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워스트, 충격 고로케, 대나무숲 위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의 중심의 선 사이트라는 것, 그리고 개설한 사람이 같다는 것입니다. 보수 성향의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www.ilbe.com)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을 때 그에 대항하기 위해 개설된 일간워스트(www.ilwar.com)는 개설한 순간부터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숱한 공격을 받는 등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죠.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난데없이 생겨난 커뮤니티’인 일간 워스트의 개발자 이준행님을 만나봤습니다.
이름 혹은 닉네임: 이준행/rainygirl
위치: 교대와 홍대 사이
직업, 소속: 드디어 프리랜서 개발자!
내 모바일 기기: iPhone4
블로그 주소: blog.rainygirl.com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이준행: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 생각했던 것보다 몹시 수줍어 보이신다.
이준행: 팬이다. 근데 생각보다 수줍어 보인다는 건 뭔가?
신림동 캐리: 이준행님이 만드신 사이트 중에서 내가 들어가 본 게 한 서너 개 되는데 다 터프한 사이트라….
이준행: 전부 그렇지는 않은데….
신림동 캐리: 내가 자극적인 사이트만 들어가서 그렇다. 취향이 좀 MSG 같아서 말이지. 아무튼 정말 많은 사이트를 만드신 걸로 알고 있는데 소개 좀 부탁한다.
이준행: 지금은 곤란하다. 잠시만 기다려달라.
나중에 메일로 아래의 목록이 왔습니다.
– indistreet.com
당장 오늘 주말 예정된 홍대의 인디밴드 공연 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다. 언제 어디에서 누가 공연한다는 소식을 모아 전하는 매체가 없길래 만들어봤다.
– boooki.com
읽은 책을 기록하는 책 메타서비스다. 내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고 타인에게 독서를 권하고 싶어 만들었다.
– battlelist.com
둘 중에 하나를 고르기 쉽게 만드는 서비스다. 내가 우유부단한 편이라 누군가 나 대신 선택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 kuroro.net
화면에 수지 사진을 가득 채우고 싶어서 만든 서비스였는데, 어쩌다 보니 탕수육을 가득 채우는 푸드포르노 서비스로 바뀌어버렸다. 지금은 트래픽 때문에 잠시 닫았다.
– ropipi.com
비밀 일기장 서비스다. 색깔 넣기라든가 글자 꾸미기라든가 사진 올리기 같은 기능 하나도 없이 오직 텍스트만 쓸 수 있도록 간단히 만들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일기장처럼 썼다가 낭패 본 사람을 위해 만들었다.
– chat.coroke.net
페이스북 로그인 기반의 실명 채팅방이고 방이 딱 하나만 있다. socket.io라는 게 나오기 전에 Comet이라는 방식으로 채팅서비스 만드는 걸 연습해보려고 만들었다.
– clip.coroke.net
클리핑 서비스다. del.icio.us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내가 클리핑할 때 쓰려고 만들었었다. 역시 혼자 쓰고 있다.
– oiku.net
도메인 그대로 ‘어이쿠!’하고 감정을 털어놓는 익명 SNS 서비스다. 현재 버전은 캐릭터 그린 디자이너분께서 많은 의욕이 있으셔서 함께 만든 서비스다.
– angry.oiku.net
그냥 분노의 문장을 싸지르는 용도로 만든 1페이지짜리 서비스다. 그림은 게임 캐릭터 디자이너인 친구가 그려주었는데 딱 저런 모양새로 분노가 모이는 걸 보고 싶었다.
– hot.coroke.net
충격 고로케. 온라인 뉴스들이 ‘충격’, ‘경악’, ‘결국’, ‘헉’과 같은 자극적 단어로 얼마나 많은 낚시를 하는지 세어보고 싶어서 만들었다. 사이트 방문자가 점차 많아지면서 링크에 경고창을 넣고 순위를 매기고 상도 주기 시작했다.
