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2호 0

개친연 1호가 나간 이후에 개발자와 사귀며 가슴을 치고 계시는 여자분과 여자 개발자와 사귀며 벽을 치는 남자분들로부터 많은 제보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미국의 유명 컴공과를 졸업해 현재 개발자로 활동 중이시라는 익명의 여자 2호분을 섭외하게 되었는데요. 본인이 개발자면서도 유독 개발자를 사랑하는 그 열정에 감동하여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본인 소개 해주세요.
여자 2호: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미국 클라우드 컴퓨팅 회사에서 2년째 플랫폼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여자 2호입니다.


신림동 캐리: 아, 그 귀하다는 여자 개발자시군요. 주변에 남자가 많으시겠어요. 남자친구는 뭐하세요?
여자 2호: 불행히도 지금 현재는 공식적으로 남자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신림동 캐리: 그러면 개친연 왜 신청하셨….
여자 2호: 제가 그동안 사귀었던 남자는 물론이고 잠깐이라도 썸이 생겼던 남자 전부 다 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할 말이 많아요.

오호? 흥미진진한 폭로전이 될 것 같습니다.

신림동 캐리: 전공이 전공이시니까 그 안에서 만나는군요. 그 유명한 공대 아름이시군요.

실제로 여자 2호는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귀염상의 미녀셨습니다.

신림동 캐리: 여자로서 컴공과에 다니는 건 어떠세요? 소문에 의하면 ‘컴싸여신’이라든가 ‘컴싸아이유’라고 불리신다고 들었어요.
여자 2호: 그 소문 제가 낸 겁니다.
신림동 캐리: 아, 그러시구나….
여자 2호: 그리고 전 주변으로부터 평생 들을 욕을 다 처먹었죠. 아무튼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을 당시엔 개발의 개자도 몰랐고 HTML/CSS 혹은 태그가 개발의 전부인 줄 알았으며 제 미래의 직업 같은 건 하나도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개발자가 됐네요.

신림동 캐리: 남자는 주로 언제, 어디서 만났셨어요?
여자 2호: 대학교에서 주로 만났어요. 수업을 같이 듣는다거나 과제를 같이 한다거나 하면서 자연스럽게 썸이 생기더라고요. 아무래도 학과 선배분들이 저보단 개발 경험이 많으시니까 묻고 답하고 하는 과정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서요. 미국에서 대학을 다녀서 제 에세이를 봐주시기도 하고요.
신림동 캐리: 구남친들의 개발 언어는 뭐였나요?
여자 2호: 쓰는 언어들은 확실치가 않네요. 지금 사귀는 것이 아니라서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요. 하지만 가장 자주 쓰이는 프로그래밍 언어 탑 10을 거뜬히 채울 것 같아요. 지금은 각종 예측 알고리즘과 툴 연구 및 개발과 각종 플랫폼 엔진 개발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신림동 캐리: 헤어졌는데 그걸 왜 아는 거죠?
여자 2호: 알면서….

너님만 술 마시고 울면서 구여친 페이스북을 훔쳐보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 페이스북 사찰로 위아더월드!

신림동 캐리: 컴공과 아름이로서 컴공과 공돌이만 사귀셨다고 했는데 만남은 어떤가요?
여자 2호: 한 마디로 ‘넌 누구? 여긴 어디?’라고나 할까요. 전 컴공과에 재능이나 뜻이 있어서 갔다기보단 어쩌다 간 거라 입학하고 한동안은 개발에 관해서 전혀 아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동기들의 대화를 못 알아들어서 멘붕하기도 했었고요.
신림동 캐리: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상대방이 안다는 것에 대해 매력을 느끼셨겠어요.
여자 2호: 꼭 그렇지만도 않아서요. 구남친 하나는 처음으로 대화했을 때 로봇 관련 대화를 준비하던 중이라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 겉으로 “아, 그러셨구나!”라든가 “와,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속으로는 “이게 뭔 외계언어야….”하고 안드로메다를 느꼈던 기억이 있어요.
신림동 캐리: 상대방이 이 대화에 흥미 있을까를 별로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관심사를 마구 늘어놓는 게 공대생의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더라고요.

공대생들이여, 여자가 웃으면서 잘 들어준다고 신나서 이야기하지 맙시다. 그녀의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걸 좀 느끼라고요!

신림동 캐리: 학교 말고는 또 어디서 남자를 만나죠?
여자 2호: 개발자 모임이라든가 회사에서 주로 만나요.
신림동 캐리: 공순이다. 뼛속까지 공순이야….
여자 2호: 저도 그런 곳에서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거 아니거든요….
신림동 캐리: 근데 미국이면 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헌팅을 당하거나 하는 기회도 많지 않나요? 제가 미국 있을 땐 스타벅스 같은 데서 몇 번 당했는데?

다들 눈치 채셨겠지만 제 자랑 맞습니다.

여자 2호: 클럽이나 파티에서 번호 받아간 적은 많은데 계속해서 연락하진 않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어차피 제가 가는 파티도 다 개발자만 득실득실해서요.
신림동 캐리: 그 나물에 그 밥이군요.
여자 2호: 남자 개발자가 다양한 여자를 만날 기회가 없듯이 개발자 신분인 저 역시 아무래도 다른 쪽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거의 못 만나요. 다른 분야라고 해도 기껏해야 IT 회사에서 일하는 디자이너 정도랄까요? 근데 그 디자이너분마저 예전에는 개발자로 일하셨더라고요. 게다가 저랑 대학 동문이었다고요.

신림동 캐리: 그럼 같은 개발자끼리 사귀며 느끼신 게 있으신가요?
여자 2호: 저도 개발자지만 남자 개발자들 어떤 분야든 엄청나게 덕후더라고요. 심지어 학교 성적이 안 좋아도 어떤 분야는 ‘얘가 왜 이 실력으로 이 점수를 받지?’ 싶을 정도로 실력이 엄청난 경우가 많아요. 코딩의 신이라든가 각종 대회에서 상을 콜렉터 한다든가 이름을 대면 다 아는 회사에서 미리 인턴하고 왔다든가 하는 거요. 그래서 처음엔 좀 존경의 대상이었는데 연애하면서 못 볼 꼴 다 보고 나니까 개발자들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림동 캐리: 원래 사람이에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여자 2호: 처음엔 뭔가 엄청난 존재로 보였거든요! 개발자에 대해 잘 몰랐을 때는 개발자와의 연애는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LED로 튜닝한 정체불명의 기계를 기념일 선물로 받는다던가 암호화된 스크립트를 편지 대신 받아서 그걸 풀어야 메세지가 나온다든가 그런 걸 꿈꿨죠.

여자친구분께 하트가 막 쏟아지는 프로그램을 선물하셨다던 이두희님이 생각나네요. 두 분 만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여자 2호: 제가 개발자와만 연애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천재 혹은 싸이코처럼 보이는 공돌이도 연애할 때는 평범한 남자더라고요. 겉으로 차갑고 시크해 보이는 남자가 제게만 다정한 감정 표현을 할 때 정말 행복했었어요.

신림동 캐리: 그렇다면 개발자 남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다른 차이를 보인다면 어떤 점일까요?
여자 2호: 다른 남자들도 어느 정도의 덕후 기질이 있겠지만, 남자 개발자는 오덕 마인드를 필수로 가지고 있다 보면 돼요. 평균적인 덕후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좋아하는 분야가 하나 있으면 정말 끝까지 파고들어요. 구남친 하나는 콘솔 게임을 정말 좋아했어요. 소위 말하는 겜덕이었죠. 한정판 게임과 관련 제품을 바다 건너서라도 구해오는 건 기본이에요. 저와 바다 건너 장거리 연애를 하며 웹캠으로 연락했는데, 저와 이야기하는 동시에 게임을 하면서 갖가지 엔딩을 하루종일 보여주더라고요. 또 다른 구남친은 무한도전 보는 걸 그렇게 좋아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과제하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며 꼭 무한도전을 무한 리플레이 하더라고요. 저도 옆에서 보다 보니까 어느새 무한도전 에피소드를 다 파악해버렸어요. 어떤 대사가 어느 시점에 나오는지까지 기억하게 됐다니까요.
신림동 캐리: 저도 무도덕후 구남친이 있었어요. 걔도 유학생이었는데 한국 올 때마다 여기는 무한도전 무슨 에피소드를 촬영한 곳이고 하면서 감격한 얼굴을 하더라고요. 심지어 밖에서 데이트를 하다가도 토요일 6시가 되면 텔레비전 있는 식당에 가서 같이 무한도전을 봐야 했어요!

