있었다. 각종 기계학습이나 데이터 마이닝 기법들을 적극적으로 써서 어렵고 재미있는 문제를 푼다고 광고하더라. 당시 NHN에서 병특하면서 데이터 마이닝 업무를 배우고 있기도 했고, 원래부터 기계학습이나 인공지능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고 그 회사 인턴쉽에 한 번 지원해 봤다. 그랬는데 전화 면접 보고 그 인턴쉽이 덜컥 붙은 거다. 그래서 복학하고 여름방학에 시카고에서 인턴쉽을 했는데, 회사 환경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너무 마음에 들었다. 마침 그때 인턴 프로젝트도 굉장히 결과가 좋아서 정규직으로 돌아오라는 제안을 받았기에 반쯤 홀려서 덥석 물었다.
신림동 캐리: 그럼 대학원은 포기하신 건가?
구종만: 처음 미국 갈 때만 해도 언젠가 대학원에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회사에 다니다 대학원 가려면 정말 강철같은 의지가 있어야 하더라. 난 안될 거야.

신림동 캐리: 병특하니까 말인데 최근 학사 병특이 없어져 많은 이들이 절규하고 있다. 이노티브와 NHN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병특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병특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구종만: 나는 운이 좋아서 병특 시절을 아주 즐겁고 보람차게 보냈다. 배운 것도 엄청나게 많고, 회사 생활도 즐거웠다. 병특은 개발자의 몸값을 낮춘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막상 병특 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경험도 쌓고, 병역도 해결하고 굉장히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은 넓어서 군대보다 못한 병특도 존재한다고 들었지만 뭐 그건 예외라고 생각하겠다. 주변에 훌륭한 후배들이 병특을 미루다 이번에 병특 없어진 것 때문에 군대 가거나 자의 반 타의 반 대학원 진학을 하게 되는 경우를 좀 봤는데 그저 눈물만….
신림동 캐리: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신림동 캐리: 또 타이밍 하니까 말인데 재하를 미국에서 낳으셨잖나. 무시무시하기로 소문난 미국의 의료비용을 어떻게 커버하셨는지?
구종만: 미국 의료 시장이 사람들 말대로 정말 막장이긴 하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신림동 캐리: 나도 미국에서 신종플루에 걸렸었는데 의료보험이 없어서 그냥 자가치유했다.
구종만: 다행히 미국의 IT회사는 개발자가 없어서 난리이기 때문에, 회사복지의 하나로 의료보험을 많이 지원해준다. 게다가 이게 비싸고 좋은 플랜인 경우가 많아서 재하를 낳는데 회사 의료보험을 썼더니 내 돈은 거의 안 들었다.

신림동 캐리: 한국에서 애 낳는 것에 비교하면?
구종만: 한국에서 애를 낳아본 적이 없어….
신림동 캐리: 미안하다. 내가 이상한 질문을 했어….
구종만: 근데 미국 보험이 비싸긴 정말 비싸다. 회사에서 안 대주면 정말 피눈물 난다. 이직금지 기간 동안 쉬면서 내가 보험비 냈는데, 한 달에 백만 원 넘게 나갔다.
신림동 캐리: 이 소프트웨어와 도구 없이는 살 수 없다 하는 거 있나?
구종만: 대부분의 시간을 터미널에서 보내기 때문에 대부분 터미널에 관련된 도구들이다. 여기에 대한 글(http://www.theyearlyprophet.com/love-your-terminal.html)도 썼다. 여기에 나와 있지 않은 것은 xmonad랑 ipython, lyx이다. xmonad는 타일링 윈도우 매니저로, 윈도우 위치/크기를 직접 조정할 필요 없이 미리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화면을 꽉 채우도록 윈도우를 배열해 준다. 터미널을 여러 개 빠르게 열고 닫으면서 일하는 스타일이라 아주 유용하게 쓴다. 얼마 전에 맥북 에어를 사면서 포기하려고 해 봤는데, 결국 포기하고 우분투 깔았다. ipython은 뭐 말할 것 없는 파이썬 쉘인데, 여기의 노트북 모드(http://ipython.org/notebook.html)가 아주 훌륭하다. numpy, matplotlib 등을 이용해 파이썬으로 리서치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써라. 두 번 써라.
신림동 캐리: 이게 전부인가?
구종만: lyx도 있다. 이건 LaTeX를 백엔드로 하는 워드프로세서다. LaTeX의 수많은 기능을 지원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위지윅이라 수식 조판하기가 엄청 편하다. 이번에 책 쓸 때도 이걸로 썼다. 라텍을 매번 셋업하기 귀찮고, 불편한 점도 꽤 많아서 마크다운이나 기타 마크업 언어를 쓰려고 해보는데 결국 이걸로 돌아오고 있다.
신림동 캐리: 예전에 구종만님이 나와 H에게 mint.com을 추천해주신 게 기억나는데, 이 어플 없이는 내 생활이 훨씬 불편했을 것이다 하는 건?
구종만: 아, 저번에 그랬었지. 근데 사실 나는 민트 안 쓴다.
신림동 캐리: 그럼 왜 우리에게 민트를 줬….
구종만: 민트는 훌륭한 가계부 어플이다. 다만 내가 너무 게을러서 가계 관리를 아예 안 하거든. 개인적으로는 workflowy.com을 좋아한다. 단순한 할 일 목록 같은데, 목록을 중첩할 수도 있고, 목록을 접고 펴거나 특정한 할 일에 줌인할 수 있는 툴이다.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아이디어들을 단순한 인터페이스에 훌륭하게 담아냈다.
신림동 캐리: 최근에 읽은 개발에 대한 인상적인 책은?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배우는 알고리즘 문제 해결 전략>?
구종만: 사실 최근에 딱히 읽은 책이 없다.
신림동 캐리: 육아는 힘들죠.

