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으로 살아가는 엉뚱한 개발자, 권정혁

여태까지 개발자 인터뷰를 진행하며 “다른 어떤 개발자가 궁금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70% 확률로 같은 이름이 나왔습니다. ‘xguru’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권정혁 레진엔터테인먼트 CTO시죠.

개발자들에게 기술을 전도하고 소통하는 디벨로퍼 에반젤리스트로 유명하신 권정혁님을 만나기 위해 레진엔터테인먼트에 찾아갔습니다.

이름 혹은 닉네임: 권정혁 , 구루 / xguru
위치: 서울
직업, 소속: 레진엔터테인먼트 CTO
내 모바일 기기: 아이폰 5S, 넥서스5
블로그 주소: http://xguru.net

신림동 캐리: 안녕하세요.
권정혁: 안녕하세요.
신림동 캐리: 저번에 레진엔터테인먼트 인터뷰 왔을 때도 그렇고 프라이머 데모데이에서도 그렇고 가끔 뵈었었죠.
권정혁: 네, 기억나네요.
신림동 캐리: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매우 놀랐습니다.
권정혁: 아니, 왜요?
신림동 캐리: 왠지 무서웠어요. 아무튼 인터뷰 시작한다.
권정혁: 아… 알았다.

신림동 캐리: 일단 많이들 궁금해하시는 닉네임부터 여쭈어보겠다. 왜 xguru인가?
권정혁: Guru는 산스크리트어로 ‘빛’을 뜻하며 어둠에서 길을 인도하는 존재, 큰 지식을 가진 스승님을 지칭한다. xguru에 내가 붙인 x는 부정의 x와 모든 것의 x가 동시에 담겨있다.
신림동 캐리: 그러고 보니 나한테 왜 신림동 캐리냐고 물으시는 분이 많은데 마침 레진코믹스에 오니까 기억난다. 예전에 레진님과 드라마 ‘SEX AND THE CITY’ 패러디하며 드립 치다가 나온 별 의미 없는 필명이었는데 이렇게 계속 쓰게 될 줄 몰랐다. 알았으면 좀 더 신중하게 보기 좋고 듣기 좋은 이름을 고민했겠지. 근데 그러고 보면 레진님의 Lezhin도 아무 뜻 없지 않나?
권정혁: 나도 궁금해서 레진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어감이 좋아서 아무 생각 없이 선택한 거라더라.
신림동 캐리: 얼마 전에 레진님이 인생에 대한 명언을 남기셨다는 소식을 트위터에서 듣고 ‘레진 후회’를 네이버에 검색했더니 ‘치과에서 레진을 권해서 그걸로 했는데 후회합니다.’ 같은 거나 뜨더라.

그렇습니다. 신림동 캐리고 레진이고 별 의미 없습니다.

신림동 캐리: 한국 IT계에서 적어도 개발자치고 권정혁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권정혁: 에이, 많을걸.
신림동 캐리: 나만 해도 국어국문학과 전공에 IT와 상관없는 회사에 다닐 때부터 권정혁님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트위터에 가입하면 막 이 사람 팔로우하라고 자꾸 추천하더라고! 농담이고 IT 분야에서 신기술을 분석하고 전파하시는 걸로는 거의 독보적이지 않으신가.
권정혁: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하다.
신림동 캐리: 전 KTH 기술전략팀 팀당으로 일하실 때 운영하시던 기술 공유 블로그(http://dev.paran.com)에 자주 갔었다. 트위터도 그렇고 개인 블로그도 그렇고 그렇게 많은 양의 IT 정보를 어떻게 다 찾아보고 정리하는가?
권정혁: 딱히 노하우라고 할만한 것은 없는데….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신문도 구독 안 한다. 그래서 모바일과 웹으로 기술 뉴스 읽는 게 내 취미 생활이다. 일하거나 자는 걸 제외한 대부분의 깨어있는 시간에 기술 관련한 약 700개 정도의 해외 블로그를 읽는다. 그중에서 중요하고 관심이 가는 정보는 즉시 트위터에 140자로 정리해 올린다. 예전에는 따로 보관했었는데 그렇게 모아두니 나 자신도 안 보게 되더라. 성격상 그때 그때 바로 흡수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되기 힘들다.