무도 까면 사살이니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여자 2호: 썸남 하나는 또 커피 덕후라서 여행을 가면 하루에 열 군데가 넘는 카페 순회를 하더라고요. 그것도 맛을 제대로 비교하려면 동일한 조건이어야 한다며 한 종류의 커피만 마셨어요. 그래서 카페인 효과 덕분에 여행하는 내내 밤을 새우고요. 그 분은 동시에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덕후이기도 하고 위스키 덕후라서 시간 나면 레스토랑을 순회하는 건 기본이고 집에 위스키을 몇백 병 전시해놓기도 했어요.

그건 그냥 돈이 많은 거잖아….

신림동 캐리: 다들 한 덕후하셨네요.
여자 2호: 제가 만났던 개발자 남자친구 중에서 어떤 특정분야에 심취한 덕후가 아닌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개발자의 덕후성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란 데요. 친한 개발자 오빠가 대놓고 “내가 덕후 되기 싫어서 실리콘밸리 안 간 건데!”라고까지 말했어요. 문제는 이 오빠도 겜덕에다 픽사덕이라는 거죠.
신림동 캐리: 일반인은 주변을 둘러보며 ‘나 혹시 덕후인가?’ 생각하고, 덕후는 주변을 둘러보며 ‘그래 나 정도면 덕후는 아니지!’라며 안심한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여자 2호: 차라리 오덕한 개발자면 사랑스럽죠. 저는 ‘브로그래머(bro+programmer)’를 정말 싫어해요. 브로그래머는 개발자의 최종 흑화된 레벨이자 사회악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신림동 캐리: 브로그래머가 뭐죠?
여자 2호: 세련되고 유행에 민감하며 자신의 남자다움을 과시하는 신세대 프로그래머를 뜻하는 신조어인데요. 미국에선 프로그래머가 잘나가는 직종의 하나거든요. 그래서 외모를 번지르르하게 꾸미고 자신의 연봉과 학벌로 여자를 꼬시고 다니면서 상처 주는 인간들이 많아요. 자신의 남성적 매력으로 여성을 사냥하는 동시에 가지고 노는 거죠. 자신감과 잘난 척은 정말 다른 건데 말이에요. SNS에서만 봐도 “나 돈 이렇게 잘 번다. 나 이렇게 하고 산다. 나 너네보다 똑똑하다. 이 그지 깽깽이들아!” 하면서 온갖 허세를 다 부리시는 브로그래머가 은근히 많아요.


신림동 캐리: 왜 이렇게 브로그래머에 분노하세요?
여자 2호: 사실 예전에 만났던 구남친이 저런 케이스였어요. 사귀던 당시에는 공부하느라 바쁜 평범한 공돌이였죠. 근데 헤어지고 나서 어쩌다 다시 만난 적이 있는데 소위 말하는 브로그래머가 됐더라고요. 퇴근하고 시간 내서 운동하고 돈 벌면 옷 사고 머리 하는 데 투자하는 것까진 좋았어요. 근데 여자를 닥치는 대로 가볍게 만나더라고요. 그러면서 당시 바빠서 살찌고 망가진 모습이었던 제게 “이렇게 가꾸는 거 조금만 관리하면 되는 건데 넌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징징대는 거냐?”라고 충고하더군요.
신림동 캐리: 저도 예전에 살찐 상태에서 구남친 만난 적이 있는데 ‘이제 너도 별 수 없구나’라고 해서 두고 두고 분했어요!
여자 2호: 자기 자신을 가꾸는 건 멋진 일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누를 필요는 없다고 봐요. 전 개인적으로 이과남이 다른 사람에겐 무심하면서 나에게만 다정하게 구는 속성이 좋다고요!
신림동 캐리: 저도 그거 완전 사랑합니다.
여자 2호: 저희 회사 팀메이트 중의 한 분이 흰 티셔츠와 디젤 청바지를 입고 코딩하는데 살짝 보이는 팔 근육과 힘줄이….
신림동 캐리: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좋아하는 건 남자도 마찬가지예요. 근데 문제는 그러고도 예쁘고 멋있으려면 얼굴과 몸매가 따라줘야 한다는 거죠.

언제나 그렇지만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고 몸매죠.

여자 2호의 폭로전은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2호 1에서 계속됩니다.

집밥, 제대로 드시고 계세요?

심심한 날
친구가 필요한 날
나는 나는 친구를 만들죠

모 어린이 프로그램의 이 로고송을 기억하시는 분이 많으실 겁니다. 어릴 적이야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것만으로 옆자리에 앉았단 것만으로도 그냥 친구가 되곤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방과 후에도 늘 붙어 다녔죠. 하지만 어른이 되면 될수록 각자의 일로 바빠서 서로 신경 쓰지 못하거나 관심사가 달라지거나 등의 이유로 계속해서 친구가 줄어들게 되는데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지만 밥 한 끼 먹자고 친구와 약속을 잡는 건 번거로운 일이죠. 그렇다고 혼자 밥 먹는 것은 여전히 서먹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국내 최초이자 최대 소셜다이닝인 온라인 플랫폼 ‘집밥‘을 만나고 왔습니다.

왼쪽에서 세번째가 집밥 박인 대표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박인: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님 팬입니다.
신림동 캐리: 아니, 제가 더 팬입니다. 저번에 D.CAMP에서 뵈었죠?
박인: 기억 안 나는데요.
신림동 캐리: 그러시구나….
팬이시라면서요….

박인: 페이스북에서 글을 읽으며 어떤 분인지 궁금했어요.
신림동 캐리: 뭐 특별한 거 있겠어요. 회사 다니는 직장인이죠.
박인: 혹시 인터뷰도 반말로 하나 궁금했어요.

설마요. 제가 그렇게까지 사회성 없는 인간은 아닙니다.
신림동 캐리: 자,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해보죠. 반말모드 ON. 일단은 집밥, 요즘 잘 나가는 것 같다.
박인: 아직 미흡한데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신림동 캐리: 컨설팅 회사 출신이라고 들었다.
박인: 맞다.
신림동 캐리: PPT의 신이시겠다.
박인: 아니, 요즘은 현업에서 나온 지 좀 오래되어서 감 떨어졌다.
신림동 캐리: 강남이었나 여의도였나?
박인: 여의도였다.
신림동 캐리: 나도 여의도에서 일했었다.
박인: 진짜? 어디?
신림동 캐리: 난 에스트레뉴 30층.
박인: 아, 그 이상하게 생긴 빌딩.
신림동 캐리: 진짜 이상하게 생겼지. 여의도 하면 진주집 생각난다.
박인: 아, 진주집!
신림동 캐리: 진주집 계속 더 커지고 있다. 나중엔 여의도백화점이 진주집 될 것 같다. 진격의 진주집이다.

그렇게 여의도 이웃이었다는 것 하나로 우리는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아, 진주집 맛있으니까 여의도 들를 일이 있으시면 다들 한 번 가보세요.

신림동 캐리: 컨설팅 회사, 뭐 요즘 하락세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선망의 직종 아닌가?
박인: 경영학과 졸업하고 어쩌다 컨설팅 회사에 들어갔다. 매일이 야근에 최고층에 앉아서 키보드 두드리기만 했다. 그러다 내가 뭐하는 짓인가 내가 PPT에 써넣고 있는 이 이야기들이 얼마나 현실성 없는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그만 두겠다고 했다.
신림동 캐리: 회사에선 뭐라던가?
박인: 처음엔 말리다가 나중에 이사님이 ‘그래, 넌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애.’라며 시원섭섭하게 보내주시더라. 그리고 놀았다. 백수가 되어서 원 없이 놀았다.
신림동 캐리: 엄마 아빠가 뭐라고 안 하시던가? 난 백수 때 냉장고에 있는 요구르트만 먹어도 엄마한테 ‘백수 주제에 입은 살아서! 물이나 마셔!’라는 구박을 들었었다.
박인: 부모님은 외국에 나가서 일하고 계신다.
신림동 캐리: 아, 완전 살판났겠구나.
박인: 아니다. 혼자 산지 10년 차여서 그런지 ‘집밥’을 잘 먹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우리가 먹는 밥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아침에는 후다닥 대충 때우고, 점심은 긴 줄을 서서 겨우 먹거나 밖에서 업무차 아무 거나 먹고, 저녁은 야근하기 위해 먹잖아. 문득 이건 식사라기보다는 사료에 가깝단 생각이 들었다. 그 기분이 참 싫더라. 그렇지 않나?
신림동 캐리: 난 뭘 줘도 잘 먹는 편이다. 그럼 박인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식사는 어떤 모습인가?
박인: 한 끼를 먹더라도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밥을 먹고 싶었다. 근데 일단 난 혼자 살고 마침 남자친구도 없고 친구들은 다 바빴다. 회사도 그만둔 상태이다 보니 더더욱 식생활이 피폐해져만 갔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다운 식사가 그리웠다. 그러다가 갑자기 옆집에서 카레 냄새가 나길래 무턱대고 가서 밥 좀 달라고 했다.
신림동 캐리: 그거 주거침입 아닌가?
박인: 그건 아니고 평소 인사 정도 하는 옆집 할머니셨는데 흔쾌히 카레를 나눠주셨다.
신림동 캐리: 아직 세상이 살만하구나. 그래서?
박인: 그걸 SNS에 올렸는데 사람들 반응이 좋은 거야.
신림동 캐리: 모니터에서 사람 냄새 나네요.
박인: 그래서 그걸 시작으로 페이스북 이벤트를 하게 되었고 그게 발전해 ‘집밥’이 됐다.
신림동 캐리: 어떻게 보면 그날 옆집 할머니가 카레를 만들지 않으셨더라면 집밥은 없었겠다.
박인: 그럴지도.
신림동 캐리: 그래서 그 할머니 댁엔 자주 가나?
박인: 그 이후로는 안 갔다.
신림동 캐리: 너무하잖아….

