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품 제작 전문업체 찾을 땐 ‘캐파 파트너스’ 레인메이커
김성회 대표 “고객들 앞에선 대표 아닌 프로젝트 매니저”
1초에 한 방울씩. ‘똑, 똑’. 드립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는 초조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사실. 하지만 서서히 퍼져가는 커피 향을 맡고 있노라면 ‘먼저 홀짝 마셔버릴까’하는 순간의 충동이 유혹한다. 고민하는 사이 또 몇 초가 지난다. 어느새 커피 방울들은 커피 한 잔을 채웠다. ‘이제 한 번 마셔볼까.’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인고 끝에 마주한 커피의 빛깔이 심상치 않다. 어쩐지, 너무 연하다.
시제품 제작 전문업체 ‘레인메이커’의 김성회 대표는 어느날 아쉬운 커피 농도에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종이컵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직접 간이 ‘수제’ 드리퍼 제작에 나선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역삼각형 모양이 아닌 바닥이 편평한 새로운 드리퍼가 개발(?)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커피 드리퍼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보자. 1908년 독일의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멜리타 벤츠는 양철통에 구멍을 낸 편평한 드리퍼를 세계 최초로 고안했다. 밑 부분을 편평하게 만든 건 원두를 고르게 퍼뜨려서 커피 원액을 골고루 추출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진작에 편평한 드리퍼가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약 110여년 뒤 대한민국. 대략 한 세기 전의 멜리타 벤츠 여사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 김성회 대표가 자체적으로 편평한 드리퍼 개발에 나섰다. 다른 사람의 시제품을 제작해주는 제조업자이면서 평소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현할까 고민하는 ‘메이커(Maker)’로서의 천성 때문이다. 지난 5일 부천의 레인메이커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아래는 김성회 대표와의 일문일답.
새로운 제품 만들며 겪는 고객의 고민
“직접 만들어 본 사람이 더 잘 압니다”
Q> 자체 제작도 하고 있다. 그런 점이 시제품 제작을 의뢰하는 고객에게 도움이 되나
“일상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 불편함들을 제품을 통해 해소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커피 드리퍼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커피를 좋아하는데 역삼각형 모양의 기성품 드리퍼로는 커피가 덜 진하게 나오는 것 같다고 느꼈다. 바리스타의 문제일 수도 있었겠지만, 드리퍼의 구조상 윗부분에 쌓인 원두가 충분히 우려내지지 못하는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다가 아이디어가 떠올고, (그 자리에서) 종이컵을 자르고 구멍을 뚫어가며 새로운 드리퍼를 고안해냈다. 원두가 충분히 물을 빨아들일 수 있도록 원두가 담기는 부분을 편평하게 하고, 물줄기도 고르게 퍼지며 떨어질 수 있도록 메쉬망을 만들었다.
제조의 세계에서는 직접 제품을 만들어봐야 알게되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고객 분들이 겪는 고민들이 무엇인지를 안다. 제작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누구보다도 고객 분들과 공감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Q>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나
“직접 만들면서 (고충을) 겪어봤기에 아는 것들이 있다. 레인메이커는 제품을 의뢰받은 제조업체지만 고객 분들 제품의 마케터를 자처해 시장조사까지 해가며, 최종 판매가 가능한 수준의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충분히 상담하고 설득하는 작업까지 맡는다.
예를 들어 이미 6가지 기능을 가진 제품을 기획한 고객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디어가 샘솟을 수 있다. 추가적으로 1개, 2개씩 기능을 추가하다보면 열 개, 스무 개가 금방이다. 기능이 추가될수록 완벽한 제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 욕심이 생길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제품이 복잡해지면 제품 단가는 높아지고 이것이 양산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디어가 샘솟는 제작자의 마음을 백 번 공감한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 유사한 기능을 가진 제품들이 있다거나, 팔릴 만한 가격 수요 상한선 등을 고려한다면 제품의 기능을 어느 정도 가짓 수로 제한하는 작업이 필수다. 공감을 바탕에 두지만 실질적인 생산, 제품 판매까지 함께 고민하며 제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
Q> 직접 발로 뛰는 대표라고 들었다
“대표를 맡고 있지만 항상 고객들에게는 ‘대표’가 아니라 ‘프로젝트 매니저’라고 소개한다. 그만큼 책임감을 공유한다는 의미다. 사실 모든 제품에 대해 시장조사를 할 수는 없다. 제품이 흥미롭고, 고객 분들과 ‘케미’가 잘 맞는 때에는 나도 모르게 제품에 몰입하게 된다.