– copy.coroke.net
충격 고로케에서 떨어져나온 서비스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이라거나 ‘이에 네티즌들은…’으로 마무리되는 기사가 얼마나 많은지 세어보려고 따로 구성해보았다.
이준행: 쓰다 보니 너무 많은데?
신림동 캐리: 이게 끝인가?
이준행: 아니, 아직 더 남아있다.
신림동 캐리: 여자친구 있으신가?
이준행: 있다.
신림동 캐리: 아니, 회사도 다니고 연애도 하시는 분이 왜 밤마다 이런 걸 만들어!
이준행: 나도 갑자기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싶어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계속 소개하겠다.
– say.coroke.net
심심한 고로케랄까. 트위터에서 사람들이 몇 시쯤 가장 심심해하고 배고파하고 배 아파 하는지를 집계해보고 싶어서 만들었다. 몇 개 단어는 일본어도 수집 중이라 한일의 배 아픈 시간대를 비교해볼 수 있었다….
– dot.coroke.net
도트 고로케다. 도트픽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간단한 사이트다. 툴만 만들어놨을 뿐인데 다들 정말 훌륭한 그림을 그려주시더라.
– radiation.coroke.net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의 공간방사선량을 모두 같은 단위로 환상하여 지도에 색칠해 시각화시켜주는 방사능 고로케다. 주위에서 다들 일본 여행을 말리기도 했고, 중국과 한국 방사능에 대해서도 논란이 늘 많았는데, 딱히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가 없어서 그냥 내가 데이터를 매일 수집해 지도에다가 그리도록 만들어버렸다.
– ilwar.com
철도민영화문제가 불거졌을 때 트위터에서 누가 일베의 비추 버튼을 민영화로 바꾸고 이름도 일간베스트가 아닌 일간워스트라는 사이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농담하셨던 걸 XE로 간단히 구현했다.
신림동 캐리: 이렇게나 많은 사이트를 만들고 관리하기 힘들지 않나?
이준행: 사실 사이트 대부분은 하루 안에 만들었다. 그리고 보통은 쭈욱 방치한다. 그래도 대부분 사용자가 큰 불평 없이 써주셔서 내가 힘들 건 별로 없다.
신림동 캐리: 만튀구만 만튀….
이준행: 만튀라고 불려도 어쩔 수가 없…. 회사 다니면서는 저녁에 1시간 남짓 잠깐 상태 확인하는 정도로만 관리해왔다. 다만 일간워스트는 이전 사이트들과 다르게 접속자가 어마어마하고 서비스 방해 공격이 계속 들어오는 바람에 한동안 잠도 못 자고 모니터링했었다. 서버 늘리고 안정화되고 나서야 다시 잠도 제대로 자고 밖에 놀러도 나가고 있다.
이준행: 선관위 공격사건 때가 280메가였는데 어차피 500메가로 시작해서 몇 기가가 들어온 거라, 개발하면서 이런 공격 트래픽 언제 또 구경해보겠나 하는 마음이었다.
신림동 캐리: 일간워스트 운영하면서 해탈하신 것 같다.
신림동 캐리: 나 아는 개발자가 일간워스트 나온 날에 잠을 못 잤다고 했다.
이준행: 왜?
신림동 캐리: 저걸 내가 만들었어야 하는데 내가 왜 저 생각을 못 했을까 빨리 안 만들었을까 하면서 자신을 책망하다 분해서 잠이 안 왔단다. 아무튼 재미있는 서비스를 많이 만드시는데 어떻게 기획하고 완성 후에는 어떤 방식으로 알리시는지?
이준행: 그냥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빨리 구현한다. 충격 고로케는 네이버에서 뉴스를 읽다 충격과 경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기사가 없는 걸 보고 열 받아서 1시간 만에 만들었다. 일간워스트는 트위터에서 농담하다 10분 남짓 XE 설치하면서 시작했다. 인디스트릿은 과거에 친구와 함께 만들다 망해버린 잡지나 사이트의 기억을 되살려서 만들었다.