그래도 재하는 긔엽긔!

신림동 캐리: 아참, 2007년부터 알고스팟의 운영에 참여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다.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느끼는 점이나 도움이 된 점은?
구종만: 음…. 별건 없는데, 커뮤니티 하나가 굴러가는 데에는 정말 많은 이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다들 생업이 있고 유부남도 늘어가다 보니 새로운 일을 못 하고 있다. 옛날에 모의고사라도 한번 할라치면 운영진을 일주일 갈아 넣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끼리는 운영진을 노예라고 부른다. 기회가 될 때마다 노예진의 확충을 적극적으로 꾀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신림동 캐리: 세상엔 ‘내가 왜 이런 노예질을 하지!’라고 외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훌륭한 매저키스트가 많으니 희망을 버리지 마라.


알고스팟에서 일할 매저키스트, 아니 노예, 아니 운영자를 찾습니다.

구종만님의 선량한 미소를 믿으세요.
신림동 캐리: 그럼 알고스팟을 운영하며 좋았던 건 뭔가?
구종만: 내게 도움이 된 점이라면 글쎄…. 진부하지만,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는 점이랄까?
신림동 캐리: 진부해….
구종만: 근데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신림동 캐리: 근데 이 개발자 인터뷰가 개발자분들 입장에선 ‘내 사적인 이야기인데 이걸 왜 읽을까?’ 싶은데, 컴퓨터를 전공하는 학생이나 현직 개발자에게는 의외로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 나도 처음엔 내가 이걸 하면서도 내 업무를 이해 못 했는데 주변에서 좋은 반응이나 감사 메시지가 가끔 들어오는 걸 보면서 점차 사명감까지 느끼고 있다.
구종만: 그렇군.
신림동 캐리: 내가 네이버 메인에서 연예인 공항패션 기사를 클릭해서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구종만: 뭔가 이상한데 무슨 뜻인지는 확 와닿는군.
신림동 캐리: 그러니까 아무튼 계속해서 인터뷰 진행한다.
신림동 캐리: 후배에게 개발에 대해 추천해주는 사이트는?
구종만: 뭐가 됐든지 많은 것을 접해보고 지평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서 주워들은 게 많다고 훌륭한 개발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개발자치고 지평이 좁은 사람은 또 별로 없더라. 그래서 계속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전 분들도 언급했지만, 해커 뉴스같은 뉴스 사이트와 자기가 관심가지는 기술에 관한 포럼을 읽는 것이 좋다. 아 그리고, 당연하지만 algospot.com!
신림동 캐리: 하하하!
구종만: 하하하!
신림동 캐리: 최근에 쉬면서 공부하고 계시는 건?
구종만: 내가 하는 일이 퀀트 개발자다. 개발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지만 퀀트 개발자에게 요구되는 개발의 수준이 그다지 높진 않다. 뭘 만들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할까? 지금 이 업무에서 내게 가장 부족한 것은 수학이랑 계량 금융 기초라서 교과서까지 펼쳐놓고 열심히 혼자 공부하고 있다. 다행히 백수라서 공부할 시간은 많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다닐 때나 수학을 정말 싫어했는데, 내가 이러고 있을 줄 몰랐다. 이렇게 필요할 줄 알았나.
신림동 캐리: 난 타이핑에 검지만 사용하는 완벽한 독수리 타법을 고수하는데 이런 내가 IT계에서 일할 줄은 몰랐다.