신림동 캐리: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만큼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좀 있을 것 같다.
박인: 집밥 모임은 주제나 관심사를 중심으로 모이는데, 그러다 보니 서로 취향이 비슷하고 솔로인 남녀들이 만나 많이들 사귄다. 커플 탄생은 이제 흔하고, 집밥에서 만나서 결혼까지 하신 분도 있다. 집밥을 정식으로 운영한 게 이제 1년이 조금 넘어가는데 벌써 그 사이에 결혼하거나 결혼을 눈앞에 두고 계신 커플이 있어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때마다 매우 뿌듯하다.

집밥은 사랑을 싣고!
신림동 캐리: 사실 나도 솔로일 때 너무 외롭다 못해 집밥을 통해 남자를 만나보려고 했었다.
박인: 나가보시지 그러셨나.
신림동 캐리: 그때 아는 남자와 집밥 사이트를 보며 ‘별별 모임이 다 있네. 나도 나가볼까?’ 했었는데 지금 그 지인과 사귀고 있다.
박인: 나 빼고 다 커플이지. 정작 나는 집밥에서 커플을 만들어주며 외롭게 살고 있다.

송창규님은 로켓펀치와 인터뷰한 이후로 소개팅이 쇄도하고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박인 대표님도 좋은 소식 기대해봅니다.

신림동 캐리: 아까도 말했지만, 집밥은 참 다양한 모임이 많은 것 같다. 취미 모임도 있고 봉사 모임도 있고 심지어 단체 미팅도 있더라. 대표로서 자랑할만한 집밥의 이벤트와 모임을 소개하면?
박인: 집밥에는 정말 집에 가서 밥 먹는 모임이 간혹 있다. 외딴 사람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나. 실제로 몇몇 분들이 하고 있는데 반응이나 후기도 정말 좋다.

신림동 캐리: 앵콜 어쩌고 하는 모임들은 뭔가?
박인: 인기 있거나 반응이 좋은 모임들은 다시 열린다. 그런 걸 앵콜 모임이라고 한다. 현재 와인 모임이나 직장인 점심 모임은 20차 수 넘게 모임을 연달아 하시면서 나름의 팬클럽을 만들어나가고 계신다. 모임을 계속 개최하시는 분들은 나름의 명성을 쌓아가시다가 강연자로 성장하셔서 출강까지 하시게 되었다 들었다. 또한, 집밥이 현재 서울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데 자발적으로 타 도시들, 부산, 대전, 대구, 전주 등 지방 주요 도시에서도 모임들이 생성된다. 이때까지 집밥 모임 참여하러 서울까지 원정 오시다가 이제 자신의 주거지에서 모임을 만드신다면서 만드시는데 그 모임들이 성공하면서 지방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림동 캐리: 근데 여기서 잠깐, 왜 사람들이 처음 보는 타인과 밥을 먹고 싶어할까? 난 처음 보는 사람과 만나는 것도 싫고 밥 먹는 건 더더욱 싫어서 이해가 잘 안 간다.
박인: 타인과 단지 밥을 먹고 싶어서 만나는 건 아닐 거다. 현재의 사람들과의 비즈니스적인 식사자리, 취향을 공유할 수 없는 식사자리가 싫어서 집밥에 온다고 생각한다. 다들 취향이 있고 이를 공유하고 싶은데 회사 동료와 그걸 나누긴 좀 그렇잖아.
신림동 캐리: 그렇지. 회사 사람들이랑은 사장님 욕이나 하는 거지.
박인: 집밥에선 공통의 주제가 있고 관심사가 있다.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자리이기에 나오는 게 아닐까.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 모임에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1인 가구가 전체인구의 24%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통의 필요성과 관계 형성에 대한 니즈가 높아지고 있죠. 소셜다이닝 집밥에는 ‘따뜻한 집밥’과 같은 다양한 모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림동 캐리: 대표님이 혼자 밥 먹어본 최고의 레벨은?
박인: 신림동 캐리님은 어디까지 해보셨는가?
신림동 캐리: 전 여대 출신에 친구가 없어서 그런지 아웃백도 혼자 잘 간다. 혼자 가면 빵 많이 줘서 좋다.
박인: 난 그것보단 저렙이다. 집에서 무한도전 보면서 밥 먹는 정도? 밖에서는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 외에는 없다. 편의점 라면 먹기도 안 해봤다. 그냥 밥 혼자 먹느니 굶고 만다.
신림동 캐리: 내가 그런 체질이었으면 매우 날씬해졌을 텐데 아쉽다.

제가 어릴 때 엄마가 어디서 사주를 봤는데 점쟁이가 저더러 1월 허허벌판에 버려놔도 잡초 뜯어 먹으며 살아남을 인간이라 말했다고 합니다.

신림동 캐리: 집밥을 운영하며 시스템적으로 힘들었던 일은?
박인: 사람이 만나는, 개인이 만나는 모임 플랫폼이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서비스이다 보니 초반에 특히 이해를 못 하시고 문의사항들이 많았다. 수동으로 전화로 이메일로 응대하는 부분이 많아서 자동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 초반에 힘들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자동화를 시키고 자주 물어보시는 질문들을 정리해두어서 개선되었다.
신림동 캐리: 얼마 전에 집밥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니 리뉴얼했던데 뭔가?
박인: 집밥 사이트를 반응형 웹으로 리뉴얼했다! 모바일 결제도 된다!
신림동 캐리: 반응형 웹이라고?
박인: 사용자의 다양한 환경에 웹 페이지가 레이아웃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모든 디바이스에서 최적의 상태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다.

집밥이 이번 리뉴얼을 통해서 국내에서 아직 그 사례를 찾기 힘든 최첨단의 ‘반응형 웹’ 사이트가 됐다는 걸 강조해달라 하십니다. 그렇다고 하십니다. 반응형 웹이 뭔지 궁금하시면 집밥 사이트 들어가 보시면 됩니다.

신림동 캐리: 생각해보니 내가 여자만 인터뷰하는 일은 처음인 것 같다.
박인: 여자를 싫어하는 거 아니셨나?
신림동 캐리: 그건 아니다. 정말 아니다.
박인: 남자만 노린단 이야기를 들었다.
신림동 캐리: 그랬으면 내가 돈을 받는 게 아니라 돈을 주고 회사 다녀야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튼 여자 CEO로서 느끼는 장단점이 있다면?
박인: 남자 CEO와 다른 점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꼬집어서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신림동 캐리: 굳이 말하자면?
박인: 딱히 모르겠다.

신림동 캐리: 우리 집밥은 다른 회사와 이런 점이 다르다?
박인: 구성원들에게 완벽한 근태의 자유를 허용한다. 대표가 가장 나이가 어리기에, 구성원들을 대표가 모시고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출퇴근 시간은 물론 업무장소, 모두 가장 구성원들이 가장 효율, 효과적인 방식으로 선택하시게끔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재택근무하시기도 하고, 영업이나 외근하시는 경우에도 회사 복귀 의무나 보고의 의무도 딱히 없다.
신림동 캐리: 회식은 하나?
박인: 회식은 집에서 삼겹살이나 오리를 구워먹으며 집밥 회식을 한다. 훨씬 맛있게 양질의 고기를 집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기에 다들 만족한다.
신림동 캐리: 그거 뒤처리할 때 힘들지 않나?
박인: 물론 힘들다.

저는 어머니로부터 고기와 튀김은 사서 먹는 게 진리라고 배웠습니다.

