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캐리가 공대생 페티쉬를 가지고 있다는 건 로켓펀치 인터뷰를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 취향은 수학 잘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신림동 캐리는 수학을 지지리도 못했거든요. 수학 과외를 받고도 수능에서 수리 9등급 받은 이야기가 이글루스 구 이오공감 시절 메인에 걸리기도 했으며 대학 가서 제일 기뻤던 게 ‘이제 수학 시간이 없어!’였죠.
그래서 한때는 소개팅 조건에 ‘무조건 수학 잘하는 남자!’를 외치기도 했었는데요. 그렇게 IMO 메달리스트와 사귀고 나니 수학 자체에 대한 페티쉬는 확 줄어들더군요. 내가 여기에 왜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지?
아무튼 조승연님은 예전부터 여러모로 동경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서도 두 번이나 친구 요청을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IMO 메달리스트 구남친과의 인연을 계기로 조승연님과 트위터에서 DM을 나누었고 로켓펀치 개발자 인터뷰 섭외까지 따냈습니다. 제가 한때는 술을 마시고 울며 ‘연애 따위 다 부질없어!’를 외쳤었는데요. 요즘 구남친 이름 빌려서 따낸 인터뷰만 몇 개인지, 새삼 참 인생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무심한 듯 시크한 스타크래프트 공식맵 제작자 조승연님을 삼고초려해서 만나봤습니다.
이름 혹은 닉네임: 조승연
위치: 서울
직업, 소속: 프로그래머, KnowRe
내 모바일 기기: 아이폰5, 2012년형 뉴아이패드(일명 구뉴)
SNS 주소: http://kivol.net, @kivoloid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조승연: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 보통 인터뷰하면 그래도 옷장에서 제일 괜찮은 걸 입고 나오시던데 옷차림이 이게 뭔가. 티셔츠에 타이포는 다 갈라져서
조승연: 살 때부터 원래 이랬다.
신림동 캐리: 아, 빈티지….
근데 왜 이렇게 빈티지 같지가 않죠?
신림동 캐리: 예전부터 조승연님 팬이라 트위터 팔로우하고 페이스북에서 친구 요청도 하고 그랬는데 나 따위는 아오안이셨다!
조승연: 친구 요청을 받은 기억이 없다.
신림동 캐리: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응?
조승연: 여러분 이거 다 오해인 거 아시죠.
신림동 캐리: 아무튼 스타크래프트 공식맵 개발자로 알려졌는데 지금은 어째 수학 교육계에 계신다?
조승연: 정확히는 수학교육 회사에서 개발을 맡고 있다.
신림동 캐리: 그럼 여기선 개발만 하시는 건가?
조승연: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고등학교 때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갔고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한때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었다. 지금의 수학교육 회사(KnowRe)에서는 CTO를 맡으며 개발자로 일한다.
신림동 캐리: 예전에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고 하시니까 말인데, 그때 올림피아드 출신이라 강남 엄마 사이에서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거액을 버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부모님 집을 사드렸다고?
조승연: 그랬으면 좋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신림동 캐리: 그럼 그냥 소문에 불과하다?
조승연: 조금 보태드리긴 했으나 그게 거의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한 비율이다.
전국의 자식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부모님께 집 사드린 거 아니라고 합니다.
신림동 캐리: 그럼 개발자 인터뷰니까 꾸준 질문 나가실게요. 난 이 소프트웨어와 도구 없이는 살 수 없다?
조승연: 딱히 도구를 타는 스타일은 아니다.
신림동 캐리: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이건가.
조승연: 아니 그건 아니고 텍스트 에디터도 vi든 서브라임이든 메모장이든 주면 알아서 주섬주섬 어떻게든 쓰고 터미널도 당장 정 궁하면 아이패드로도 불편하지만 꾸역꾸역 일한다. 근데 구글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저번에 출장 다녀오며 비행기에서 코딩을 좀 하려고 했다. 근데 인터넷이 안 되니까 구글도 못 들어가고 막막해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
신림동 캐리: 구글 안 되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조승연: 내가 인터넷에서 찾은 코드를 컨트롤 C+V 하는 건 아닌데, 코딩할 때 꼭 문서를 찾아봐야 하는 편이다. 구글이 없으니까 라이브러리나 프레임워크에서 함수에 변수 쓰는 순서도 헷갈리고 pseudocode 이상 쓰기가 어렵더라.
