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 파트너스] 소프트몰드(QDM금형사출)

국내에서 최초로 판매된 휴대전화 ‘다이나택 8000X’ (사진=모토로라)

 

삼성에서 휴대폰 금형 만들던 38년 경력 QDM 전문가

공정 표준화해 ‘빠른 납기’와 ‘완성도’ 두마리 토끼 잡아 

국내 최초의 휴대폰을 아시는지? 1988년 7월 1일,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국내 첫 휴대전화로 등장한 ‘다이나택 8000SL’이다. 미국 모토로라사가 1984년에 세계 최초로 출시한 휴대전화 모델로, 무게가 무려 1kg에 달하는 소위 ‘벽돌폰’이었다.

이후 1990년대 말 복수의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011, 016, 017, 018, 019 등 각기 다른 앞자리 번호를 내세우고 영업에 나서며 본격적인 휴대폰 시대가 열렸다. 당시 모토로라뿐 아니라 삼성의 애니콜을 필두로 국산 휴대폰도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서두에 국내 휴대폰의 역사를 거론한 것은 오늘 카파 파트너 인터뷰의 주인공이 ‘휴대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에서 지난 1993년부터 휴대폰 금형을 수십 여개 만든 휴대폰 제조의 산 증인, ‘소프트몰드’의 김재심 대표를 만나봤다.

지난 6일 인천 남동공단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김재심 대표는 웃으면서 카파(CAPA) 에디터를 맞았다. 40년 가까이 금형업계에서 헌신해온 장인은 적갈색으로 젊게 염색했지만 사이사이 비집고 올라온 새치가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주었다. 하지만 작업복 단추를 단정하게 채우고 작업장에서도 검정색 구두코가 맨질맨질하게 윤이 나는 모습을 보면서 김재심 대표가 진지하게 자신의 업(業)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휴대폰 얘기로 유쾌하게 시작된 대화는 본업인 QDM 금형과 고객 얘기로 술술 이어졌다.

 

1997년 6월 출시한 삼성전자 무선 전화기 (모델명 : SCH400) (사진=헬로마켓)

 

Q) ’플립(flip)폰’ 제조의 산 증인이라고 들었다

”1989년도에 삼성전자 금형사업부에 특채로 입사해 1993년도부터 휴대폰을 만들었다. 처음 모델인 SH-300은 일본에서 금형을 들여와서 만들었지만, SH-300부터는 국내에서 금형을 직접 만들어서 제조했다. 애니콜, 시티폰 같은 예전 휴대폰들도 다 그때 나왔다. 011, 017, 018과 같은 번호를 기억하나. 그때 만든 휴대폰 껍질들(휴대폰 외관 케이스)이 아직도 있다.”

‘잠깐만 기다려 보라’더니 김재심 대표가 상자를 하나 가지고 왔다. 상자 안에는 플립폰, 구형 폴더폰 등 예전에 사용됐던 휴대폰의 ‘껍데기’가 잔뜩 쌓여 있었다. 처음엔 다소 부끄러운 듯 박스를 들고 왔지만 하나하나 책상에 펼쳐놓는 김 대표의 얼굴이 금세 환하게 바뀌었다.

 

김재심 대표가 삼성전자 퇴직 후 2000년부터 QDM 사업을 시작하며 만든 휴대폰 케이스들.

 

김 대표는 올해로 금형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38년째에 접어들었다. 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뒤 지난 1985년 동양정밀공업OPC에서 금형 설계일을 하면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그 당시에 OPC 유선 전화기가 꽤 유명한 나름 큰 회사였는데, 전화국에 따로 신청해서 전화를 사용하던 시절이라 신청만 하면 우체국에서 OPC 유선 전화기를 가정집으로 배달해줬었다”고 말했다. ‘유선’ 전화기 회사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해 삼성전자로 옮겨 ‘무선’ 전화기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Q) 40년 가까이 금형 산업에 몸담았다. 어떤 점에 끌렸나