신림동 캐리: 박인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집밥’의 힘은 뭔가? 난 어머니가 음식 만들기를 싫어하셔서 솔직히 집밥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다.
박인: 우리 어머니도 음식 만들기를 즐기진 않으셨다. 우리 집도 외식이 잦았다. 집밥의 힘은 그 밥이랑 반찬이 맛이 대단히 있어서가 아니다.
신림동 캐리: 그럼?


박인: ‘식구’란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근데 점점 그 뜻이 무색하게 한 집에서도 다 같이 밥 먹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가 되어간다. 사회 나가서 같이 밥 먹는 건 식사라기보다는 비즈니스 미팅이나 끼니를 때우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
신림동 캐리: 맞아.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도 이제 좀 무색하다.
박인: 우리 ‘집밥’은 혼자 밥 먹기 싫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다. 새로움을 원하고 공감대 형성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랄까. 사람이 고파서 집밥에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채우고, 즐거움과 새로움을 얻고자 능동적으로 삶을 즐기는 분들이 집밥에 찾고 계신다. 앞으로도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식사를 할 때 생기는 소통과 공감의 힘을 같이 채워나가고 싶다.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1호

12월입니다. 로켓펀치에서는 연인의 달인 12월을 맞이해 ‘개발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말 그대로 개발자의 여자친구들을 만나 개발자와의 연애란 어떤 것인지를 들어보는 것입니다. 개발자에게 여자친구가 있냐고요? 모니터 속의 2D라든가 용이나 해태 같은 상상 속의 동물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의외로 개발자도 다들 연애하고 있습니다. 당신과 주변만 없을 뿐입니다. 자, 그러면 개발자인 남자 1호와 연애하는 여자 1호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신림동 캐리: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여자 1호: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으나 학사경고 3번에 D-까지 안고 졸업해 전공이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재는 스타트업에서 마케팅과 콘텐츠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강남역과 닫혀있는 화장실 변기를 싫어합니다.

신림동 캐리: 남자친구는 언제, 어디서 만났어요?
여자 1호: 동종업계 F사에 인터뷰 갔다가 알게 됐습니다.
신림동 캐리: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연애질이나 하셨다고요?
여자 1호: 아니, 인터뷰할 때는 정말 일만 했어요. 업무 관련해 F사에 방문했을 때는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난 적도 없습니다. 그러다 F사의 홍보 담당자 K씨가 술 한 번 마시러 오라고 하셔서 놀러 갔다가 옆자리에 앉게 됐습니다.

신림동 캐리: 그렇게 눈이 맞으신 건가요?
여자 1호: 아뇨. 그때는 서로 아웃 오브 안중이었죠. 그때 여럿이 모인 술자리였고 저 혼자 외부인이었기 때문에 저는 다른 분들과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고요. 남자친구는 저와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문자질만 계속 하더군요.
신림동 캐리: 서로 관심이 없었나요?
여자 1호: 아뇨, 나중에 물어보니 남자친구는 친구와 문자 보내는 척 하면서 절 계속 의식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원래 좀 이상형이 확고해요. ‘하얗고 마르고 여리여리한 스타일의 이과생’을 좋아하거든요. 남자친구를 처음 봤을 때 하얗고 바람에 날아갈 듯이 휘청거리던 이미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빙어 같았죠. 그리고 손님인 저를 두고 계속 문자질하는 모습에 처음엔 ‘얜 뭔데 이렇게 예의가 없어?’라고 불쾌해하다 손가락이 너무 가녀리고 예뻐서 ‘이렇게 청순한 남자가 있다니!’하고 반해버렸어요. 제가 너무 변태 같나요?
신림동 캐리: 네, 변태 같아요.

신림동 캐리: 남자친구는 본인의 어떤 점을 좋아했어요?
여자 1호: 개발자가 다 그렇겠지만 디테일한 이유는 자신도 설명 못 하더라고요. 그냥 마음에 들었다고 해요.
신림동 캐리: 언제부터요?
여자 1호: 그것도 모르겠대요.
신림동 캐리: 그럼 아는 게 뭐래요?
여자 1호: 그것도 모를걸요.

표현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개발자!

신림동 캐리: 남자친구가 개발자라는 건 언제 알았어요?
여자 1호: 회사 관련해서 만난 거기 때문에 원래 알고 있었습니다. R&D 팀에서 추천 UX 관련 개발을 하고 있는데, 그냥 개발자라니까 개발자려니 해요. 남자친구가 개발자일 뿐만 아니라 Defcon CTF에서 팀 3위를 달성한 해커 경력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페이스북과 메일 비밀번호를 20자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 방금은 농담이에요.

신림동 캐리: 다른 남자들과 개발자 남자친구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자 1호: 제가 원래 이과생을 좋아해서 여태까지 사귄 남자친구들도 다 이과 계열이었는데요. 제대로 공대인 건 이번이 처음이지 싶네요. 개발자인 것도요. 그래서 개인적 경험을 통해 비교해보자면 개발자는 정말 0 아니면 1이에요.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은 거지 중간이 잘 없어요. 제가 뭔가 자잘한 것에 집착할라치면 ‘왜 그래야 하는데?’라고 진지하게 묻죠. 저는 남자친구가 문학적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남자친구는 제가 별걸로 다 시비 거는 여자라 여기고 있어요.
신림동 캐리: 근데 이과생이 왜 좋으세요?
여자 1호: 페티쉬에는 이유가 없죠.
신림동 캐리: 아, 예….

신림동 캐리: 공대생 농담 중에 기억나는 거 있어요?
여자 1호: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공대생 체크 남방’이 화제였는데요. 제가 그거 보고 너무 웃겨서 ‘공대생-체크 남방=0’이라며 놀리니 처음엔 공대생이라고 체크 남방을 다 입는 건 아니라고 개인 취향이라고 부정하다 문득 페이스북을 보더니 친구들이 다 체크 남방 입고 있다며 절규했어요.

체크 남방 입었다고 해서 공대생은 아니지만 공대생은 체크 남방을 입는 것입니다.

신림동 캐리: 남자친구의 이런 패션은 정말 공대생 같아서 싫다 하는 거 있으세요?
여자 1호: 남자친구가 후드티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신림동 캐리: 그래서 싫으세요?
여자 1호: 아뇨, 공대생 같아서 너무 좋아요. 제가 너무 변태 같나요?
신림동 캐리: 네, 변태 같아요.

신림동 캐리: 개발자 남자친구를 둬서 아는 부분이 늘거나 하는 측면이 있나요?
여자 1호: 가끔 남자친구가 저와 데이트하다 회사에서 전화받고 맥북을 꺼내서 급히 수습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 개발하는 모습을 보곤 하는데 멋있어요.
신림동 캐리: 아니, 남자친구의 멋진 모습 말고 배우는 면을 말하라니까요.
여자 1호: 별로 없는데요.
신림동 캐리: 네….

신림동 캐리: 남자친구는 보통 어떨 때 화를 내나요?
여자 1호: 아직은 화낸 적 없어요.
신림동 캐리: 아, 네….
여자 1호: 근데 본인이 납득하지 못하는 사안에 대해서 이해하기를 강요받는 건 무척 싫어하는 것 같더라고요.
신림동 캐리: 그건 모든 사람이 다 싫어해요.

신림동 캐리: 남자친구와 갈등이 있었던 적 있으세요?
여자 1호: 아까도 말했지만, 대화에서 가끔 이질적인 부분이 발생하는데요. 예를 들면 남자친구에게 ‘내가 왜 예뻐?’ 했을 때 저는 ‘넌 이러 저러한 면이 남보다 특별하고 이러 저러해서 내 기준에 예뻐.’하는 대답을 기대하는데 남자친구는 ‘예뻐서 예쁘다는데 왜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이유를 설명해야 하지?’라고 해요. 처음엔 그걸 성의가 없다고 여겨 속상해했는데 점차 개발자에게 예쁘다는 판단은 그냥 자신의 눈에 예쁜 그 자체라는 걸 깨닫고 그러려니 합니다.
신림동 캐리: 그런 걸로 싸운다고요?
여자 1호: 네, 그리고 얼마 전에 제가 개발을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책을 보고 배우라더군요.
신림동 캐리: 그런 건 어떻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녜요. 여자 1호님에게 ‘나 글 잘 쓰는 방법 좀 가르쳐줘.’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여자 1호: ‘나부터가 글을 잘 쓰고 싶다.’고 하겠죠.
신림동 캐리: 아, 네….
여자 1호: 아무튼 남자친구에게 개발을 배우는 건 마치 남편에게 운전연수 받는 것처럼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감정이 상하게 되는 건가 보다.’하고 여겨 포기했어요. 그냥 좋은 책이나 추천해달라 하려고요.