신림동 캐리: 그래도 회사 다니랴 하루 700개 블로그 읽으랴 바쁘실 텐데 잠은 얼마만큼 자고 주로 언제 일하시는가?
권정혁: 솔직히 잠이 별로 없는 편이다. 보통 4시간에서 4시간 30분 정도 자면 충분하다.
신림동 캐리: 난 하루에 기본 10시간 자는데!
권정혁: 새벽 3시 근처에 자고 아침 8시 정도에 일어난다. 가능하면 아침 출근 전에 운동하고, 11시경까지 출근해 일하다 새벽 1~2시에 퇴근한다.

내가 요즘 개발자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느낀 게….

존나 열심히 안 하면 안될 거 같애.

근데, 우리는 열심히 안 하잖아. 우린 안될 거야. 아마.

신림동 캐리: 그럼 일하지 않을 때 다른 건 무얼 하나?
권정혁: 일하지 않을 땐 주로 기술 뉴스를 챙겨보지만… 아무래도 레진코믹스에 있으니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만화를 찾아보게 된다. 레진코믹스 만화는 기본이고 다른 곳에서도 찾아본다. 그리고 레고를 좋아해서 레고 관련 정보를 찾고 싸게 구입하고 선별해서 천천히 만든다.
신림동 캐리: 왜 천천히 만드나?
권정혁: 집이 좁아서 많이 둘 수가 없어서 최대한 천천히 만들어 구입 텀을 길게 만든다.
신림동 캐리: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인데….

신림동 캐리: 근데 레고를 많이 둘 수 있는 큰 집에 이사 가려면 연봉 많이 주고 안정적인 대기업에 계속 다니시는 게 좋지 않나?
권정혁: 1997년부터 삼성전자나 KTH 같은 대기업을 비롯해 중소기업, 벤처까지 다 거쳤다. 그러다 작년에 KTH를 나오면서 레진님을 만났는데 레진님이 뜬금없이 “만화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거다.
신림동 캐리: 거기에 권정혁님이 “저희 집이 만화가게였습니다.”라고 하신 건 요즘 스타트업계 전설 아닌가.
권정혁: 전설까지야…. 아무튼 콘텐츠에 안목이 있는 레진님이 계시고 거기에 기술력이 합쳐진다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 밤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뛰고 설레어 잠을 설쳤던 것 같다. 아내도 흔쾌히 ‘그동안 회사 다닐 만큼 다녔으니 너 하고 싶은 거 해라.’고 밀어줬다.
신림동 캐리: 훌륭한 아내시다. 다른 말이지만 사실 나도 레진코믹스 창립 당시에 레진님으로부터 스카웃을 받아 면접도 보고 그랬는데 ‘네이버에서 공짜로 볼 수 있는 만화를 사람들이 왜 돈 주고 볼까?’ 하면서 탐탁지 않아 거절했었다.
권정혁: 그런가? 난 듣는 순간 성공하겠다는 감이 왔었다. 만화라는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 거기에 기술을 같이 녹일 수 있는 사람, 콘텐츠랑 기술을 다 아는 사람이 만났으니 자신감도 들더라.
신림동 캐리: 될 놈은 된다던데 난 안될 놈인가 보다. 아, 내 주변에 레진코믹스 데뷔가 목표인 꿈나무 웹툰 작가가 있는데 연재 선발 기준이 뭐냐고 묻더라.
권정혁: 웹툰 선정은 레진님 몫이다. 나는 관여하지 않는다. 가끔 레진님이 ‘그거 어때요?’라고 하면 개인적인 코멘트 던지는 정도다.

신림동 캐리: 아무튼 레진님은 볼 때마다 무럭무럭 살쪄가시고 레진코믹스가 잘 된다는 게 확 느껴진다.
권정혁: 레진코믹스가 잘 먹이는 것도 있지만 레진님이 살찌는 건 혼자 맨날 술을 마셔서다.
신림동 캐리: 그러고 보니 레진코믹스가 직원들 정말 잘 먹인단 소문을 들었다.
권정혁: 끼니마다 밥값 제한이 전혀 없다. 전 직원에게 체크 카드를 줘서 원할 때 쓰게 한다.
신림동 캐리: 와우!
권정혁: 게다가 사무실에 다양한 먹을거리를 늘 채워둔다. 당이 떨어지면 머리 회전 안되니까.
신림동 캐리: 와우!