“금형은 만들 때마다 다른 모양의 제품이 나온다. 처음 금형을 배울 때는 금형 안을 플라스틱 재료가 채워서 입체적인 제품이 나오는 게 신기했다. 한창 휴대폰을 만들 때에는 내가 만든 제품을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습을 볼 때 뿌듯했다. 휴대폰은 길에만 나가면 (내가 만든 제품을 쓰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소프트몰드는 QDM 전문업체다. QDM은 Quick Delivery Mold의 줄임말로 단기간에 납기할 수 있는 금형을 말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휴대폰 회사에서 휴대폰을 만들며 보람을 느끼던 그가 QDM 전문업체를 직접 차리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금형 베이스를 조립하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김재심 대표.
베이스 안에 결합된 QDM 코어.

 

Q) 어쩌다 QDM 전문업체를 직접 차리게 되었나

“1996년도부터 삼성전자에서 QDM 표준화 작업을 했었다. 지금은 4~15일 걸려 만드는 QDM 금형 제작이 당시에는 2주가 훨씬 넘게 걸리던 때였다. 회사 내에서 QDM 금형과 양산 금형 부서를 경쟁시키더라. 그때 QDM 금형을 보다 빨리 제작할 수 있는 방법, 설계부터 제작까지 공정 사이클부터 표준 몰드 사이즈까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결국 양산 금형 제작에 60일이 걸릴 때, QDM 제작 기간을 15일까지 단축시켰다. 삼성전자에서 쌓아온 QDM 표준화 시스템을 사업으로 접목시켜서 2003년에 회사를 세웠다.”

Q) QDM의 장점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제작이) 빠르고,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일반 금형은 일단 완성할 때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일단 완성되고 나면 금형을 수정하기도 어렵다. 수정할 내용이 생기면 기존 금형은 ‘중고’ 금형이 된다. 버려야 한다. 애초에 비싼 비용을 들여 금형을 만들면 잘못 만들었을 때 못 쓰게 되니까, 금형의 바깥 껍데기(베이스)는 그대로 두고 ‘코어’ 부분만 수정해서 교체하는 방식이 QDM이다. 금형을 베이스부터 코어까지 다 만들려면 최소 30일 정도 걸리고, 크기와 형상에 따라 더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QDM은 제품 크기에 따라 4~15일 정도 소요되고, 코어를 교체하는 시간은 1~2시간이면 된다.”

Q) 회사이름이 ‘소프트몰드’다. QDM과는 무슨 관계인가?

QDM은 납기가 짧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개발 금형이다. 소프트몰드는 QDM과 구동 방식은 똑같지만 재료가 다르다. QDM은 두랄루민(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합금)을 사용하고 소프트몰드는 KP4M(플라스틱 금형강의 한 종류) 등을 사용해서 QDM 보다 강도가 높다.

(재료의 강도가 금형 제작에서 중요한 이유는 뭔가?) 금형으로 찍어내야 할 제품의 수량이 많은 경우 그만큼 금형의 수명도 짧아진다. 강도가 높은 재료를 사용해야 금형의 수명이 길어진다. 그래서 양산할 때 주로 소프트몰드를 사용한다. QDM은 3000 쇼트 정도 찍는 금형이고, 소프트몰드는 3만 쇼트까지도 찍을 수 있는 금형이다. 회사 이름 소프트몰드는 여기서 따왔다.”

 

 

Q) 납기가 지나치게 짧아지면 금형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나

”품질엔 문제가 없다. 삼성전자에서 배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소프트몰드’ 내에서도 자체적인 작업표준을 만들고 있다. 즉, 금형을 가공할 때는 가공 표준, 설계할 때는 설계 표준사이즈에 대한 표준까지,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처음에 잡아뒀고 현장 작업자들에게도 업무를 표준화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어뒀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예를 들면 ‘특정 형상의 제품은 특정 방식으로 설계를 한다’라든가, ‘금형 안에 들어갈 부품들의 유형을 정립한다’라든가 하는 내용들이 있다. 모두 공개할 수는 없다.(웃음)”