신림동 캐리: 개발자 남자친구가 비개발자 남자친구에 비해 장점이 있다면?
여자 1호: 주변에 여자가 없고 바람을 피울 시간도 없습니다.

여자가 없지만 게이는 아닙니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 남자친구가 비개발자 남자친구에 비해 단점이 있다면?
여자 1호: 주변에 여자가 없고 바람을 피울 시간도 없어서 나를 사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는 농담이고요. 저는 초저녁부터 자고 일찍 일어나는 타입인데요. 남자친구는 새벽 5시 정도에 자고 낮 2시 정도에 일어나요. 저번에 친구(남자)와 밥을 먹고 있었는데요. 친구의 여자친구가 승무원이거든요. 그 분이 해외 비행하고 돌아오셔서 자다 일어난 시간이 제 남자친구의 기상 시간과 얼추 비슷하더라고요. 둘 다 동시에 애인으로부터 ‘일어났어.’라는 연락을 받고 저는 참 미묘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신림동 캐리: 그런 부분 때문에 많이 싸우나요?
여자 1호: 싸우지는 않는데 그러다 건강을 해칠까 좀 걱정스러워요. 얼마 전엔 남자친구가 주말이라고 푹 잤어요. 처음엔 연락이 안 되어도 자고 있겠지 했어요. 근데 오후 5시까지 연락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정도면 자고 있을 리가 없다! 이것은 쓰러진 것이다!’하고 판단했죠. 마침 남자친구 집 근처에서 약속이 있었던지라 마치고 남자친구 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어요. 남자친구가 깨서 부스스한 얼굴로 ‘웬일이야?’하고 나오더라고요. 그때 ‘아, 인간이 이렇게 폐인처럼 생활할 수도 있구나.’하고 제가 여태껏 가진 인간의 생활 밸런스가 편협했음을 깨닫았어요. 이제 남자친구가 언제 일어나든 놀라지 않아요.

신림동 캐리: 불특정 다수의 개발자에게 연애 조언을 해준다면?
여자 1호: 흔히 여자들이 말 안 하다가 남자에게 나중에 쏘아붙여서 갈등을 만든다는 말을 하는데요. 개발자도 마찬가지예요. ‘말하지 않아도 여자가 내 마음과 성의를 다 알아주겠지?’하고 여기지 마세요. 여자는 궁예가 아닙니다. 말을 해야 알지! 그리고 개발자들이 참 바쁜데요. 그럴 때 ‘나중에 여자친구 만나서 맛있는 거 사주면 되겠지.’하는 생각은 글렀습니다. 여자가 무슨 게임이냐! 시간 없으면 현질로 때울 수 있는 게 아니야!
신림동 캐리: 너무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여자 1호: 네, 감정적으로 몰입하다 보니 그랬네요. 릴렉스하겠습니다.

신림동 캐리: 남성 개발자들이 연애를 못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여자 1호: 일단은 너무 바쁘고요. 그나마 시간이 생기면 LOL을 해요. 남의 엄마 걱정해주지 말고 네 인생을 걱정해라.

신림동 캐리: 개발자와 사귀는 여자에게 팁이 있다면?
여자 1호: 개발자는 대부분 남고-공대-남초 회사를 거쳤기에 연애에 부적합한 인간으로 성장했지만, 대체로 스마트해서 연애를 가르쳐주면 점차 발전합니다. 다만 그 시작점이 일반인 남자보다 더 바닥일 뿐이죠. 예를 들어서 저는 아예 남자친구에게 ‘일어나면 문자를 보내고, 자기 전에 전화해라. 나에게 이런 말은 하지 마라. 내가 화나면 이렇게 해라.’하고 연애의 가이드를 정해줬어요. 그랬더니 훨씬 연애성을 갖춰가더라고요. 그렇게 한 발 한 발 걸음마를 떼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해요. 애정을 가지고 그들의 개발자스러움을 사랑해주세요.

개발자와 사귀며 가슴을 치고 계시는 여자분, 혹은 여자 개발자와 사귀며 벽을 치는 남자분의 이야기를 12월 한정으로 모집합니다. 인터뷰를 원하시는 분은 sillimdongcarrie@pristones.com으로 연락주세요!

송창규-개발=0이라 쓰고 평생 개발자라고 읽는다, 송창규 1

이 인터뷰는 ‘송창규-개발=0이라 쓰고 평생 개발자라고 읽는다, 송창규 0‘에서 이어집니다.

신림동 캐리: 요즘 개발자가 외국에 많이 나가는 추세다. 송창규님은 외국으로 나갈 생각해본 적 없으신지?
송창규: 왜 없겠나. 근데 한국에서는 일 못 해먹겠다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좀 더 큰물인 미국에서 일해보고 싶은 막연한 로망이 조금 있어서 한때 미국취업을 준비한 적이 있다. 근데 마침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주식을 주는 바람에 진행 중이던 걸 취소하고 남았다.
신림동 캐리: 오, 스톱옥션. 그 이후로 주식은 어떻게 됐나?
송창규: 폭락한 주가 엔화와 함께 쪽박진행형이다.

신림동 캐리: 한스타에 블리자드는 반응이 없었나?
송창규: 있었다.
신림동 캐리: 오, 스카웃인가 아니면 소송 협박인가?
송창규: 일단 당시 스타크래프트 배급사였던 한빛소프트에서 내게 “다른 게임도 한글화해보지 않겠느냐?” 하고 연락해왔다. 배울 게 많겠다 싶어서 알바로 GK3, Worms World Party 3 등의 게임을 한글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림동 캐리: 오, 흥미진진한데?
송창규: 회사 담당자가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신림동 캐리: 오, 더 흥미진진한데?
송창규: 한빛소프트가 블리자드와 연락하다 한스타 이야기가 나왔는데, 블리자드 측에서 한스타 개발자 연락처를 줄 수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빛소프트가 회사 체면도 있고 혹시 널 데려가려는 것일 수 있으니, 우리 회사 소속 프로그래머인 것처럼 말하고 연락처는 알려주지 않을 건데 괜찮겠냐는 거다.
신림동 캐리: 뭐 이래?
송창규: 지금 생각하면 좀 황당한데 적어도 내게 말해주긴 했으니 무척 솔직하긴 했던 것 같다. 그땐 나도 별 생각 없이 순진하던 때라 그러시라 했었다.
신림동 캐리: 좀 아쉽겠다.
송창규: 지금도 가끔 술을 많이 마신 날이면 땅을 치고 후회한다.
신림동 캐리: 내가 요즘 ‘응답하라 1994’를 보고 있는데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더라.

송창규님이 뒤늦게 정신 차리셨다고 하니 블리자드 본사는 이 인터뷰를 보시면 미워도 다시 한 번 연락해주세요.

신림동 캐리: 한스타 만들었다고 하면 남자들은 다들 ‘오!’ 하면서 보는 눈이 달라질 텐데, 개발자라는 게 여자한테 쓸모있는 경우도 있던가?
송창규: 의외로 있다.
신림동 캐리: 정말 의외다.
송창규: 하이텔 나우누리 시절에 고등학교에서 Multi-user BBS를 운영했었다. 당시 빠져있던 머드게임을 모티브 삼아 대화방에서 ‘/던져’라거나 ‘/공격’ 같은 액션 기능을 만들었는데, 그러다 ‘/영희’ 같은 커맨드로 사람마다 개성 있는 액션도 만들었다. 운영자의 권력을 과시하면서 쉽게 친해질 수 있는 비기였다.
신림동 캐리: 권력의 꿀맛은 달콤하지.
송창규: 또 내가 키보드 단축키만 쓰는 편이라 컴퓨터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조작 화면이 빠르고 현란한 편인데, 여자가 노트북이나 컴퓨터 느리다고 투덜댈 때 원격으로 접속해서 현란하게 최적화해주면 눈빛이 바뀌곤 했다.
신림동 캐리: 나도 요즘 노트북이 느린데 포맷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송창규: 남자친구분이 개발자 아니신가?
신림동 캐리: 맞는데 내 노트북을 남자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진 않다. 거긴 소돔과 고모라여. 아무튼, 또 없나?
송창규: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짝사랑하는 아이의 생일이 궁금해서 싸이 프로필 페이지를 보려고 하는데 생일이 비공개였다. 그래서 생일을 보자! 하고 뜯어봤는데 비밀번호가 나와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신림동 캐리: 그게 뭐여!
송창규: 믿지 않겠지만, 그 비밀번호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신림동 캐리: 그걸 누가 믿나!
송창규: 정말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다.