레진코믹스에서 살찌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신림동 캐리: 권정혁님이 개발자로서 많은 소통을 하셨던 만큼 레진코믹스 내부에서부터 개발자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실 것이라는 기대가 많고 또 실제로 업계에 ‘레진코믹스는 개발자 대우가 좋다더라.’하는 소문이 파다하다.
권정혁: 그런 소문이 돈다니 매우 뿌듯하다. 개발자가 다른 일에 신경 안 쓰고 우리 만화 서비스 만드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매출이 없는 회사의 경우는 외주도 하고 여러 가지를 신경 써야 하는데, 레진코믹스는 다행히 우리 서비스에만 매진할 수 있다. 개발자 입장에서 내가 생각하고 기획한 것을 직접 만드는 것만큼 즐거운 게 없는데,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화 서비스에 미쳐서 그걸 개발할 수 있다는 게 레진코믹스의 최고 장점이지 않을까? 그리고 복지 관련해서는 내가 중소기업, 벤처, 대기업 등을 다 거치면서 좋았다고 느끼는 점을 모아서 만들어봤다. ‘내가 회사에서 대우받는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초점을 뒀다.
신림동 캐리: 넌 소중하니까요?
권정혁: 그렇다. 레진코믹스의 직원은 소중하다. 현시점에서 살 수 있는 최고의 머신을 주고, 주변 장치 또한 요청하면 다 사준다. 월 10만 원 정도의 자기 계발비가 있으며 출퇴근 시간 제한도 없다.
신림동 캐리: 우리 회사도 출퇴근 시간 제한이 없고 많은 스타트업이 그렇지만 개발자는 결국 야근을 하거나 밤새는 일이 허다하더라.
권정혁: 이상하게 개발자들이 새벽에 집중하는 성향이 많긴 하다. 그리고 레진코믹스는 요즘 우리 서비스가 잘 되는 것에 다들 흥분해있는 상태다. 매일 레진코믹스의 매출을 전체 공지한다. 그걸 보면 내가 일한 것이 그대로 반영되고 또 더 잘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다. 신림동 캐리님은 그런 물살을 느껴본 적이 있나?
신림동 캐리: 알 것 같다.
권정혁: 그런 때는 잠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일이 재미있고 안달이 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집에 가라고 해도 개발자들이 자처해 남아있곤 한다.

신림동 캐리: 권정혁님은 블로그와 트위터를 통해 늘 새로운 기술을 전파해오셨는데 현재 레진코믹스가 가장 주력하고 있는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권정혁: iOS / Android 모바일 앱 2.0 버전을 만들고 있다. 2.0 버전에서는 다양한 점이 개선될 것이다. 일단 네이티브로 개발이 된다. 그리고 레진코믹스에서 제공하는 만화가 더 많아진 만큼 만화를 쉽게 발견하고 더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점에 고민하며 만들고 있다.

신림동 캐리: 자, 그럼 레진코믹스는 살짝 내려두고 권정혁이라는 개발자에 다시 포커스를 맞추자. 최근에 공부하고 있는 것은?
권정혁: 요즘 회사에서 담당하는 업무가 Lean Analytics 와 Google AppEngine이다. 그래서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 기법, 그걸 시스템 내에 구현하기 위한 인프라 기술을 주로 보고 있다.

신림동 캐리: 어떤 소프트웨어와 도구 없이는 살 수 없다?
권정혁: 딱히 특정한 도구를 아주 선호하거나 하지는 않는데… 요즘은 SublimeText 에디터를 가장 많이 쓴다. 그리고 예전에는 RSS 리딩을 위해 Reeder를 썼는데 요즘은 Feedly로 바꿨다.
신림동 캐리: 그럼 이 어플 없이는 내 생활이 훨씬 불편했을 것이다 하는 건?
권정혁: Tweetbot과 Reeder.

