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펀치의 자율 근무 문화 – 2018년 : 축구팀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사무실 없이 일하는 방법 (원격 근무, 재택 근무 가이드)

2018년 로켓펀치 겨울 워크숍 사진

2018년은 로켓펀치의 자율 근무 문화가 많은 도전을 받은 시기였다. 이런 상황들 때문이다.

  1. 구성원이 15명까지 늘었다. 더는 작은 팀처럼 다 함께 회의하고 일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2. 큰 프로젝트가 동시에 두 개 이상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프로젝트 이슈 관리가 복잡해졌다.
  3. 두 명 이상이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프로젝트 관련 문서나 파일 관리가 어려워졌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가 가진 자율 근무 문화를 한 팀 이상의 조직 규모에서 잘 유지하는 방법을 찾았고,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할 분들을 위해 그 결과를 공유한다.

(1) 프로젝트 관리 방식 개선 – 슬랙 채널, 스카이프 대화방, 트렐로 보드 분리

로켓펀치 팀은 보통의 커뮤니케이션은 슬랙 채널에서, 화상 회의는 스카이프에서, 이슈 관리는 트렐로에서 하는데, 그동안 이 도구들은 기능적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런 방식은 작은 팀에서 프로젝트를 하나씩 진행할 때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팀 규모가 커지고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복잡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슬랙의 #product 채널에 여러 이슈에 대한 대화가 오가면서 중요한 내용을 놓치게 된다던가, 스카이프 대화방에서 작은 회의가 자주 열리면서 그 회의에 들어올 필요가 없는 사람이 업무에 방해를 받게 된다건가, 트렐로 보드 하나에 이슈가 너무 많아져서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카드가 많아지는 상태 등…

몇 번의 시도와 조정을 통해 우리는 각 관리 도구들을 좀 더 세부적으로 나누면 좋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렇게 조정했다.

1) 슬랙

  • 포괄적인 목적을 가지고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채널 외에 프로젝트 단위로 구분되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닫히는 프로젝트 채널을 만든다
  • 외부 서비스와 연동된 알림 메시지는 별도의 채널을 나누고 prefix로 정렬한다. 

2) 스카이프

  • 슬랙의 프로젝트 채널과 매칭되는 대화방을 만들어서 프로젝트 관련 회의는 각 대화방에서 진행한다.

3) 트렐로

  • 가장 많은 이슈가 쌓여 관리가 안 되던 Planning 보드를 프로젝트 단위로 쪼개서 이슈를 관리한다.
  • Planning 보드 이슈를 실제 작업을 하는 Current Development 보드로 옮길 때는 라벨을 사용해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구분한다.
  • Current Development 보드에서 어떤 이슈가 현재 기획 단계인지, 디자인 단계인지, 개발 단계인지 구분할 수 있도록 리스트를 세분화한다.

(2) 프로토타이핑 방식 개선 – 인비전 프리핸드 활용

구성원들이 같은 물리적 공간에 모여서 일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가장 어려운 일은 아무래도 ‘UX 아이디어 회의’다. 같은 공간에 있다면, 종이나 화이트보드에 슥슥 그려서 이야기 할 수 있는 내용을 화상 회의를 시작해야 하니까 말이다. 또 화상 회의를 한다고 해도, 인비전에 업로드된 이미지들을 보고 이야기 하면서 각자가 코멘트를 남기는 방식은 정말 비효율적이었다.

몇번의 대안 탐색 끝에 우리가 발견한 훌륭한 방식은 인비전 프리핸드를 활용하는 것이다. 인비전 프리핸드는 일종의 거대한 온라인 화이트 보드를 회의 참여자들이 공유하는 기능인데, 우리는 이렇게 사용하고 있다.

  1. 스케치로 제작된 이미지를 인비전 프리핸드에 적절히 배치하고, 공유 링크를 생성하여 화상 회의 참여자들에게 전달
  2. 회의 참여자들이 화이트보드를 쓰는 것처럼 자유롭게 그림이나 코멘트를 남기면서 회의 진행
  3. 아이디어가 결정되면 최종 디자인 버전을 제플린에 업로드
로켓펀치 팀의 실제 인비전 프리핸드 사용 방식

(3) 사내 커뮤니케이션 개선 – 업무 내용 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슬랙 채널 개설

회사 내에서 팀원들 간에 오가는 업무 외 커뮤니케이션은, 업무 커뮤니케이션 못지않게 중요하다.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면 업무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회사들이 회식이나 각종 팀별 활동 프로그램을 만들어 구성원들이 개인적으로도 가까워지길 기대하는 것도 그 이유다.