신림동 캐리: 그럼 구종만님은 스스로 어떤 개발자라고 생각하시는지? 본인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를 붙이면?
구종만: 고민하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수행하는 것을 즐기는 타입이다. 그런데 좋은 계획을 세우려면 항상 고민해야 한다. 뭘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저런 방법 중 뭐가 제일 좋은가? 이런 고민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신림동 캐리: 그럼 스스로 개발자로서 점수를 매기면?
구종만: 개발자로서는 한 70점 정도? 특정 분야에 특기가 있다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이상 점수를 주긴 힘들 것 같다.
신림동 캐리: 아이고, 겸손도 하셔라.
신림동 캐리: 한국 개발자의 끝은 치킨집이라고 한다. 요즘은 카페라고도 하는데, 아무튼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구종만: 기본적으로 한국의 직장 문화가 바뀌어야겠지만, 꾸준하게 자기 계발을 하고 성장한 개발자라면 그럴 필요가 없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닐까? 이전에 일하던 회사에 정말로 호호백발 개발자가 있었다. 61학번이셨다. 61년생이 아니다. 이 분이 그렇다고 뭐 코볼 레거시 시스템 유지보수 하시냐면 그것도 아니고, C++11로 작성하는 최신 프로젝트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다. 65살이 된 기념으로 2년 동안 푹 쉬면서 C++ 새 표준과 부스트, 템플릿 메타프로그래밍 등을 진득하게 공부해서 우리 회사에 오셨더라. 이건 좀 극단적인 예지만 한국에서도 앞으로 점점 이런 환경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신림동 캐리: 개발자에게 재능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구종만: 타고난 재능은 당연히 중요하다. 열심히 하는 천재를 어떻게 이기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넓어서 열심히 하는 천재가 배터지게 먹어도 항상 남는 파이가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자기에게 재능이 있는지 고민하지 말고 그냥 일단 열심히 하시라.

말했다시피 1년 동안 백수라서 동네 스타벅스를 전전하면서 공부하는 신세다. 노트북이랑 핸드폰, 책 한두 권 들고 다니고 있다. 이것은 2014년 3월 12일 점심에 갓 찍은 따끈한 사진이다. 현재 이러고 있다.

난 누군가 이 코드는 어딘가, 고민을 멈추지 않는 개발자 구종만 0

개발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구종만’이라는 이름 한 번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안 들어봤으면 말고요.

2002년, 2003년 한국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시대회 금상
2003년, 2004년 세계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시대회 결승 진출
2004년, 2006년, 2008년 구글 코드 잼 결승 진출
2007년 탑코더 오픈 준우승, 2006년 결승 진출
2008년, 2009년 자바 알고리즘 콘테스트 우승

화려한 수상 경력을 바탕으로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배우는 알고리즘 문제 해결 전략>이라는 책을 쓰기도 하셨죠. 이 책은 저희 로켓펀치 개발자 인터뷰에서도 두 번이나 추천되었었습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이신 구종만님이 한국에 잠깐 들어오셨단 소식을 신림동 캐리가 입수하고는 빌고 기고 떼써서 힘들게 모셔봤습니다.


이름 혹은 닉네임: 구종만
위치: 서울
직업, 소속: 얼마 전까지는 시카고에서 알고리즘 트레이딩 개발자로 일했고 11월부터 뉴욕에 있는 헤지펀드에서 일할 예정이다. 이전 회사와의 계약 조항에 퇴직 후 1년 안에 동종업계에서 일할 수 없다는 조건이 있어서 이 기간이 만료되는 것을 기다리며 백수질을 하고 있다.
내 모바일 기기: 넥서스5
블로그 주소: http://theyearlyprophet.com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구종만: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 저 혹시 기억하세요?
구종만: 아, H와 사귀셨던….

그렇습니다. 구종만님은 제 구남친의 베프입니다. 송창규님에 이어서 또 이렇게 H오빠의 도움을 받게 되네요. 여러분, 잘 사귄 남자친구 하나로 열 영업합니다.