보통 제품을 만들 때 설계, 제작부터 어떤 재료로 만들지, 어떤 가공방식을 선택할지, 양산하게 되면 가격을 어느 정도로 책정할 것인지까지 큰 그림을 먼저 그려 놓는다. 기획과 설계, 제작, 양산, 유통까지 제각각 따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레인메이커에서는 최종적으로 양산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단계까지 구상해놓고 제작에 들어간다.”
Q> 양산까지 염두에 두면 정작 시제품 제작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 아닌가
“처음에는 꽤 걸렸지만, 노하우가 쌓이니 오히려 시간이 단축됐다. 한 번에 만들어지는 완제품은 없다는 게 제조업계의 정설 아닌가. 디자인 때문에 설계가 막혀 다시 디자인을 구상해야 하거나, 제작 과정에서 구현이 불가능한 구조를 발견해 제품 설계로 회귀해야 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낭비되곤 하는데, 제품 디자인 단계부터 설계를 고려하고, 제품 구상부터 양산을 고민하면 공정 단계를 ‘역순’으로 회귀하는 상황을 최대한 방지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목걸이형 살균기 제품을 2개월 만에 완제품 양산까지 완료했다.
레인메이커는 고객 분들이 그 제품을 양산하고 최종적으로 판매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앞으로를 함께 고민하는 업체다.”
제품에 대한 전문가는 ‘고객’···”고객 분들의 머릿속에 들어갈 수 없으니 아침 저녁으로 전화했어요”
인터뷰를 하는 내내 김성회 대표의 눈은 빛났다. 특히 제품에 대한 샘솟는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겨놓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스토리를 말할 때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졌다.
Q> 특히 기억에 남는 제품이 있다면
“컬러테라피 스탠드가 기억에 남는다. 휴대폰과 블루투스로 연결되는 스탠드인데,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이 측정한 사용자의 바이오리듬에 따라, 적절한 색깔의 불빛으로 스탠드를 밝혀주는 제품이었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휴대폰과 스탠드가 블루투스로 연결됐을 때,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의 최신 정보가 곧바로 스탠드와 연동되어야 그 순간 사용자의 감정에 적절한 색깔의 불빛이 선택될 수 있었다. 블루투스의 연동 타이밍 문제, 자기장의 전파 방해 문제, 휴대폰과 스탠드의 거리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기술적이 문제들이 상당히 많았고 복잡했다.
원래 함께 일하던 개발자가 있었는데 기술적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개발자가 도망갔다”고 고객이 얘기하더라. 여러 업체를 전전하다 결국 레인메이커를 찾아왔다. 어떻게든 꿈을 이뤄드리고 싶었다. 제품 디자인부터 전장 파트까지 하나하나 뜯어보고, 초기 기획의 80% 정도를 달성하는 수준으로 완성품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고객 분께서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정말 고생 많으셨다’고 하더라. 너무 뿌듯했다.“
Q> 회사명을 ‘레인메이커’로 지은 이유가 궁금하다
“사실 의미가 있다. 서양 문화권에서 레인메이커(rain maker)는 주술적인 의미로 비를 만들어주는 사람, 즉 주술사를 뜻한다고 한다. 자연현상을 인간이 컨트롤한다는 건 사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마치 꿈 같은 일일 것이다.
모든 제조업체들은 하나하나가 레인메이커처럼, 현실에 없던 꿈과 아이디어들을 세상에 구현해내는 마법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제작자는 현실에 없던 새로운 꿈을꾸는 사람들이다. 레인메이커는 마치 주술사처럼 그 꿈들을 실현해주는 사람이고 싶다. 꿈을 지키고 구현해내려면 고객의 제품이 내 제품이라고 생각하며 만들어야 한다.”
Q>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구현하려면 ‘소통’이 중요할 것 같다
“레인 메이커에서 고객과의 소통은 ‘상시체제’다. 충분히 듣는 것은 고객 분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때 꼭 필요한 과정이다. 특히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초반에는 일주일에 1~2번씩 정기적인 대면 미팅은 필수로 한다. 이후로는 제작과정에서 이슈가 생길 때마다 카톡, 전화, 줌 등 다양한 수단으로 소통한다. 이때 중요한 건 고객의 의견을 많이 듣고 이를 제작 과정에 실제로 반영하는 것이다.