물리적인 공간을 공유하지 않는 팀의 가장 큰 단점은 그렇게 업무 외적으로 팀원들을 이해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실 2018년 3월경 도쿄의 게스트 하우스를 빌려 몇몇 팀원들과 함께 일주일 정도 같이 일하며 지낸 적이 있었는데, 모든 팀원이 그 경험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일본에서 포켓몬을 잡는 로켓펀치 팀원들

하지만 그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물리적 접점을 늘리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기업 문화와 맞지 않는 것이었기에 다른 대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물로 우리가 만든 것이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런 채널들이다.

#fun 채널에서 가장 많이 올라오는 주제는, 많은 수의 팀원들이 고양이를 길러서 그런지, 고양이 관련 내용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4) 프로젝트 결과물 관리 방식 개선 – Abstract 도입, Notion 도입

디자인 결과물을 잘 관리하고 기획 정책서를 일관되게 유지할 필요성이 커졌다. 디자인 파일이나 정책 문서는 프로그래밍 코드와 달리 사람이 어느 정도는 적당히 관리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인지 대중화된 좋은 관리 도구가 아직 없는 것 같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관리 도구를 검토했고, 스케치 파일 버전 관리 도구로 Abstract를, 프로젝트 정책서 정리 도구로 Notion을 각각 선택했다.

1) Abstract : https://www.goabstract.com/

  • Github이나 Github에 연동되는 Kactus 처럼 복잡하지 않고, 파일이 클라우드에 자동으로 동기화되어 변경 사항을 업/다운로드(Push/Pull) 할 필요가 없음
  • 원격 근무의 특성상 원래는 확인하기 힘들었던 서로의 작업 과정을 브랜치와 커밋 덕분에 보다 쉽게 확인 가능 (디자인팀 내에서뿐만 아니라 나머지 구성원들도 디자인 파일의 작업 과정 확인 가능)
  • 브랜치, 커밋, 병합 충돌을 코드가 아닌 시각적인 기능으로 처리하여 디자이너도 쉽게 사용 가능

2) Notion : https://www.notion.so/

  • 다양한 환경을 지원하고, 공유도 간편함
  • 트리 구조의 문서 정리 및 검색
  • 데이터베이스 등 다양한 문서 포맷 제공

(5) 그리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화상 회의 소프트웨어의 문제

한 해 동안 많은 개선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큰 문제는 화상 회의 소프트웨어다. 현재 스카이프를 쓰고 있고, 다른 소프트웨어도 여러 개 테스트를 해봤지만,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번에 회의에 참여해서 영상과 화면을 공유하면 각자의 컴퓨터가 심각하게 느려지는 현상은 어쩔 수가 없다. 고육지책으로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동시에 화상 회의에 참여해서 음성과 영상 공유는 스마트폰으로, 화면 공유는 컴퓨터로 하는 방식도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썩 만족스러운 상황은 아니다. 앞으로 우리처럼 서로 떨어진 다수의 사람이 회의하는 일이 늘어날 것 같은데, 어쩌면 이런 불편이 또 하나의 사업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함께보기>

로켓펀치의 자율 근무 문화 (원격 근무, 재택 근무 가이드)

사무실도 없고, 정기적인 오프라인 회의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업무를 위해 온라인 상태여야 한다는 규정도 없이 일하는 로켓펀치도 처음에는 보통의 회사들과 비슷한 업무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업무 시스템으로 변신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2년 간 그 시스템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공유하려고 한다.

원격 근무? 자율 근무!

로켓펀치 팀은 2년째 이렇게 일하고 있다

  1. 고정된 사무실 없이 각자가 원하는 공간에서 일한다.
  2. 정해진 업무 시간 없이 각자가 원하는 시간에 일한다. 팀이 달성해야 하는 큰 목표가 설정되면, 그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각자의 업무와 일정은 스스로 정한다.
  3.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디로 출근해서 얼마동안 일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휴가 일수 / 반차 / 근태 / 초과 근무’ 같은 복잡한 규칙도 없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일하고, 쉬어야 할 만큼 적절히 쉰다.
  4. 회사의 시스템은 각 구성원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도구에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구성원들이 온전히 일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복지를 제공한다. (로켓펀치 팀이 업무효율을 향상시키는 방법 – 가사서비스)

로켓펀치가 일하는 이 방식은,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는 있지만 사무실에 며칠은 출근을 해야 하거나,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업무 상태여야 한다는 보통의 ‘원격 근무’와 다른 방식으로 우리는 이것을 ‘자율 근무‘라 부른다. 원격 근무는 ‘일하는 공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무 공간의 자유 개념에 기반’하고 있지만, 우리의 자율 근무 방식은 ‘내 삶은 내가 결정한다’라는 ‘개인 삶의 자유라는 더 넓은 개념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 시대의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하여)

자율 근무 문화를 지키기 위한 업무 시스템과 규칙

우리는 이런 자유를 지키며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절한 업무 시스템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서로 마주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일이 진행할 수 있는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한 규칙을 만들었다.