신림동 캐리: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한다.
구종만: 뭐라고 하지?
신림동 캐리: 무슨 말이라도 해라.
구종만: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은 한국 프로그래밍 대회 커뮤니티인 알고스팟(http://algospot.com)을 개발 및 운영하고 있고, 재작년에는 알고리즘과 자료 구조에 대한 책인 <알고리즘 문제 해결 전략>을 썼다. 직업 쪽으로는 2009년부터 미국에서 HFT 퀀트 개발자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말했다시피 전업 백수로 애를 본다.

신림동 캐리: 다른 말이지만 아드님 너무 귀엽다.
구종만: 감사하다.

재하가 귀엽지. 나도 좋아해.

신림동 캐리: 한국에서 병특을 마치시고 바로 미국에서 취업하신 걸로 아는데 거기선 어떤 활동을 하셨나?
구종만: HFT, 흔히 이야기하는 ‘알고리즘 매매’나 ‘고빈도 매매’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알고리즘을 이용해 빠른 시간 안에 주식이나 채권, 선물이나 기타 파생 상품을 사고 파는 것이다.
신림동 캐리: 국내에서는 규제가 심한 그거 아닌가?
구종만: 맞다. 흔히 사회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으며, 일반 투자자들의 고혈을 빨아먹는다고 욕먹는 그건데 거기에 대해서 할 얘기는 많지만 여기서 할 건 아닌 거 같다. 아무튼 회사에서 거래와 직접 연관된 팀을 ‘프론트 오피스’라 부르는데 크게 세 가지 직군으로 나뉜다. 트레이더, 퀀트(거래할 때 쓰는 모델이나 알고리즘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개발자다.
신림동 캐리: 거기서 개발만 담당하시는?
구종만: 사실 이 직군 간의 경계가 그리 뚜렷하지 않다. 누구는 100% 트레이더고 누구는 100% 퀀트고 이렇게 구분하기 힘들다. 결국 여기 들어오면 세 직군을 아우르는 셈인데, 난 따지자면 트레이더 20%에 퀀트 30%에 개발자 50% 정도일까?
신림동 캐리: 한국에서는 낯선 시스템이니 더 자세히 좀 설명해달라.
구종만: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트레이딩 전략 개발이나 테스팅, 여기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개발 및 인프라스트럭처 구축 등이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가장 많이 한 일은 그림 예쁘게 그려서 위키 페이지 작성하고 이메일 쓰는 일이었다. 회사 애들과 농담 삼아 내 명함에는 Quantitative Wiki/Email Writer라고 써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신림동 캐리: 로켓펀치 개발자 인터뷰에서 구종만님이 쓰신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배우는 알고리즘 문제 해결 전략>이 이강산님송창규님에 의해 두 번이나 추천되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구종만: 여러모로 부족하다 못해 부끄러운 책이지만 많이 읽어주시는 것 같아서 기쁘다. 이 책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다. 그러니까 이 글 보시는 여러분도 한 권씩 사주세요.

구종만님이 굽신굽신거리셨습니다.

신림동 캐리: 이강산님이 책에 싸인 받고 싶으시다던데 한국에 계실 동안 두 분이 뵐 일이 생겼으면 좋겠네.
구종만: 그랬으면 좋겠네.

신림동 캐리: 책을 쓰실 때 가장 애쓰신 부분이 뭔가?
구종만: 애초에 ‘가장 좋은 알고리즘 책’을 쓰겠다는 각오 따윈 한 적도 없고 할 수도 없었다. 솔직히 말해 내가 아무리 용을 써봐야 알고리즘 교과서의 대명사인 (Introduction to Algorithms)보다 좋은 책을 쓸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어쩌면 내가 알고리즘적 직관을 키워줄 친절한 책을 쓸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 비유하자면 정말 정확한 GPS 지도보다 방향이 가끔 틀리지만, 경로 안내가 나오는 내비게이션이 편할 때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개발을 다룬 많은 책이 ‘이 문제는 이렇게 풀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해법은 알지만 내가 어떻게 그 해법을 찾아낼 수 있는지는 배우기 어렵다. 그래서 책을 쓸 때 ‘나는 이 문제를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 이렇게 풀었다!’를 보여주려 노력했다. 이런 과정은 굉장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모두가 나에게 동의하거나 나를 이해할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이런 책이지만 도움을 받는 사람도 있을 거로 생각하며 썼다.