신림동 캐리: 즉흥적으로 사이트를 만드시는 것 같다.
이준행: 내 성격이 그렇다. 계획을 크게 잡으면 귀찮아서 포기해버린다는 걸 내가 제일 잘 알기 때문에, 하루 안에 개발 가능할 것 같은 규모만큼만 딱 기획하고 그대로 만든 다음에 잔다. 마케팅은 딱히 없다. 서비스를 만들고 나면 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오픈 소식을 알린다. 그게 재밌다 싶으면 자연스럽게 공유된다. 그러다 언론에서 연락이 오기도 하고, 인터뷰 한 번 하면 기사가 나가니 그걸 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식이다.
신림동 캐리: 인터뷰하니까 말인데 시사인 기사에서의 사진이 SNS에서 화제가 되었었다.
이준행: 그 사진을 찍는 게 아니었는데….
신림동 캐리: 난 그거 좋던데….
이준행: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기자님이 간곡히 부탁하셔서 괜찮겠지 생각하고 포즈를 취해드렸는데, 나중에 반응이 이럴 줄은 예상도 못 했다. 배경을 논두렁으로 바꾼 짤방이 생기고 내가 그만둔 회사 사무실 벽에 포스터로 붙여놨다는 소식도 예전 동료로부터 들었….
전 이 사진 참 좋지 말입니다. 사진 출처는 시사in입니다.
신림동 캐리: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프리랜서 되셨다고 만세를 부르셨는데?
이준행: 드디어 프리랜서다!
신림동 캐리: 최근까지 대기업 다니지 않으셨나?
이준행: 최근까지 SK플래닛(2012~2013)에서 개발자로 일하다 퇴사했고 이전에는 NC소프트와 NHN에서 각각 기획자와 개발자로 일했다.
신림동 캐리: 일간워스트가 아주 잘 되어서 회사를 그만두신 건 아니지?
이준행: 회사를 그만둔 건 12월 20일이고, 일간워스트를 연 건 27일이다.
신림동 캐리: 일간워스트가 생기게 된 썰 좀 풀어달라.
이준행: 2013년 12월 27일 밤의 일이다. 트위터에서 철도파업사태를 두고 사람들과 비추 버튼을 민영화로 쓴 사이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농담을 주고 받았는데, 어차피 백수고 잉여한 김에 ‘진짜 해볼까?’하고 만들어봤다. 내가 한 건 XE 설치한 게 전부지만 아무튼 현실화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거대해졌다.
신림동 캐리: 만들 때 정치 성향을 정해두고 만든 건 아니다?
이준행: 사실 공격 목표는 일베가 아니라 민주화라는 비추 버튼 자체였다. 일베가 민주화라는 단어를 비추로 오용한 것에서 분노를 느꼈으니까. 근데 다음 날 일간워스트를 다룬 거의 모든 기사가 ‘일베의 대항마!’라 표현하는 바람에 다들 넌 정치 포지션이 어디냐고 묻긴 하더라.
신림동 캐리: 그러게. 나도 궁금해졌다. 정치 포지션이 뭔가?
이준행: 현재 한국에서 딱히 지지하는 정당은 없다.
아무튼 일간워스트는 오늘의 야식부터 내일 소개팅 조언까지, 정치 성향에 상관없이 나누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라고 합니다.
신림동 캐리: 다른 이야긴데 만드신 사이트 이름에 자꾸 고로케가 들어가는데 고로케는 왜 들어가는지?
이준행: 그냥 내가 고로케를 좋아해서다.
신림동 캐리: 알겠다.
이준행: 군대에서 전역할 무렵 친구들과 ‘우리 사업이나 한 번 해볼까?’하고 고로케라는 도메인을 샀다. 물론 내가 전역했을 때는 그 약속을 잊고 각자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더라. 내게 남은 건 배신의 눈물과 도메인뿐이었고 그래서 고로케를 계속 쓰게 됐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의 은퇴 상징이 치킨인데 이준행님은 나중에 닭 말고 고로케 튀길 생각이 있으신지….