A. 마주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진행하기 위한 시스템

1. 공간을 기반으로 탄생한 불필요한 규칙의 제거

일반적인 회사에는 ‘출근 시간, 집중 업무 시간, 휴가 일수’처럼 공간을 기반으로 한 많은 규칙 있다. 우리는 가장 먼저 없앴다. 정해진 업무 공간과 시간 개념이 없는 조직에게 이런 규칙들은 적용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 클라우드 기반의 업무 자료 작성과 보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모든 문서는 클라우드 기반의 문서 도구로 작성하고 보관한다. 회사의 구성원 누구나 어떤 이슈에 관련된 가장 최종 문서를 찾을 수 있는 명확한 방법이 정해져 있다면, 어떤 문서에 대해서 누군가에 물어볼 필요가 없어진다. 이 문화는 한번 정착되고 나면 정말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제공한다. (정말이다!) 우리는 새 문서 작성은 보통 구글 드라이브를 사용하고, 이미지 파일 등은 드랍박스에 저장한 후, 언제 어디서 접근 가능한 링크로 전달한다.

3.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도구에 아낌없이 투자

로켓펀치 팀은 제품 개발에 GitHub, Slack, Trello, Zeplin, invision 같은 생산성 향상 도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무실 공간이 없어 절약되는 비용을 이런 도구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생산성을 높인다.

<프로토타이핑에 아주 유용한 인비전>

B. 마주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진행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줄이기 위한 규칙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 있더라도,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항상 어떤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문제를 발견했고, 이를 줄일 수 있는 규칙들을 만들었다.

1. 어떤 일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슈를 초창기에 해결하는 문화

  • 문제 현상 : 특히 제품 개발에서,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이슈들이 초창기에 결정되지 않으면, 결과물 불확실성이 커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것은 거의 모든 회사 조직이 고민하는 문제이긴 하나,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는 이 문제가 특히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서로 마주치며 현상을 파악하고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가 현저히 적기 때문이다.
  • 해결을 위한 규칙 : 기획 문서건 디자인 파일이건 초기 개발 버전이건,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초기 버전을 최대한 빨리 구성원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이 결과물을 공유할 때, 결과물의 질도 물론 중요하지만, ‘시간에 결과물을 맞춘다’는 관점을 유지한다.

2. 목적과 대상을 명확히 지정하는 커뮤니케이션

  • 문제 현상 : 대부분 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므로, 대상을 정확히 지칭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 경우, 그 대상이 스스로 답변을 해야 하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특히 업무 메신저의 공용 채널이나 팀 내 다수를 대상으로 발송하는 이메일, 많은 사람들이 엮여 있는 프로젝트 도구 항목에서 자주 발생한다.
  • 해결을 위한 규칙 : 공용 채널 메시지나 다수의 수신인이 있는 이메일을 작성할 때 반드시 답변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거나 답변이 필요한 기한이 있다면 이를 명확히 언급한다. 대상이 답변을 줘야 하는 요소에 대하여 명확히 언급할 때는 각 항목에 대해서 ID를 할당해서 답변 대상이 답변하기 용이하도록 한다.
Good Bad

@조민희

Q1) 홈: 행사 참여, 채용 지원 맞는지? 행사 참여 신청은 폼 만들면 되고, 채용 포지션 지원 시는 동작이?

Q2) 채용 지원: 문의하기는 UserVoice? 마찬가지로 신청하기 버튼 동작이?

@이상범

Q1) UserVoice를 하는 경우 타이틀이랑 placeholder 정해주는 게 좋음.

– 홈: 행사 참여, 채용 지원 맞는지? 행사 참여 신청은 폼 만들면 되고, 채용 포지션 지원 시는 동작이?

– 채용 지원: 문의하기는 UserVoice? 마찬가지로 신청하기 버튼 동작이?

– UserVoice를 하는 경우 타이틀이랑 placeholder 정해주는 게 좋음.

3.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최대한 빠른 피드백

  • 문제 현상 : 위에서 언급한 문제 현상 2와 관련하여, 실무 작업자가 답변을 받지 못하여 작업이 멈추는 현상이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역시 모든 회사 조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화지만, 오며가며 물어보거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물어볼 수 없는 원격 환경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가능성 높아진다.
  • 해결을 위한 규칙 : 내가 답변을 해야 한다고 지칭된 이슈에 대하여는 24시간 내에 답변을 하도록 노력한다. 내가 어떤 이슈에 대하여 ‘의견이 없거나, 동의하는 상태’라도 확인했다는 메시지는 전달한다.