신림동 캐리: 최근에 읽은 개발에 대한 인상적인 책은?
권정혁: 최근에 개발에 대한 책을 읽은 게 별로 없어서… 그냥 근래에 본 책 중에선 이 가장 재미있었다.

신림동 캐리: 후배 개발자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사이트는?
권정혁: 첫 번째로 http://littlebigdetails.com이다. 개발 사이트는 아닌데, 이런 것을 자주 보는 게 개발자로서의 주가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http://highscalability.com인데 개발 관련 사이트 중에서는 꽤 높은 수준의 내용과 뉴스를 다루기 때문에, 개발자가 챙겨봐야 하는 사이트다.

신림동 캐리: 최근에 구매했던 것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건?
권정혁: 레고 10230 미니모듈러.
신림동 캐리: 천천히 만들고 계신가?
권정혁: 물론이다.

신림동 캐리: 호감이 가는 IT 회사는?
권정혁: 엄청난 기술 기반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Netflix! 레진코믹스의 롤 모델이다. 넷플릭스가 창업한 지 17년 만에 저 위치에 올라갔는데, 우리는 절반 이하의 시간으로 그 위치에 올라 가보려고 한다.
신림동 캐리: 어떻게 보면 요즘 표현으로 패기가 넘친다고 해야 하나… 그럼 나 스스로 개발자로서 점수를 매기면?
권정혁: 100점 만점에 70점. 평균이 50~60점이라면 평균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신림동 캐리: 그럼 본인은 어떤 개발자라고 생각하시는지?
권정혁: 내 블로그에 스스로 ‘엉뚱한 개발자’라고 써놨다. 그냥 엉뚱한 것을 만들어내길 좋아하고, 엉뚱하지만 누군가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뭔가를 개발하는 걸 좋아하는 개발자다. 엄청난 코딩 실력을 갖췄다기보다는 결과를 빠르게 잘 만들어내는 개발자라고 생각한다.

신림동 캐리: 개발자에게 재능이 얼마나 차지한다고 생각하는가?
권정혁: 재능이 중요하긴 하다.
신림동 캐리: 중요하긴 한데?
권정혁: 근데 그게 가장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나도 나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이렇게 살아오고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 개발자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질은 호기심이다.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빠져들 때 열정이 생기고, 그 열정으로 디테일까지 고려하고 채우게 될 때 개발자로서의 경쟁력이 생기더라.
신림동 캐리: 모 세미나에서 ‘닭튀김 수렴공식’이 들어간 슬라이드를 발표하셨는데, 아직도 한국 개발자의 끝은 치킨집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아니 요즘은 카페인가?

권정혁: 예전에 올렸던 ‘닭튀김 수렴공식’ 슬라이드가 계속 회자되던데, 나는 그 공식을 검색엔진 최적화(SEO)라는 기술을 알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던 것이라는 걸 이 자리 빌어 외치고 싶다. 국내에서 호호백발 개발자가 없는 이유는 경험 많은 개발자가 창업해서 그 회사의 오너/대표로 남아 있는 IT 기업이 국내에 많이 없기 때문일 거다. 경험 많은 개발자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기 어렵거나, 인정하게 되더라도 매니저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이제 조금씩 개발자가 활동하기 좋은 그런 회사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런 개발자들이 오너/대표가 되는 상황이 나오면 앞으로 점점 한국에서 개발자로서의 커리어와 삶의 질이 더 좋아질 거라 본다. 다른 이야기지만 레진코믹스도 평균 연령이 38세다. 10년 차 개발자가 막내!

사무실에서는 맥북 프로 레티나와 27인치 모니터를 쓴다.
스마트폰은 아이폰5S와 넥서스5가 있다.

좌측에 2011년형 맥에어가 한 대 있는데, 예전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통째로 들이부어서 고장 났다.

근데 한참 묵혀뒀더니 혼자 부활하셨다. 충전은 안 되는데 전원을 꽂으면 사용할 수 있더라.

요즘은 맥 예전 OS용을 세팅해 회사 머신과 같이 쓴다.