한 번은 ‘자꾸 전화해서 귀찮게 하지 말라’는 고객도 있었다. 운동기구 제품 제작을 의뢰하셨는데,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씩 며칠을 전화했었다. 제품 아이디어를 스케치만 해오셔서 확인해야할 부분이 많았던 탓이다.
꼭 해결 방법을 몰라서 전화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아이디어의 주인은 제작자이고, 제작자가 원하는 대로 제품을 만들어야 만족하는 제품이 나온다. 고객 분들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생각을 확인할 수 없으니, 끊임없이 묻고, 확인하고, 결정하며 제작하는 과정이 일상이 되는 것이다. 제품에 관한 한 전문가는 의뢰자, 고객이라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변함이 없다.”
Q> ‘제품에 대한 전문가는 결국 고객’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고객이 전문가라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레인메이커는 자체적으로도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 역시 항상 새로운 제품을 고안할 때마다 해당 제품 분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일상 속에서 순간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생각을 현실로 옮겨 놓기 위해서는 먼저 ‘많이 알아야’ 한다. 구글링과 유튜브를 통해 공부의 밑그림을 그린 뒤에 유사한 제품군 레퍼런스를 파악해나간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건 고통스럽지만, 수 차례 반복하면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라는 걸 알고 있다. 고객 분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필라멘트 대신 황토 넣는 3D 프린터? 친환경 인공 어초 만들기 위해 프린터도 직접 제작
Q> 자체 제작의 경우 선호하는 제품 분야가 있나
“주력으로 만드는 제품군은 별도로 없다. 소형 가전부터 해양 생태계 보전을 위한 황토 인공 어초(3D프린팅), 에어컨 수리기사님들의 필수품인 동관 확관기(CNC)까지 환경과 공구, 가전을 넘나든다. 제품 스펙트럼이 넓다기보다 어떤 제품이든 가리지 않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Q> 인공 어초는 어떤 제품인가
“인공 어초는 수조나 바다에 넣어 해초와 물고기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구조물을 말한다. 시멘트로 만드는 기존 인공 어초는 무겁기 때문에 바지선으로 옮겨서 바다 한 가운데서 떨어뜨린다. 만만치 않은 제작 비용엔 운반 비용도 한 몫 한다. 정확한 위치에 설치하기도 어렵고, 시멘트가 부식되면 환경 오염의 문제도 있다.
이러한 한계에 착안해 환경친화적이면서도 비용효율적인 제품을 고안했다. 재료로 황토를 선택한 것도 황토는 부서져도 바닷속에서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시멘트 인공 어초보다 훨씬 환경에 이로울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3D 프린팅으로 제작했는데, 운반비용을 줄이기 위해 조립식으로 제작한 뒤 다이버들이 물 속에서 조립할 수 있도록 했다. 운반비용이 대폭 줄었고 당연히 설치 위치도 조정 가능해졌다.”
“황토로 출력하는 3D 프린터를 자체 개발했다. 황토 인공 어초뿐 아니라, 정교한 3D 프린팅 제품을 만들기 위해 대형 3D 프린터도 만든 적이 있다. 정교한 제품 출력을 위해서는 노즐의 움직임을 조정하는 LM가이드(직선 구름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레일과 베어링 이송장치)의 성능이 중요한데, 중국 시장을 뒤져 7만원 수준의 부품을 사서 제작하기도 했다.
자체 개발한 프린터를 사용하면 3D 프린팅으로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다듬지 않아도 부드러운 곡선과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다. <‘팬톤 체어’ 사진 참고>
Q>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다이슨’이나 ‘발뮤다’ 같이 해마다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고 꾸준히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 브랜드를 갖고 싶다. 이 회사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고민하고, 수없이 겪었던 수많은 실패들이 있었을 것이다. 레인메이커는 1년에 1개의 제품을 자체 개발하려는 목표가 있다. 직접 제품을 개발하며 노하우를 쌓고, 고객 분들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만들어가려는 시도다.”
수없이 시도하고, 수없이 실패하면 또 수없이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고객분들께도 그 믿음을 만들어드리고 싶다.
스스로 꿈을 꿔봤기에 그 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기업. 고객의 꿈을 자신의 꿈과 별개로 두지 않는 레인메이커의 ‘주술’은 꽤 효과적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