그 외에 넥슨에서 일하며 게임 캐시 3만 원이 나오는 계정을 마비노기 하는 친구에게 쓰라고 주고, 쿠폰이 나올 때마다 주변에 뿌렸지만 다들 남자였다고 하십니다. 아마도 여자에게 작업걸 때 유용하게 썼겠죠.

신림동 캐리: 넥슨에서만 15년 계셨다고 들었다. 아까 외국 나가려는 계획도 있으셨다는데 마음에 드는 실리콘밸리 회사는?
송창규: 미국 회사라고 한다면 Google, Amazon, Apple, Blizzard, Netflix다. 양보하지 않는 퀄리티, 뛰어난 인재 확보력, 자신들만의 가치와 철학을 갈고 닦아 빛나게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림동 캐리: 그럼 한국에서 호감 가는 IT 회사는?
송창규: 돈벌이가 당연히 베이스가 되어야겠지만, 그보다 우선하는 가치로 prioritized 되고 align 된 회사들이 좋다. 예를 들면 우아한형제들, 프로그램스, 카카오 같은?

신림동 캐리: 요즘 후배 개발자들의 역량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나?
송창규: 게임업계의 개발자 후배들을 보면 개발자로서의 역량에서는 조금 아쉬움을 느낀다. 이런 아쉬움은 세대 간 다르게 겪은 환경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구글 없이 개발하던 우리 때와는 환경 자체가 많이 다르기도 하고. 주어지는 것 이상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며 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아쉬움과 차이를 가장 많이 느끼는데, 이건 스스로 무언가 할 여지를 없애버리고 쥐여주기만 하는 한국의 교육시스템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신림동 캐리: 나 스스로 개발자로서 점수를 매기면 몇 점인가?
송창규: 10년쯤 전에 이 질문을 들었다면 90점이라고 대답했을 거다. 근데 어느 규모 이상의 프로젝트를 맡고 나서는 절대적인 코딩량이 많이 줄어 개발자로서의 자부심과 만족도가 떨어졌다. 지금은 50점?

신림동 캐리: 그렇다면 좋은 개발자의 조건은 뭘까?
송창규: 글쎄다. 요즘은 개발자라도 Technical Director/Architect 같은 역할에서부터 하드코어 엔지니어링까지 그 역할과 영역이 아주 넓어졌다. 그래서 좋은 개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포지션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고 본다. 그래도 공통적인 조건을 든다면, 늘 프로그래밍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며 본인이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는 개발자 아닐까? 그리고 본인이 맡고 있는 영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야를 가질 수 있는 개발자가 좋은 개발자라고 생각한다.
신림동 캐리: 그럼 개발자한테 좋은 회사는 어떤 회사인가?
송창규: 자극이 되고 발전적인 환경을 가진 회사.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회사. 장기적으로 보면 밸런스를 잘 갖추는 게 중요하다. 일단 Work-Life 밸런스가 잘 맞아야 하며, 그리고 Production-R&D 밸런스도 잘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회사와 조직은 이런 균형을 이루도록 늘 고민하고 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은 이런 밸런스에 대한 안목과 고민이 적은 편인 것 같아서 아쉽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한테 제발 이런 거 시키지 마라 하는 건?
송창규: 가족 같은 분위기!
신림동 캐리: 아, 그거 진짜 싫지. 난 회식 때 단합 어쩌고 하면서 같은 잔으로 30명 돌리는 회사도 다녔다니까.
송창규: 강요된 팀워크는 좋을 게 없다고 본다. 커뮤니케이션 못하는 개발자에게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되 못하는 상태에서 커뮤니케이션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납득하지 않는데 해야 하는 거 시키지 말았으면 하고 개인적으로 바란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에게 선천적 재능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송창규: 이 질문은 마치 인격 형성이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하는 것과 비슷한데? 기본적으로 개발자의 그 얼개는 음악이나 스포츠에서의 재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발자에 굳이 맞춰서 말하자면 음악과 스포츠보다는 시작하는 나이가 좀 늦어도 되지만 청소년기까지는 개발자로서의 논리적 사고 틀이 갖춰져야 하는 것 같다. 근데 스포츠는 나이가 들수록 신체 조건이 점차 쇠퇴하지만, 개발자는 그에 비해 나이 들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듯?

신림동 캐리: 개발 잘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방법은?
송창규: 개발을 잘하려면 늘 배우고 코딩해야 한다. 늘 생각하고 코딩에 ‘절대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신림동 캐리: 절대시간이 뭔가?
송창규: 음악이나 스포츠나 언어나 어느 분야를 불문하고 10,000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법칙은 기본이다.
신림동 캐리: 10,000시간을 그냥 존나 하면 존잘 개발자 되나? 카우방에서 소를 패는 것처럼?
송창규: 말 그대로 개발에 절대적인 시간을 많이 때려 박아야 한다는 거다. 분야를 불문하고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한 전문가들을 살펴보니 연습량이 10,000시간 이상이 되더라, 진정한 전문가가 되려면 졸라 연습하라는 얘기다. 생각 없이 무턱대고 10,000시간 해서 되는 거면 회사에서 몇 년 일한 사람들이 다들 진정한 전문가 됐겠지. 10,000시간 연습하면 잘한다는 게 아니고 진정한 전문가들은 적어도 10,000시간의 연습 시간이 뒷받침되더라라는 얘기다. 일단 많이 해야 하고,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단거지.
신림동 캐리: 그 ‘어떻게’가 뭔데!
송창규: 전문적이지 않은 단계에서 배울 때는 무언가 똑같이 따라 해보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코드를 무작정 따라 적지 말고 적당한 프로그램을 코드 없이 똑같이 만들어보되, 이때 ‘어떤 걸 가져다 쓰지?’가 아니라 ‘이 부분은 어떻게 만들지?’라는 포인트가 하나쯤 있는 과제에 도전하는 게 좋다. 그리고 만든 걸 버리고 바닥부터 처음부터 만들어보는 게 개발자로서는 큰 경험이 된다.
신림동 캐리: 이미 만든 걸 다 버린다고?
송창규: 그렇다. 싹 버리고 바닥부터 다시 만드는 거다. 이게 프로그래머의 경험 중에서 정말 중요하고 적극적으로 살려야 할 경험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동안 만든 게 아까워서 혹은 귀찮거나 적절한 시점을 잡지 못해서 바닥부터 다시 만드는 경험을 못한 프로그래머들을 자주 본다.
신림동 캐리: 나 같아도 여태 공들여 만든 걸 다 버리고 싹 새로 만들라고 하면 멘붕이 올 것 같다.
송창규: 하지만 적절한 시기가 오면 다 비우고 바닥부터 다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프로그래머로서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고, 현재의 뼈대나 설계에 천착하지 않고 어느 시점에 설계 변경이 필요한지, 어떤 규모로 변경할 수 있을지의 감각이 생긴다. 실제로 내가 만드는 제품과 모듈의 퀄리티도 크게 올라간다.
신림동 캐리: 초심자를 위한 얘기 같진 않군.
송창규: 그렇다. 저건 어느 정도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다. 초심자들은 기본을 잘 쌓으라고 얘기하고 싶은데, 요새처럼 빠르게 트렌드가 바뀌고 현란한 기술과 정보가 범람할수록 프로그래밍의 기본을 쌓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신림동 캐리: 그럼 어쩌란 말인가?
송창규: 프로그래밍의 기본을 쌓기 위해선 알고리즘 공부와 문제풀이를 해보기를 권한다. 책으로는 구종만의 <알고리즘 문제 해결 전략>이란 책을 추천하고, 사이트로는 알고스팟을 추천한다.
신림동 캐리: 저자 구종만님과 절친한 사이라 추천하시는 건 아닌지?
송창규: 친분을 빼고 보더라도 훌륭한 책이다. 종만아, 네 책 광고 열심히 하고 있어.
신림동 캐리: 여담이지만 구종만님과 꼭 인터뷰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한국 잠깐 오시는 것도 알고 있어요.

매의 눈으로 인터뷰 대상자를 노리고 있는 신림동 캐리입니다.

송창규: 아무튼 개발을 잘하기 위해선 알고리즘을 중심으로 그 외의 CS 전공 내용도 충실히 익히길 권한다. www.coursera.org에서도 많은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고, ‘OpenCourseWare’을 검색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대학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본적인 전공 공부에는 영문 Wikipedia가 가장 좋은 가이드라고 생각한다. en.wikipedia.org/wiki/Outline_of_computer_science를 지도 삼아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글을 다양하게 읽어보길 권한다. 개발에 관한 영어 지식을 접할 수 있으면 지식의 양과 퀄리티 모두 퀀텀 점프할 수 있다. 이 때문에라도 개발자는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한다.