신림동 캐리: 근데 말이지.
구종만: 응?

문제 해결 기법을 학습함에 있어 이보다 더 좋은 책은 나오기 아주 어려울 것이다.
– 류원하(KAIST, 2009년 한국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시대회 우승)

이 책을 경시대회를 위해서만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기존 알고리즘의 동작에 대한 검증이나 최적화된 코드 등은 실제 업무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 최여민 (EA Korea 리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2005년 세계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시대회 13위)

프로그래밍 대회를 12년 동안 참가했는데, 이 책이 10년 전에 나왔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 이후연 (스탠포드 대학교, 세계 정보올림피아드 금메달리스트)

알고리즘 대회 분야의 권위자가 다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여러 문제풀이 사례를 통해 유쾌하게 배울 수 있는 책이 나와, 진심으로 기쁘다.
– 오시영 (카네기 멜론 대학교, 세계 정보올림피아드 은메달리스트)

신림동 캐리: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배우는 알고리즘 문제 해결 전략>의 추천평을 써주신 분들과는 무슨 사이인가?
구종만: 내가 사랑하는 사이다.
신림동 캐리: 아, 그렇구나….

신림동 캐리: 지금도 백수시지만, 책을 쓰실 당시에도 휴직 중인 백수셨다고 들었다. 백수일 때 개발자로서 감을 잊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구종만: 당시에 동종업계 이직 금지 조항 때문에 1년간 쉬고 있었다. 그렇다고 딱히 색다른 것은 하지 않았다. 원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집에서 자기계발 한다고 생각했다. 날마다 무얼 하는데 시간을 얼마나 썼나 기록하고 주기적으로 체크했다. 원래는 막 분기별 계획 세우고 그랬지만 백수 기간에는 10개를 결심하면 한 2, 3개쯤 달성했을까…. 하지만 그래도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는 신념하에 이건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신림동 캐리: 그러고 보니 그때쯤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나?
구종만: 맞다. 내가 회사로 돌아가기 직전에 아내가 출산했다.
신림동 캐리: 미국에 취업하기 직전에 결혼해서 같이 미국 생활을 시작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땠나?
구종만: H만 봐도 유학생이지만 미국 생활의 단점은 뭐 흔히 얘기하는 거 같은데 일단 무지하게 심심하다. 게다가 짜장면 같은 거 먹고 싶으면 일주일 전부터 ‘이번 주말엔 짜장면 먹으러 가자!’하고 계획을 세워 주말이 되면 차를 몰고 한 시간을 나가야 한다.
신림동 캐리: 그렇지. 그래서 혼자 살고 차도 없는 H는 미국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잖아.
구종만: 미국에 홀로 와서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영혼들을 너무 많이 봤다. 사람 잘 만나고 다니는 분도 있지만 그런 분은 어디서든지 잘 만나는 거고, 흔한 개발자 타입은 그러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지. 그래서 난 결혼해서 온 게 무척 좋았다.
신림동 캐리: H오빠와 사귈 때 구종만님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간간이 들었었다. 원래 친구로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했다던데?
구종만: 와이프와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그렇게 서로의 흑역사를 실시간으로 목격하며 몇 년을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했다.
신림동 캐리: 프로포즈가 정말 스페셜했다고 들었다. 보물찾기였다던가?
구종만: 그 덕분에 친구들로부터 욕을 워낙 처먹어서 한동안 봉인하고 있었는데… ‘A로 가봐.’라는 쪽지를 들고 A에 가면 ‘B에 가봐.’라는 쪽지가 남겨져 있고 마지막엔 반지를 찾는 보물찾기였다. 근데 추운 겨울날 여기저기 헤매게 시키다 보니 와이프가 그날 저녁에 응급실 실려갔다. 와이프는 응급실에서 링거 맞으면서 장모님께 “엄마, 나 결혼해….”라는 소식을 전했다고….
신림동 캐리: H오빠로부터 구종만님 부부가 참 해맑은 분들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진짜 해맑다…. 근데 장인어른이 멱살 잡지는 않으셨나?
구종만: 다행히 그러지는 않으셨다.

구종만님의 미국 취업과 개발, 그리고 의료보험과 출산 이야기는 ‘난 누군가 이 코드는 어딘가, 고민을 멈추지 않는 개발자 구종만 1’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