 

로켓펀치의 자율 근무 시스템에 대하여 ‘정말 그렇게 일이 되나요?’라고 물어보는 분들이 계시지만, 생각해보시라. 우리가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도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은 온라인에서 처리되고 있고,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업무 커뮤니케이션도 결국 디지털화가 되어야 한다.

사무실에서 일한다면, 웹사이트에 문제를 발견했을 때 옆에 앉은 개발자에게 ‘이거 문제 있는 것 같아요’라고 불러서 편할 것 같기도 있지만, 이는 그 동료의 집중을 방해하는 행위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 처리를 위해서는 결국 그 이슈는 ‘업무 목록 시스템’에 등록이 되어야 한다.

원격 근무 도입을 실패했다는 조직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원격 근무에 기존 사무실 근무 환경에서 만들어진 시스템이나 문화를 적용하려고 하다가 발생한 문제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직접 대면하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조직’이라는 큰 가정을 가지고 시스템을 만들어가면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높은 생산성을 달성하는 조직을 만들 수 있다.

 

<함께 보기>

새 시대의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하여

언젠가부터 좋은 직업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이 반드시 언급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의 과중한 업무 경향은 변하지 않으면서도, 경제 성장의 둔화로 일을 통해 기대되는 보상의 수준까지 정체되면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이야기 되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이야기 할 때, 그것은 보통 ‘일’과 ‘삶’을 철저히 분리하고, ‘일’을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한정하기 때문이다. 정말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에 우리 삶에서 최소화 되거나 적어도 철저히 구분 되어야 하는 개념인가?

중세와 근대 과학이 발전하던 시기, 위대한 성과를 거둔 과학자들 중 상당수는 평생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귀족인 경우가 많았다.

“근대 과학혁명 초기에만 해도 소수의 대학교수들을 빼면, 많은 과학자들은 생활에 여유가 있는 부자나 귀족 출신이었다. 만유인력 상수를 측정한 캐번디시(Henry Cavendish; 1731-1810), 근대 화학의 아버지 라부와지에(Antoine Laurent de Lavoisier; 1743-1794),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남긴 페르마(Pierre de Fermat; 1601-1665)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 프로보다 위대했던 아마추어들

만약 ‘일’을 생계 수단으로 한정한다면, 이 귀족 출신 과학자들이 평생을 걸쳐 이룩한 위대한 성과는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평생 일할 필요가 없는 귀족들이 ‘자발적으로 일한 것’만 봐도 ‘일’이 인간에게 돈 이상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또 다른 상황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 음악을 만드는 일, 글을 쓰는 일 등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예술가로 부른다. 어떤 예술가가 비 오는 날 차를 한잔 마시면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다고 가정해 보자. 분명 이 순간의 감성들은 이 사람의 작품 세계에 어떤 형태로건 반영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 지금 이 예술가는 일을 하지 않는 상황 즉, 놀고 있는 상황인가 아니면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인가? 예술가의 ‘일’을 캔버스에 직접 물감을 입히고 있는 상황,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고 있는 상황, 종이에 글을 쓰고 있는 상황으로만 한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일에 어떤 수준으로 건 창의성을 발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일과 일 아닌 상태 구분의 모호함’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인간에게 일은 단순히 돈 버는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좋아하는, 자아실현이 가능한 일을 하고 있다면 ‘내가 하는 일이 내 삶이고 내가 사는 삶이 내 일’이 된다. 진짜 ‘일과 삶의 균형’은 이런 관점에서 탄생한다. 열심히 일한만큼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기 때문이며,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이나 여행 같은 다양한 삶의 경험을 누려야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일의 수준을 한층 더 높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로켓펀치가 완전한 원격근무로 일하면서도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구성원들이 일과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켓펀치는 사무실도 없고, 정기적인 오프라인 회의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업무를 위해 온라인 상태여야 한다는 규칙도 없다. 이를 접한 많은 분들이 나에게 ‘구성원들이 일을 안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지 않은가?’라고 물어보곤 한다. 하지만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다. 본인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일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일과 삶의 진짜 균형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위치나 시간으로 강제 받지 않아도 알아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라. 그러면 평생 하루도 일할 필요가 없다.”
– 로켓펀치 기업 문화를 정리한 문서 가장 첫 장에 있는 문장

우리가 만드는 로켓펀치가 각 개인이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을 찾아주는 것에, 그리고 새 시대의 일과 삶의 균형을 확립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아주 가끔 있는 로켓펀치 오프라인 회의 모습]

로켓펀치의 오프라인 미팅 모습 – https://www.instagram.com/p/BPHNqd6BI1N

붙임 1. 이 글은 일과 삶의 진짜 균형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과한 업무와 박한 보상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읽히거나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붙임 2. 글을 쓰던 중에 나와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영문 에세이(Work/Life balance is bullshit.)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