신림동 캐리: 개발하면서 이런 건 피해야 한다 싶은 건?
송창규: 대충 얼버무리지 마라. 명확하게 아는 것과 대충 아는 것, 모르는 것을 치밀하게 구분해서 내가 이해하는 영역의 경계를 인식하고 넓혀나가는 게 중요하다. 방향을 잘 잡는 것도 중요하다. 이건 개인차가 크고 스스로 잘하기 힘들다 보니 괜찮은 멘토를 만나는 방법을 추천한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 멘토가 필요하다고?
송창규: 스포츠맨에게 코치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라 본다.
신림동 캐리: 근데 알다시피 개발자 중에서는 사회성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평균 이하인 자가 많은데 멘토는 어디서 만나야 하지? 그리고 만난대도 어떻게 꼬셔야 하지?
송창규: 어차피 끼리끼리 놀기 때문에 만나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다. 그리고 둘러보면 어차피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 숱할 텐데 그 중의 한 명을 멘토로 삼으면 된다.
신림동 캐리: 그러니까 만났다고 쳐도 어떻게 멘토로 삼나? 밥을 사주나? 치킨을 사주나? 애원하나? 비나?
송창규: 그냥 존잘님에게 가서 ‘제가 이걸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공돌이는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신림동 캐리: 그런 특성 때문에 많은 공돌이가 여자의 숙제 셔틀이 되는구나.


신림동 캐리: 몇 살까지 개발하실 건지?
송창규: 개발은 평생 하지 싶다.
신림동 캐리: 개발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솟아나는 대답이다. 그럼 개발자로서 꿈꾸는 노후는?
송창규: 돈 많은 백수?
신림동 캐리: 백수는 누구나 될 수 있지만 돈 많은 백수는 삼 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 어떻게 돈 많은 백수가 될 건데?
송창규: 살다 보면 될 거라고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있다. 아무튼 경제적 구속에 얽매이지 않고 늙어서도 늘 새로운 걸 찾아 즐기며 개발하는 가운데, 여유 있게 인생과 음악을 즐기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롤모델이라면 에 나오는 파인만 같은 느낌?
신림동 캐리: 부디 돈 많은 백수 할아버지 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컴퓨터를 다룰 때는 거의 마우스를 쓰지 않고 키보드로만 조작하는 편인데 정작 키보드 디바이스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106키 삼성 벌크 키보드가 가장 최적화 모드고 집에서는 선물 받은 적축 기계식을 사용한다.

컴퓨터는 잠잘 때도 켜놓는 편이고 간단한 홈레코딩에도 욕심이 있어 저소음으로 맞췄다. 굳이 고사양은 필요 없어서 5년 전에 맞춘 컴퓨터를 거의 그대로 사용한다.

개인데이터는 NAS에 보관한다. 여느 공돌이처럼 처음엔 RAID5 썼지만 말 안 듣는 블랙박스 NAS에서 고생한 후 노선을 바꿨다. 단순한 게 최고다. 클라우드 활용하고 RAID1+0 써라.

회사에서는 Windows에 C++/python/C#을 쓰고 개인 작업에는 python와 함께 js를 조금 깨작거리고, Windows, Mac, Linux 옮겨가며 쓴다. 개발툴은 손에 잡히는 대로 쓴다. 윈도우에서는 Visual Studio, 윈도우 외에서는 vim을 주로 쓰고 python 개발시 interactive debugging 이 필요할 때는 PyScripter, 맥에서는 IEP를 쓴다. PyScripter는 Complete as type옵션을 꺼야 쓸만하다. ipython에 notebook도 조금씩 사용해보고 있다. 주로 게임개발과 윈도우 데스크탑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면서 Win32, 3D, 서버 프로그래밍 쪽을 많이 봤었는데 최근에는 웹서비스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 틈날 때 관심 갖고 보고 있다.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사이트는 스택오버플로우, 위키피디아, 알고스팟, 코세라, Y Combinator다. 개발에 참고하는 사이트는 구글, 스택오버플로우, 깃허브가 진리.

송창규-개발=0이라 쓰고 평생 개발자라고 읽는다, 송창규 0

스타크래프트의 비공식 한글 패치인 ‘한스타‘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블리자드에서 한글 채팅과 유즈맵 한글화를 지원하기 전까지 저를 비롯한 거의 모든 스타 유저의 집에 한스타가 깔렸었는데요. 실행할 때마다 뜨던 송창규, 황민재, 임중근이라는 세 사람의 이름이 나중엔 친숙하기까지 하셨을 겁니다. 뭐하는 사람이라 아마추어로서 이런 걸 만들었는지 궁금하셨죠?

그래서 제가 한스타 개발자이자 넥슨 개발자이신 송창규님을 만나봤습니다.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송창규: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송창규: 네? 어디서?
신림동 캐리: P에 있는 H씨 아시죠?
송창규: 네, 아는 사이죠.
신림동 캐리: 제 구남친입니다.
송창규: 아, H와….

요즘 섭외에 많은 도움 되고 있는 H오빠, 빨리 논문 통과하시길 바다 건너에서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제 졸업할 때도 됐잖아요.

신림동 캐리: 많은 사람이 송창규님을 한스타 개발자라고 알고 있는데, 그 이후의 커리어는 베일에 싸여 있다.
송창규: 베일에 싸여 있는 게 아니라 관심이 없는 거 아닌가?
신림동 캐리: 세상은 30대 남자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아무튼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송창규: 1999년에 한스타를 개발하고 2002년 넥슨에 입사해 CA BnB, CA 테트리스, 디지팡, 빅샷, 버블파이터, M2 등의 개발을 했다.
신림동 캐리: 자, 그럼 본격적인 인터뷰로 가보겠다.
송창규: 어떤 질문이 나올지 무척 기대된다.
신림동 캐리: 충격적이고 예민한 질문을 던지고 싶긴 한데 아무튼 못 먹어도 고.

신림동 캐리: 어떤 소프트웨어와 도구 없이는 살 수 없다?
송창규: 예전에는 나에게 맞는 도구와 설정을 깐깐하게 맞추었는데 요새는 머신을 어떤 걸로 바꾸어도 부담 없이 잘 쓸 수 있도록 적응했다. 막 OS를 설치한 컴퓨터에서도 작업할 수 있다.
신림동 캐리: 그건 너무 무던한 게 아닌가! 그럼 작업 장소도 구애받지 않나?
송창규: 회사 일은 회사에서만 하는 편이다. 회사 업무가 아니면 집에서 작업하거나 주말엔 카페로 맥북에어 들고 나가서 개인 작업을 하곤 한다.

신림동 캐리: 작업하는 동안 음악 듣나? 듣는다면 어떤 음악을?
송창규: 당연히 일할 때는 노동요가 필요하다. 예전에는 비트가 강한 하나의 음악을 반복해서 트는 걸 제외하곤 작업할
땐 음악을 듣지 않는 편이었는데, 요샌 화이트 노이즈(rainymood.com이나 coffitivity.com)를 깔아두고 클래식이나 멜로디가 약한 음악을 작은 볼륨으로 튼다. 숙면할 때도 좋다.

신림동 캐리: 일하지 않을 때는 뭐하나?
송창규: 혼자 개인 취미로 코딩하거나, 친구들이랑 놀러 가서 술판을 벌이거나, 음악에 관련된 활동을 한다.
신림동 캐리: 여자친구 없으신가 보다.
송창규: 있었는데 얼마 전에 그렇게 됐다.
신림동 캐리: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건넨다.
송창규: 마침 신림동 캐리님이 인터뷰하자고 하셨을 때라, 웁스랩 인터뷰를 읽으며 ‘신림동 캐리님은 커플 브레이커인가?’ 싶었다.
신림동 캐리: 아니거든! 그 분이랑 송창규님 말고는 이런 일 없었거든!

이 분이 큰일 날 말씀을 하시네요. 신림동 캐리는 당신의 연애에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부디 제 섭외에 응해주세요.

신림동 캐리: 송창규님을 인터뷰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이것 저것 물어보더라. 일단 결혼은 하셨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있었다.
송창규: 내 나이가 그렇게 많진 않다!
신림동 캐리: 아무래도 일찍부터 개발에 이름을 알리시다 보니 ‘원로 개발자’라는 이미지가 있다. 네이버 지식iN을 보면 98년도에 컴퓨터 관련 회사원이고 취미 생활로 제작했다는 답변이 있다.
송창규: 아니다. 한스타를 만들 무렵에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고 같은 한스타팀이었던 민재와 중근이는 각각 고등학생과 중학생이었다.
신림동 캐리: 그렇구나. 아직 이 자리를 빌려서 송창규님은 아직 젊으며 여자친구도 없다는 걸 어필해라.
송창규: 그러게, 결혼은 무슨요.