신림동 캐리: 그런 걸 디지털 치매라고 하나?
조승연: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근데 웬만한 건 굳이 머리에 기억해놓지 않는 편이다. 뇌의 기능을 기억 대신 판단에 몰빵하는 거지!
신림동 캐리: 또 도구 하니까 말인데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모자 쓰고 계신 프로필 사진을 너무 오래 쓰셔서인지 지금의 모자 쓰지 않은 모습이 낯설다.
조승연: 평소에는 모자 잘 안 쓴다.
홍대에서 4만 원 주고 구입한 본인 소장품이라고 합니다.
신림동 캐리: 그 프로필에 쓴 모자가 유난히 조승연님과 너무 잘 어울렸다. 마치 모자가 뇌를 조종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쟤 마음에 안 들어. 빨리 트위터에 까봐.’ 이럴 것 같은 모자다.
신림동 캐리: 자, 그러면 스타크래프트 공식맵 이야기로 넘어가자. 당시에 일개 대학생이셨잖는가.
제가 생각하는 평범한 컴공과 학생의 이미지는 이렇습니다.
신림동 캐리: 근데 어쩌다 평범한 컴공과 대학생이 스타크래프트 공식맵 작업을 하게 됐는지?
조승연: 아니, 난 컴공과 아니고 난 전기과 출신이다. 거기다 수학을 복수전공했다. 아무튼 그 이야기는 대학교 1학년이던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도 스타크래프트는 남자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였고 나 역시 열심히 스타를 즐기는 대학생이었다. 게임을 직접 하는 건 물론 게임방송도 챙겨봤다. 그러다 2003년 말에 온게임넷에서 맵 공모전을 열었다. 그래서 맵을 하나 만들어볼까 하고 처음으로 한 번 그려봤는데 당시에 온게임넷에서 맵 담당하시던 변종석 씨가 내 맵을 굉장히 좋게 봐주셨다.
신림동 캐리: 여기서 포인트는 ‘처음으로 한 번 그려본 맵’인가…. 계속 이야기해봐라.
조승연: 그래서 그 공모전 결과와 관계없이 같이 일해보자고 이야기가 됐고 05년쯤에는 온게임넷에서 지원해 맵제작팀을 따로 만들게 됐다. 그 이후에는 온게임넷뿐만 아니라 스타 협회와도 일하고 그러다 내 개인적 업무가 바빠져 09년쯤에 그만뒀다.
신림동 캐리: 송창규님은 한스타 만들고 블리자드에서 스카웃 받으셨다는데 조승연님은 그런 거 없나?
조승연: 없다.
신림동 캐리: 나는 지금 이렇게 조승연님처럼 내가 평소 좋아하던 분과 인터뷰하면 굉장히 즐겁고 때로는 감격스럽기도 하다. 조승연님도 자신이 만든 맵에서 경기가 치러지면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다. 그중에서 ‘아 이건 내가 봐도 뿌듯하다. 명경기다.’라고 생각한 경기가 있다면?
조승연: 워낙 많은 경기를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딱 하나만 뽑으라면 So1 스타리그 때 4강에서 오영종 선수와 최연성 선수가 ‘815’라는 맵에서 붙은 적이 있다.
조승연: 거기서 오영종 선수가 3셔틀 3리버 3드라군 둠드랍으로 단 한칼에 상대를 제압했다. 그 맵을 만든 나조차도 상상 못 한 기술이라 전율이 일었다.
신림동 캐리: 원래 상상 못 한 일이 막 일어나는 게 스타 아닌가? 스타크래프트를 만든 블리자드조차도 임요환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저런 걸 할 수 있다니!’ 하며 감탄했다지 않나.