Q) 어떻게 공정을 표준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나

”사실 1996년도에 삼성전자 경북 구미 공장에서 일할 때, 몰드 표준 베이스 오토캐드 설계도를 쭉 혼자 정리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을 플로피디스크에 담아 몇 명한테 나눠줬는데, 그 파일이 경북 구미 바닥에 쫙 돌았다고하더라. 그때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도 나를 알던 때였다(웃음). (공정 표준화는)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Q) QDM으로 만들 수 있는 제품엔 어떤 것들이 있나

의료기기부터 휴대폰 악세사리, 드론, 자동차 부품 등 다양하다. 최근에 서울대병원에서 연구개발하는 학생들과 작업을 많이 했는데 척추주사기, 시약통, 코로나19 검사 시트 캡 등을 (QDM으로) 만들었다. 이 외에도 스마트 워치, 휴대폰 외관 케이스, 이어폰, 화장품 케이스, 드론, 전기 스위치, 블라인드 커튼 등 제품군을 가리지 않는다.”

 

설계한 금형을 수정하는 과정.
김재심 대표의 책상.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찍은 사진과 좋아하는 가사 구절(영화 ‘소오강호’ OST 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

 

Q) 금형 제작이나 사출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팁이 있을까

“한 번에 제대로 만드는 게 방법이다(웃음). 40년 가까이 금형업에 몸 담았던 시간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노하우가 있다. 설계 단계부터 꼼꼼하게 따져야 금형을 두 번, 세 번 만들지 않고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만약 살 두께가 얇은 제품을 만든다고 하면, 재료의 물성, 사출기의 성능을 고려해야 재료가 충분히 금형 안으로 끝까지 흘러들어간다. 물성을 고려하지 않고 살 두께가 얇은 제품을 만든다면, 재료가 금형 안에서 끝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흘러가다가 중간에 굳어버린다. 또 금형 안에서 플라스틱이 굳을 때 발생하는 ‘수축’ 정도를 고려하지 않으면 사출 후에 제품이 깔끔하게 나오지 않는다.”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제품이 있다면

“의료기기 제품이었는데, 혈액을 추출해서 박테리아를 활성화시키는 약품을 넣고 현미경으로 관찰하기 위해 동일한 혈액량을 기포가 안 생기게 내보내야 했다. 그런데 자꾸 혈액에 기포가 들어가더라. 사실 설계 파트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고객 분께서 금형으로 해결해달라고 하셔서 재료를 여러 번 바꿨다. 알루미늄, 스틸, 금형 재료를 바꿔가며 최대한 혈액에 오염이 안 생기는 방안을 고민했다. QDM이지만 (완성을 기하느라) 1개월 가량 소요됐던 작업이었다.”

김 대표는 평소 신조가 “하는 것만큼만 받자”라고 했다.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고, 후가공 작업 등은 보통 다른 업체에 넘겨준다고 한다. 대신 본질에 있어서만큼은 고객이 ‘이 정도면 됐다’고 말해도 내부적으로 세워놓은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우리 고객도 결국 완제품을 다른 고객업체나 소비자에게 선보여야 할텐데, (고객이) 잘못 만든 제품을 가져가게 되면 그걸 만든 저희도 같이 (체면이) 구겨지는 것”이라며 “저희가 생각하는 수준으로 만들어 드리려고 매번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고객에 대한 진심 때문인지 종종 오래 전 고객들에게도 연락이 온다. 얼마 전엔 10년 전쯤 거래했던 고객에게서 연락이 와서 이런저런 상담을 해드렸다고 한다. 당장 직접적인 거래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이런 고객들과의 신뢰가 쌓여 지금의 소프트몰드가 있는지 모른다.

서두에 휴대폰 얘기를 하던 중 김 대표는 2년 전까지도 017 번호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 이유를 물어봤다.

 

 

“1994년도 신세기 통신에서 017 번호를 만든 이후 2년 전까지 그 번호를 쓴 이유는 하나입니다.
번호를 바꿔버리면 전화번호가 사라지잖아요.
인연이 소중해서 지금까지 못 바꿔요.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지만,
결국 고객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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