솔로입니다. 곧 크리스마스입니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라는 게 연애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가?
송창규: 연애 성향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신림동 캐리: 오, 여태까지 인터뷰한 다른 개발자분들은 거의 다 별로 상관없다고 약을 팔… 아니 주장하셨는데 이런 의견을 들으니 신선하군. 계속 말해봐라.
송창규: 일단 개발자 사이에서 A라고 말하면 A는 A다. 그렇기 때문에 ‘뭐 먹을까? 햄버거 먹을래?’ 라는 질문에 여자가 ‘햄버거도 괜찮은데….’라고 하면 햄버거 먹으러 가는 게 공돌이고, ‘화 안 났어?’ 물었을 때 여자가 ‘화 안 났어. 괜찮아….’라고 하면 ‘화 안 났구나. 괜찮구나.’ 하는 게 공돌이고, 여자가 ‘나 그냥 집에 갈래….’라고 하면 ‘집에 갈 거야? 잘 가!’ 하는 게 공돌이다.
신림동 캐리: 내가 공대생과 사귀며 겪었던 많은 시대와의 불화가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송창규: 한마디로 개발자는 여자 사람과 프로토콜 미스매치 에러가 잘 난다.
신림동 캐리: 왜 그럴까?
송창규: 난 오랜 블랙박스 디버깅을 통해 사회화가 그나마 되긴 했지만, 여전히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는 건 좀 불편하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편하다. 다른 개발자도 그럴 거다. 현상이 있으면 이유와 원인을 알아야 하고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게 있으면 고치고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는 게 공돌이다 보니 ‘왜 그렇게 되는데?’와 ‘그건 그게 아니라….’로 얘기를 하다 보면 여자 사람의 ‘그래서 지금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에 불을 붙이기 쉽다.
신림동 캐리: 맞아. 공돌이와 사귀면서 돌려 말하면 안 된다. 괜찮다고 하면 진짜 괜찮은 줄 알거든!
송창규: 난 눈물이 참 없는 사람인데 과거에 삽질한 기억들이 떠올라서 갑자기 눈물이 나네. 그래도 공돌이가 참 착하고 편리하고 좋아요. 여자 사람님들, 원석 같은 숨은 공돌이를 잘 발굴하세요!
신림동 캐리: 그러고 보니 요즘 제가 모태솔로였던 공돌이를 사귀고 있는데요.
송창규: 오, 축하드린다.
신림동 캐리: 축하할 일이 아니다.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지?

말하자면 공대생을 사귀는 건 이런 기분입니다.

신림동 캐리: 아, 그러고 보면 아까 말한 H오빠 말이다. 왜 내가 차였는데 H오빠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지? 굳이 말하자면 불쌍한 건 나잖아! 그리고 H오빠와 나는 오히려 지금도 잘 지낸다고!
송창규: 그래도 주변 사람들 입장에선 헤어지면 다 그런 거지.
신림동 캐리: 헤어지면 다 쌍년, 쌍놈이라지만 그래도 내가 모태솔로 하나 구원했는데 고마워하지는 못할 망정!

신림동 캐리: 이 어플 없이는 내 생활이 훨씬 불편했을 것이다 하는 건?
송창규: simplenotedropbox 정도?
신림동 캐리: 역시 드롭박스는 사랑이다.

신림동 캐리: 최근에 읽은 개발에 대한 인상적인 책을 든다면?
송창규: 요새 읽은 책 중에는 인상적인 게 없는 편이고, 개발에 관해서 읽은 것들 중에선 ‘rust‘에 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기술하는 데 있어서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될 뻔한 내용을 일일이 기술하지 않아도 되고, 실수하기 쉽지 않은 구조를 가지고, 안정성을 수준별로 담보할 수 있고, 그러면서 성능을 크게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 지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생각한다. 예전에 Haskell STM을 보면서 그 가능성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는데, Haskell과는 조금 다르지만, rust 또한 그런 방향성과 철학을 잘 발전시키고 있는 것 같다. 많은 프로그래머가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하고 기술하게 하는 덴 아직 부족한 것 같지만.

신림동 캐리: 밤을 새워야 한다면 커피가 좋은가, 에너지 드링크가 좋은가?
송창규: 둘 다 좋다. 하지만 새벽에는 커피전문점이 문을 닫으므로 에너지 드링크를 더 마시게 된다.
신림동 캐리: 소문에 의하면 송창규님의 인생에서 콜라를 빼놓을 수 없다던데? 물 대신 콜라를 마신다던데?
송창규: 콜라를 많이 좋아한다. 회사에서도 책상을 온통 콜라가 뒤덮고 있다.

신림동 캐리: 송창규에게 콜라란?
송창규: 넥타(신의 음료)!
신림동 캐리: 그 정도인가?
송창규: 제일 좋아하는 음료긴 하지만 요새는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는다. 물론 내 기준이다.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콜라를 좋아한다고 외국 나갔다오는 지인들이 외국 콜라를 사다 주는 게 모이다 보니 나라별 콜라 콜렉션이 생겼다. 사우디아라비아, 남아메리카공화국, 유기농 콜라, 장 폴 고띠에 한정판, 콜렉션 립밤까지 있다. 작년에는 친구들이 콜라를 담아둘 전용 냉장고와 콜라 네 박스를 사줬다.
신림동 캐리: 콜라를 보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 되셨군.
송창규: 그렇다. 이제는 주위 사람들이 콜라만 보면 내 생각이 난다고 한다.
신림동 캐리: 구여친들 불쌍하다. 콜라만 보면 화날 거 아니야.

신림동 캐리: 이 정도면 콜라 성애자 아닌가?
송창규: 부정할 수가 없군.

신림동 캐리: 저 콜라 그림이 들어있는 시계는 뭔가?
송창규: 스마트폰이랑 연결되는 ‘pebble‘이라는 스마트워치다. 전화나 문자 알림은 물론 Nike+ Running이나 만보기, 손목 네비게이션, 폰카 셔터 기능, 홈오토메이션으로 집안 전등이나 문 조작도 가능하다. 페북 댓글이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전화기를 꺼내보지 않고 확인해도 되는 게 정말 편하다.
신림동 캐리: 오오, 신기하다!
송창규: 킥스타터에 처음 소개됐을 때 뽐뿌가 왔다가 한글 지원이 안 된다고 해서 뽐뿌신이 물러가셨는데, 최근 뒷자리에 있는 하재승이란 친구가 ARM 계열로 된 펌웨어를 디스어셈블해서 코딱지만한 메모리에 조합형 한글을 우겨 넣는 한스타같은 짓을 해줬다. 한글을 지원하는 핵펌 덕분에 마음 놓고 질렀다. 새 SDK가 뜨면 지하철/버스 도착 정보가 뜨는 앱을 개발해보려 한다.

신림동 캐리: 카페인 하니까 말인데, 마감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까지 일해봤다 하는 에피소드 있나?
송창규: 빅샷이라는 게임을 2년여간 개발하다 처음 클로즈드 베타를 열 때였다. 처음으로 수많은 유저를 받아본 멀티쓰레디드 서버가 오픈하자마자 마구 터져나가서 잠도 못 자고 밤샜다. 크래시하면 덤프 확인하고 수정하고 빌드해서 디플로이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신림동 캐리: 개발팀은 죽을 맛이었겠다.
송창규: 그러다가 나중엔 아예 IDC 서버에 비주얼 스튜디오를 깔아서 Edit and Continue를 켠 디버그 모드로 실행했다. 당시 유저들은 서버가 시도때도없이 죽다 어느 순간 갑자기 안정되다 가끔 한 번씩 5~20초간 서버응답이 없는 현상을 겪으며 “응? 렉이 좀 있네?” 했을 거다. P2P 라서 게임플레이는 멈추지 않았으니까. 그때 개발팀 한켠에는 “서버 Access violation 떴다! 빨리 고쳐! 유저 떨어져 나가기 전에!”라고 외치며 신의 손놀림으로 5초~10초 만에 스택 프레임을 돌려가며 Null checking/예외조건 처리를 코딩해 넣은 뒤에 Edit and Continue 신공을 하는 피폐한 나와 또 한 명의 서버개발자가 있었다. 그땐 정말 힘들었지.

신림동 캐리: 한스타가 그야말로 피씨방마다 다 깔리던 시절이 있었다. 블리자드에선 반응 없었나?
송창규: 아, 있었다. 심지어 메일도 왔다!

송창규님이 말씀하시는 한스타 개발 비하인드 스토리는 송창규-개발=0이라 쓰고 평생 개발자라고 읽는다, 송창규 1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