이준행: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진짜로 연다면 일본에서 츄하이를 공수해와서 곁들여 팔고 싶다.
신림동 캐리: 고로케 시리즈에 일간워스트까지 서버 유지비용만도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충당하시는지?
이준행: 일간워스트 직전까지 만든 건 다 소소한 서비스라 개인 서버 규모로 감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 개발자로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서 더 좋은 서버를 장만할 계획이기도 했다. 클라우드 호스팅으로 갈까 아마존(AWS)로 갈까 고민하던 와중에 어쩌다 일간워스트가 서버를 크게 잡아먹어서 지출경비와 예상광고수입 계획을 다시 짜고 있다.
신림동 캐리: 그럼 일간워스트는 앞으로 수익을 내기 위한 사업 계획이 있는지?
이준행: 일간워스트는 광고를 받을 생각이다. 그리고 다른 서비스를 몇 개 더 만들어서 수익모델도 좀 실현해볼 생각이다.
신림동 캐리: 연애하고 개발하고 공격 막고 하루가 참 바쁠 것 같은데 잠은 얼마만큼 자고 주로 언제 일하나?
이준행: 잠자는 시간은 불규칙한 편이다. 코딩하던 걸 끝내지 않고는 잠이 안 와서 일을 하면 밤을 새운다. 회사 다닐 땐 새벽에 주로 코딩했던 것 같다. 그때가 제일 집중도가 높은 시간대였으니까. 그때 BGM으로 새벽 라디오를 틀어놓는데 불교방송 라디오에서 아침 예불한다고 종 치고 반야심경 부르면 그걸 자장가로 들으며 자기도 했었다. 회사 다닐 때 맨날 수면 부족 모드여서 그만두면 당분간 그냥 잠만 자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갑자기 일간워스트가 커져서 여전히 잠은 불규칙하다. 이제 좀 자야지 마음먹으면 새벽 1시에 디도스 들어오고 이상한 사진 올리는 애들 몰려오고 그래서 이게 사는 건가….
신림동 캐리: 자꾸 왜 일간워스트에 공격을 해댈까?
이준행: 일간워스트는 개인 사이트가 아닌 커뮤니티이기에 공격이 이루어지는 배경과 이유를 되짚어 대응하는 정치적 활동이 필요했다. 어떠한 이유에서 일간워스트를 공격하는지, 개인의 동기는 무엇이었고 그 행동들이 모여 어떤 현상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각 공격 행동 유형을 정리해 슬로우뉴스 ‘커뮤니티 전쟁? 디도스 등 공격에 대처하는 일워의 자세‘라는 기사를 썼다.
신림동 캐리: 들어온 공격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이준행: 사실 매 순간 공격이 다 흥미롭다. 순서대로 레벨업된 몹이 등장하는 기분이랄까? 디도스나 그런 건 이제 익숙한데, 게시판에 태그 직접등록을 허용해놓았더니 온갖 종류의 스크립트가 들어왔던 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 잊고 있었던 고전적인 공격코드를 다 심어놓아서 어릴 적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달까.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성 그림을 우회해서 올리기 위해 ‘단축 URL 서비스’까지 쓰는 게 제일 재밌었다.
신림동 캐리: 공격 말고 보은은 없나? 예전 한스타 개발자 송창규님은 메일로 야동이나 야짤을 보내주는 유저가 많았다고….
이준행: 난 그런 분은 없었고 축전을 가끔 그려서 보내주신 분들이 있는데 늘 감사하다. 그리고 아까 그 시사인 사진으로 많은 합성을 해주셨다.
신림동 캐리: 그런 합성은 보은이 아니라 조롱이잖아!
버그 잡고 벌레도 잡는 개발자, 이준행님의 인터뷰는 버그 잡고 벌레 잡는 개발자, 이준행 1에서 계속됩니다.
한땀한땀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링크 잘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