조승연: 왜냐하면 나는 맵을 만들 때 꽤 많은 날빌(날카로운 빌드, 주로 1회성 전략)을 시험해보며 너무 강한 전략이 통하는가를 테스트하곤 했다. 꽤 철저하게 테스트한 덕분에 실제 스타를 할 때 누구랑 하더라도 어느 정도 날빌로 상대가 가능했었고…. 아, 물론 지금은 까먹었다. 아무튼 그런데 저 전략은 저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그런 전략이 중요한 경기에서 멋지게 등장하고 또 마무리되는 데서 쾌감을 느꼈다.
신림동 캐리: 마치 재벌 2세가 뺨을 맞고 ‘날 때린 건 니가 처음이야.’라고 하는 것 같군.
조승연: 그건 아닌데 아무튼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내가 생각 못 한 무언가가 일어나는 걸 좋아한다. 코드라든가 아이디어라든가, 하다못해 그게 드립이더라도 말이지.
제가 조승연님과 동시에 알고 있는 구남친을 디스했을 때 그런 드립은 훌륭하다고 평가해주셔서 기뻤습니다.
신림동 캐리: 지난 대선에서의 한국 정치 지형을 테란맵에 비유하신 적이 있다.
조승연: 그렇다.
신림동 캐리: 박근혜 정부가 1년을 보낸 상황에서 저그 혹은 프로토스가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지?
조승연: 맵의 불리함이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이기려면 뉴메타를 개발해야겠지. 과거에 노무현 대통령 역시 그 뉴메타의 하나였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뉴메타를 안철수 의원이라고 보는 것 같더라. 지금은 뉴메타가 나타나도 쉽지 않을 정도로 더 불리해졌다고 생각한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라는 부류가 흔히 말주변 없거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에 비해 조승연님은 글을 잘 쓰실뿐더러 실제로도 상당히 달변가시다.
조승연: 달변가라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신림동 캐리: 아이고, 이렇게 또 겸손하시고…. 안 어울리시게….
조승연: 아니, 정말이다.
신림동 캐리: 역시 그 모자를 써야 키보드 워리어가 되는 건가? 아무튼 그런 능력으로 인한 장점 및 단점은 뭔가?
조승연: 글은 매체 같은 곳에 제대로 된 걸 써본 적이 없어서 뭐라 얘기하기가 좀 그렇다. 다 SNS에서 하는 키워질이지.
신림동 캐리: 그럼 키워질에서 이긴 병신이 되는 비법이나 말해봐라.
조승연: 일단 맞는 쪽에 서야 한다. 진중권 씨 키워력의 30% 정도는 이 판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맞는 쪽에 서서 당연한 얘기를 약간 참신해 보이게 설명하면 된다.
신림동 캐리: 참신해 보이게?
조승연: 예를 들면, A→B→C→D 순서로 논리전개가 될 때, C→D를 얘기하고 A→B를 얘기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B→C를 이어버리면 괜히 뭔가 새롭게 보이거든. 어떻게 보면 사기지. 아, 이거 영업 비밀인데….
신림동 캐리: 그러게, 이렇게 귀중한 팁을 주실 줄은 예상도 못 했다. 내가 그렇게 싫지는 않은가보다. 근데 왜 페이스북에서는 친구 요청을 두 번이나 거절했을까?
조승연: 진짜 난 못 봤다니까.
신림동 캐리: 최근 트위터에서 인물 평가를 하고 계신데, 나에 대해서도 누가 평가해달라고 익명으로 올려놨더라?
조승연: SNS에서는 비련의 여주인공 컨셉으로 나가시는 것 같은데 그거 버리고 딱 1년만 연애 안 하고 버텨봐라. 그러면 지금보다 더 멋지고 매력적인 여자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인터뷰에 나가지는 않겠지만, 아까부터 우리 많은 인물들을 디스하고 있잖는가. 인물에 대한 평가나 판단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아 좀 더 고평가하게 됐다.
CTO로서 조승연님의 가치관과 카와이이한 수학 이야기는 수학이 굉장히 귀엽지 나도 좋아해, 조승연 1에서 계속됩니다.
ㅋㅋㅋㅋ너무 재밌습니다.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